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is |
프랑스 파리의 면적은 약 105.4 km²로 서울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이 위치한 1구 혹은 에펠탑 주변 위주로 방문한다. 하지만 파리에는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숨겨진 장소들이 많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파리 7구도 그렇다.
파리 7구의 명소들은 도보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파리 지하철 10호선 혹은 12호선을 타고 갈 수 있는 세브르-바빌론(Sèvres-Babylone) 역에서 시작해서 르 봉 마르셰 (Le Bon Marché)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성모 마리아 발현지인 기적의 메달 성당(Chapelle Notre-Dame-de-la-Médaille-Miraculeuse)을 순례한다.
순례를 마친 후에는 정통 프랑스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고 마무리는 한국 제빵사가 운영하는 유명한 빵집에서 디저트를 먹는다. 이 빵집은 엄밀히 말하면 파리 6구에 속해 있지만 7구 바로 옆에 있다. 총 도보 거리는 1.6km, 소요되는 시간은 약 22분으로 걷기를 싫어하거나 걷기에 힘든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짧지만 알찬 코스다.

세브르 바빌론역에서 시작하는 파리7구 도보 코스 | 캡처: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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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 백화점 ::
세브르 바빌론 지하철 역에서 나와서 작은 공원을 지나면 바로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봉 마르셰 (Bon marché)’는 ‘좋은 시장’ 또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백화점은 이름과 달리 명품들이 즐비한 럭셔리 백화점이다. 르 봉 마르셰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여겨지며 19세기 중반 설립되었다. 한국 관광객들은 오스만가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나 프랭땅 백화점이 더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은 프랑스 현지인들에게 고급 백화점으로 인식되어 있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는 안내 표지판
르 봉 마르셰 백화점 입구에는 백화점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파리의 역사, 르 봉 마르셰 - 19세기 후반의 경제적, 사회적 확장은 백화점의 탄생을 촉진했으며, 그 중 르 봉 마르셰가 가장 눈에 띄는 예이다. 이 백화점은 에밀 졸라(Zola)의 〈여인들의 행복한 시간(Au Bonheur des Dames)〉이라는 작품에 등장한다. 에펠이 설계한 철골 구조물과 건축가 보일로가 설계한 유리 지붕은 공간감과 경쾌함을 자아내고, 내부 장식은 고객에게 궁전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준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에밀 졸라의 작품에 이 백화점이 등장한다는 것과, 에펠탑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에펠이 이 백화점도 설계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백화점 내부가 철골 구조물 느낌이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방문해 볼 가치가 있을 만큼 정말 화려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다른 파리 백화점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인테리어의 절정은 연말 크리스마스 전후에 만끽할 수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달려 있던 화려한 트리 장식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의 또 다른 매력은 공연, 전시 등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2024년 9월 12일을 시작으로 12월 31일까지 서커스와 드라마를 접목한 〈Cirque Le Roux: Entre Chiens et Louves〉라는 공연이 르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열린다. 티켓 예매는 이곳에서 가능하다. 또, 예술과 백화점 내 입점한 브랜드의 콜라보로 진행되는 전시 〈Paris! Paris!〉도 10월 20일까지 진행된다.
10월 19일과 11월 23일에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Visite : Le Bon Marché Rive Gauche〉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을 것이다. 가이드와 함께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파리 최초 백화점의 역사와 건축, 예술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1인 20유로로 봉 마르셰 백화점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 | 출처: 르 봉 마르셰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 백화점
주소: 24 Rue de Sèvres, 75007 Paris, France
영업시간: 월~토 10:00~19:30 / 일 11:00~19:30
https://travel.naver.com/overseas/FRPAR189255/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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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메달 성당(Chapelle Notre-Dame-de-la-Médaille-Miraculeuse) ::

