| Tokyo |
"꼭 빈티지 가게가 아니더라도 고엔지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고엔지는 시모키타자와와 더불어 빈티지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또한 각종 분야의 예술가들이 집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8월 말에는 아와오도리 축제가 열려 온 동네가 떠들썩해진다. 여기까지는 고엔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내용이다.
이제부터 고엔지의 잘 알려진 특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고엔지의 북쪽에 해당하는 고엔지키타(北)쪽에서 JR고엔지역으로 내려가는 고신도오리(庚申通り) 상점가와 고엔지역 근처에 있는 독특한 기상 신사(氣象神社)가 바로 그곳이다. 고신도오리 상점가는 깔끔하게 정돈된 세련미 풍기는 빈티지 가게, 카페들이 즐비한 고엔지의 남쪽 PAL 상점가와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다. 70~80년대 레트로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같은 고엔지 역 부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남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대부분 ‘상점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거리에 지붕이 씌워져 있게 마련인데, 고신도오리 상점가는 지붕이 없는 평범한 골목길이다. 생활용품이나 먹을거리를 파는 오래된 가게의 간판 사이사이 귀여운 카페나 찻집이 자리하고 있는 주택가의 골목 상권. 고엔지의 고신도오리 상점가에서 가 볼 만한 두 곳을 먼저 소개한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고신도오리 상점가 골목길과 가게들
세이란의 정식 명칭은 홀스파이스 카레 세이란. ‘향기를 먹는 카레라이스’가 콘셉트인 카레라이스 전문점이다. 고신도오리 상점가의 북쪽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옛 느낌이 남아 있는 골목길에 어울리는 낡은 건물에 간판은 옛날 가게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어서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문에 붙어 있는 파란색 스티커를 잘 봐야 한다. 좁은 가게는 모든 좌석이 카운터석이고, 바로 앞에서 지긋한 연세의 마스터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홀스파이스 카레 세이란. 지붕 간판에는 예전에 있었던 가게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게 메뉴판과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메뉴 설명에는 커다랗게 “스파이시 ≠ 매운맛”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매운맛’은 스파이스의 한 요소일 뿐, 이곳의 카레는 ‘맛’, ‘향기’, ‘색채’ 등 스파이스가 의미하는 모든 특징과 풍미를 즐기는 카레라는 뜻이다. 실제로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한약 냄새 같기도 하고, 동남아의 향신료 냄새 같기도 하고, 중국의 마라 냄새 같기도 하고, 우리가 아는 카레 냄새 같기도 한,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카레 전문점과는 확연하게 다른 향이다.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인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을 주문해 본다. 정식은 카레라이스에 각종 채소 반찬이 한 접시 위에 올라간 메뉴다. 얼마나 스파이시할지 겁이 난다면 스파이스가 조금 적게 들어간 치킨카레도 있다.

세이란 내부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배합한 홀스파이스를 그때그때 바로 볶아서 카레를 만든다. 덕분에 메뉴가 단순한 것에 비해 음식이 나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카레의 단짝 라씨도 한잔 주문해 스파이시에 대비한다.

