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여행] 타이베이에서 자연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 탐조 여행

2025-12-05


| Taipei  |


자연도 즐기고 새도 관찰하는 타이베이 탐조(探鳥) 스폿


도심 속에서 망원경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혹시 본 적 있으신지. 이들은 바로 ‘버드워처’라 불리는 탐조인들이다. 탐조(探鳥), 자연 상태에 있는 새의 모습과 소리, 행동을 관찰하는 취미. 얼핏 들으면 중장년층이 좋아할 법하나, 최근에는 힐링을 중시하며 건강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붐을 일으키는 중이다. 숨 막히는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잠시 빠져나와 탁 트인 자연 속에서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다면 탐조의 매력에 빠지지 않고서는 못 배길 터.  


대만, 특히 타이베이는 탐조 입문자들에게 최적의 여행지다. 울창한 녹지가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다양한 조류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또한 타이베이가 첫 탐조지로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다. 대만 고유종인 대만파랑까치(Taiwan Blue-Magpie), 여유로운 몸짓의 푸른눈테해오라기(Malayan Night Heron),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바뿔찌르레기(Javan Myna)까지. 계절에 따라 바뀌는 조류의 풍경은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늘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지하철만 타고도 갈 수 있는 대표적인 탐조 명소 네 곳을 소개하려 한다. 수십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타이베이 식물원, 고요한 도심 속 숲 다안 삼림 공원, 그리고 하이킹과 탐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젠탄산과 관음산. 혹시 누가 알까. 여기서 처음 마주친 새 한 마리가 운명처럼 앞으로 당신의 여행을 180도 바꿀지.




타이베이 식물원(臺北植物園)



타이베이 식물원 입구

 

여유로운 분위기의 중정(中正)구에 자리한 타이베이 식물원은 1921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100년 역사의 도시형 식물원이다. 원래는 식물 연구와 약초 재배를 위한 시험장이었으나, 지금은 시민과 여행자 모두가 즐겨 찾는 도심 속 휴식처가 되었다. MRT 샤오난먼(小南門)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연못을 지나 도시와 자연을 가르는 듯한 거대한 열대 야자림을 통과하면, 어느새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약 8헥타르의 넓은 부지 안에는 총 17개의 식물 테마 구역이 있다. 각각 수생식물지구, 야자수 구역, 선인장 구역, 난초 구역, 대만 고유 식물 구역 등 테마별로 정갈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2,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인공적인 관리를 최소화한 날 것 그대로인 느낌의 타이베이 식물원은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식물로 가득해 산책 코스마다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내부에는 국립역사박물관, 청대 후기에 지어져 일제강점기 임업시험소 직원 숙소로 사용되었다는 고풍스러운 강학당(講學堂) 등의 건물도 자리하고 있어 식물뿐 아니라 대만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다.

 

다양한 분위기의 산책로를 걸어도 좋고, 연못 옆 정자에서 쉬어갈 수도 있다.

 

타이베이 식물원은 특히 조류 관찰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운이 좋으면 대만 고유종인 대만파랑까치나 대만오색조(Taiwan Barbet), 대만 고유 아종인 흰머리검은직박구리(Black-bulbul) 등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새들을 도심 한복판에서 관찰할 수 있다. 조용한 아침, 연못가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물속을 노리는 황로(Cattle Egret)의 움직임이나 나뭇가지 사이를 재빠르게 오가는 검은목청딱새(Black-naped Monarch)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말없이 풍성한 자연 속에서 탐조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금세 이곳의 매력에 빠져든다.

 

탐조가 처음이라면 소소한 팁 하나. 공원을 걷다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대포 카메라 무리를 보면 잠시 멈출 것. 무엇을 찍는지는 몰라도 일단 옆에서 함께 기다린다. 셔터 소리가 일제히 울리기 시작하면 새가 왔다는 신호. 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탐조계의 ‘고인물’로서, 평소에 잘 눈에 띄지 않는 희귀한 새를 포착하기 위해 그 새가 잘 나타나는 길목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 나 역시 그렇게 해서 수생식물 물칸나에 매달려 꿀을 따먹던 동박새(Japanese White-eye)의 귀여운 곡예를 포착할 수 있었다. 

 

탐조인들의 도움으로 만난 동박새

 

번잡한 도시 여행 속에서 조용하고 사적인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면, 타이베이 식물원에서 하루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바쁘게만 흘러가던 여행의 흐름 속에서도 이곳에서만큼은 한 템포 느려지는 여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짙은 녹음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의 뜻밖의 조우가, 분명 당신을 이곳으로 운명처럼 다시 이끌 것이다. 


