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kyo |
이제 마제소바 말고 아부라소바
2010년대 중반쯤부터 한국에서 마제소바가 유행하기 시작했죠. 비벼 먹는 방식이 한국의 감성과 잘 맞았는지 한국인 사이에서 꽤나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에 진출한 마제소바집도 있지요. 그걸 보며 저는 “마제소바가 한국에서 대박이 났다면, 또 다른 비벼 먹는 라멘 ‘아부라소바’도 인기를 모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아부라소바는 도쿄에서 오래전부터 사랑 받는 소울 푸드이고, 도쿄 사람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마제소바보다 10년 정도 늦긴 했지만 예상대로 최근 아부라소바가 한국 SNS에서도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도쿄 아부라소바 원조집과 가볼 만한 아부라소바 맛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부라소바
아부라소바(油そば)란?
일본어로 ‘아부라(油)’는 기름, ‘소바(そば)’는 면이라는 뜻으로,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기름면’이라는 뜻입니다. 아부라소바에는 스프 대신 라드(돼지기름)와 간장 베이스의 양념이 면 아래에 깔려 있고, 날계란을 얹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기름면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기름진 음식이 아닌가 싶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원래 대학교가 많았던 도쿄 서쪽에서 학생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지만, 점점 일본 전역의 라멘집이나 전문점에서 팔게 되고, 이제 편의점에서 즉석면으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부라소바는 스프가 없기 때문에 일반 라멘보다 재료비를 아낄 수 있기도 해요. 그래서 물가가 폭등하는 지금, 일본 각지에서 아부라소바를 파는 가게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가게마다 맛이나 토핑이 다양한 아부라소바

친친테이
아부라소바의 원조집은 도쿄의 서쪽 지역인 무사시노시(武蔵野市)에서 1954년 창업한 ‘친친테이(珍珍亭)’입니다. 낯선 지역에 있는 가게지만, 혹시 아부라소바를 좋아한다면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가게 위치는 기치죠지역에서 두 정거장인 무사시사카이(武蔵境)라는 동네에 있습니다. 이쪽은 토지가 넓고 대학교가 많은 지역이고, 학생들을 위해 저렴하고 볼륨 만점인 음식점이 많아요. 그런 동네에서 아부라소바가 탄생한 겁니다.

친친테이의 아부라소바
원조집인 친친테이의 아부라소바는 양념이 깔끔한 간장베이스입니다. 라드(돼지기름)도 섞여 있지만, 생각보다 기름지지 않습니다. 기본 토핑으로 차슈, 나루토(어묵의 일종, 옛날식 일본 라멘의 상징), 멘마(죽순 조림)가 얹혀 나옵니다. 현지인 손님들은 추가로 날계란과 네기(자른 대파)를 토핑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네기 토핑은 양이 너무 많으니 한 번에 다 얹어 비비는 게 좀 불편할 수 있어요. 주문할 때 일본어로 “네기와 베츠데 구다사이(대파는 따로 주세요)”라고 하면 접시로 따로 나옵니다. 대파는 조금씩 라멘과 비벼 먹어도 되고, 반찬 삼아 먹어도 됩니다.

