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yoto |
일본에서는 통상적으로 집에서 도보 5분 이내에 절이나 신사가 한두 군데쯤은 있다. 그 정도로 절과 신사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사실 절과 신사는 불교와 신도라는 각각 다른 종교 시설이지만, 일본에선 불교와 신도가 워낙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신사와 절을 종교적으로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엄격하게 따지면 다른 종교지만, 일반인들에겐 둘 다 똑같이 신성한 장소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입구에 도리이가 있으면 신사, 없으면 절, 이렇게만 구분하는 정도다. 기능적으로 보면, 종교와 상관없이 결혼식은 신사, 장례식은 절에서 담당한다.
일부러 가을에 교토를 찾는 여행자들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교토의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텐데, 그런 교토의 정취 역시 신사와 절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토시 내에서 정식 등록된 곳만 헤아려도 신사는 대략 800곳, 절은 1,700곳 정도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규모인 곳이 있는가 하면, 쓰윽 눈 한 번 돌리면 경내가 다 들어올 만큼 소규모인 곳들도 있다. 교토의 절과 신사 중에서 규모로는 초소형이지만, 가을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들을 꼽아 보았다. 소원 성취나 인연 맺기 등의 효험이 있다고 이름난 곳들도 있으니 가을 교토 산책에 색다른 의미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 * *
:: 롯카쿠도(六角堂 - 육각당) ::
롯카쿠도로 더 잘 알려진 초호지
정식 명칭은 초호지(頂法寺 - 정법사)이지만, 본당 건물이 육각형이라서 생긴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사찰이다. 교토의 도심 빌딩 사이에 살포시 자리하고 있다. 뜬금없는 위치에 절이 있어서 한 번 놀라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내가 의외로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해 또 한 번 놀란다.
롯카쿠도 경내
쇼토쿠 태자가 1500년 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롯카쿠도는 전체적인 규모는 작아도 육각형 건물인 본당을 비롯해 쇼토쿠 태자의 동상을 모신 태자당과 쇼토쿠 태자가 몸을 씻었던 연못 터, 종루, 교토의 중심이라는 배꼽석, 자그마한 지장보살 석상들과 16나한상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제법 많이 포진하고 있다. 봄엔 다른 곳보다 일찍 피는 수양벚꽃으로도 유명하다.
육각형으로 만들어진 본당
또한 이 절은 일본 꽃꽂이 예술인 이케바나의 발상지로, 계절마다 꽃꽂이와 관련된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롯카쿠도의 본존인 여의륜관음보살은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고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며, 이곳에 있는 신목인 버드나무에 소원을 빌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는 전설이 헤이안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소원을 빌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준다는 버드나무
경내를 돌아다니는 많은 비둘기들을 형상화한 귀여운 부적도 만나볼 수 있고, 비둘기 모양 장식물에 소원을 쓴 종이를 넣어 롯카쿠도 본당에 봉납할 수도 있다. 위풍당당한 육각형 본당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귀여운 비둘기들이 미소를 자아낸다.
지장보살
롯카쿠도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면 롯카쿠도의 육각형 지붕 모양을 볼 수 있으며, 그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는 통창을 통해 아름다운 경내를 감상할 수 있다.
차 한 잔과 함께 감상하는 롯카쿠도의 경치는 그야말로 힐링이다. 좋은 인연을 바라는 소원도 빌고, 육각형의 독특한 본당과 흐드러진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번잡한 관광지에서 지친 몸을 잠시 쉬어주는 시간도 갖고. 롯카쿠도는 교토 여행의 의미 있는 쉼표가 되어줄 것이다.

스타벅스에서 본 롯카쿠도
롯카쿠도(六角堂 - 육각당)
Donomaecho, 248 Nakagyo Ward, Kyoto
매일 오전 6시~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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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메이 신사(晴明神社) ::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를 모시는 신사다. 본래 아베노 세이메이가 살던 저택 부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한때 황폐해졌었지만 꾸준한 정비와 보수를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으며,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세이메이 신사의 도리이. 현판에 오망성이 새겨져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소재로 삼은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는데, 지금도 영화나 애니메이션 팬들이 많이 찾아온다(현재 넷플릭스에서 에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중이다). 입구의 첫 번째 도리이에 걸린 현판에는 아베노 세이메이를 상징하는 오망성이 새겨져 있는데, 도리이에 신사명이나 모시는 신의 이름이 아닌 상징 문양이 걸려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한다.

