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의 새로운 경험, 모듈러 신스 - 아티스트 임용주

소리를 조합하는 악기, 혹은 기계 모듈러 신스. 모듈러 신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신시사이저와 달리 건반이 없고, 본체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하나 하나 독립적으로 넣고 뺄 수 있는 악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듈을 장착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합성하거나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운드를 탄생시키는 거지요. 모듈러 신스와 다양한 악기로 실험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는 임용주 님을 만나 이 새로운 사운드의 세계로 슬쩍 발을 들여 보았습니다.


모듈러 신스 아티스트 임용주



편경을 아시나요?


편경은 기역자 모양 돌 16개를 걸어 놓고 각퇴라는 막대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에요. 고려시대 때 송나라에서 전해져 사용돼 오다가 조선시대 때 세종대왕께서 음악 정비 사업을 하시면서 편경을 조선식으로 바꿨어요. 그때부터 현재까지 같은 형식의 악기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송나라 편경은 실로폰처럼 음이 높아질수록 돌이 작아지는데, 조선식 편경은 크기는 같고 두께로 음정을 달리해요.


편경(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저 같은 국악 전공자들은 편경을 귀하게 대하는 마음이 있어요. 저거 망가지면 다 죽는다, 그런 거지요. 옛날에도 전란이 일어나 피난을 갈 때 편경을 우물에 숨기고 갔다고 하니 그 마음가짐은 달라지지 않은 거네요. 이 악기가 음악적으로 왜 중요하냐면, 환경 영향을 덜 받다 보니 음정이 변하지 않아서예요. 그래서 전통 악기들의 음정을 맞출 때 편경을 기준으로 삼았지요. 황종 음을 땅, 쳐 주면 그걸 기준으로 다른 악기가 소리를 조율했어요. 편경이 악기의 표준이었던 거지요. 



울릴 굉


하지만 요즘엔 편경을 쓸 데가 없어요. 워낙 비대하고, 절대적인 표준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디지털 장비에 비할 건 아니니까요. 소리는 안 변하지만 가공이 어려우니까 조율이 잘못될 수도 있고, 편경마다 편차가 있기도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악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자 음악으로 이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만든 공연이 〈울릴 굉轟〉이에요.


2022 여우락 페스티벌 참가 공연, 〈울릴 굉〉


편경, 장구를 연주하는 신원영 씨, 대금, 단소, 징을 연주하는 오병옥 씨, 거문고, 양금, 피리, 징, 제금을 연주하는 이재하 씨, 모듈라신스라는 악기로 전자음향을 입히는 저, 이렇게 네 명이서 무대에 올라요. 돌 소리 같기도 하고 쇳소리 같기도 한 편경을 중심으로 나머지 국악기들이 연주를 하는 거예요. 전자 음악도 편경 음에 맞춰서 튜닝을 정밀하게 하고요. 



전자음

 

신스가 음악의 소재인가, 중심인가 하는 문제는 신스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고민거리인데, 사실 둘 다예요. 소위 말하는 사운드 개념으로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도 원래 정규 음악 공부를 했거나 멜로디가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시던 분들이에요. 그러다가 새로운 걸 찾으면서 신스로 오게 된 거지요.


새로운 걸 찾다 보면 궁극에는 멜로디보다 소리가 가지고 있는, 좀 더 안으로 파고드는 본질에 관심을 갖게 돼요. 조금 더 다른 소리, 같은 음이 다른 음악으로 만들어져 표현되는 경험을 좇다 보면 소리에서 발견되는 음악적인 뉘앙스를 알게 되거든요. 멜로디나 리듬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될 수 있어요. 소리의 높낮이나 새롭게 만들어진 소리가 합쳐지는 과정이 곧 음악인 거지요.


모듈러 신스


저는 소리에서 음악의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소리를 듣고 만지다 보면 소리의 변화 자체가 멜로디처럼 느껴지고 리듬감도 느껴져요. 어떤 음악적인 동기가 있고, 거기서 또 다른 음악이나 소리가 파생되거나 추가되고,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요. 여기서 이 소리로 공연을 한다거나 음악 콘텐츠를 만들려면 그때는 구성이 필요하고요. 구성을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그 과정에서 다시 멜로디가 추가되기도 하고요.




