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yoto |
교토에서 즐기는 스페셜티 커피의 향연
최근 10년간 교토는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로 발돋움했다. 원래도 ‘마에다 커피’, ‘이노다 커피’, ‘스마트 커피’ 등 교토에 뿌리를 둔 노포 커피 전문점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다양한 지역의 스페셜 커피 원두와 핸드드립 기술로 무장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교토는 현재 전통적으로도 현대적으로도 커피의 각축장이 되어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을 가져온 커피 전문점에서 수련을 받고 독립한 신진들이 또다시 훌륭한 맛을 내는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집을 창업하면서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는 더욱 깊고 더욱 넓어지는 추세다.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갈 때에는 가게의 분위기, 맛, 가격, 곁들여 먹을 디저트나 티푸드, 가게의 입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고, 또한 여러 가지 면을 즐기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단 하나! 커피의 맛만을 추구하며 카페를 찾아다녀 보았다.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 교토에서 스페셜한 커피의 맛을 음미해 보자.

지도 제작: 구글 지도
위켄더스 커피 도미노코지(WEEKENDERS COFFEE 富小路) |

주차장 안쪽이라는 독특한 입지
교토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에 불을 지핀 것으로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위켄더스 커피를 만든 카네코 마사히로 씨다. 그만큼 위켄더스 커피는 교토의 커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교토의 부엌이라는 니시키 시장에서 한 블럭 떨어진 비교적 조용한 골목길의 주차장 안쪽 구석에 호젓하게 자리한 위켄더스 커피는 ‘이곳이 그 유명한 위켄더스 커피?’ 라는 의문이 들 만큼 아주 작고 귀여운 전통 가옥을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주차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찾아가는 데에도 살짝 어려움을 겪는다.

자그마한 실내와 유일한 좌석
테이크아웃 전문점은 아닌데,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좌석은 앙증맞은 정원에 자리한 2인용 야외좌석 하나뿐. 그런데도 이곳은 환경을 생각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1회용 컵을 제공하지 않는다. 좌석 점유에 실패한 사람들은 낮은 담에 기대서, 혹은 담 위에 앉아서, 그것도 아니면 주위에 서서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즐긴다. 일본식 건물인데 뭔가 유럽의 스탠딩 커피 바 같은 느낌이랄까. 그 부자연스러운 조화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신기하다.

주변에서 저마다의 편한 자세로 커피를 즐긴다.
배전소가 따로 있어서 이곳에 커피 배전기는 없지만, 위켄더스 커피에서 배전한 커피는 이 카페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원두나 드립백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판매용 원두와 드립백
주문은 크게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그 외의 음료로 나뉜다. 오늘의 드립 커피를 주문하면, 그날그날 가장 맛있는 원두로 커피를 내려준다. 물론 본인의 취향에 맞는 원두를 골라 드립 커피를 주문할 수도 있다.
오늘의 커피를 한입 머금자 일단 눈부터 커진다. 묵직하지만 쓰지 않고, 부드러운 산미와 단맛이 느껴진다. 마지막엔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며, 텁텁하지 않은 깔끔한 뒷맛을 입에 남긴다. 핸드드립 커피의 정석 같은 맛이다. 어떤 다른 목적도 아닌 그저 ‘커피’ 하나만을 바라보고 찾아올 만한 아주 맛있는 커피다. 카페인을 흡입하는 게 아니라 맛을 음미하는 진정한 커피다. 주차장과 전통 가옥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는 덤이다.
위켄더스 커피 도미노코지(WEEKENDERS COFFEE 富小路)
주소 : 일본 〒604-8064 Kyoto, Nakagyo Ward, Honeyanocho, 560 離れ
영업시간 : 오전 7시 30분 ~ 오후 6시 (수요일 휴무)
가격 : 오늘의 드립 커피 540엔
쿠라스 에비스가와(Kurasu Ebisugawa) |