대파가 별미예요.
먹다가 중간에 라유(고추기름)과 식초를 넣으면 맛이 달라져 질리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처음부터 라유, 식초를 넣지 않고, 중간에 조금씩 맛을 바꾸는 게 현지식입니다. 맛을 변화시키는 팁을 아지헨(味変)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처음부터 균일하게 맛을 만드는 것보다 끝까지 질리지 않도록 중간에 맛을 바꾸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간장 양념, 날계란, 라유, 식초의 하모니는 최강입니다. 날계란을 잘 못 드시는 분도 아부라소바에 넣어 비비면 신기하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중간에 라유(고추기름, 오른쪽 양념통)를 3바퀴, 식초(왼쪽 양념통)를 1바퀴 뿌리는 게 현지인이 아부라소바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다.
스프는 따로 주문하셔야 합니다. 스프는 가격 50엔이고, 무료는 아니에요. 스프는 중화풍 간장 베이스 맛입니다. 아부라소바를 먹다가 후반에 스프를 넣어 라멘 스타일로 먹는 손님도 가끔 있어요.
일본 역시 물가가 상승중인데, 친친테이는 지금도 아부라소바를 850엔으로 판매합니다. 아무래도 학생 손님이 많은 가게라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시는 것 같네요.
아부라소바 맛집은 2000년대 이후 여러 곳에 정말 많이 생겼어요. 저는 나름대로 많은 아부라소바를 먹어봤지만, 친친테이를 이길 아부라소바집은 없었어요. 친친테이는 원조집이자 여전히 베스트 아부라소바 맛집입니다. 심플하고 소박한데 너무도 깊은 맛. 좋은 의미로, 처음부터 완성시키지 않고 먹는 사람이 스스로 토핑이나 조미료를 넣으며 ‘나만의 아부라소바’를 만들 수 있는 여백이 있다고 할까요. 새로 생긴 가게들도 친친테이의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아부라소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친테이'의 외관은 흔한 동네 중국집 같지요. 원래 아부라소바 전문점은 아닙니다. 지금도 아부라소바 이외 라멘, 완탕멘, 차항(볶음밥)도 제공합니다. 이런 중국집(동네 라멘집)에서는 ‘라멘+차항(탄수화물+탄수화물)’처럼 주문하고 먹는 일본인이 있는데요(일본에서는 모든 음식이 밥반찬이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는 ‘아부라소바+차항’을 주문하는 손님도 있어요. 세트메뉴는 없으니 둘 다 단품으로 주문해야 합니다. 오래된 집이라 많이 낡았지만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합니다. 점원 아주머니들이 활발하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맛집입니다.

친친테이가 있는 무사시노시 무사시사카이(武蔵境)
친친테이는 JR츄오선 무사시사카이역 도보 10분 거리. 무사시사카이역은 기치죠지역에서 타치카와・다카오 방면으로 두 정거장입니다. 무사시사카이역 주변은 한가로운 동네이고, 주택가 바로 옆에 밭이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도쿄다운 분위기는 없는데 살기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외국 관광객이 놀러가는 동네는 아니지만, 기치죠지나 지브리 미술관에 가시게 되면 아부라소바 원조집을 찾아가 보세요.
친친테이(珍々亭) / 무사시사카이
주소 : Tokyo, Musashino-shi Musahisakai 5-17-21
영업시간 : 10:00~16:00

미하루 이케부쿠로 본점
도쿄에서 이케부쿠로(池袋)와 에비스(恵比寿)는 라멘의 격전지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미하루는 2002년에 이케부코로에 본점을, 2006년에 에비스에 분점을 차렸습니다. 둘 다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라멘 맛집입니다.
미하루의 라멘 장르는 무화조(無化調)라고 불리며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스프는 가다랑어 베이스입니다. 이케부쿠로는 젊은 사람이 많은 지역이라 정크한 느낌의 라멘집이 많지만 무화조라도 충분히 맛있는 라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比内地鶏のあぶらそば): ¥1,030
미하루는 아부라소바 전문점이 아니지만, 아부라소바 맛집으로 유명해져 대부분의 손님이 아부라소바를 주문합니다. 물론 아부라소바도 무화조입니다. 착한 간장 양념 맛이고 느끼하지 않습니다.

기본 토핑으로 나오는 굵은 멘마(죽순)가 끝내줍니다!

다진 양파도 얹어 나오고 간장 양념과 잘 어울립니다.
아부라소바 메뉴는 기본 맛(あぶらそば味玉付き)과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比内地鶏のあぶらそば)가 있어요. 히나이지도리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닭고기이고, 그 닭기름을 넣은 아부라소바입니다. 감칠맛이 깊어서 저는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를 더 좋아합니다.
탁상 조미료로 라유(ラー油, 고추기름), 수제 새우기름(自家製えび油), 타바스코가 있습니다, 먹다가 중간에 취향에 맞게 조미료를 넣어 맛을 바꿔보세요. 일반적인 아부라소바는 기본 토핑으로 날계란이 얹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의 아부라소바는 날계란 대신에 반숙계란이 나옵니다.