기적의 메달 성당
르 봉 마르셰 백화점 맞은편에 기적의 메달 성당이 있다. 입구가 기적의 메달 성당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수밖에 없을 만큼 평범하게 생겼다. 프랑스에 7년 넘게 살고 있는 나도 최근에야 이곳을 알게 됐는데, 가톨릭 신자 사이에선 매우 중요한 순례지라고 한다.
기적의 메달 성당은 1830년,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é) 수녀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카타리나 수녀는 1806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830년 24세의 나이에 파리 근교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했다. 카타리나 수녀가 수녀 생활을 하던 중 성모 마리아가 세 번 그녀에게 나타나서 특별한 메달을 만들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이 메달이 바로 기적의 메달인데, 성모 마리아가 발현할 때 카타리나 수녀가 목격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성스러운 문구, 그리고 특별한 심볼이 새겨져 있다.
기적의 메달에는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을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Marie conçue sans péché,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à vous.”라고 적혀 있다. 기적의 메달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이 메달이 자신에게 영적, 육체적 치유와 기적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이 메달을 ‘기적의 메달’로 부르기 시작했다.

기적의 메달 앞뒤 면 | 사진 출처: 기적의 메달 성당 홈페이지
성당 내부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은 다른 유명한 성당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다. 층고가 그렇게 높지도 않으며 화려한 조각이나 장식도 많지 않다. 방문자들도 관광객보다는 순례객이 더 많다. 하지만 그래서 성당 본연의 기능에 더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적의 성당 내부
성당 제대 오른편 벽에는 성모 마리아의 두 번째 발현 모습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카타리나 수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카타리나 수녀는 1876년에 사망했는데, 그녀의 시신은 처음에는 파리 근교의 수녀원 묘지에 묻혔다. 사후 57년이 지나 시성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시신이 발굴되었는데, 당시 그녀의 시신은 거의 부패하지 않고 잘 보존된 상태였다고 한다. 많은 신자들은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여 기적의 메달 성당에 안치하게 되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수녀의 유해는 유리관 속에 안치되어 있어 방문자들은 그녀의 시신을 직접 볼 수 있다.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의 유해
미사는 매주 월, 수, 목, 금 8시, 10시 30분, 12시 30분에 있으며, 화요일에는 15시 30분, 17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토요일에는 8시, 10시30분, 12시30분, 17시, 그리고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8시, 10시, 11시 반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자세한 최신 정보는 성당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당 입구 근처에는 성당을 방문하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가 있다.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기적의 메달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꽤 유명하고 귀한 물품이기 때문에 지인 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다면 선물용으로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묵주, 기도서 및 성경, 성모 마리아 상 등 다양한 종교적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기적의 메달 성당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할 수 있는 메달들
기적의 메달 성당(Chapelle Notre-Dame-de-la-Médaille-Miraculeuse)
주소: 140 Rue du Bac, 75007 Paris, 프랑스
방문시간: 07:45~13:00, 14:30~19:00 (화요일은 07:45~19:00)
https://travel.naver.com/overseas/FRPAR1759606/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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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전통 가정식, 쉐 제르멘(Chez Germaine) ::

아늑한 분위기의 Chez Germaine 식당 입구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나와 세브르 거리(Rue de Sèvres)를 따라 7분 정도 걸으면, 프랑스 정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쉐 제르멘(Chez Germaine)이 나온다. 구글 지도 평점도 굉장히 높은 이 식당은 규모가 작은 편이나 그래서 더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서빙을 하시는 분도 다른 파리 식당들과는 다르게 매우 친절하다.
가격대는 메인 메뉴 기준 20~30유로로 다른 식당에 비하면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나오는 음식의 퀄리티에 비하면 오히려 가성비 측면에서 좋을 정도이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예약을 하고 방문하길 추천한다.
전식으로 간단히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시켰다. 같이 나오는 집게와 포크로 어렵지 않게 속살을 꺼내어 먹을 수 있는데, 빵과 함께 먹으니 쫄깃한 식감과 함께 특유의 소스 맛이 어우러져 풍미를 더했다. 이곳의 에스카르고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살이 꽤 통통하고 실하다. 다른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냉동) 달팽이보다 1.5배 정도는 더 커 보였다.

쉐 제르멘의 에스카르고
메인 요리로는 연어 구이, 오리 요리(Confit de canard),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 오징어 먹물 리조또를 주문했다. 모든 요리가 다 평균 이상의 훌륭한 맛이었지만,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 가정식 중 하나인 오리 요리(Confit de canard)가 일품이었다. 다른 식당에서도 이 요리를 몇 번 먹어 봤는데, 이 식당의 오리 요리는 속살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했으며 간도 딱 맞았다. 내가 먹어본 오리 요리 중에서는 단연코 최고였다. 곁들여 나온 오리 기름에 볶은 감자도 매우 훌륭했다.