타이베이 식물원(臺北植物園)
주소 : 臺北市中正區南海路53號
영업시간 : 오전 5:30~오후 8:00




다안 삼림 공원(大安森林公園)


다안 삼림 공원에서


오늘 소개하는 네 곳의 탐조 스폿 중에서도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다. MRT 다안삼림공원(大安森林公園)역으로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녹지, 다안 삼림 공원은 도심 속의 허파라 불린다. 1994년 조성된 이 공원은 오랜 시간 타이베이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피크닉 명소로 사랑받아 왔으며 그 규모만 해도 약 26헥타르, 단일 도시 공원으로는 타이베이 최대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듯한 정적을 품고 있어 바쁜 여정 중 잠시 멈춰 쉬어가기에도, 카메라를 들고 새를 따라 걷기에도 안성맞춤인 곳.

 

다안 삼림 공원 산책로

 

다안 삼림 공원은 구역마다 팔색조 같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다. 야외 공원장에선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타이베이 재즈 페스티벌 같은 음악 행사가 펼쳐지고,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는 반딧불이 축제가 열려 습지 주변을 은은한 빛으로 물들인다. 그뿐만 아니라 남국의 꽃이 만개한 산책로도 공원에 활기를 더하는 요소. 봄엔 철쭉이 만발하고, 초여름에는 노랑불꽃나무(Yellow Flame Tree)가 황금빛 터널을 만들어낸다. 향기로운 치자나무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반얀트리와 종려나무, 대나무는 사계절 내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다안 삼림 공원에서 대만오색조를 기다리는 탐조인들

 

다안 삼림 공원이 도심 속 탐조 명소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렇듯 다양한 식생이 한데 어우러진 생태 서식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Chestnut-tailed Starling), 아시아광택찌르레기(Asian Glossy Starling), 검은목찌르레기(Black-collared Starling)처럼 수풀 사이를 재빠르게 오가며 재잘대는 찌르레기 떼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검은목찌르레기

  

특히 다안 삼림 공원에서의 탐조는 연못 주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해오라기(Black-crowned Night Heron), 백로(Egret), 황로, 쇠물닭(Common Moorhen) 등 다양한 물새들이 이곳을 거닐거나 헤엄치며, 도심 속 자연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새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푸른눈테해오라기. 조각상처럼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공원을 느긋하게 거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새를 따라 여유로워지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다안 삼림 공원에서 만난 푸른눈테해오라기와 황로

 

탐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연못가 벤치에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바람 소리를 가르며 들려오는 새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지우고 자연과 나만의 시간으로 이끈다. 여기선 무거운 쌍안경, 고화질의 비싼 카메라 같은 건 없어도 된다. 약간의 호기심만 있다면 누구나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새 한 마리쯤은 분명히 만나게 될 테니까. 


다안 산림 공원(大安森林公園)
주소 : 台北市大安區新生南路二段1號




젠탄산(劍潭山)


5분만 올라가도 보이는 타이베이 전경

 

대만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스린 야시장이 자리한 MRT 젠탄(劍潭)역 뒤편. 해발 약 153미터로 높지는 않지만, 도심과 강, 산이 어우러진 타이베이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젠탄산(劍潭山)이 있다. 과거에는 군사용 감시초소가 있었던 출입 금지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일상에서 가볍게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친근한 산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온 젠탄산은 특히 일출과 야경 명소로도 알려져 있어 하루 어느 시간대에 찾아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산이다.

 

젠탄산은 다양한 난이도의 탐방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산책 삼아 오르기에도 가볍게 땀을 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트레일 곳곳엔 땀을 식히며 잠깐 쉬어갈 수 있는 탁 트인 숨은 전망 명소들이 있어 등산의 재미를 더해준다. 산허리에 자리한 칠미(七美) 전망대에서는 관음산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풍경이 펼쳐지고, 팔미(八美)에 이르면 송산 공항 활주로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라오디팡 전망대(老地方觀景平台)가 당신을 기다린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감상하는 짜릿한 경험은 젠탄산 트레킹의 또 다른 묘미다.

 

(좌)젠탄산 칠미 전망대에서 관음산을 볼 수 있다. | (우) 젠탄산 팔미 라오디팡 전망대에서 송산공항이 보인다.