드디어 내 앞에 나온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
세이란(靑藍)은 일본 전통 색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선명한 남색을 뜻하며, 영어로는 인디고블루라고 표현한다. 그 이름에 맞춘 푸른색 그릇 위에서 노란색 강황밥, 갈색 카레가 선명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스파이스의 ‘색채’도 즐긴다는 가게의 콘셉트에 충실하게 선명한 색으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까이에서 향을 맡아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것처럼 이것이 과연 카레의 냄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 카레 특유의 향이 섞여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그 카레 향은 절대 아니다. 맛을 가늠할 수 없는 향에 약간 위축되어 조심조심 첫 숟가락을 떴다.
이 맛은, 이 향은, ‘카레’가 맞다. 하지만 ‘카레’가 아니다.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특이한 향과 맛이다. 입안에서 스파이스가 폭발한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알싸하면서 매콤하고 얼얼하고 향기롭다. 처음으로 고수를 먹었을 때, 처음으로 마라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신선함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도 있는 그 독특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과 라씨
먹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매운맛이 느껴진다. 매워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매운 것과는 다른 알싸함이 혀를 더 많이 자극한다. 그렇다고 스파이시한 맛이 전부는 아니다. 베이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닭뼈와 다시마 육수가 내는 감칠맛이 진한 풍미를 부드럽게 감싸준다.
정식에 곁들여진 채소 반찬들, 그리고 라씨 한 모금으로 자극받은 입을 달래가며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입안에 굉장히 자극적이고 얼얼한 느낌이 남은 것에 비해 이상하게 속은 편안하다. 이것이 그냥 ‘매운맛’이 아닌 ‘스파이시’의 힘인 것인가?
세이란은 카레를 좋아하고,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에스닉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가봐야 할 독특한 카레 전문점이다. 고엔지에 간다면 자극적인 보양식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 특이한 카레집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세이란(ホールスパイスカレー青藍 / Blue Plate)
2 Chome-41-15 Koenjikita, Suginami City, Tokyo 166-0002 일본
영업 시간: 오전 11:30~오후 2:00, 오후 5:30~7:30 / 화요일과 금요일은 점심영업만하며, 재료 소진 시 영업 종료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 1,000엔
이런 도넛 오랜만이야 Floresta(フロレスタ高円寺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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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봐선 꽃집인가? 싶은 플로레스타는 도넛 가게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달고, 부드럽고, 속에 크림이나 잼이 들어 있는 도넛이 아니라 옛날식으로 만들어서 조금 단단하고 덜 단 도넛이다. 방부제와 보존료 등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좋은 재료의 맛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심플한 도넛이 이 가게의 콘셉트다.

도넛 가게 플로레스타
세련된 간판은 고신도오리 상점가에서는 조금 튀는 느낌이지만, ‘방금 네이처 도넛이 나왔습니다~’라고 소리치는 점원의 목소리에 길을 지나던 동네 주민들이 스스슥 줄을 서서 도넛을 사는 풍경은 이 상점가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판매대 옆쪽에 실내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문제없이 도넛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쇼케이스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도넛들
네이처, 호지차, 초콜릿, 크랜베리 밀키 도넛과 커피를 주문했다. 향기로운 밀가루 맛이 느껴지는 네이처 도넛은 부드러운 도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약간 뻑뻑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만큼 밀도가 높다. 하지만 버터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고 위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옛날 도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 개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다.

가장 기본인 네이처 도넛
호지차 도넛은 네이처 도넛에 호지차 맛이 섞여 있고, 텍스처는 비슷하다. 호지차의 향기가 입안에 확 퍼진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초콜릿이나 화이트 초콜릿이 코팅된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도넛과 초콜릿은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조합을 보여준다. 그냥 화이트 초콜릿이 코팅된 밀키 도넛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크랜베리 밀키는 새콤한 크랜베리 맛이 화이트 초콜릿과 어우러져서 보다 디저트스러운 느낌을 안겨준다.

호지차, 초콜릿, 네이처, 크랜베리 밀키 도넛
이 외에도 플로레스타에는 때에 따라 각양각색 다양한 도넛이 판매되며, 동물 모양의 귀여운 도넛이나 구운 과자도 있으니 취향과 기분에 맞춰 디저트를 선택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파는 곳이 드문 종류의 도넛이므로 근처를 지나간다면 꼭 한 번 맛보길 추천한다.
floresta(フロレスタ高円寺店)
3 Chome-34-1 Koenjikita, Suginami City, Tokyo 166-0002 일본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도넛 종류에 따라 180~250엔

기상 신사(히카와 신사) 입구
고신지도오리를 빠져나와 JR고엔지역을 통과해 남쪽으로 나가면 고엔지역 광장이 펼쳐진다. 이 광장을 지나 왼쪽을 조금만 내려가면 자그마한 신사가 하나 나온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고엔지 히카와 신사(高円寺氷川神社). 이 신사의 말사(末社)인 기상 신사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날씨와 관련된 기원을 올리는 아주 특이한 신사다.