쉐 제르멘의 메인 요리
소고기 스테이크도 너무 질기지 않고 적당히 부드러웠고, 곁들여 나온 감자튀김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데, 간단히 Steak Frites(스테이크 프리뜨)라고 부른다. 연어 구이의 맛도 일품이었으며, 오징어 먹물 리조또 또한 밥알의 익힘 정도가 적당하고 매우 훌륭했다.
쉐 제르멘(Chez Germaine)
주소: 30 Rue Pierre Leroux, 75007 Paris, 프랑스
영업시간: 12:00~14:30, 19:00~22:00
예약: https://chezgermaineparis.fr/en/booking
https://travel.naver.com/overseas/FRPAR1057786/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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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만드는 프랑스 최고의 플랑(Flan), 밀 에 앙(Mille et Un) ::

밀 에 앙
식사를 맛있게 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러 간다. 쉐 제르멘 식당에서 나와서 세브르 거리(Rue de Sèvres)를 따라 쌍 플라시드 거리(Rue Saint-Placide) 남쪽으로 한 블록 내려가면 밀 에 앙(Mille et UN)이라는 빵집에 도착한다. 밀 에 앙은 프랑스어로 “천 하나”를 의미하며, 『천일야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빵집은 프랑스 현지인들은 물론 한국 관광객이나 교민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한국인 제빵사가 운영하는 곳이며, 2022년 파리 ‘최고의 플랑’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제빵사는 유재석의 〈유퀴즈온더블럭〉에도 출연했다.
플랑(Flan)은 프랑스 전통 디저트 중 하나로, 부드러운 커스터드 타르트의 일종이다. 크리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특징이며, 대부분의 프랑스 빵집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국민 디저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플랑보다는 에클레흐나 밀퍼이유 같은 디저트를 선호하는 편인데, 밀 에 앙의 플랑은 내 취향에도 딱 맞는다. 다른 일반적인 플랑들은 젤리 같은 식감이 강한 반면 밀 에 앙의 플랑은 훨씬 더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천연 바닐라의 고급스러운 풍미가 정말 좋다.

밀 에 앙의 플랑
플랑 외에도 다른 프랑스 빵집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한국식 딸기 생크림 케이크나 크림 단팥빵도 있다. 제빵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 한 가운데서 한국인이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최고급 수준의 빵을 맛 볼 수 있어서 감회가 무척이나 새로웠다.
밀 에 앙(Mille et Un)
주소: 32 Rue Saint-Placide, 75006 Paris, 프랑스
영업시간: 07:30~19:30 (일요일 휴무)
글·사진 | 서신석