먹다가 맛을 바꿔 보세요.
가격은 현재 아부라소바 기본 맛(あぶらそば)은 1,000엔,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比内地鶏のあぶらそば)는 1,030입니다. 여담이지만, 미하루는 2019년에는 서울 용산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아보라소바라서 도쿄로 오신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케부쿠로 본점 내부

에비스점 외관
미하루(瞠) 이케부쿠로 본점
주소 : Tokyo, Toshima-ku Higashiikebukuro 1-31-16
영업시간 : 11:00 ~ 23:00
미하루(瞠) 에비스점
주소 : Tokyo, Shibuya-ku Ebisu 1-4-1
영업시간 : 11:00 ~ 15:00, 17:00 ~ 20:30
메구로·가마타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釜玉中華そば ナポレオン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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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곳은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釜玉中華そば ナポレオン軒)입니다. 이 가게는 유명 츠케멘 체인점 츠케멘 TETSU를 창업한 고미야 가즈로니(小宮一哲) 사장님이 출시한 새 브랜드이며, 2023년에 도쿄 도리츠다이가쿠역 부근에 본점을 오픈했습니다. 일본어로 츄카소바는 라멘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제공하는 메뉴가 아부라소바 느낌에 매우 가깝습니다. 도리츠다이가쿠 본점은 7석밖에 없는 좁은 집이지만, 하루에 200그릇 이상 판매하는 인기 맛집입니다. 현재 도쿄에서 매장이 점점 늘고 있는데, 저는 이번에 게이큐 가마타점에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면을 만들었는데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가마타마(釜玉)였습니다’
혹시 가마타마(釜玉)라는 들어보셨어요? 마루가메 제면 같은 우동집에 가 보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가마타마는 우동 메뉴의 일종이고, 면수를 빼고 면 위에 날계란을 얹은 것입니다. 간장을 뿌려 살짝 비벼 먹어요. 가마타마 츄카소바란 가마타마의 라멘 버전, 즉, 아부라소바 같은 음식이랍니다. 가다랑어 다시 물과 고소한 참기름향이 뿌려져 있고, 날계란 이외에 차슈나 멘마(죽순) 등의 토핑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리치 가마타마 보통(リッチ釜玉 並): ¥790
이곳의 메뉴는 면이 핵심입니다. 고미야 사장님은 제면소에 오더할 수 없는 나만의 면을 만들자고 해서 굵은 치지레멘(꼬불꼬불한 면)을 개발했습니다. 개발 단계에서 이 면은 라멘이나 츠케멘(국물이 있는 면)보다 직접 면 본래의 식감을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느끼고, 가마타마 츄카소바(=아부라소바)로 제공하기로 하셨답니다. 간판에는 美味しい麺を作ったら、1番美味しい食べ方は釜玉でした(맛있는 면을 만들었는데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가마타마였습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꼬불꼬불한 굵은 치지레멘면
물론 아부라소바의 특징인 아지헨(味変, 중간에 맛을 변화시키는 것)을 위한 조미료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간장, 마늘, 생강, 라유, 유즈시치미(유자고추가루), 참깨, 키쿠라게(목이버섯채)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표고버섯 식초나 가츠오부시 가루, 바카니라(부추김치 같은 것) 같이 재미있는 것까지, 10여 종의 조미료가 있습니다. 치즈도 있는데 탁상에 없으니 혹시 원하시면 직원에게 “치즈 구다사이”라고 말씀하세요. 처음엔 간장만 넣어 면 본래의 맛과 식감을 즐긴 다음에, 취향에 맞게 조미료를 넣어 맛을 바꿔 보세요.

그릇 밑에 간장 아부라 간장 양념이 조금 고여 있어요.