붕괴 


《붕괴》는 뿌레카라고, 도로나 바위에 구멍을 뚫는 기계의 소음에서 시작된 음반이에요. 파쇄기로 연주를 할 수는 없으니까 소리를 녹음해서 보완한 다음 타악기처럼 만들어 봤어요. 저희 작업실이 있는 녹번역 주변이 몇 년간 온통 공사장이었어요. 재개발이 들어가지 않은 땅의 건물주, 토지주들도 자체적으로 개발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앞뒤, 옆, 창문 바로 아래까지 공사를 하는 상황이었지요. 기계 소리가 시작되면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자포자기 상태로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 소음이 언제 끝날지, 또 언제 재개될지 규칙적이지 않으니까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중장비와 공사 소음, 다양한 사운드를 모듈라 신스로 전자 음악으로 바꾼 앨범, 〈붕괴: 뿌레카〉


달관했다고 할까, 제가 타악기를 공부했고 타악기 베이스로 음악 활동을 해 와서 그런지 어느 순간 뿌레카 소리를 타악처럼 다다다다 다다다 하고 따라할 수 있겠더라고요. 불규칙하지만 음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단한 회로로 보완을 하면 드럼 파트처럼 연주할 수 있겠다, 그런 음악을 만들어보자. 뿌레카 소리가 굉장히 자극적이라 그것과 조화로운 다른 소리를 만들어야 했고, 신스를 이용해서 오히려 더 자극적인 소리나 부드러운 소리, 부드럽지만 자극적일 수 있는 소리 들을 만들었어요. 소리가 모이니 패턴이 생기고 멜로디도 만들어졌고요. 


음반 후반부에 비 오는 소리가 나오는데 그건 작업실 문밖에서 녹음한 거예요. 뿌레카가 시끄럽게 울리다 합성된 소리가 더 시끄러워지고, 그게 아주 잘게 모여서 빗소리로 조용하게 넘어가요. 비 오는 날에는 공사를 안 하잖아요. 유일하게 조용한 순간이었지요. 시끄럽다가 조용하면 정말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까지 들어요. 그러다가 비가 개면 또 다시 공사가 시작되지만요. 그런 주기를 최대한 살려서 만든 앨범이 《붕괴》예요.


이게 몇 년에 걸쳐 겪은 일이기 때문에 곡마다 에피소드가 달라요. 〈현장〉이라는 인트로 곡은 이 지역 전부가 공사 현장이니 우리도 매일 아침 공사 현장 속으로 들어와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작업실 현관문이 안 열려서 세게 쾅 밀었더니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이 문에 기대 식사를 하고 계신 적도 있어요. 그분은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신 거지요. 




〈건물의 왕국〉


뒷산으로 자주 산책을 다니는데, 한창 공사가 진행될 때는 작업실 있는 동네가 안 보일 정도였어요. 저 멀리까지 크레인이 어마무시하게 늘어서 있고, 아무리 멀리 걸어도 뿌레카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부동산이라는 게 땅, 건물 주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소득 창출 도구지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재개발 지구는 한 집, 두 집 이주가 끝나며 창문에 X 표시가 되고, 그 와중에도 사는 사람은 아직 남아 있고, 뿌레카 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저도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쫓겨나는 건가 그런 불안이 계속 있었어요.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모두 그러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마침 까마귀가 깍깍 울더라고요. 아이폰으로 까마귀 울음소리를 녹음하면서 생각했어요, 정말 동물의 왕국 아니냐, 저기도 정글이다. 그걸 좀 비틀어서 곡 제목을 〈건물의 왕국〉이라 했지요.



