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ju |
제주에 1년 넘게 살다 보니 슬슬 맛있는 곳들, 집에서 좀 떨어져 있더라도 다시 가볼 만하겠다 싶은 곳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도민 맛집’이라고 쓰기에는 경력도 짧고 제 혀가 미천하여 머쓱한, 아무튼 저는 재방문 의사가 있는 곳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
첫 편에서는 ‘제주 음식’이라는 타이틀과 거리가 먼 메뉴들을 골랐습니다. 제주까지 여행 와서 굳이 찍고 가시기에는 아쉬운 식단일 테지만, 그래도 멀지 않으면 허기가 질 때 한 번쯤 들러 보셔도 좋겠습니다.
| 톰톰카레
톰톰카레
제가 카레를 좋아합니다. 음식에 관한 책을 쓸 때도 카레에 한 챕터를 할애하여 꽤나 상찬했었습니다. 누가 밥에 3분 카레만 부어줘도 다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라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톰톰카레는 그냥 추켜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가도 시간과 기름이 아깝지 않은 곳이지요.
실내도 예쁩니다.
톰톰카레의 매력이라면 콩, 시금치, 버섯, 톳 등 채소를 베이스로 한 카레만 선보인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카레에 토핑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재료마다 카레 조리법이 달라요. 그래서 카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맛을 선택할까 행복한 고민을 안겨주지요. 동시에 고민이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반반카레'라는 반가운 메뉴도 있어요. 접시 가운데 밥을 길게 올리고 양쪽에 야채, 콩, 시금치 카레 중 두 가지를 담아주지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입니다.
반반카레. 일본에선 이렇게 카레를 파는 곳이 많다고 하네요.
톰톰카레는 돈카츠나 고로케, 새우튀김 등 튀김옷 입힌 고기를 올리지 않아도 카레가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합니다. 그래도 유제품이나마 왕창 올리고 싶다거나 제주 특색이 담긴 카레를 먹고 싶다면 치즈톳카레를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갔을 때는 메뉴가 준비되지 않아 먹어보질 못했는데, 매콤해서 많이들 찾는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을 위해 양을 반으로 줄인 어린이 카레도 있고, 인도식 밀크티 짜이티도 마실 수 있어요. 아름다운 평대리 앞바다는 덤이고요.

버섯카레
톰톰카레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112
11:00~15:00(14:30 L.O) / 17:00~20:00(19:30 L.O)
* * *
|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
어? 식당 이름이 어딘가 이상하지요. 멕시칸 양념치킨은 알겠는데 멸치국수…? 더군다나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잘 아는 그 치킨집 이름은 ‘멕시카나’입니다. 이곳을 양념치킨과 멸치국수를 파는 ‘멕시칸’ 식당이라 불러야 할지 그냥 간판에 쓰인 그대로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후자가 재밌으니까 그렇게 부르기로 합니다.


크고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인 성산읍 골목 어딘가. 한 집에서 양념치킨과 멸치국수를 함께 판다는 조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증을 안고 문을 열면 세월 흔적 가득한 식당이 나타납니다. 생활공간이 분명한 방도 하나 딸려 있네요. 벌써 동네 사람 두 팀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거요.
메뉴판을 봅니다. 아, 이곳은 그 프랜차이즈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구나 재확인을 합니다. 닭모래찜부터 닭도리탕, 닭발, 백숙까지는 닭요릿집이고요, 칼국수부터 수제비, 만둣국, 라면까지는 분식집이네요. 한가운데 쓰인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이 둘 사이를 잇는 가교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어쩐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정말로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담배 가게이기도 합니다.