무료 조미료들
참고로 라인 친구 추가를 하면 쿠폰으로 유료 토핑 메뉴 하나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유료 토핑에는 날계란(生卵, 나마타마고), 죽순(メンマ, 멘마), 오아게(お揚げ, 유부), 파 추가(ネギ増量, 네게 조료), 매운 파 추가(辛ネギ増量, 카라네기 조료)가 있습니다. 저는 쿠폰으로 오아게(유부)를 받았습니다. 살짝 유자 향이 느껴지는 유부가 굉장히 맛있었고, 그래서인지 오이나리상(おいなりさん, 유부초밥)이 사이드메뉴로 인기가 높아요. 저는 오이나리상까지 먹으면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혈당이 폭등할 것 같아서 오아게(유뷰) 토핑으로 만족했습니다. (※라인 친구 쿠폰은 일정 기간 몇 번이라도 이용 가능합니다.)
먹다가 후반에 스프와리(スープ割)를 시킬 수 있습니다. 스프와리란 마무리로 제공해 주는 스프를 말하며, 조금 남긴 면에 넣어 라멘처럼 먹는 것입니다. 시키지 않으면 주지 않으니 혹시 원하시는 경우는 “스프와리 구다사이”라고 직원에게 말씀하세요. 스프와리는 무료입니다. 면의 양은 소(小) 150g, 並(보통) 200g, 大 250g입니다. 제가 이번에 주문한 메뉴는 리치 가마타마 츄카소바 並(보통)입니다. 아부라소바는 일반적인 라멘보다 가격이 싼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모든 메뉴를 1,000엔 이하로 제공해 주는 건 정말로 양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마타마 츄카소바(기본 토핑: 날계란, 파)는 소(小) 490엔, 並(보통) 590엔, 大 690엔.
리치 가마타마 츄카소바(기본 토핑+ 차슈, 멘마)는 소(小) 690엔, 並(보통) 790엔, 大 890엔.

본점은 도리츠다이가쿠역 북쪽 출구 도보 1분, 게이큐 가마타점은 게이큐 가마타역 도보 2분. 롯폰기점도 있어요. 점포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구글지도에서 ‘naporeonken’을 검색하고 이동하기 편한 점포를 찾아보세요.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 게이큐(釜玉中華そば ナポレオン軒) 도리츠다이가쿠 본점
주소 : Tokyo, Meguro-ku Nakane 1-5-1
영업시간 : 11:00 ~ 23:00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 게이큐(釜玉中華そば ナポレオン軒) 가마타점
주소 : Tokyo, Ota-ku Kamata 4-15-1
영업시간 : 11:00 ~ 23:00
글·사진 | 네모