한국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프랑스에서 항공기 관련 데이터 분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유럽 축구를 시차 상관없이 마음껏 볼 수 있고, 여유로운 유럽의 일상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편집 | 이주호, 신태진 에디터
| Paris |
프랑스 파리의 면적은 약 105.4 km²로 서울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이 위치한 1구 혹은 에펠탑 주변 위주로 방문한다. 하지만 파리에는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숨겨진 장소들이 많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파리 7구도 그렇다.
파리 7구의 명소들은 도보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파리 지하철 10호선 혹은 12호선을 타고 갈 수 있는 세브르-바빌론(Sèvres-Babylone) 역에서 시작해서 르 봉 마르셰 (Le Bon Marché)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성모 마리아 발현지인 기적의 메달 성당(Chapelle Notre-Dame-de-la-Médaille-Miraculeuse)을 순례한다.
순례를 마친 후에는 정통 프랑스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고 마무리는 한국 제빵사가 운영하는 유명한 빵집에서 디저트를 먹는다. 이 빵집은 엄밀히 말하면 파리 6구에 속해 있지만 7구 바로 옆에 있다. 총 도보 거리는 1.6km, 소요되는 시간은 약 22분으로 걷기를 싫어하거나 걷기에 힘든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짧지만 알찬 코스다.
세브르 바빌론역에서 시작하는 파리7구 도보 코스 | 캡처: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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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 백화점 ::
세브르 바빌론 지하철 역에서 나와서 작은 공원을 지나면 바로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봉 마르셰 (Bon marché)’는 ‘좋은 시장’ 또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백화점은 이름과 달리 명품들이 즐비한 럭셔리 백화점이다. 르 봉 마르셰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여겨지며 19세기 중반 설립되었다. 한국 관광객들은 오스만가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나 프랭땅 백화점이 더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은 프랑스 현지인들에게 고급 백화점으로 인식되어 있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는 안내 표지판
르 봉 마르셰 백화점 입구에는 백화점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에밀 졸라의 작품에 이 백화점이 등장한다는 것과, 에펠탑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에펠이 이 백화점도 설계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백화점 내부가 철골 구조물 느낌이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방문해 볼 가치가 있을 만큼 정말 화려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다른 파리 백화점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인테리어의 절정은 연말 크리스마스 전후에 만끽할 수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달려 있던 화려한 트리 장식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의 또 다른 매력은 공연, 전시 등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2024년 9월 12일을 시작으로 12월 31일까지 서커스와 드라마를 접목한 〈Cirque Le Roux: Entre Chiens et Louves〉라는 공연이 르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열린다. 티켓 예매는 이곳에서 가능하다. 또, 예술과 백화점 내 입점한 브랜드의 콜라보로 진행되는 전시 〈Paris! Paris!〉도 10월 20일까지 진행된다.
10월 19일과 11월 23일에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Visite : Le Bon Marché Rive Gauche〉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을 것이다. 가이드와 함께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파리 최초 백화점의 역사와 건축, 예술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1인 20유로로 봉 마르셰 백화점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 | 출처: 르 봉 마르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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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메달 성당(Chapelle Notre-Dame-de-la-Médaille-Miraculeuse) ::
기적의 메달 성당
르 봉 마르셰 백화점 맞은편에 기적의 메달 성당이 있다. 입구가 기적의 메달 성당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수밖에 없을 만큼 평범하게 생겼다. 프랑스에 7년 넘게 살고 있는 나도 최근에야 이곳을 알게 됐는데, 가톨릭 신자 사이에선 매우 중요한 순례지라고 한다.
기적의 메달 성당은 1830년,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é) 수녀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카타리나 수녀는 1806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830년 24세의 나이에 파리 근교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했다. 카타리나 수녀가 수녀 생활을 하던 중 성모 마리아가 세 번 그녀에게 나타나서 특별한 메달을 만들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이 메달이 바로 기적의 메달인데, 성모 마리아가 발현할 때 카타리나 수녀가 목격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성스러운 문구, 그리고 특별한 심볼이 새겨져 있다.
기적의 메달에는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을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Marie conçue sans péché,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à vous.”라고 적혀 있다. 기적의 메달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이 메달이 자신에게 영적, 육체적 치유와 기적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이 메달을 ‘기적의 메달’로 부르기 시작했다.
기적의 메달 앞뒤 면 | 사진 출처: 기적의 메달 성당 홈페이지
성당 내부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은 다른 유명한 성당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다. 층고가 그렇게 높지도 않으며 화려한 조각이나 장식도 많지 않다. 방문자들도 관광객보다는 순례객이 더 많다. 하지만 그래서 성당 본연의 기능에 더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적의 성당 내부