쿠라스 에비스가와
‘쿠라스’는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 업계 선발주자 중 하나다. 인터넷으로 일본의 커피 기구를 파는 전문점으로 출발해 카페로 발전한 쿠라스는 현재 일본뿐만 아니라 싱가폴과 태국 등 해외로도 진출해, 글로벌 커피 스탠드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교토의 두 번째 점포인 에비스가와 지점은 밝고 따스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다. 핸드 드립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카운터 좌석과 약간의 테이블 좌석이 마련되어 있고, 카운터 뒤로 펼쳐진 선반에는 판매중인 각종 원두와 커피 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진열되어 있는 각종 커피 기구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스툴형 소파 좌석이 있지만, 크기에 비해 손님이 많아 모두가 옹기종기 붙어 앉아 커피를 마신다. 몇 안 되는 2인용 테이블석이나 카운터 좌석을 차지할 수 있으면 조금은 더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테이블석, 스툴 소파 좌석
핸드드립 커피는 원두의 종류를 직접 고를 수 있는데, 원두마다 영어와 일본어로 특징을 설명해 놓았다. 특히 직원들이 직접 맛을 보고 느낀 점을 써 놓은 부분이 재미있었다. 이곳의 라테는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에어로프레스라는 기구로 커피를 내려서 만드는 것도 큰 특징이다. 또한 커피 전문점이긴 해도 교토답게 맛차와 호지차 라테도 판매한다.

스페셜티 원두 종류들과 설명
내가 선택한 온두라스의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는 정말 놀라운 맛이었다. 온두라스의 원두는 처음 마셔봤는데, 중남미가 아닌 아프리카의 커피를 맛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하고 깔끔하다. 정말 엄지척을 날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좋은 원두를 직접 배전해 현란한 핸드드립 기술로 완성한 쿠라스의 커피. 스페셜티 커피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라스 에비스가와(Kurasu Ebisugawa)
주소 : 551 Yamanakacho, Nakagyo Ward, Kyoto, 604-0815 일본
영업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가격 : 온두라스 원두 핸드 드립 커피 700엔

블렌드 커피
교토교엔(京都御苑)에서 가까운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 ‘블렌드’는 도쿄의 유명 커피 로스터리 ‘글리치 커피’에서 경험을 쌓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게를 낸 마스터가 혼자 운영하는 곳이다. 1인 가게인 데다 독특한 주문 시스템 덕분에 때로는 주문 자체에도 시간이 엄청 걸릴 수 있고, 때에 따라선 커피가 나오기까지 30분 이상이 소요될 수도 있다. 게다가 좌석은 단 하나, 앉아서 커피를 마시려면 운이 지독하게 좋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단점을 감수할 만큼 블렌드의 커피는 특별하다.
상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곳의 커피는 블렌딩이 기본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알파벳이 적힌 커피 병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각각의 커피병 아래에는 어떤 커피들이 블렌딩 되어 있는지가 쓰여 있는 카드가 놓여 있다.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이 커피들의 설명을 읽고, 향도 시향하고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선택해 주문하는 시스템이다. 잘 모르겠을 때는 자신의 취향을 마스터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블렌딩된 커피를 골라줄 것이다.
커피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원두를 블렌딩해 분쇄한다. 분쇄한 직후의 원두를 다시 시향하게 해주셨는데, 정말로 꽃향기나 과일 향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신선한 원두로 커피를 신의 솜씨로 핸드드립을 하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다. 한 잔 한 잔 정성껏 드립해서 제공된 커피는 카페의 로고가 박힌 특별한 유리잔에 제공된다.

정성껏 핸드 드립 중인 마스터
커피의 맛은?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특별한 맛이었다. 처음 마셔보는 커피의 맛이다. 블렌딩의 참맛이 여기에 있었다. 특히 이곳의 커피는 기본적으로 약배전이다. 그래서 부드럽고, 향이 화려하고, 쓴맛은 조금 적은 대신 단맛과 신맛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진다. 블렌딩한 커피 종류의 맛을 입안에서 모두 느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독특하고 특별한 유리잔에 제공되는 커피
자신이 마신 블렌딩 커피의 원두나 드립백을 구매할 수도 있다. 다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블렌드’만의 블렌딩 원두는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 중에서도 단연코 특별한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블렌딩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블렌드 교토(Blend Kyoto)
주소 : 447 Sasayacho, Nakagyo Ward, Kyoto, 604-0983 일본
영업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코요테 로스터리(COYOTE Roastery) |

코요테 로스터리
데마치야나기 역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코요테 로스터리는 독특하게도 엘살바도르 원두만을 취급하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현지의 농원에 거주하며 재배에서부터 출하까지를 모두 경험하고 돌아와 배전소와 카페를 차린 마스터는 요즘에도 1년에 한 번은 현지로 건너가 약 12곳 생산자들의 원두를 직접 수입, 판매한다고 한다.
크지 않은 가게 제일 안쪽에 자리한 배전실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배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배전기의 규모에 놀라고 있는데 마스터가 웃으며 그 배전기는 한국 제품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살펴보니 정말로 한국의 EASYSTER라는 제품이었다.