도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일본인 남자. 서강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일 양국 요리와 식문화에 정통하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라는 철학으로 한국인에게 도쿄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판한 저서로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텐동의 사연과 나폴리탄의 비밀』 등이 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tokyo_nemo/
· 저서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2024년 개정판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848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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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제소바 말고 아부라소바
2010년대 중반쯤부터 한국에서 마제소바가 유행하기 시작했죠. 비벼 먹는 방식이 한국의 감성과 잘 맞았는지 한국인 사이에서 꽤나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에 진출한 마제소바집도 있지요. 그걸 보며 저는 “마제소바가 한국에서 대박이 났다면, 또 다른 비벼 먹는 라멘 ‘아부라소바’도 인기를 모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아부라소바는 도쿄에서 오래전부터 사랑 받는 소울 푸드이고, 도쿄 사람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마제소바보다 10년 정도 늦긴 했지만 예상대로 최근 아부라소바가 한국 SNS에서도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도쿄 아부라소바 원조집과 가볼 만한 아부라소바 맛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부라소바
아부라소바(油そば)란?
일본어로 ‘아부라(油)’는 기름, ‘소바(そば)’는 면이라는 뜻으로,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기름면’이라는 뜻입니다. 아부라소바에는 스프 대신 라드(돼지기름)와 간장 베이스의 양념이 면 아래에 깔려 있고, 날계란을 얹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기름면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기름진 음식이 아닌가 싶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원래 대학교가 많았던 도쿄 서쪽에서 학생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지만, 점점 일본 전역의 라멘집이나 전문점에서 팔게 되고, 이제 편의점에서 즉석면으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부라소바는 스프가 없기 때문에 일반 라멘보다 재료비를 아낄 수 있기도 해요. 그래서 물가가 폭등하는 지금, 일본 각지에서 아부라소바를 파는 가게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가게마다 맛이나 토핑이 다양한 아부라소바
무사시사카이
친친테이(珍々亭)
친친테이
아부라소바의 원조집은 도쿄의 서쪽 지역인 무사시노시(武蔵野市)에서 1954년 창업한 ‘친친테이(珍珍亭)’입니다. 낯선 지역에 있는 가게지만, 혹시 아부라소바를 좋아한다면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가게 위치는 기치죠지역에서 두 정거장인 무사시사카이(武蔵境)라는 동네에 있습니다. 이쪽은 토지가 넓고 대학교가 많은 지역이고, 학생들을 위해 저렴하고 볼륨 만점인 음식점이 많아요. 그런 동네에서 아부라소바가 탄생한 겁니다.
친친테이의 아부라소바
원조집인 친친테이의 아부라소바는 양념이 깔끔한 간장베이스입니다. 라드(돼지기름)도 섞여 있지만, 생각보다 기름지지 않습니다. 기본 토핑으로 차슈, 나루토(어묵의 일종, 옛날식 일본 라멘의 상징), 멘마(죽순 조림)가 얹혀 나옵니다. 현지인 손님들은 추가로 날계란과 네기(자른 대파)를 토핑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네기 토핑은 양이 너무 많으니 한 번에 다 얹어 비비는 게 좀 불편할 수 있어요. 주문할 때 일본어로 “네기와 베츠데 구다사이(대파는 따로 주세요)”라고 하면 접시로 따로 나옵니다. 대파는 조금씩 라멘과 비벼 먹어도 되고, 반찬 삼아 먹어도 됩니다.
대파가 별미예요.
먹다가 중간에 라유(고추기름)과 식초를 넣으면 맛이 달라져 질리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처음부터 라유, 식초를 넣지 않고, 중간에 조금씩 맛을 바꾸는 게 현지식입니다. 맛을 변화시키는 팁을 아지헨(味変)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처음부터 균일하게 맛을 만드는 것보다 끝까지 질리지 않도록 중간에 맛을 바꾸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간장 양념, 날계란, 라유, 식초의 하모니는 최강입니다. 날계란을 잘 못 드시는 분도 아부라소바에 넣어 비비면 신기하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중간에 라유(고추기름, 오른쪽 양념통)를 3바퀴, 식초(왼쪽 양념통)를 1바퀴 뿌리는 게 현지인이 아부라소바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다.