세이메이 신사 본당 전경

어디에나 아베노 세이메이를 상징하는 오망성이 보인다.
경내로 들어가는 두 번째 도리이를 지나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염력으로 물을 끌어올렸다는 세이메이 우물이 있다. 지금도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물이 흘러나오는 입구는 음양도에서 말하는 그 해의 길한 방향 쪽으로 매년 옮겨진다. 우물 앞에 자갈을 박아 새긴 북두칠성도 별을 읽는 음양도를 표현한 것이다.

세이메이 우물과 북두칠성
더 안으로 들어가면 본전이 보인다. 본전 왼쪽엔 아베노 세이메이의 좌상이 있고, 오른쪽엔 금속으로 만들어진 복숭아 동상이 있다. 이 액막이 복숭아를 만지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좋은 운이 상승한다고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탄 복숭아 동상은 매우 매끌매끌하고 반짝반짝하다.

액막이 복숭아.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매끈매끈하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식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뛰어난 음양사였다. 그래서 세이메이 신사는 특히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액막이를 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잘 모르더라도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방문해 매끌매끌해진 복숭아를 만지며 나쁜 운은 사라지고 좋은 운이 찾아오길 빌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세이메이 신사(晴明神社)
806 Seimeicho, Kamigyo Ward, Kyoto
매일 오전 9시~오후 4시 30분
https://travel.naver.com/overseas/JPUKY1568228/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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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네 신사(御金神社) ::
이름에 ‘돈’을 뜻하는 쇠 금(金) 자가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금전운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신사다. 이곳에는 금속과 광물의 수호신이 모셔져 있고, 주변 일대에는 주조소, 환전상 등 다양한 금속류와 관련된 산업이 크게 발달했었다. 이에 따라 지역 수호신으로서 이 신사에 대한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카네 신사 입구 도리이
주택가 호젓한 작은 골목에 자리한 미카네 신사는 입구인 도리이 뒤로 보이는 자그마한 본당 하나가 전부인 아담한 신사지만, 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도리이부터 압도당할 듯한 힘이 느껴진다. 본당 처마에 늘어진 방울 줄도 금색이다. 잘 보면 본당 지붕에도 온통 쇠 금(金) 자가 새겨져 있다. 정말로 재물운이 훅 올라갈 것만 같은 인상이다.

본당. 처마에 걸린 방울 줄도 금색이다. 지붕에도 온통 쇠 금(金) 자가 새겨져 있다.
본당 뒤편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200년을 넘은 거대 신목으로, 교토시 내에서도 손에 꼽는 큰 나무다. 은행나무는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화재의 진행을 늦춰주기 때문에 신과 신사, 사람들의 생활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시들지 않기 때문에 번영과 발전, 혹은 불로장수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그래서 미카네 신사에는 은행잎과 열매의 모양으로 만든 각종 수여품을 판매하고 있고, 가을에는 금색으로 물든 은행잎을 나눠주는 행사도 열린다.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는 신사의 황금색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금전운을 올려준다는 작은 부적
금전운을 불러온다는 각종 부적과 기념품을 판매 중인데, 지갑 모양 부적이 특히 인기가 많다. 돈이 들어오게 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귀여운 모양새 때문에 여행 선물로도 손색이 없다. 12월과 1월에는 유독 사람이 많이 몰리니 10월과 11월에 일찍(?) 가는 편이 좋고, 유명 관광지인 니조성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 니조성 관광 후 잠시 들러 재물운 상승과 무병장수를 기원해 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지갑 모양으로 생긴 부적은 기념품이나 선물로 인기가 많다.
미카네 신사(御金神社)
614 Oshinishitoincho, Nakagyo Ward, Kyoto
매일 오전 10시~오후 4시
https://travel.naver.com/overseas/JPUKY7736421/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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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고지(金康寺 - 금강사) - 야사카경신당 ::
교토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산넨자카. 가을의 산넨자카에는 저 아래서부터 보이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 청수사)와 그 뒤로 붉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그런데 산넨자카에서 야사카 탑 바로 아래 특별한 초소형 절이 하나 있다. 기념품 가게나 음식점들이 즐비한 거리에 나타나는 주황색 절 입구가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안쪽을 들여다보면 작은 누각에 알록달록 앙증맞은 공 같은 것이 잔뜩 매달려 있다. 기묘하고도 귀여운 광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콘고지 – 야사카경신당이다.