성당 제대 오른편 벽에는 성모 마리아의 두 번째 발현 모습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카타리나 수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카타리나 수녀는 1876년에 사망했는데, 그녀의 시신은 처음에는 파리 근교의 수녀원 묘지에 묻혔다. 사후 57년이 지나 시성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시신이 발굴되었는데, 당시 그녀의 시신은 거의 부패하지 않고 잘 보존된 상태였다고 한다. 많은 신자들은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여 기적의 메달 성당에 안치하게 되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수녀의 유해는 유리관 속에 안치되어 있어 방문자들은 그녀의 시신을 직접 볼 수 있다.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의 유해
미사는 매주 월, 수, 목, 금 8시, 10시 30분, 12시 30분에 있으며, 화요일에는 15시 30분, 17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토요일에는 8시, 10시30분, 12시30분, 17시, 그리고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8시, 10시, 11시 반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자세한 최신 정보는 성당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당 입구 근처에는 성당을 방문하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가 있다.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기적의 메달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꽤 유명하고 귀한 물품이기 때문에 지인 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다면 선물용으로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묵주, 기도서 및 성경, 성모 마리아 상 등 다양한 종교적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기적의 메달 성당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할 수 있는 메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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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전통 가정식, 쉐 제르멘(Chez Germaine) ::
아늑한 분위기의 Chez Germaine 식당 입구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나와 세브르 거리(Rue de Sèvres)를 따라 7분 정도 걸으면, 프랑스 정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쉐 제르멘(Chez Germaine)이 나온다. 구글 지도 평점도 굉장히 높은 이 식당은 규모가 작은 편이나 그래서 더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서빙을 하시는 분도 다른 파리 식당들과는 다르게 매우 친절하다.
가격대는 메인 메뉴 기준 20~30유로로 다른 식당에 비하면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나오는 음식의 퀄리티에 비하면 오히려 가성비 측면에서 좋을 정도이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예약을 하고 방문하길 추천한다.
전식으로 간단히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시켰다. 같이 나오는 집게와 포크로 어렵지 않게 속살을 꺼내어 먹을 수 있는데, 빵과 함께 먹으니 쫄깃한 식감과 함께 특유의 소스 맛이 어우러져 풍미를 더했다. 이곳의 에스카르고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살이 꽤 통통하고 실하다. 다른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냉동) 달팽이보다 1.5배 정도는 더 커 보였다.
쉐 제르멘의 에스카르고
메인 요리로는 연어 구이, 오리 요리(Confit de canard),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 오징어 먹물 리조또를 주문했다. 모든 요리가 다 평균 이상의 훌륭한 맛이었지만,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 가정식 중 하나인 오리 요리(Confit de canard)가 일품이었다. 다른 식당에서도 이 요리를 몇 번 먹어 봤는데, 이 식당의 오리 요리는 속살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했으며 간도 딱 맞았다. 내가 먹어본 오리 요리 중에서는 단연코 최고였다. 곁들여 나온 오리 기름에 볶은 감자도 매우 훌륭했다.
쉐 제르멘의 메인 요리
소고기 스테이크도 너무 질기지 않고 적당히 부드러웠고, 곁들여 나온 감자튀김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데, 간단히 Steak Frites(스테이크 프리뜨)라고 부른다. 연어 구이의 맛도 일품이었으며, 오징어 먹물 리조또 또한 밥알의 익힘 정도가 적당하고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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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만드는 프랑스 최고의 플랑(Flan), 밀 에 앙(Mille et Un) ::
밀 에 앙
식사를 맛있게 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러 간다. 쉐 제르멘 식당에서 나와서 세브르 거리(Rue de Sèvres)를 따라 쌍 플라시드 거리(Rue Saint-Placide) 남쪽으로 한 블록 내려가면 밀 에 앙(Mille et UN)이라는 빵집에 도착한다. 밀 에 앙은 프랑스어로 “천 하나”를 의미하며, 『천일야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빵집은 프랑스 현지인들은 물론 한국 관광객이나 교민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한국인 제빵사가 운영하는 곳이며, 2022년 파리 ‘최고의 플랑’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제빵사는 유재석의 〈유퀴즈온더블럭〉에도 출연했다.
플랑(Flan)은 프랑스 전통 디저트 중 하나로, 부드러운 커스터드 타르트의 일종이다. 크리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특징이며, 대부분의 프랑스 빵집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국민 디저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플랑보다는 에클레흐나 밀퍼이유 같은 디저트를 선호하는 편인데, 밀 에 앙의 플랑은 내 취향에도 딱 맞는다. 다른 일반적인 플랑들은 젤리 같은 식감이 강한 반면 밀 에 앙의 플랑은 훨씬 더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천연 바닐라의 고급스러운 풍미가 정말 좋다.
밀 에 앙의 플랑
플랑 외에도 다른 프랑스 빵집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한국식 딸기 생크림 케이크나 크림 단팥빵도 있다. 제빵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 한 가운데서 한국인이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최고급 수준의 빵을 맛 볼 수 있어서 감회가 무척이나 새로웠다.
글·사진 | 서신석
한국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프랑스에서 항공기 관련 데이터 분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유럽 축구를 시차 상관없이 마음껏 볼 수 있고, 여유로운 유럽의 일상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편집 | 이주호, 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