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앙카라에서 떠나는 최소 2천 년 시간 여행

2025-07-16

| Ankara |


"아나톨리아 중심부 앙카라에서 시작되는 수 천 년 역사 여행"


앙카라는 흔히 여행하기에는 심심한 곳으로 여겨진다. 20세기 초부터 엄연한 튀르키예의 수도 자리를 꿰찼지만, 바로 그 이유에서 행정, 교육, 국방에 치중하는 도시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튀르키예에서 여행하고 싶은 도시 순위에서는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이즈미르 등에 비하면 밀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앙카라는 인구의 44%가 30세 미만일 만큼 젊은 도시다. 교육, 의료, 경제의 중심지인 만큼 다국적 기업과 외국 대사관도 앙카라에 몰려있어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앙카라도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발휘할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역사’다. 튀르키예가 자리를 잡은 아나톨리아 반도는 8,000년 전 인류 최초의 집단 거주지가 형성된 이래 쉴 틈 없이 수많은 문명을 품어왔던 역사의 땅이었다.


특히 아나톨리아 중부에 위치한 앙카라는 도시 안에서는 물론 그 주변으로도 역사 여행을 할 스폿이 많다. 이왕 시계를 돌리는 거 2,000년 안쪽으로는 끼워주지도 않고 앙카라 역사 기행을 시작해 보자.




아나톨리아 반도 수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Anadolu Medeniyetleri Müzesi)


06709d3f23f4b.png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웅장하게 솟은 앙카라 성 남쪽, 역시 적잖이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은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구석기시대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아나톨리아 반도의 역사 전반을 다룬다. 1997년 세계 박물관 회의에서 최우수 박물관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규모에 비해 소장품의 가치가 출중한 덕분이었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총 네 파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박물관 건물 앞 정원에는 올리브유를 만들던 거대한 토기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올리브유를 저장하던 토기는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다. 튀르키예 역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만큼이나 올리브유를 즐겨 먹는 나라다. 석상은 대부분 머리가 떨어져 나가 오히려 더 유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몇 차례 튀르키예를 강타한 대지진 때문에 손상된 조각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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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정원 전시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튀르키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튀르키예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명으로 세워졌다. 그 이전에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옥내 시장 ‘바데스텐’과 상인들을 위한 ‘여관’ 건물이었다. 폐허로 방치된 것을 박물관으로 보수하며 외관은 옛 모습 그대로 살려두었다. 돔형 천장을 보면 이곳이 튀르키예라는 실감이 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한가운데 커다란 홀이 나타난다. 석조물을 전시한 ‘석조물의 홀’이다. 아나톨리아 반도 최초의 거대 국가였던 히타이트와 그 후기 국가들의 석상, 부조, 점토판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실상 이 박물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신과 왕, 말과 사자, 전사와 전차를 그린 부조는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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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의 홀에 놓인 석상과 부조들


사실 박물관의 메인 전시실은 석조물의 홀의 둘레를 따라 사각형으로 배치된 회랑이다. 여기엔 석기시대부터 시대별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석기 시대에 아나톨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집을 짓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살았는지, 장례는 어떻게 치렀으며 사냥과 제사와 전쟁 때 쓰던 도구는 어떠했는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은 기원전 5750년의 여인상, 1970년대까지 앙카라의 도시 상징으로 쓰인 ‘히타이트 태양 원반’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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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의 전시실. 풍요의 여신 테라코타와 히타이트 태양 원반


마지막으로 한 층 아래 전시실에는 앙카라에서 발굴된 유물과 고대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금과 은, 유리를 재료로 한 화려한 장신구들이 모여 있다. 공간은 크지 않지만 유물들이 워낙 화려하여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알차게 간다. 시대별로 쓰인 동전을 모아둔 컬렉션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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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장신구와 로마 시대에 사용한 동전들