신사 입구에 설치된 기상 상황 안내판과 히카와 신사 본당
말사로 기상 신사가 자리하고 있지만, 히카와 신사의 정문에는 그날의 날씨를 보여주는 LED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을 만큼 신사 전체가 기상 신사로 여겨지고 있다. 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기상 신사라는 특징 하나만으로도 방문해 볼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히카와 신사의 말사인 기상 신사
정문 도리이를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중앙에 히카와 신사의 본전이 있고, 그 왼쪽에 말사인 기상 신사가 있다. 기상 신사 한쪽에는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는 일본 전통 부적 테루테루보즈 모양의 테루테루미쿠지가 잔뜩 걸려 있다. 기상 신사의 테루테루미쿠지는 ‘맑음’, ‘구름’, ‘비’, ‘눈’, ‘뇌우’, ‘바람’, ‘서리’, ‘안개’ 등 여덟 가지 기상 현상을 기반으로 운세를 보여주는데, 운세와는 별도로 테루테루보즈에게 얼굴을 그려주거나 소원을 써서 신사에 걸어두기도 한다.

좋은 날씨를 기원하는 테루테루미쿠지
신사에 걸려 있는 테루테루미쿠지를 잘 보면 깨알같이 소원이 적혀 있는데, 빠짐없이 좋은 날씨를 바라는 내용이고, 기념품으로 파는 거의 대부분의 물품들도 맑은 날씨의 기원을 담고 있다.