실내. 안쪽에 커다란 배전기가 보인다.
주문은 원두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설명을 보고 직접 선택할 수도 있고, 커피의 취향을 얘기하고 마스터에게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드립 커피 제조 중
추천을 받아 선택한 커피는 이 카페만의 독특한 도자기 잔에 담겨 나온다(아이스는 유리컵). 마치 녹차를 마시는 찻잔처럼 손잡이가 없는 두꺼운 도자기 잔이다. 엘살바도르와 일본, 양국의 문화에서 모두 보이는 인디고 염색에 착안하여 푸른 유약을 이용한 독특한 오리지널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보기에도 예쁘지만, 항아리처럼 윗부분이 살짝 넓어지는 독특한 모양새가 커피가 입에 닿을 때의 느낌을 한층 더 부드럽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이 독특한 잔이 커피 맛에 플러스 점수를 가미해준다.
엘살바도르의 원두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하기도 했지만, 커피를 받아들고 첫 모금이 입에 닿았을 때 곧바로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미 원두 특유의 묵직함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텁텁하진 않고, 기분 좋은 쌉싸름함 뒤로 단맛과 아주 약간의 산미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코요테의 오리지널 커피잔. 커피마다 사용한 원두를 설명한 카드를 함께 준다.
오리지널 잔의 영향인지, 한 모금 입에 머금을 때마다 향과 맛이 입 안 가득 화악 퍼진다. 강렬한 엘살바도르 원두의 매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엘살바도르 원두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이 한 잔을 다시 마시기 위해 데마치야나기 역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핸드드립 커피 외에도 각종 에스프레소 커피 음료들과 일반 드링크류도 준비되어 있어서, 커피를 즐기지 않는 동행인이 있어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
코요테 로스터리(COYOTE Roastery)
주소 : 일본 〒606-8204 Kyoto, Sakyo Ward, Tanaka Shimoyanagicho, 3 東側
영업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小川珈琲 堺町錦店) |

외관. 간판이 없는데, 잘 보면 중앙 바닥에 오가와 커피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오가와 커피는 1952년에 교토에서 창업한 노포 커피 전문점이다. 전국적으로 카페는 물론이거니와 커피 소매 판매까지 대규모로 전개하고 있다. 노포이지만, 교토 커피 문화의 변화를 그 어떤 곳보다 일찍 받아들여 스페셜티로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오가와 커피다. 이곳에서 스페셜티의 경험을 쌓은 바리스타들이 독립하여 현재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를 이끌고 있는 몇몇 로스터리를 창업했는데, 앞서 소개한 ‘코요테’의 마스터도 바로 이 오가와 커피 출신이다.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의 널찍한 실내
오가와 커피는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활동을 펼치기 위한 장소로서 2022년에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을 오픈했다. ‘100년 후에도 이어지는 가게’를 콘셉트로, 유기농 원두와 공정무역 커피의 사용 등, 커피 전문점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이 다른 오가와 커피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융 드립’이다. 커피 드립의 원형이자 앞서 언급한 ‘지속 가능한 활동’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융 드립은 기존 오가와 커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다.

융 드립 | 이미지 출처: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 홈페이지

오가닉 하우스 블렌드 미디엄
융 드립 커피 메뉴는 8가지의 유기농 원두 중에서 고를 수 있다. 하우스 블렌드,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인도네시아의 원두를 각각 다크와 미디엄으로 배전하여 제공한다. 하우스 블렌드 원두를 미디엄으로 한 잔 주문해 본다. 융 드립인 만큼 시간은 걸리지만, 융 드립에서만 맛볼 수 있는 중후함, 무게감, 그러면서도 깔끔하고 입 안에 오래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다. 확실히 기존 오가와 커피에서 마셨던 커피와는 다르다. 스페셜티 원두의 차별성, 융 드립의 특성이 만들어낸 차이일 것이다. 노포라는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 나가려는 오가와 커피의 노력이 융 드립 커피 한 잔에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실내에 있는 자그마한 정원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은 앞서 소개했던 다른 카페들과 달리 규모도 제법 크고 제공하는 메뉴도 아주 다양하다. 음료 메뉴뿐만 아니라 빵, 디저트, 그리고 각종 식사 요리까지 제공한다. 커피만 목적이 아닌 카페 투어로도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간판이 없기 때문에 위치를 잘 확인하고 찾아가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건물 앞 바닥에 오가와 커피라고 쓰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小川珈琲 堺町錦店)
주소 : 일본 〒604-8127 Kyoto, Nakagyo Ward, Kikuyacho, 519-1
영업시간 : 오전 7시 ~ 오후 8시
가격 : 오가닉 하우스 블렌드 010 미디엄 800엔
글·사진 박소현

