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음식] 스위츠 마니아들을 위한 교토의 디저트 가게들

| Kyoto |


천년 고도 교토의 디저트라고 하면 누구나 화과자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교토에는 유명한 화과자 노포가 여럿 포진하고 있으며, 맛보는 것은 물론 만들어보는 체험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교토의 디저트가 화과자뿐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면서 맛도 발군인, 이색적인 교토의 디저트 가게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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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야 카료(虎屋菓寮) ::


정확한 명칭은 ‘토라야 카료 교토 이치조점(虎屋菓寮 京都一条店)’. 교토 교엔(京都御苑) 근처에 있다. 토라야는 약 480년의 역사를 가진 노포 중의 노포인데, 이 교토 이치조점이 있는 자리에서 적어도 1628년부터 황실에 과자를 납품했다고 한다. 다양한 화과자와 일본식 디저트를 차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토라야 카료 중에 여기 교토 이치조점은 위치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점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는 오래된 민가를 그대로 사용한 옛 분위기가 아니라, 현대적이고 매우 쾌적한 카페의 느낌이다.


토라야 카료 교토 이치조점


이곳엔 작은 정원이 있는데, 날씨가 포근할 때는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감상하며 차와 화과자를 즐길 수 있는 야외 좌석이 인기가 많다. 정원만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는 게 아니라, 메뉴 또한 월별로 종류가 달라진다. 계절 화과자나 양갱, 앙미츠나 빙수, 팥죽 같은 음식이 시기에 맞춰 제공된다. 


야외 좌석에서 바라본 정원


함께 즐기는 차도 상당한 수준이다. 옥로 같은 부드러운 녹차와 양갱을 함께 즐겨도 좋고, 진한 말차와 달콤한 화과자의 조합도 훌륭하다. 카페인이 부담스러울 때는 팥 차도 선택할 수 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1,500~1,700엔 정도로 화과자나 양갱 하나에 음료 하나를 함께 선택해 맛볼 수 있다. 


토라야 카료의 화과자들


사실 토라야는 화과자 중에서도 양갱에 더욱 특화된 곳이다. 토라야의 양갱은 일본 고급 양갱의 표본이다. 일본 전국의 백화점, 공항 등에 있는 토라야의 양갱 판매점은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일본의 화과자가 눈으로 먹는 디저트라고 할 만큼 모양새가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토라야에선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색감의 특별한 양갱을 만들어 낸다.


토라야 카료의 양갱


토라야 카료에서도 계절 양갱을 먹어볼 수 있는데 (시기에 따라선 계절 양갱을 판매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방문했던 10월엔 중추절의 달을 묘사한 양갱이 준비되어 있었다. 색은 달라도 맛은 똑같은 팥 양갱이라고 서빙해 주신 직원 분께서 웃으며 설명해 주신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정원에서 눈도 입도 호강하며 먹는 화과자와 양갱으로 사치스러운 한때를 누렸다. 


토라야 카료의 실내


이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계절 양갱은 없었고, 화과자들과 함께 동백 떡이 있었다. 이렇듯 토라야 카료는 월별로 다른 메뉴를 제공해 주어 재방문을 부추긴다. 화과자와 차로 미각을 자극하며 계절마다 변화하는 정원의 정취를 눈으로 음미하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으랴. 


토라야 카료의 정원과 매화


토라야 카료 교토 이치조 점(虎屋菓寮 京都一条店)
Kyoto, Kamigyo Ward, Hirohashidonocho, 400
오전 9시 ~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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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리모찌 카자리야(あぶり餅 本家 根元 かざりや) ::


키타구에 있는 이마미야 신사에는 구운 떡에 교토 특유의 백된장으로 만든 소스를 뿌려 차와 함께 먹는 아부리모찌 집, ‘아부리모찌 카자리야(あぶり餅 本家 根元 かざりや)’가 있다. 이마미야 신사를 구경하다 보면 구수한 떡 굽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간질인다. 신사의 동쪽 문을 빠져나오면 숯불에 떡을 구워 파는 가게들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역사 깊은 이마미야 신사의 아부리모찌 집이다.


정면에 보이는 이마미야 신사의 동문 주위로 아부리모찌 가게가 있다.


아부리모찌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길다. 무려 약 1,000년 전인 헤이안 시대에 시작되었으며, 내가 방문한 카자리야는 에도시대인 1637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신사와 신사 주위의 큰 나무들, 그리고 오래된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떡집 건물들. 분위기가 좋아도 너무 좋다. 야외에도 실내에도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편한 곳으로 자리 잡으면 된다. 일단 앉으면 메뉴는 하나니까 자동으로 주문이 들어간다. 차와 함께 제공되는 떡 1인분 가격은 600엔. 현금만 받는다. 


아부리모찌 카자리야 전경과 실내


노란 콩가루를 뿌린 떡을 손가락 굵기 정도로 길쭉하게 빚어 대나무 꼬지에 끼워 숯불에 굽고 특제 백된장 소스를 뿌리면 완성. 다른 어디에서도 먹어볼 수 없는 특별한 디저트다. 군데군데 탄 자국이 있지만, 탄 냄새나 탄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뭇거뭇 탄 부분이 잘 구워진 떡의 맛을 눈으로 느끼게 해준다. 구수하고 말랑말랑한 구운 떡 자체의 풍미만으로도 좋은데, 여기에 달달한 백된장 소스가 더해지니 디저트로 손색이 없다.


뒤쪽에선 떡에 콩가루를 묻혀 꼬지에 꽂고, 앞쪽에선 숯불에 굽고 있다.