테루테루미쿠지 판매대와 각종 기념품 판매대
날씨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누구나 중요한 날엔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일본 유일의 기상 신사에 들러 여행 일정 내내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거나, 좋은 날을 앞둔 지인에게 맑은 날씨를 기원하는 기념품을 선물하는 것도 일본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기상 신사(気象神社)
일본 〒166-0003 Tokyo, Suginami City, Koenjiminami, 4 Chome−44−19 氷川神社
오전 7시~오후 6시
글·사진 |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편집 | 신태진·이주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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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빈티지 가게가 아니더라도 고엔지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고엔지는 시모키타자와와 더불어 빈티지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또한 각종 분야의 예술가들이 집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8월 말에는 아와오도리 축제가 열려 온 동네가 떠들썩해진다. 여기까지는 고엔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내용이다.
이제부터 고엔지의 잘 알려진 특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고엔지의 북쪽에 해당하는 고엔지키타(北)쪽에서 JR고엔지역으로 내려가는 고신도오리(庚申通り) 상점가와 고엔지역 근처에 있는 독특한 기상 신사(氣象神社)가 바로 그곳이다. 고신도오리 상점가는 깔끔하게 정돈된 세련미 풍기는 빈티지 가게, 카페들이 즐비한 고엔지의 남쪽 PAL 상점가와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다. 70~80년대 레트로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같은 고엔지 역 부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남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대부분 ‘상점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거리에 지붕이 씌워져 있게 마련인데, 고신도오리 상점가는 지붕이 없는 평범한 골목길이다. 생활용품이나 먹을거리를 파는 오래된 가게의 간판 사이사이 귀여운 카페나 찻집이 자리하고 있는 주택가의 골목 상권. 고엔지의 고신도오리 상점가에서 가 볼 만한 두 곳을 먼저 소개한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고신도오리 상점가 골목길과 가게들
세이란의 정식 명칭은 홀스파이스 카레 세이란. ‘향기를 먹는 카레라이스’가 콘셉트인 카레라이스 전문점이다. 고신도오리 상점가의 북쪽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옛 느낌이 남아 있는 골목길에 어울리는 낡은 건물에 간판은 옛날 가게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어서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문에 붙어 있는 파란색 스티커를 잘 봐야 한다. 좁은 가게는 모든 좌석이 카운터석이고, 바로 앞에서 지긋한 연세의 마스터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홀스파이스 카레 세이란. 지붕 간판에는 예전에 있었던 가게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게 메뉴판과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메뉴 설명에는 커다랗게 “스파이시 ≠ 매운맛”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매운맛’은 스파이스의 한 요소일 뿐, 이곳의 카레는 ‘맛’, ‘향기’, ‘색채’ 등 스파이스가 의미하는 모든 특징과 풍미를 즐기는 카레라는 뜻이다. 실제로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한약 냄새 같기도 하고, 동남아의 향신료 냄새 같기도 하고, 중국의 마라 냄새 같기도 하고, 우리가 아는 카레 냄새 같기도 한,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카레 전문점과는 확연하게 다른 향이다.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인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을 주문해 본다. 정식은 카레라이스에 각종 채소 반찬이 한 접시 위에 올라간 메뉴다. 얼마나 스파이시할지 겁이 난다면 스파이스가 조금 적게 들어간 치킨카레도 있다.
세이란 내부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배합한 홀스파이스를 그때그때 바로 볶아서 카레를 만든다. 덕분에 메뉴가 단순한 것에 비해 음식이 나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카레의 단짝 라씨도 한잔 주문해 스파이시에 대비한다.
드디어 내 앞에 나온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
세이란(靑藍)은 일본 전통 색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선명한 남색을 뜻하며, 영어로는 인디고블루라고 표현한다. 그 이름에 맞춘 푸른색 그릇 위에서 노란색 강황밥, 갈색 카레가 선명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스파이스의 ‘색채’도 즐긴다는 가게의 콘셉트에 충실하게 선명한 색으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까이에서 향을 맡아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것처럼 이것이 과연 카레의 냄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 카레 특유의 향이 섞여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그 카레 향은 절대 아니다. 맛을 가늠할 수 없는 향에 약간 위축되어 조심조심 첫 숟가락을 떴다.
이 맛은, 이 향은, ‘카레’가 맞다. 하지만 ‘카레’가 아니다.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특이한 향과 맛이다. 입안에서 스파이스가 폭발한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알싸하면서 매콤하고 얼얼하고 향기롭다. 처음으로 고수를 먹었을 때, 처음으로 마라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신선함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도 있는 그 독특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스파이시 치킨 카레 정식과 라씨