16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8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8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 Kyoto |
교토에서 즐기는 스페셜티 커피의 향연
최근 10년간 교토는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로 발돋움했다. 원래도 ‘마에다 커피’, ‘이노다 커피’, ‘스마트 커피’ 등 교토에 뿌리를 둔 노포 커피 전문점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다양한 지역의 스페셜 커피 원두와 핸드드립 기술로 무장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교토는 현재 전통적으로도 현대적으로도 커피의 각축장이 되어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을 가져온 커피 전문점에서 수련을 받고 독립한 신진들이 또다시 훌륭한 맛을 내는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집을 창업하면서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는 더욱 깊고 더욱 넓어지는 추세다.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갈 때에는 가게의 분위기, 맛, 가격, 곁들여 먹을 디저트나 티푸드, 가게의 입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고, 또한 여러 가지 면을 즐기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단 하나! 커피의 맛만을 추구하며 카페를 찾아다녀 보았다.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 교토에서 스페셜한 커피의 맛을 음미해 보자.
지도 제작: 구글 지도
주차장 안쪽이라는 독특한 입지
교토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에 불을 지핀 것으로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위켄더스 커피를 만든 카네코 마사히로 씨다. 그만큼 위켄더스 커피는 교토의 커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교토의 부엌이라는 니시키 시장에서 한 블럭 떨어진 비교적 조용한 골목길의 주차장 안쪽 구석에 호젓하게 자리한 위켄더스 커피는 ‘이곳이 그 유명한 위켄더스 커피?’ 라는 의문이 들 만큼 아주 작고 귀여운 전통 가옥을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주차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찾아가는 데에도 살짝 어려움을 겪는다.
자그마한 실내와 유일한 좌석
테이크아웃 전문점은 아닌데,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좌석은 앙증맞은 정원에 자리한 2인용 야외좌석 하나뿐. 그런데도 이곳은 환경을 생각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1회용 컵을 제공하지 않는다. 좌석 점유에 실패한 사람들은 낮은 담에 기대서, 혹은 담 위에 앉아서, 그것도 아니면 주위에 서서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즐긴다. 일본식 건물인데 뭔가 유럽의 스탠딩 커피 바 같은 느낌이랄까. 그 부자연스러운 조화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신기하다.
주변에서 저마다의 편한 자세로 커피를 즐긴다.
배전소가 따로 있어서 이곳에 커피 배전기는 없지만, 위켄더스 커피에서 배전한 커피는 이 카페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원두나 드립백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판매용 원두와 드립백
주문은 크게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그 외의 음료로 나뉜다. 오늘의 드립 커피를 주문하면, 그날그날 가장 맛있는 원두로 커피를 내려준다. 물론 본인의 취향에 맞는 원두를 골라 드립 커피를 주문할 수도 있다.
오늘의 커피를 한입 머금자 일단 눈부터 커진다. 묵직하지만 쓰지 않고, 부드러운 산미와 단맛이 느껴진다. 마지막엔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며, 텁텁하지 않은 깔끔한 뒷맛을 입에 남긴다. 핸드드립 커피의 정석 같은 맛이다. 어떤 다른 목적도 아닌 그저 ‘커피’ 하나만을 바라보고 찾아올 만한 아주 맛있는 커피다. 카페인을 흡입하는 게 아니라 맛을 음미하는 진정한 커피다. 주차장과 전통 가옥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는 덤이다.
쿠라스 에비스가와
‘쿠라스’는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 업계 선발주자 중 하나다. 인터넷으로 일본의 커피 기구를 파는 전문점으로 출발해 카페로 발전한 쿠라스는 현재 일본뿐만 아니라 싱가폴과 태국 등 해외로도 진출해, 글로벌 커피 스탠드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교토의 두 번째 점포인 에비스가와 지점은 밝고 따스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다. 핸드 드립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카운터 좌석과 약간의 테이블 좌석이 마련되어 있고, 카운터 뒤로 펼쳐진 선반에는 판매중인 각종 원두와 커피 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진열되어 있는 각종 커피 기구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스툴형 소파 좌석이 있지만, 크기에 비해 손님이 많아 모두가 옹기종기 붙어 앉아 커피를 마신다. 몇 안 되는 2인용 테이블석이나 카운터 좌석을 차지할 수 있으면 조금은 더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핸드드립 커피는 원두의 종류를 직접 고를 수 있는데, 원두마다 영어와 일본어로 특징을 설명해 놓았다. 특히 직원들이 직접 맛을 보고 느낀 점을 써 놓은 부분이 재미있었다. 이곳의 라테는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에어로프레스라는 기구로 커피를 내려서 만드는 것도 큰 특징이다. 또한 커피 전문점이긴 해도 교토답게 맛차와 호지차 라테도 판매한다.
