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민국 메탈코어 신을 이끄는 데이 오브 모닝(Day Of Mourning) #1

‘데이 오브 모닝(Day of mourning)’은 2010년 결성한 메탈코어 밴드입니다. 강렬한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멜로디로 국내외 많은 팬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결성 후 8년 만에 나온 1집 〈This Too Will Pass〉는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 메탈/하드코어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습니다.

 

보컬 카를로스 게레로, 기타 최준용과 이강토, 베이스 조하영, 드럼 여현준. 한국에서는 마이너하다고 할 수 있는 메탈코어라는 장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데이 오브 모닝 멤버들을 만나러 갈 때, 긴장했던 게 사실입니다. 음악은 물론, 미리 받은 멤버들의 프로필 사진, 공연 사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포스를 직접 대면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만난 데이 오브 모닝의 멤버들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며 입담도 뛰어났습니다. 위트와 진지함 사이를 오가는 그들과의 인터뷰를 브릭스에서 두 편에 걸쳐 준비해 보았습니다.

 

※ 보컬리스트 카를로스와 기타리스트 이강토 두 멤버는 화상 회의로 인터뷰에 참석했습니다.

 

 좌측부터 여현준(드럼), 최준용(기타), 카를로스(보컬), 이강토(기타), 조하영(베이스)



Q. 데이 오브 모닝의 멤버 소개를 부탁드려요.

 

카를로스 저는 데이 오브 모닝의 보컬을 맡고 있는 카를로스입니다. 제 인생의 1/3은 멕시코, 1/3은 미국, 1/3은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여행과 로큰롤을 좋아합니다. 사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에요. 

텍사스에서 살 때 메탈 밴드를 했어요. 한국에 오면서 밴드를 그만뒀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한국에는 메탈 음악이 별로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한국에 헤비메탈을 소개해 줘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텍사스 밴드들보다 훨씬 대단한 밴드가 많았어요.

 

보컬 카를로스


2010년에 블랙 사바스, 디오의 보컬이었던 로니 제임스 디오가 사망했는데, 그때 허 아이즈 블리드(Her eyes bleed)라는 한국 밴드의 추모 공연을 보러 갔어요. 관객석에서 외국인 하나가 열심히 놀고 있으니까 허 아이즈 블리드의 보컬이 무대로 올라와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권했어요. 기타 치는 만기(최준용)가 그때 제 노래를 듣고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서 같이 밴드를 하게 됐어요. 

지금은 한국을 떠나 호치민에 살고 있고, 아직까진 여기 생활도 재미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멕시칸 음식이 있긴 하지만 베트남식과 좀 많이 섞여 있고, 대신 베트남식 조개구이와 차갑게 식힌 맥주가 훌륭해요. 데이 오브 모닝 멤버들이 모두 베트남에 와서 함께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최준용(만기) 저는 기타를 맡은 최준용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별명이 만기여서, 밴드 내에서도 ‘만기’(이하 멤버들이 부르는 방식에 따라 병기)라고 불려요. 곡도 다 쓰고 웬만한 일은 다 하고 있어요. 네, 제가 다 해요.


기타 최준용(만기)

 

밴드를 시작할 때 하고 싶었던 음악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메탈코어 쪽이 접근하기 더 쉬웠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자유롭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카를로스 성향도 비슷했고요. 

로라 파이어볼(Laura Fireball)이라는 팀도 같이하고 있는데, 들어보시면 장르가 완전히 다르다 느끼시겠지만, 사실 데이 오브 모닝과 딱히 다르지 않아요. 만드는 건 똑같은데 사운드적인 면, 표현 방식만 달라지는 거라서요. 비슷한 코드를 데이 오브 모닝에서는 메탈코어의 특징적인 면을 부각하는 식이지요. 두 작업을 같이 하다 보니 점점 두 밴드의 음악이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조하영 데이 오브 모닝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조하영입니다. 2011년 1월 데이 오브 모닝이 첫 공연을 앞두고 저한테 베이스 세션을 부탁했어요. 당시 저는 카이스트 동아리로 모인 ‘노이지(Noeazy)’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공연 후 지금까지 두 밴드를 병행하고 있어요.

 

베이스 조하영


처음 시끄러운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아버지 영향이었어요. 제 가족이 일본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X-JAPAN을 들으셨거든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듣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 때는 뉴 메탈을, 대학생 때는 이모(Emo)를 많이 들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음악적인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데 재능은 없다고 할까. 그런데 메탈이기 때문에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정확하게, 정직하게 연주하면 된다는 게 공대에서 공부하던 것과 맥락이 통하는 것 같아요. 아마 다른 장르였다면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강토 저는 데이 오브 모닝에서 역시 기타를 맡고 있는 이강토입니다. 만기와는 어릴 때 창원에서 만나 블랙 플롯(Vlack plot)이란 밴드를 같이 했어요. 2010년에 같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밴드 하자, 뭐라든 하자, 했었지요. 