먹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매운맛이 느껴진다. 매워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매운 것과는 다른 알싸함이 혀를 더 많이 자극한다. 그렇다고 스파이시한 맛이 전부는 아니다. 베이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닭뼈와 다시마 육수가 내는 감칠맛이 진한 풍미를 부드럽게 감싸준다.
정식에 곁들여진 채소 반찬들, 그리고 라씨 한 모금으로 자극받은 입을 달래가며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입안에 굉장히 자극적이고 얼얼한 느낌이 남은 것에 비해 이상하게 속은 편안하다. 이것이 그냥 ‘매운맛’이 아닌 ‘스파이시’의 힘인 것인가?
세이란은 카레를 좋아하고,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에스닉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가봐야 할 독특한 카레 전문점이다. 고엔지에 간다면 자극적인 보양식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 특이한 카레집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Floresta(フロレスタ高円寺店)
이름만 봐선 꽃집인가? 싶은 플로레스타는 도넛 가게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달고, 부드럽고, 속에 크림이나 잼이 들어 있는 도넛이 아니라 옛날식으로 만들어서 조금 단단하고 덜 단 도넛이다. 방부제와 보존료 등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좋은 재료의 맛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심플한 도넛이 이 가게의 콘셉트다.
도넛 가게 플로레스타
세련된 간판은 고신도오리 상점가에서는 조금 튀는 느낌이지만, ‘방금 네이처 도넛이 나왔습니다~’라고 소리치는 점원의 목소리에 길을 지나던 동네 주민들이 스스슥 줄을 서서 도넛을 사는 풍경은 이 상점가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판매대 옆쪽에 실내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문제없이 도넛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쇼케이스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도넛들
네이처, 호지차, 초콜릿, 크랜베리 밀키 도넛과 커피를 주문했다. 향기로운 밀가루 맛이 느껴지는 네이처 도넛은 부드러운 도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약간 뻑뻑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만큼 밀도가 높다. 하지만 버터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고 위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옛날 도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 개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다.
가장 기본인 네이처 도넛
호지차 도넛은 네이처 도넛에 호지차 맛이 섞여 있고, 텍스처는 비슷하다. 호지차의 향기가 입안에 확 퍼진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초콜릿이나 화이트 초콜릿이 코팅된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도넛과 초콜릿은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조합을 보여준다. 그냥 화이트 초콜릿이 코팅된 밀키 도넛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크랜베리 밀키는 새콤한 크랜베리 맛이 화이트 초콜릿과 어우러져서 보다 디저트스러운 느낌을 안겨준다.
호지차, 초콜릿, 네이처, 크랜베리 밀키 도넛
이 외에도 플로레스타에는 때에 따라 각양각색 다양한 도넛이 판매되며, 동물 모양의 귀여운 도넛이나 구운 과자도 있으니 취향과 기분에 맞춰 디저트를 선택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파는 곳이 드문 종류의 도넛이므로 근처를 지나간다면 꼭 한 번 맛보길 추천한다.
기상 신사(氣象神社)
기상 신사(히카와 신사) 입구
고신지도오리를 빠져나와 JR고엔지역을 통과해 남쪽으로 나가면 고엔지역 광장이 펼쳐진다. 이 광장을 지나 왼쪽을 조금만 내려가면 자그마한 신사가 하나 나온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고엔지 히카와 신사(高円寺氷川神社). 이 신사의 말사(末社)인 기상 신사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날씨와 관련된 기원을 올리는 아주 특이한 신사다.
신사 입구에 설치된 기상 상황 안내판과 히카와 신사 본당
말사로 기상 신사가 자리하고 있지만, 히카와 신사의 정문에는 그날의 날씨를 보여주는 LED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을 만큼 신사 전체가 기상 신사로 여겨지고 있다. 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기상 신사라는 특징 하나만으로도 방문해 볼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히카와 신사의 말사인 기상 신사
정문 도리이를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중앙에 히카와 신사의 본전이 있고, 그 왼쪽에 말사인 기상 신사가 있다. 기상 신사 한쪽에는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는 일본 전통 부적 테루테루보즈 모양의 테루테루미쿠지가 잔뜩 걸려 있다. 기상 신사의 테루테루미쿠지는 ‘맑음’, ‘구름’, ‘비’, ‘눈’, ‘뇌우’, ‘바람’, ‘서리’, ‘안개’ 등 여덟 가지 기상 현상을 기반으로 운세를 보여주는데, 운세와는 별도로 테루테루보즈에게 얼굴을 그려주거나 소원을 써서 신사에 걸어두기도 한다.
좋은 날씨를 기원하는 테루테루미쿠지
신사에 걸려 있는 테루테루미쿠지를 잘 보면 깨알같이 소원이 적혀 있는데, 빠짐없이 좋은 날씨를 바라는 내용이고, 기념품으로 파는 거의 대부분의 물품들도 맑은 날씨의 기원을 담고 있다.
테루테루미쿠지 판매대와 각종 기념품 판매대
날씨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누구나 중요한 날엔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일본 유일의 기상 신사에 들러 여행 일정 내내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거나, 좋은 날을 앞둔 지인에게 맑은 날씨를 기원하는 기념품을 선물하는 것도 일본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글·사진 |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편집 | 신태진·이주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