콘코지 입구
절에 웬 공이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신기한데,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이 독특한 광경이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게 되었다. 다 둘러보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이 자그마한 절이 SNS 시대를 맞아 교토의 인기 스팟 중 한 곳이 되었다.

작고 귀여운 콘고지 전경

본당 전경
콘고지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일본 민간신앙인 경신신앙과 관련이 있는 청면금강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사찰이다. 청면금강은 병을 낫게 해주고, 온갖 재난을 막아준다고 하며, 학업성취나 사업번성 등에도 효험을 발휘한다고 한다.
사실 공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주머니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사지를 묶은 원숭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쿠쿠리자루라고 불리는 이 원숭이에는,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원숭이의 사지를 묶어 놓은 듯, 욕심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청면금강의 영력으로 꽉 잡아놓았다는 의미가 있다. 마음을 다잡아 욕심 하나를 버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원숭이는 청면금강의 식신이므로, 이 원숭이에게 소원을 빌면 청면금강에게 전달해준다고 한다. 때문에 콘고지를 찾은 사람들은 쿠쿠리자루에 소원을 써서 경내에 매달아 놓고 그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본당에는 청면금강의 식신인 세 원숭이가 있고, 뒤로 쿠쿠리자루가 매달려 있다.

원숭이의 사지를 묶은 모습을 형상화한 쿠쿠리자루의 형태가 잘 드러나 있다.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하지만, 쿠쿠리자루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광경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원을 빌지 않고 그냥 사진만 찍어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쿠쿠리자루에 소원을 적어본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것도 좋지만, 마음의 욕심을 버려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가 마음에 크게 다가온다. 쿠쿠리자루에 소원을 쓰며 욕심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 그 자체로 이미 소원은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방문객들이 매달아 놓은 쿠쿠리자루. 나도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았다.
콘고지(金康寺 - 금강사) - 야사카경신당
390 Kinencho, Higashiyama Ward, Kyoto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
https://travel.naver.com/overseas/JPUKY7346820/poi/summary
글·사진 |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편집 | 이주호·신태진 에디터
| Kyoto |
일본에서는 통상적으로 집에서 도보 5분 이내에 절이나 신사가 한두 군데쯤은 있다. 그 정도로 절과 신사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사실 절과 신사는 불교와 신도라는 각각 다른 종교 시설이지만, 일본에선 불교와 신도가 워낙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신사와 절을 종교적으로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엄격하게 따지면 다른 종교지만, 일반인들에겐 둘 다 똑같이 신성한 장소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입구에 도리이가 있으면 신사, 없으면 절, 이렇게만 구분하는 정도다. 기능적으로 보면, 종교와 상관없이 결혼식은 신사, 장례식은 절에서 담당한다.
일부러 가을에 교토를 찾는 여행자들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교토의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텐데, 그런 교토의 정취 역시 신사와 절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토시 내에서 정식 등록된 곳만 헤아려도 신사는 대략 800곳, 절은 1,700곳 정도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규모인 곳이 있는가 하면, 쓰윽 눈 한 번 돌리면 경내가 다 들어올 만큼 소규모인 곳들도 있다. 교토의 절과 신사 중에서 규모로는 초소형이지만, 가을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들을 꼽아 보았다. 소원 성취나 인연 맺기 등의 효험이 있다고 이름난 곳들도 있으니 가을 교토 산책에 색다른 의미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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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카쿠도(六角堂 - 육각당) ::
정식 명칭은 초호지(頂法寺 - 정법사)이지만, 본당 건물이 육각형이라서 생긴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사찰이다. 교토의 도심 빌딩 사이에 살포시 자리하고 있다. 뜬금없는 위치에 절이 있어서 한 번 놀라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내가 의외로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해 또 한 번 놀란다.