스페셜티 원두 종류들과 설명
내가 선택한 온두라스의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는 정말 놀라운 맛이었다. 온두라스의 원두는 처음 마셔봤는데, 중남미가 아닌 아프리카의 커피를 맛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하고 깔끔하다. 정말 엄지척을 날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좋은 원두를 직접 배전해 현란한 핸드드립 기술로 완성한 쿠라스의 커피. 스페셜티 커피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렌드 커피
교토교엔(京都御苑)에서 가까운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 ‘블렌드’는 도쿄의 유명 커피 로스터리 ‘글리치 커피’에서 경험을 쌓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게를 낸 마스터가 혼자 운영하는 곳이다. 1인 가게인 데다 독특한 주문 시스템 덕분에 때로는 주문 자체에도 시간이 엄청 걸릴 수 있고, 때에 따라선 커피가 나오기까지 30분 이상이 소요될 수도 있다. 게다가 좌석은 단 하나, 앉아서 커피를 마시려면 운이 지독하게 좋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단점을 감수할 만큼 블렌드의 커피는 특별하다.
상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곳의 커피는 블렌딩이 기본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알파벳이 적힌 커피 병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각각의 커피병 아래에는 어떤 커피들이 블렌딩 되어 있는지가 쓰여 있는 카드가 놓여 있다.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이 커피들의 설명을 읽고, 향도 시향하고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선택해 주문하는 시스템이다. 잘 모르겠을 때는 자신의 취향을 마스터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블렌딩된 커피를 골라줄 것이다.
커피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원두를 블렌딩해 분쇄한다. 분쇄한 직후의 원두를 다시 시향하게 해주셨는데, 정말로 꽃향기나 과일 향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신선한 원두로 커피를 신의 솜씨로 핸드드립을 하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다. 한 잔 한 잔 정성껏 드립해서 제공된 커피는 카페의 로고가 박힌 특별한 유리잔에 제공된다.
정성껏 핸드 드립 중인 마스터
커피의 맛은?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특별한 맛이었다. 처음 마셔보는 커피의 맛이다. 블렌딩의 참맛이 여기에 있었다. 특히 이곳의 커피는 기본적으로 약배전이다. 그래서 부드럽고, 향이 화려하고, 쓴맛은 조금 적은 대신 단맛과 신맛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진다. 블렌딩한 커피 종류의 맛을 입안에서 모두 느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독특하고 특별한 유리잔에 제공되는 커피
자신이 마신 블렌딩 커피의 원두나 드립백을 구매할 수도 있다. 다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블렌드’만의 블렌딩 원두는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 중에서도 단연코 특별한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블렌딩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코요테 로스터리
데마치야나기 역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코요테 로스터리는 독특하게도 엘살바도르 원두만을 취급하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현지의 농원에 거주하며 재배에서부터 출하까지를 모두 경험하고 돌아와 배전소와 카페를 차린 마스터는 요즘에도 1년에 한 번은 현지로 건너가 약 12곳 생산자들의 원두를 직접 수입, 판매한다고 한다.
크지 않은 가게 제일 안쪽에 자리한 배전실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배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배전기의 규모에 놀라고 있는데 마스터가 웃으며 그 배전기는 한국 제품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살펴보니 정말로 한국의 EASYSTER라는 제품이었다.
실내. 안쪽에 커다란 배전기가 보인다.
주문은 원두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설명을 보고 직접 선택할 수도 있고, 커피의 취향을 얘기하고 마스터에게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드립 커피 제조 중