스프는 따로 주문하셔야 합니다. 스프는 가격 50엔이고, 무료는 아니에요. 스프는 중화풍 간장 베이스 맛입니다. 아부라소바를 먹다가 후반에 스프를 넣어 라멘 스타일로 먹는 손님도 가끔 있어요.
일본 역시 물가가 상승중인데, 친친테이는 지금도 아부라소바를 850엔으로 판매합니다. 아무래도 학생 손님이 많은 가게라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시는 것 같네요.
아부라소바 맛집은 2000년대 이후 여러 곳에 정말 많이 생겼어요. 저는 나름대로 많은 아부라소바를 먹어봤지만, 친친테이를 이길 아부라소바집은 없었어요. 친친테이는 원조집이자 여전히 베스트 아부라소바 맛집입니다. 심플하고 소박한데 너무도 깊은 맛. 좋은 의미로, 처음부터 완성시키지 않고 먹는 사람이 스스로 토핑이나 조미료를 넣으며 ‘나만의 아부라소바’를 만들 수 있는 여백이 있다고 할까요. 새로 생긴 가게들도 친친테이의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아부라소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친테이'의 외관은 흔한 동네 중국집 같지요. 원래 아부라소바 전문점은 아닙니다. 지금도 아부라소바 이외 라멘, 완탕멘, 차항(볶음밥)도 제공합니다. 이런 중국집(동네 라멘집)에서는 ‘라멘+차항(탄수화물+탄수화물)’처럼 주문하고 먹는 일본인이 있는데요(일본에서는 모든 음식이 밥반찬이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는 ‘아부라소바+차항’을 주문하는 손님도 있어요. 세트메뉴는 없으니 둘 다 단품으로 주문해야 합니다. 오래된 집이라 많이 낡았지만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합니다. 점원 아주머니들이 활발하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맛집입니다.
친친테이가 있는 무사시노시 무사시사카이(武蔵境)
친친테이는 JR츄오선 무사시사카이역 도보 10분 거리. 무사시사카이역은 기치죠지역에서 타치카와・다카오 방면으로 두 정거장입니다. 무사시사카이역 주변은 한가로운 동네이고, 주택가 바로 옆에 밭이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도쿄다운 분위기는 없는데 살기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외국 관광객이 놀러가는 동네는 아니지만, 기치죠지나 지브리 미술관에 가시게 되면 아부라소바 원조집을 찾아가 보세요.
이케부쿠로・에비스
미하루(瞠)
미하루 이케부쿠로 본점
도쿄에서 이케부쿠로(池袋)와 에비스(恵比寿)는 라멘의 격전지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미하루는 2002년에 이케부코로에 본점을, 2006년에 에비스에 분점을 차렸습니다. 둘 다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라멘 맛집입니다.
미하루의 라멘 장르는 무화조(無化調)라고 불리며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스프는 가다랑어 베이스입니다. 이케부쿠로는 젊은 사람이 많은 지역이라 정크한 느낌의 라멘집이 많지만 무화조라도 충분히 맛있는 라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比内地鶏のあぶらそば): ¥1,030
미하루는 아부라소바 전문점이 아니지만, 아부라소바 맛집으로 유명해져 대부분의 손님이 아부라소바를 주문합니다. 물론 아부라소바도 무화조입니다. 착한 간장 양념 맛이고 느끼하지 않습니다.
기본 토핑으로 나오는 굵은 멘마(죽순)가 끝내줍니다!
다진 양파도 얹어 나오고 간장 양념과 잘 어울립니다.
아부라소바 메뉴는 기본 맛(あぶらそば味玉付き)과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比内地鶏のあぶらそば)가 있어요. 히나이지도리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닭고기이고, 그 닭기름을 넣은 아부라소바입니다. 감칠맛이 깊어서 저는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를 더 좋아합니다.
탁상 조미료로 라유(ラー油, 고추기름), 수제 새우기름(自家製えび油), 타바스코가 있습니다, 먹다가 중간에 취향에 맞게 조미료를 넣어 맛을 바꿔보세요. 일반적인 아부라소바는 기본 토핑으로 날계란이 얹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의 아부라소바는 날계란 대신에 반숙계란이 나옵니다.
먹다가 맛을 바꿔 보세요.
가격은 현재 아부라소바 기본 맛(あぶらそば)은 1,000엔, 히나이지도리노 아부라소바(比内地鶏のあぶらそば)는 1,030입니다. 여담이지만, 미하루는 2019년에는 서울 용산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아보라소바라서 도쿄로 오신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케부쿠로 본점 내부
에비스점 외관