쇼토쿠 태자가 1500년 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롯카쿠도는 전체적인 규모는 작아도 육각형 건물인 본당을 비롯해 쇼토쿠 태자의 동상을 모신 태자당과 쇼토쿠 태자가 몸을 씻었던 연못 터, 종루, 교토의 중심이라는 배꼽석, 자그마한 지장보살 석상들과 16나한상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제법 많이 포진하고 있다. 봄엔 다른 곳보다 일찍 피는 수양벚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절은 일본 꽃꽂이 예술인 이케바나의 발상지로, 계절마다 꽃꽂이와 관련된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롯카쿠도의 본존인 여의륜관음보살은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고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며, 이곳에 있는 신목인 버드나무에 소원을 빌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는 전설이 헤이안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경내를 돌아다니는 많은 비둘기들을 형상화한 귀여운 부적도 만나볼 수 있고, 비둘기 모양 장식물에 소원을 쓴 종이를 넣어 롯카쿠도 본당에 봉납할 수도 있다. 위풍당당한 육각형 본당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귀여운 비둘기들이 미소를 자아낸다.
롯카쿠도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면 롯카쿠도의 육각형 지붕 모양을 볼 수 있으며, 그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는 통창을 통해 아름다운 경내를 감상할 수 있다.
차 한 잔과 함께 감상하는 롯카쿠도의 경치는 그야말로 힐링이다. 좋은 인연을 바라는 소원도 빌고, 육각형의 독특한 본당과 흐드러진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번잡한 관광지에서 지친 몸을 잠시 쉬어주는 시간도 갖고. 롯카쿠도는 교토 여행의 의미 있는 쉼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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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메이 신사(晴明神社) ::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를 모시는 신사다. 본래 아베노 세이메이가 살던 저택 부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한때 황폐해졌었지만 꾸준한 정비와 보수를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으며,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세이메이 신사의 도리이. 현판에 오망성이 새겨져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소재로 삼은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는데, 지금도 영화나 애니메이션 팬들이 많이 찾아온다(현재 넷플릭스에서 에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중이다). 입구의 첫 번째 도리이에 걸린 현판에는 아베노 세이메이를 상징하는 오망성이 새겨져 있는데, 도리이에 신사명이나 모시는 신의 이름이 아닌 상징 문양이 걸려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한다.
세이메이 신사 본당 전경
어디에나 아베노 세이메이를 상징하는 오망성이 보인다.
경내로 들어가는 두 번째 도리이를 지나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염력으로 물을 끌어올렸다는 세이메이 우물이 있다. 지금도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물이 흘러나오는 입구는 음양도에서 말하는 그 해의 길한 방향 쪽으로 매년 옮겨진다. 우물 앞에 자갈을 박아 새긴 북두칠성도 별을 읽는 음양도를 표현한 것이다.
세이메이 우물과 북두칠성
더 안으로 들어가면 본전이 보인다. 본전 왼쪽엔 아베노 세이메이의 좌상이 있고, 오른쪽엔 금속으로 만들어진 복숭아 동상이 있다. 이 액막이 복숭아를 만지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좋은 운이 상승한다고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탄 복숭아 동상은 매우 매끌매끌하고 반짝반짝하다.
액막이 복숭아.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매끈매끈하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식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뛰어난 음양사였다. 그래서 세이메이 신사는 특히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액막이를 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잘 모르더라도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방문해 매끌매끌해진 복숭아를 만지며 나쁜 운은 사라지고 좋은 운이 찾아오길 빌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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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네 신사(御金神社) ::
이름에 ‘돈’을 뜻하는 쇠 금(金) 자가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금전운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신사다. 이곳에는 금속과 광물의 수호신이 모셔져 있고, 주변 일대에는 주조소, 환전상 등 다양한 금속류와 관련된 산업이 크게 발달했었다. 이에 따라 지역 수호신으로서 이 신사에 대한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카네 신사 입구 도리이
주택가 호젓한 작은 골목에 자리한 미카네 신사는 입구인 도리이 뒤로 보이는 자그마한 본당 하나가 전부인 아담한 신사지만, 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도리이부터 압도당할 듯한 힘이 느껴진다. 본당 처마에 늘어진 방울 줄도 금색이다. 잘 보면 본당 지붕에도 온통 쇠 금(金) 자가 새겨져 있다. 정말로 재물운이 훅 올라갈 것만 같은 인상이다.