〈현재 건설〉


저희 바로 옆에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있어요. 주민들이 3년 가까이 싸웠거든요. 저희 작업실 진입로만 해도 땅 주인이 네 명이라, 땅 경계를 계속 바꾸면서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기도 하고, 말뚝을 박기도 하고, 최후인 승자 1인이 남을 때까지 정말 열심히 싸웠어요. 전쟁이 다른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싸움의 승패가 가려지자 정말 빨리 올라간다 감탄이 나올 만큼 건물이 금세 지어지고, 그렇게 싸우던 사람들이 언제 싸웠냐 싶게 살갑게 살아가더군요. 현대건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용기 있는 자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쓰여 있는 거예요. 참 강렬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곡 제목은 그걸 비튼 거예요.


저는 이전까지 자연 환경에 영감을 받는 걸 좋아했어요. 재개발, 재건축 같은 도시 문제는 관심이 없었고, 부동산 정보도 모르고, 욕심도 없었어요. 제가 《붕괴》 앨범에서 재개발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건드리긴 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요. 재개발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문제보다는 이 사람 입장도, 저 사람 입장도 이해가 간다고 할까. 근데 결국은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거더라고요. 앨범에서 〈뿌레카 1〉이 전쟁의 서막이라면, 〈뿌레카 2〉는 신나는 축제, 승리의 포효를 표현했어요. 승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뿌레카 소리가 신나게 들릴 테니까요. 그래서 음악도 느낌이 달라요.




신시사이저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신시사이저는 ‘소리 합성기’라고 번역할 수 있어요. 합성뿐만 아니라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해요. 어떤 물질이 있고 거기에 에너지를 줘서 물리적 변화를 일으켜 소리가 만들어져요. 신시사이저는 오로지 전기의 성질을 이용해서 물리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전기의 성질을 이용해서 운동성을 부여하는 거지요. 전압을 조금만 줬다가, 세게 줬다가, 이런저런 다양한 합성방식으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보는 거예요.


제가 다루는 모듈러 신스는 키보드가 달린 전자 피아노 같은 형태의 신시사이저에서 키보드를 뺀 부분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신시사이저 안에는 발진기가 있고, 필터가 있고,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다양한 부분이 있어요. 그 기능들을 따로 따로 독립적으로 만들어 두고(모듈) 새롭게 조합해 보면서 내 성향이나 추구에 맞는 사운드 메이킹을 해 보는 거지요. 사람마다 모듈러 신스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 달라요. 부속들은 같지만 조합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보통 시퀀서라고 하는, 순차적으로 전압 값을 조절할 수 있는 기계로 입력을 하고, 수많은 케이블로 전기가 흐르는 순서나 전기의 양을 조절하지요. 이 악기를 팝, 재즈처럼 멜로딕하게 쓰는 사람이 있고, 노이지하게 가는 사람이 있어요. 조금 더 실험적이고 세상에 없던 소리, 나 자신에게 더 맞는 소리를 찾는 방식으로 가더라도 사실 요즘은 둘이 많이 혼재되어 있어요. 노이즈 속에 멜로디가 있기도 하고, 팝에 새로운 소리가 들어가기고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유의할 건 사운드를 재생하는 게 아니라 오픈한다는 거예요. 피아노처럼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마치 수돗물처럼 악기에서 소리가 이미 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미 나고 있는 소리를 어떻게 통제하느냐, 음악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가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과 다르긴 해요. 계속 흘러나오는 수돗물을 수도꼭지를 잠궜다 열었다 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그저, 즐기다


이해하려고 하면은 즐길 수 없는 음악이에요. 지금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데 즐거움을 두면 좋은 경험이 될 거고요. 소리 자체를 노래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멜로디나 리듬을 찾으려 해도 소용없어요. 처음부터 그런 형태로 만든 음악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운드 한가운데 가만 나를 놔두면 멜로디가 들릴 수도 있고 리듬을 탈 수도 있어요. 경험이란 게 보통 그렇지요. 경험하고 또 경험하다 보면 나만의 어떤 포인트가 생기는 거지요. 정형화되어 있지 않기에, 현재의 내 상식 안에서만 받아들려고 하지 않아야 해요. 그러면 이 새로운 음악을 즐길 수 있어요.





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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