아나톨리아 반도 전반에 퍼져 있는 유구한 역사를 한곳에 볼 수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적당한 규모 덕분에 앙카라에서 보낼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다음에 소개할 앙카라 성과 가깝기 때문에 묶어서 방문하기 좋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Anadolu Medeniyetleri Müzesi)
Kale, Gözcü Sk. No:2, 06240 Ulus/Altındağ/Ankara
운영시간: 08:30~17:30
입장료: 12유로, 오디오가이드 대여 350리라




고대엔 군사 요충지, 현대엔 앙카라식 한옥마을
앙카라 성(Ankara Kale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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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앙카라 성


앙카라 구도심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앙카라 성은 시내 곳곳에서 보일 만큼 이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정확한 건축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7세기나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오를지 모른다고 추측된다. 기원전 2세기에 고대 로마 제국이 이곳을 점령한 이후 여러 문명이 번갈아 가며 앙카라 성을 차지했다.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도가 군사 요충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여행자에게 최고의 전망을 선사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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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성 입구와 내성 초입


앙카라 성은 고대 로마, 비잔틴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때마다 새 주인은 전쟁 통에 무너진 성곽을 보수했는데, 점차 성벽이 높아지고 아예 외성도 추가로 쌓으며 점점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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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앙카라 주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앙카라 성의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것은 매표소가 아니라 기념품 가게다. 입장료가 없어서 좋지만, 현재 앙카라 성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캐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한옥마을 같은 곳이랄까. 내성으로 들어서자마자 온갖 식당이며 카페, 더 많은 기념품 가게가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색 바랜 튀르키예 국기도 운치를 더해주며, 나무와 점토, 벽돌로 지어진 2, 3층짜리 옛 주택들은 시간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옛 주택의 흰 벽은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 앙카라 성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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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돌벽이지만 무척 튼튼해 보인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현지인들처럼 노천 자리에 앉아서 진한 홍차 혹은 튀르키예 커피를 한 잔 즐겨도 좋겠다. 내성 안을 돌다 보면 드높은 성벽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마치 지층 단면도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증축된 흔적이 놀랍고 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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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성 안 마을


앙카라 성(Ankara Kalesi)
입장시간: 평일 10:00~20:00, 토요일 08:00~22:00, 일요일 08:00~21:00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
보아즈칼레(Boğazk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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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에서 며칠 체류할 여유가 있으면서 본격적인 역사 투어를 하고 싶다면 보아즈칼레로 떠나보자. 보아즈칼레는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가 남아있는 곳으로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얼핏 이름만 들었던 히타이트가 어떤 곳이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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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 보아즈칼레


여기서 잠깐! 히타이트 제국이란?

히타이트는 기원전 17세기에서 기원전 12세기경까지 약 500년간 아나톨리아 반도에 뿌리를 내렸던 나라다. 
고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와 동시대를 걸었던 문명이었으며, 존속 기간은 고대 이집트나 아시리아에 비하면 짧았지만, 
그 유명한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맞붙어 대등하게 싸웠을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다. 
역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함무라비 왕이 번성시켰던 바빌론 제1왕조를 멸망시킨 장본인도 히타이트였다.


히타이트는 흔히 ‘철의 제국’이라 불리는데, 다른 문명보다 일찍 철기를 도입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히타이트는 체계적인 법률, 뛰어난 행정력, 속국을 관리하는 외교 수완까지 갖추며 아나톨리아 반도를 호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복합적인 이유로 순식간에 멸망해서 19세기 후반에 이르도록 베일에 싸여 있었다. 히타이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세기 초반, 본격적으로 유적이 발굴되면서부터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하투샤 유적에 도착하면 허허벌판, 아니 휑한 언덕과 무지막지한 돌산에 온갖 건물터가 남아 있는 광경을 목도한다. 한반도의 3.5배가 넘는 땅을 호령했던 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유적의 범위도 굉장한데, 주요 볼거리는 대신전터, 사자, 스핑크스, 왕의 문, 그리고 옛 성벽을 당시 기술 그대로 복원한 성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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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투샤의 성벽을 예전 기술 그대로 복원한 성벽. 복원이 20세기에 이루어졌음에도 저 정도 길이의 성벽을 세우는 데 햇수로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대신전 터는 매표소에서 그리 멀지 않다. 기둥 하나 남아 있지 않아 신전의 모습을 그리기는 쉽지 않지만, 신전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깔려 있어 그 웅장함을 조금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하투샤의 낮은 지대에 속하는 이곳 북쪽 면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돌산의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히타이트는 ‘천 신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많은 신을 모신 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보통 신전 하나당 한 신만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신을 보필해야 했던 하투샤에는 다른 작은 신전도 수두룩하게 많지만, 유독 이 대신전만큼은 제일 중요한 두 신(기후의 신 또는 풍우 신이라 불리는 히타이트 최고 신과 태양 여신)을 함께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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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투샤 대신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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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전으로 이어지던 통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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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창고 터