두 분이 부부신 것 같았어요. 마지막 손님인 저희를 받으시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시더군요.
후라이드 치킨과 국수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이곳을 소개한 이유가 바로 이 멸치국수 때문입니다. 튀김기가 아니라 깊은 웍에 튀겨주신 후라이드 치킨도 별미였지만, 멸치국수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너무 진하게 우려져서 후루룩 마시기 어려운 깊이의 육수도, ‘육수 한 알’ 몇 개 넣은 듯한 공산품식 얕은 육수도 아닌, 멸치국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정점의 밸런스를 보여주는 육수였다고 할까요. 면의 익힘도 완벽했고요. 이런 멸치국수(저는 잔치국수라 부르게 됩니다만)는 후루룩 입으로 들어갈 때의 그 부드러움과 구수함이 생명 아닌가요.
단어 선택에 깊은 고민을 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인생 잔치국수라고 써 보렵니다.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에는 이 국수 때문에 또 갈 생각입니다. 집인지 식당인지 술집인지 모를 분위기가 묘하게 끌리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간판에도 붙어 있는 '양념치킨'을 아직 안 먹어 봤으니 이곳의 진가를 반만 안 것 같아서요.

치킨도 맛있습니다. 소주랑 함께 드세요.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동류암로39번길 9 멕시칸치킨
* * *
| 오뚜기 빵집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식당은 아닙니다. 동네 빵집이에요. 남원 위미리에 있는 오뚜기 빵집은 외관부터 노스탤지어 범벅입니다. 빵 구성은 여느 동네 빵집과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여기까지 찾아가는 이유는 ‘사라다 햄버거’ 때문입니다. 아시죠? 동네 빵집에 있던 그 햄버거. 우리에게 수제 버거가 오기 전, 아니, 맥도날드조차 오기 전 먼저 벗이 됐던 그 추억의 햄버거….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약간 차갑긴 하지만, 햄버거 빵 사이에 양배추, 사과, 패티가 알차게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은 케찹과 마요네즈 범벅이고요. 맛이 없을 수 없는 소스 조합과 양이긴 한데요,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재료 하나하나가 알차게 맛있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킥’은 사과이고요.