추천을 받아 선택한 커피는 이 카페만의 독특한 도자기 잔에 담겨 나온다(아이스는 유리컵). 마치 녹차를 마시는 찻잔처럼 손잡이가 없는 두꺼운 도자기 잔이다. 엘살바도르와 일본, 양국의 문화에서 모두 보이는 인디고 염색에 착안하여 푸른 유약을 이용한 독특한 오리지널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보기에도 예쁘지만, 항아리처럼 윗부분이 살짝 넓어지는 독특한 모양새가 커피가 입에 닿을 때의 느낌을 한층 더 부드럽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이 독특한 잔이 커피 맛에 플러스 점수를 가미해준다.
엘살바도르의 원두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하기도 했지만, 커피를 받아들고 첫 모금이 입에 닿았을 때 곧바로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미 원두 특유의 묵직함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텁텁하진 않고, 기분 좋은 쌉싸름함 뒤로 단맛과 아주 약간의 산미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코요테의 오리지널 커피잔. 커피마다 사용한 원두를 설명한 카드를 함께 준다.
오리지널 잔의 영향인지, 한 모금 입에 머금을 때마다 향과 맛이 입 안 가득 화악 퍼진다. 강렬한 엘살바도르 원두의 매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엘살바도르 원두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이 한 잔을 다시 마시기 위해 데마치야나기 역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핸드드립 커피 외에도 각종 에스프레소 커피 음료들과 일반 드링크류도 준비되어 있어서, 커피를 즐기지 않는 동행인이 있어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
외관. 간판이 없는데, 잘 보면 중앙 바닥에 오가와 커피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오가와 커피는 1952년에 교토에서 창업한 노포 커피 전문점이다. 전국적으로 카페는 물론이거니와 커피 소매 판매까지 대규모로 전개하고 있다. 노포이지만, 교토 커피 문화의 변화를 그 어떤 곳보다 일찍 받아들여 스페셜티로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오가와 커피다. 이곳에서 스페셜티의 경험을 쌓은 바리스타들이 독립하여 현재 교토의 스페셜티 커피를 이끌고 있는 몇몇 로스터리를 창업했는데, 앞서 소개한 ‘코요테’의 마스터도 바로 이 오가와 커피 출신이다.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의 널찍한 실내
오가와 커피는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활동을 펼치기 위한 장소로서 2022년에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을 오픈했다. ‘100년 후에도 이어지는 가게’를 콘셉트로, 유기농 원두와 공정무역 커피의 사용 등, 커피 전문점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이 다른 오가와 커피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융 드립’이다. 커피 드립의 원형이자 앞서 언급한 ‘지속 가능한 활동’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융 드립은 기존 오가와 커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다.
융 드립 | 이미지 출처: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 홈페이지
오가닉 하우스 블렌드 미디엄
융 드립 커피 메뉴는 8가지의 유기농 원두 중에서 고를 수 있다. 하우스 블렌드,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인도네시아의 원두를 각각 다크와 미디엄으로 배전하여 제공한다. 하우스 블렌드 원두를 미디엄으로 한 잔 주문해 본다. 융 드립인 만큼 시간은 걸리지만, 융 드립에서만 맛볼 수 있는 중후함, 무게감, 그러면서도 깔끔하고 입 안에 오래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다. 확실히 기존 오가와 커피에서 마셨던 커피와는 다르다. 스페셜티 원두의 차별성, 융 드립의 특성이 만들어낸 차이일 것이다. 노포라는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 나가려는 오가와 커피의 노력이 융 드립 커피 한 잔에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실내에 있는 자그마한 정원
오가와 커피 사카이마치니시키 점은 앞서 소개했던 다른 카페들과 달리 규모도 제법 크고 제공하는 메뉴도 아주 다양하다. 음료 메뉴뿐만 아니라 빵, 디저트, 그리고 각종 식사 요리까지 제공한다. 커피만 목적이 아닌 카페 투어로도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간판이 없기 때문에 위치를 잘 확인하고 찾아가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건물 앞 바닥에 오가와 커피라고 쓰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글·사진 박소현
16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8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8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