숯불에 떡 굽는 손길. 가장 오른쪽의 제일 연륜이 깊어 보이는 손의 주인은 장갑도 끼지 않았다.


일본인 중에도 교토의 백된장이 달아서 싫다는 사람이 많다던데, 일단 내 입맛엔 너무 잘 맞는다. 된장국으로 먹을 때도 괜찮았는데, 떡에 뿌려 간식으로 먹으니 정말 일품이다. 폭신한 팬케이크에 달콤한 시럽을 뿌려먹는 서양의 디저트와 비견된다고 할까.


완성되어 나온 아부리모찌와 호지차


함께 제공되는 차는 계절에 따라 호지차가 나오기도 하고 녹차가 나오기도 하며, 두 종류 모두 떡과 참 잘 어울린다. 차 자체도 맛있어서 한 주전자를 더 부탁해 마시기도 했다. 백된장 소스가 달아서 느끼하다 느껴질 때쯤 차를 마시면 입안이 개운하게 씻기며 감칠맛만 남아 떡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분주히 떡을 굽는 모습, 맛있는 떡과 차, 신사의 고즈넉한 분위기, 교토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디저트 맛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부리모찌와 녹차


아부리모찌 카자리야(あぶり餅 本家 根元 かざりや)
96 Murasakino Imamiyacho, Kita Ward, Kyoto
오전 10시 ~ 오후 5시 / 매주 수요일 휴무(수요일이 1일, 15일이나 공휴일과 겹치면 그 다음날 목요일에 휴무)
아부리모찌(차 제공) 1인분 6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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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자 공방 & 스위츠 카페 교토 케이조(菓子工房&Sweets Cafe KYOTO KEIZO) ::


‘과자 공방 & 스위츠 카페 교토 케이조(菓子工房&Sweets Cafe KYOTO KEIZO)’은 교토에서 몽블랑 전문점으로는 가장 유명한 곳 중 한 곳이다. 산조 상점가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 분위기만으로는 유명한 디저트 맛집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위치다. 동네 주민들의 생활감이 물씬 묻어나는 상점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잘 꾸며진 카페라니. 어? 여기가 거기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입지다. 이래서 상점가가 재미있기도 하다.
 

과자공방 & 스위츠 카페 교토 케이조. 산조 상점가 안에 있다.


가게 내부는 차분하다. 오래된 목조 건물을 개조해 만들어서 천장이 굉장히 높다. 내부 인테리어만 보면 평범한 카페인데, 잘 보면 나무로 된 골조가 이질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여긴 교토니까, 이런 이질감도 교토만의 정취로 다가온다. 안쪽에 난 커다란 창으로 햇살이 비쳐 들어온다. 지붕 있는 상점가에 있는 카페라고는 믿기지 않는 구조다.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바로 ‘10분 몽블랑’. 이곳에서 만드는 몽블랑 안에는 머랭이 들어 있는데, 10분이 지나면 머랭이 수분을 머금어 처음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10분 안에 먹는 것을 권한다는 의미에서 10분 몽블랑이다. 적어도 10분 안에는 먹어야 머랭의 바삭바삭한 식감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밤 몽블랑과 녹차 몽블랑


또 하나의 특징은, 몽블랑을 주문하면 카페 뒤편에 있는 제작소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티시에가 정성스럽게 한 과정, 한 과정을 밟아 몽블랑을 멋들어지게 완성하면 절로 박수가 나온다. 박수에 맞춰 짜잔 하는 포즈도 지어 주신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지 않을 수가 없는 이 퍼포먼스. SNS 시대의 특성을 이용한 멋들어진 영업 포인트다.


물론 이곳은 SNS에 올릴 만한 사진을 건지기 좋다는 것만으로 대기 행렬이 생기는 그런 류의 카페는 아니다. 간단한 식사 메뉴도, 몽블랑 외에 각종 케이크도 호평 일색이다. 커피도 맛있고, 무엇보다 몽블랑이 정말 정말 맛있다. 


밤 몽블랑


화려한 퍼포먼스 끝에 자리로 서빙된 몽블랑은 밤 몽블랑과 녹차 몽블랑이었다.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밤 크림을 듬뿍 사용한 밤 몽블랑이다. 일본의 가을은 밤 디저트와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교토라면 꼭 먹어 봐야 하는 녹차 몽블랑에는 우지의 말차 크림이 사용되는데, 주변에 녹차 소스와 커스터드 소스가 곁들여져 있다.  


녹차 몽블랑


10분 몽블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머랭의 식감과 크림의 조화가 정말 환상적이다. 아주 많이 달지 않은, 그러나 디저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달콤함이 크림의 부드러움과 함께 입안을 적신다. 그 뒤로 따라오는 바삭바삭한 머랭, 그 아래에 깔린 부드러운 시트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여기에 맛있는 커피 한 모금. 천국이 따로 없다.


10분 몽블랑의 단면. 흰 부분이 바삭바삭한 식감을 주는 머랭이다.


10분 안에 먹어야 된다고 강조할 것도 없이, 한 번 손을 대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눈과 입과 마음이 모두 즐거운 한때가 충분한 보상이 되어 줄 것이다.


안쪽 창으로 햇살이 비쳐든다.


과자 공방 & 스위츠 카페 교토 케이조(菓子工房&Sweets Cafe KYOTO KEIZO)
293 Ontomocho, Nakagyo Ward, Kyoto
매일 오전 10시 ~ 오후 7시
몽블랑과 음료 세트 1,760엔




글·사진 |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편집 | 이주호·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