옛날 옛적 추억이 떠오르는 빵집
이 옛날 햄버거를 먹으려고 남원까지 가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는 충분히 달려갈 만하더라고요. 그것도 오며 가며 세 번이나 들렀을 정도로요. 서귀포시와 표선 사이를 여행하다가 추억의 맛을 찾고 싶은 기분이 드신다면 오뚜기 빵집에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위미리 하나로마트에서 장이라도 보는 김에요.
케찹의 양이 심상치 않지요.
오뚜기 빵집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 129
08:00~20:00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 Jeju |
제주에 1년 넘게 살다 보니 슬슬 맛있는 곳들, 집에서 좀 떨어져 있더라도 다시 가볼 만하겠다 싶은 곳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도민 맛집’이라고 쓰기에는 경력도 짧고 제 혀가 미천하여 머쓱한, 아무튼 저는 재방문 의사가 있는 곳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첫 편에서는 ‘제주 음식’이라는 타이틀과 거리가 먼 메뉴들을 골랐습니다. 제주까지 여행 와서 굳이 찍고 가시기에는 아쉬운 식단일 테지만, 그래도 멀지 않으면 허기가 질 때 한 번쯤 들러 보셔도 좋겠습니다.
| 톰톰카레
제가 카레를 좋아합니다. 음식에 관한 책을 쓸 때도 카레에 한 챕터를 할애하여 꽤나 상찬했었습니다. 누가 밥에 3분 카레만 부어줘도 다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라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톰톰카레는 그냥 추켜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가도 시간과 기름이 아깝지 않은 곳이지요.
톰톰카레의 매력이라면 콩, 시금치, 버섯, 톳 등 채소를 베이스로 한 카레만 선보인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카레에 토핑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재료마다 카레 조리법이 달라요. 그래서 카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맛을 선택할까 행복한 고민을 안겨주지요. 동시에 고민이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반반카레'라는 반가운 메뉴도 있어요. 접시 가운데 밥을 길게 올리고 양쪽에 야채, 콩, 시금치 카레 중 두 가지를 담아주지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입니다.
톰톰카레는 돈카츠나 고로케, 새우튀김 등 튀김옷 입힌 고기를 올리지 않아도 카레가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합니다. 그래도 유제품이나마 왕창 올리고 싶다거나 제주 특색이 담긴 카레를 먹고 싶다면 치즈톳카레를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갔을 때는 메뉴가 준비되지 않아 먹어보질 못했는데, 매콤해서 많이들 찾는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을 위해 양을 반으로 줄인 어린이 카레도 있고, 인도식 밀크티 짜이티도 마실 수 있어요. 아름다운 평대리 앞바다는 덤이고요.
버섯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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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
어? 식당 이름이 어딘가 이상하지요. 멕시칸 양념치킨은 알겠는데 멸치국수…? 더군다나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잘 아는 그 치킨집 이름은 ‘멕시카나’입니다. 이곳을 양념치킨과 멸치국수를 파는 ‘멕시칸’ 식당이라 불러야 할지 그냥 간판에 쓰인 그대로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후자가 재밌으니까 그렇게 부르기로 합니다.
크고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인 성산읍 골목 어딘가. 한 집에서 양념치킨과 멸치국수를 함께 판다는 조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증을 안고 문을 열면 세월 흔적 가득한 식당이 나타납니다. 생활공간이 분명한 방도 하나 딸려 있네요. 벌써 동네 사람 두 팀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거요.
메뉴판을 봅니다. 아, 이곳은 그 프랜차이즈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구나 재확인을 합니다. 닭모래찜부터 닭도리탕, 닭발, 백숙까지는 닭요릿집이고요, 칼국수부터 수제비, 만둣국, 라면까지는 분식집이네요. 한가운데 쓰인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이 둘 사이를 잇는 가교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어쩐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정말로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담배 가게이기도 합니다.
후라이드 치킨과 국수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이곳을 소개한 이유가 바로 이 멸치국수 때문입니다. 튀김기가 아니라 깊은 웍에 튀겨주신 후라이드 치킨도 별미였지만, 멸치국수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너무 진하게 우려져서 후루룩 마시기 어려운 깊이의 육수도, ‘육수 한 알’ 몇 개 넣은 듯한 공산품식 얕은 육수도 아닌, 멸치국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정점의 밸런스를 보여주는 육수였다고 할까요. 면의 익힘도 완벽했고요. 이런 멸치국수(저는 잔치국수라 부르게 됩니다만)는 후루룩 입으로 들어갈 때의 그 부드러움과 구수함이 생명 아닌가요.
멕시칸 양념치킨 멸치국수에는 이 국수 때문에 또 갈 생각입니다. 집인지 식당인지 술집인지 모를 분위기가 묘하게 끌리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간판에도 붙어 있는 '양념치킨'을 아직 안 먹어 봤으니 이곳의 진가를 반만 안 것 같아서요.
치킨도 맛있습니다. 소주랑 함께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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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 빵집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식당은 아닙니다. 동네 빵집이에요. 남원 위미리에 있는 오뚜기 빵집은 외관부터 노스탤지어 범벅입니다. 빵 구성은 여느 동네 빵집과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여기까지 찾아가는 이유는 ‘사라다 햄버거’ 때문입니다. 아시죠? 동네 빵집에 있던 그 햄버거. 우리에게 수제 버거가 오기 전, 아니, 맥도날드조차 오기 전 먼저 벗이 됐던 그 추억의 햄버거….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약간 차갑긴 하지만, 햄버거 빵 사이에 양배추, 사과, 패티가 알차게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은 케찹과 마요네즈 범벅이고요. 맛이 없을 수 없는 소스 조합과 양이긴 한데요,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재료 하나하나가 알차게 맛있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킥’은 사과이고요.
이 옛날 햄버거를 먹으려고 남원까지 가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는 충분히 달려갈 만하더라고요. 그것도 오며 가며 세 번이나 들렀을 정도로요. 서귀포시와 표선 사이를 여행하다가 추억의 맛을 찾고 싶은 기분이 드신다면 오뚜기 빵집에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위미리 하나로마트에서 장이라도 보는 김에요.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