대신전 터에는 아주 거대한 초록색 돌덩어리가 하나 놓여 있다. 꼭 입방체 주사위처럼 생겼다. 이 돌은 놀랍게도 누군가 자른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성된 본래의 형상이라고 한다. 표면이 굉장히 반들반들하고 햇살을 받아 따뜻했다. 이 돌덩어리는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왕에게 보낸 선물이다. 히타이트와 고대 이집트는 전쟁까지 벌인 라이벌 관계였지만, 전력이 너무 팽팽한 나머지 소모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느껴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을 맺은 사이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카데시 평화 협정이다. 물론 이 돌은 화친을 맺은 이후 보내온 듯하다. 무게가 2톤이라고 하며, 피라미드까지 세웠던 나라인 만큼 이 정도 무게의 돌을 이 먼 곳까지 옮겨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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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도 아름다운 돌


이제 북쪽보다 지대가 높은 남쪽으로 올라갈 차례다. 하투샤는 왕국 초기부터 히타이트의 수도였다. 처음엔 현재의 대신전 터가 있는 북쪽에 거주지가 형성됐고, 이후 시간이 흐르며 지대가 높은 남쪽까지 도시가 확장되었다. 남쪽 성벽에는 세 개의 문이 남아 있다. 사자의 문, 스핑크스의 문, 왕의 문이다. 현재는 문설주에 해당하는 돌만 남아 있지만, 히타이트 시대에는 나무문을 달고 도시 안팎으로의 이동을 통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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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대로 사자의 문, 왕의 문, 스핑크스의 문


각 문에는 사자, 스핑크스, 신의 석상이 놓여 있다. 사자상이 가장 생동감 넘치고 위엄 있어 보인다. 히타이트에 스핑크스가 있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스핑크스는 그리스부터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설화에 등장한다. 물론 히타이트가 스핑크스를 일종의 수호 석상으로 세운 데는 이웃 나라인 이집트로부터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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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히타이트식 피라미드와 그 아래 뚫은 터널


스핑크스의 문이 있는 지점이 하투샤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마치 앙카라 성처럼 산악 지형의 이점을 살려 시야를 확보하고 도시의 방어를 단단히 한 히타이트인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대도시인 앙카라와 달리 하투샤 꼭대기에서 보는 주변 풍경은 돌산과 작은 마을뿐이지만, 웅장한 자연과 그곳에 남아 있는 고대 인류의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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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투샤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하투샤, 보아즈칼레로 가는 법은?
안타깝게도 보아즈칼레는 앙카라에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도 어렵다.
또한 하투샤 유적이 광대하고 언덕도 높아 내부에서도 각 지점을 차로 이동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앙카라에서 출발하는 하투샤 투어를 신청하는 편이 좋다.
“Bogazkale tour”를 검색하면 소규모 투어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다.
 트립어드바이저에 등록된 프로그램 기준으로 인당 $435부터 $500까지 투어 비용이 발생한다.


보아즈칼레(Boğazkale)
Merkez, 19310 Boğazkale/Çorum, 튀르키예
운영시간: 08:00~17:00 (티켓 마감 16:30)
입장료: 3유로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 보통 입장료도 투어 비용에 포함)


트립어드바이저 투어 소개 페이지: https://www.tripadvisor.com/Attractions-g815363-Activities-c42-Bogazkale_Corum_Province.html




글·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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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