지금은 데이 오브 모닝, 램넌츠 오브 더 폴른, 노이지 등이 소속된 와치아웃(Watch out!)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고, 머치아웃(Merchout)이란 브랜드로 머천다이즈를 제작하고 있어요. 원래는 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한 것들이 아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돼 있더라고요.

 

기타 이강토


여현준 저는 데이 오브 모닝에서 드럼을 치고 있어요. 외모로 봐서는 모르시겠지만 막내예요. 다른 분들과 띠동갑이에요. 데이 오브 모닝에 들어온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원래 강토 형이 기타를 치던 바세린(Vassline)이란 밴드에 속해 있었는데, 데이 오브 모닝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음악을 들어 보니 데이 오브 모닝 음악이 더 제 취향이었어요.

 

드럼 여현준


드럼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치긴 했지만, 원래는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제가 악보를 빨리 읽지 못해서, 피아노로 음대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드럼으로 전향했지요. 

지금 김경호 밴드에서 드럼을 치시고 바세린을 비롯해 홍대에서 여러 메탈 밴드를 하신 왕명호라는 분에게 드럼을 배웠어요. 어느 날 바세린 드럼이 공석이니까 오디션을 보라고 저에게 권하셨어요. 운 좋게 바세린에 들어가면서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됐지요.

 

 

Q. 데이 오브 모닝(애도의 날)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카를로스 밴드 이름을 정할 때 여러 안을 두고 고민했어요. 그때 저는 ‘팬텀스’로 짓자고 했는데, 다들 별로라고 했어요.

 

최준용 제가 하는 다른 밴드인 ‘로라 파이어볼’도 그때 제가 제안했던 이름인데, 다들 별로라고 했어요. ‘로라 파이어볼’은 블랙 플롯 활동 당시 공연장에서 밴드를 마음에 들어 했던 미국인 여성 관객의 마이스페이스 이름에서 따왔어요.

 

카를로스 2009년에 캐나다의 데스코어 밴드 디스파이즈드 아이콘(Despised Icon)이 〈Day of mourning〉이라는 앨범과 동명의 싱글을 냈는데, 밴드 이름으로 그 제목이 어떻겠냐고 제가 다시 물었죠. 준용, 강토 모두 좋다고 해서 ‘데이 오브 모닝’이라고 정해졌어요. 

사실 캐나다 하드코어 밴드 중에도 ‘Day of Mourning’이 있어요. 1998년에 해체한 밴드인데, 덕분에 지금도 그 팬들에게 간혹 테러를 당하기도 해요.

 

 


Q. 데이 오브 모닝의 음악 장르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강토 일단 큰 틀로 보면 메탈코어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기에 이런저런 저희가 좋아하는 장르 같은 게 많이 섞여 있어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요. 사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최준용 저희가 메탈코어를 시작하며 2000년대 초반 하드코어 신(scene)의 흐름대로 뉴스쿨 메탈코어를 하자 그랬는데 지금은 그만 올드스쿨 메탈코어 팀이 됐어요.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흐름이 생겨버린 거죠. 나도 새로운 거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20대가 지나가 버리고, 다들 30대 중반이 되고.

 

 


Q. 데이 오브 모닝의 가사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면이 있어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던 건가요?

 

카를로스 가사는 모두 제가 쓰고 있어요. 초기 음악들은 좀 유치하지만 ‘세상의 종말’ 같은 어두운 가사를 많이 썼어요. 하지만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지요. 감사하자, 포기하지 말자,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라,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나올 싱글은 더 감정적이에요. 제가 베트남으로 떠나오면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느낌이 담겨 있어요.  


데이 오브 모닝의 〈Wretched Flesh〉 / 네이버 온스테이지



Q. 메탈 음악을 많이 듣지 않은 사람도 데이 오브 모닝의 노래를 들으면 곡의 완성도가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작업을 하시기에 이런 완성도 높은 사운드가 나올 수 있는 건가요?

 

최준용 보통 저 혼자 작업하고요. 저희가 결성한 게 2010년도였는데, 1집 앨범 〈This Too Will Pass〉가 나온 게 2018년이었어요. 음악들은 2011년에 다 만들어졌지만요. 의도한 건 아니라도 7년 동안 한 앨범을 만들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지 않나….

 

조하영 정식 멤버가 아닌 세션으로 참여할 때, 무엇보다 데이 오브 모닝 곡들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같이하기로 마음먹은 거고요.

처음엔 만기가 재능이 많아서 그런 노래들이 계속 나오다 보다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작업하는 걸 지켜봤더니, 엄청난 집착을 하더라고요. 곡을 하나 만들고 나면 저는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몇 주고 몇 달이고 계속, 계속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굉장한 노력파였어요. 뒤늦은 설명 같지만, 저희는 결혼한 사이입니다. 

만기는 집에 있을 때도, 길을 다닐 때도,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중얼중얼 하면서 노래를 만들어요.



※ 데이 오브 모닝과의 인터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메탈코어 신을 이끄는 데이 오브 모닝 인터뷰 #2 읽기




인터뷰 신태진 / 편집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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