 

무엇보다 젠탄산이 특별한 이유는 트레킹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탐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니 탐조 초보자인 나조차도 도심 공원에서 보기 힘든 대만오색조와 대만파랑까치를 너무나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침 번식기에 찾아서 그런지 나무에 구멍을 파며 둥지를 트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대만오색조가 눈에 들어왔다. 대만오색조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던 찰나, 뒤이어 초록 나뭇잎 사이로 선명한 파랑이 번쩍인다. 대만파랑까치다. 짙은 파랑 날개를 활짝 펴고 숲 위를 가로지르는 순간, 길고 우아한 꽁지깃이 부채처럼 펼쳐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만 고유종인 이 두 새는 생김새와 생태, 문화적 상징성까지 매우 독특해 탐조인들에게 사랑받는 새다. 이름 그대로 초록, 파랑, 빨강, 노랑, 검정이 섞인 오색의 화려한 깃털을 지닌 대만오색조, 선명한 파랑 깃털과 몸의 절반을 훌쩍 넘는 길고 우아한 꼬리를 지닌 대만의 국조(國鳥) 대만파랑까치가 나무 위에서 노니는 광경은 젠탄산에서라면 흔하디흔한 풍경.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젠탄산은 충분히 가 볼 만하다. 

  

(좌) 대만오색조 | (우) 대만의 국조 대만파랑까치


젠탄산(劍潭山)
등산로 입구 주소 : 10491台北市士林區中山北路四段 (圓山風景區入口)
가는 방법 : MRT 젠탄(劍潭)역에서 하차, 등산로 입구까지 도보로 7분




관음산(觀音山)


관음산 죽림


버스로 타이베이의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화창한 하늘 아래 부드럽게 솟은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관음산(觀音山). 신베이시 우구(五股)구와 바리(八里)구 사이에 위치한 이 산은 멀리서 보면 마치 누운 관음보살의 형상을 닮아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해발 616미터,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암석 지형과 구불구불 이어진 능선은 수묵화처럼 우아한 풍경을 자아낸다.


관음산 트레일은 등산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되어 있으며, 코스 중간중간 전망대와 쉼터, 탐조 포인트들이 알차게 자리하고 있다. 그중 백미는 역시 정상인 잉한링(硬漢嶺). 이곳에 서면 타이베이 시내는 물론 단수이강 너머로 펼쳐지는 대만해협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만약 탐조에 관심이 있다면 관음산 관광안내소 옆에 위치한 맹금류 생태 전시관(猛禽生態展示館)에 잊지 말고 꼭 들러보자. 관음산 일대에서 관찰되는 맹금류의 습성과 이동 경로를 한눈에 보여주는 생태 교실이다.

 

관음산 잉한링. 단수이강이 조망되며 멀리 대만해협까지 보인다.


관음산은 철새의 이동 경로상에 있는 데다가 험준한 산세 덕분에 맹금류가 상승기류를 타고 비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장소. 매년 3월부터 5월까지 관음산 주변의 하늘은 수많은 맹금류로 가득 찬다. 대만 고유 아종인 관수리(Crested Serpent Eagle)와 관머리뿔매(Changeable Hawk-Eagle)뿐만 아니라 봄·가을철에 대만을 흔히 지나가는 철새인 왕새매(Grey-faced Buzzard), 붉은배새매(Chinese Sparrowhawk) 등 다양한 맹금들이 따뜻한 북쪽을 향해 이동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맹금류 생태 전시관

 

이를 기념해 매년 4월 열리는 관음관응(觀音觀鷹) 축제는 대만 탐조 축제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전문가의 생태 해설, 탐조 워크숍, 어린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지역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마켓과 현장 전시까지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축제는 10월까지 이어지는데, 8월 30일과 9월 30일에 각각 포레스트탑 트레일 가이드 투어도 운영된다. 전문 가이드를 따라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자연 생태계를 관찰하며, 참가 신청이 가능한 예약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관음산(觀音山)
입구 주소 : 10491台北市中山區中山北路四段71巷2弄69號
가는 방법 : MRT 루저우(瀘州)역에서 하차 후, 버스 785번을 타고 링윈쓰 주차장(凌雲寺停車場) 정거장에서 하차. 링윈쓰 주차장에서 잉한링 등산로 입구까지 도보로 15분. 하산 시, 원래 루트로 내려오거나 버스 정류장이 있는 관음산 관광안내센터(觀音山游客中心) 방향으로 내려가도 된다.


맹금류 생태 전시관(猛禽生態展示館)
주소 : 新北市五股區凌雲路三段130號
운영 시간 : 오전 9시 ~ 오후 4시 (월요일 휴무)




글·사진 | 최보옥

대학 졸업 후, 한국을 떠나 대만에 살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 10년차 한국어 강사, 채식주의자, 결혼 이민자. 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글들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이 취미다. <타이베이 산친구>를 썼다.
타이베이 산친구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283241
blog.naver.com/choibo_ok


편집 | 이주호 · 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