메구로·가마타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釜玉中華そば ナポレオン軒)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곳은 카마타마 츄카소바 나포레온켄(釜玉中華そば ナポレオン軒)입니다. 이 가게는 유명 츠케멘 체인점 츠케멘 TETSU를 창업한 고미야 가즈로니(小宮一哲) 사장님이 출시한 새 브랜드이며, 2023년에 도쿄 도리츠다이가쿠역 부근에 본점을 오픈했습니다. 일본어로 츄카소바는 라멘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제공하는 메뉴가 아부라소바 느낌에 매우 가깝습니다. 도리츠다이가쿠 본점은 7석밖에 없는 좁은 집이지만, 하루에 200그릇 이상 판매하는 인기 맛집입니다. 현재 도쿄에서 매장이 점점 늘고 있는데, 저는 이번에 게이큐 가마타점에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면을 만들었는데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가마타마(釜玉)였습니다’
혹시 가마타마(釜玉)라는 들어보셨어요? 마루가메 제면 같은 우동집에 가 보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가마타마는 우동 메뉴의 일종이고, 면수를 빼고 면 위에 날계란을 얹은 것입니다. 간장을 뿌려 살짝 비벼 먹어요. 가마타마 츄카소바란 가마타마의 라멘 버전, 즉, 아부라소바 같은 음식이랍니다. 가다랑어 다시 물과 고소한 참기름향이 뿌려져 있고, 날계란 이외에 차슈나 멘마(죽순) 등의 토핑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메뉴는 면이 핵심입니다. 고미야 사장님은 제면소에 오더할 수 없는 나만의 면을 만들자고 해서 굵은 치지레멘(꼬불꼬불한 면)을 개발했습니다. 개발 단계에서 이 면은 라멘이나 츠케멘(국물이 있는 면)보다 직접 면 본래의 식감을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느끼고, 가마타마 츄카소바(=아부라소바)로 제공하기로 하셨답니다. 간판에는 美味しい麺を作ったら、1番美味しい食べ方は釜玉でした(맛있는 면을 만들었는데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가마타마였습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물론 아부라소바의 특징인 아지헨(味変, 중간에 맛을 변화시키는 것)을 위한 조미료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간장, 마늘, 생강, 라유, 유즈시치미(유자고추가루), 참깨, 키쿠라게(목이버섯채)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표고버섯 식초나 가츠오부시 가루, 바카니라(부추김치 같은 것) 같이 재미있는 것까지, 10여 종의 조미료가 있습니다. 치즈도 있는데 탁상에 없으니 혹시 원하시면 직원에게 “치즈 구다사이”라고 말씀하세요. 처음엔 간장만 넣어 면 본래의 맛과 식감을 즐긴 다음에, 취향에 맞게 조미료를 넣어 맛을 바꿔 보세요.
그릇 밑에 간장 아부라 간장 양념이 조금 고여 있어요.
무료 조미료들
참고로 라인 친구 추가를 하면 쿠폰으로 유료 토핑 메뉴 하나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유료 토핑에는 날계란(生卵, 나마타마고), 죽순(メンマ, 멘마), 오아게(お揚げ, 유부), 파 추가(ネギ増量, 네게 조료), 매운 파 추가(辛ネギ増量, 카라네기 조료)가 있습니다. 저는 쿠폰으로 오아게(유부)를 받았습니다. 살짝 유자 향이 느껴지는 유부가 굉장히 맛있었고, 그래서인지 오이나리상(おいなりさん, 유부초밥)이 사이드메뉴로 인기가 높아요. 저는 오이나리상까지 먹으면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혈당이 폭등할 것 같아서 오아게(유뷰) 토핑으로 만족했습니다. (※라인 친구 쿠폰은 일정 기간 몇 번이라도 이용 가능합니다.)
먹다가 후반에 스프와리(スープ割)를 시킬 수 있습니다. 스프와리란 마무리로 제공해 주는 스프를 말하며, 조금 남긴 면에 넣어 라멘처럼 먹는 것입니다. 시키지 않으면 주지 않으니 혹시 원하시는 경우는 “스프와리 구다사이”라고 직원에게 말씀하세요. 스프와리는 무료입니다. 면의 양은 소(小) 150g, 並(보통) 200g, 大 250g입니다. 제가 이번에 주문한 메뉴는 리치 가마타마 츄카소바 並(보통)입니다. 아부라소바는 일반적인 라멘보다 가격이 싼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모든 메뉴를 1,000엔 이하로 제공해 주는 건 정말로 양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치 가마타마 츄카소바(기본 토핑+ 차슈, 멘마)는 소(小) 690엔, 並(보통) 790엔, 大 890엔.
본점은 도리츠다이가쿠역 북쪽 출구 도보 1분, 게이큐 가마타점은 게이큐 가마타역 도보 2분. 롯폰기점도 있어요. 점포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구글지도에서 ‘naporeonken’을 검색하고 이동하기 편한 점포를 찾아보세요.
글·사진 | 네모
도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일본인 남자. 서강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일 양국 요리와 식문화에 정통하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라는 철학으로 한국인에게 도쿄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판한 저서로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텐동의 사연과 나폴리탄의 비밀』 등이 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tokyo_nemo/
· 저서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2024년 개정판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848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