본당. 처마에 걸린 방울 줄도 금색이다. 지붕에도 온통 쇠 금(金) 자가 새겨져 있다.
본당 뒤편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200년을 넘은 거대 신목으로, 교토시 내에서도 손에 꼽는 큰 나무다. 은행나무는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화재의 진행을 늦춰주기 때문에 신과 신사, 사람들의 생활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시들지 않기 때문에 번영과 발전, 혹은 불로장수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그래서 미카네 신사에는 은행잎과 열매의 모양으로 만든 각종 수여품을 판매하고 있고, 가을에는 금색으로 물든 은행잎을 나눠주는 행사도 열린다.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는 신사의 황금색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금전운을 올려준다는 작은 부적
금전운을 불러온다는 각종 부적과 기념품을 판매 중인데, 지갑 모양 부적이 특히 인기가 많다. 돈이 들어오게 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귀여운 모양새 때문에 여행 선물로도 손색이 없다. 12월과 1월에는 유독 사람이 많이 몰리니 10월과 11월에 일찍(?) 가는 편이 좋고, 유명 관광지인 니조성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 니조성 관광 후 잠시 들러 재물운 상승과 무병장수를 기원해 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지갑 모양으로 생긴 부적은 기념품이나 선물로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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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고지(金康寺 - 금강사) - 야사카경신당 ::
교토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산넨자카. 가을의 산넨자카에는 저 아래서부터 보이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 청수사)와 그 뒤로 붉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그런데 산넨자카에서 야사카 탑 바로 아래 특별한 초소형 절이 하나 있다. 기념품 가게나 음식점들이 즐비한 거리에 나타나는 주황색 절 입구가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안쪽을 들여다보면 작은 누각에 알록달록 앙증맞은 공 같은 것이 잔뜩 매달려 있다. 기묘하고도 귀여운 광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콘고지 – 야사카경신당이다.
콘코지 입구
절에 웬 공이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신기한데,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이 독특한 광경이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게 되었다. 다 둘러보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이 자그마한 절이 SNS 시대를 맞아 교토의 인기 스팟 중 한 곳이 되었다.
작고 귀여운 콘고지 전경
본당 전경
콘고지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일본 민간신앙인 경신신앙과 관련이 있는 청면금강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사찰이다. 청면금강은 병을 낫게 해주고, 온갖 재난을 막아준다고 하며, 학업성취나 사업번성 등에도 효험을 발휘한다고 한다.
사실 공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주머니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사지를 묶은 원숭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쿠쿠리자루라고 불리는 이 원숭이에는,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원숭이의 사지를 묶어 놓은 듯, 욕심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청면금강의 영력으로 꽉 잡아놓았다는 의미가 있다. 마음을 다잡아 욕심 하나를 버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원숭이는 청면금강의 식신이므로, 이 원숭이에게 소원을 빌면 청면금강에게 전달해준다고 한다. 때문에 콘고지를 찾은 사람들은 쿠쿠리자루에 소원을 써서 경내에 매달아 놓고 그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본당에는 청면금강의 식신인 세 원숭이가 있고, 뒤로 쿠쿠리자루가 매달려 있다.
원숭이의 사지를 묶은 모습을 형상화한 쿠쿠리자루의 형태가 잘 드러나 있다.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하지만, 쿠쿠리자루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광경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원을 빌지 않고 그냥 사진만 찍어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쿠쿠리자루에 소원을 적어본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것도 좋지만, 마음의 욕심을 버려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가 마음에 크게 다가온다. 쿠쿠리자루에 소원을 쓰며 욕심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 그 자체로 이미 소원은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방문객들이 매달아 놓은 쿠쿠리자루. 나도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았다.
글·사진 |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편집 | 이주호·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