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물질의 순간을 살아가며 - 조각가 이민수

조각, 생각이 물질이 되는 과정 

누구나 자기표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요. 누가 말린다고 그만 둘 수 없는 표현 욕구. 저는 제 생각을 어떤 형체로 세상에 내 놓아요. 그게 조각가라는 사람이지요. 자위적인 행위, 자기가 좋아서, 할 수밖에 없어서, 자기만족이라도 된다면 거기까지 가는 거고, 그걸 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준다면 또 거기까지 가는 거지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게 쓰레기가 되겠지요. 그걸 알면서도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던질 수밖에 없는 게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숙명일 거예요. 내 오랜 생각의 결과를 물질화하면서 그 안에 물질 너머 다른 세계, 정신을 담으려고 하는 게 제 일입니다.


조각가 이민수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이 조각의 제작 과정에서도 많은 쓰레기가 만들어집니다. 과연 이 많은 쓰레기가 나오고 이 많은 에너지를 써도 되는가 하는 부분에서 항시 의구심을 갖습니다, 저의 집착일 수도, 욕망일 수도 있는 일에 말이죠. 인간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이 먹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저로선 저의 행위가 이 세상에 굉장히 미안한 일이지요. 과연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조각의 “비어 있는 세계의 장중함” 이각공장

작가는 선택된 자이고,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화가와 조각가들이 많아요. 저는 그냥 제가 선택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밥 먹고 하는 일이니 밥값은 해야 하고, 직업이니 최선을 다 하고, 숙명이니 운명을 받아들인다 생각합니다. 30여 년 전, 미대를 졸업하자마자 양주군 어둔리 구석에 방치된 축사를 개조해 작업장을 마련했어요. 작업장 앞밭에서 일하는 농부나 뒷산에서 버섯을 키우는 사람이나 선택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생각합니다.


저를 받아준 이 건물에 이름이 있어야 하겠다 싶었죠. 분위기부터가 아틀리에나 스튜디오 같은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공장’이었어요. 굉장히 영세한 가내수공업장. 이각공장李刻空莊이라 명명했지요. 공장이지만 팩토리만은 아닌, 내 의식과 정신의 지향점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빌 공(空)에 장중할 장(莊)을 사용했어요. ‘이민수 조각의 비어 있는 세계의 장중함’이란 뜻으로 조합해 본 거예요.  30대 초반에 정한 인생 좌표였어요.


어둔리에 있던 작업장 '이각공장'


지금은 이각공장의 한자가 두 이(二)자에 새길 각(刻)으로 돼 있어요. 깨달을 각(覺)을 쓰려던 건데 붓을 내리던 순간 저도 모르게 새길 각을 써 버렸어요. 두 번 깎는다, 나쁘지 않네, 그래서 그냥 뒀더니 조수가 ‘선생님과 저, 두 명이 깎는다는 의미인가요?’ 하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아니라 하면 서운할 것 같고, 당연히 두 명이서 깎고 있으니, 오히려 그렇게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겔란 공원, 그리고 유년의 꿈

전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에 탐닉한 유년을 깡촌에서 보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럴 것이다 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어요.


『김찬삼의 세계 여행』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세계 여행이라는 걸 생각도 못하던 시절에 제일 먼저 카메라 짊어지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책을 내신 분이에요. 중학교 때 그 책에서 노르웨이 조각가 비겔란이 오슬로에 만든 조각 공원을 봤어요. 그게 제 꿈으로 각인돼 버렸지요.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근데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까? 뒤늦게 미대로 진학하고 나서야 30년을 준비하면 기본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30년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결과를 가지고 지방에서 2년째 전시를 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서울은 코로나와 전시 공간의 제약으로 막혀 더 이상 발표를 미룰 수 없어 강원도 고성으로 갔습니다. 


〈Shell, 업〉


〈다시〉



〈순간〉, 질주하는 순간만이 리얼리티 

질주하는 다리들, 25톤의 흙덩이들. 이 순간, 지금만이 중요하다는 작품이에요. 인생에는 지나버린 과거도, 오지 않은 미래도 다 중요하지 않아요. 오로지 이 순간만이 나를 결정하고 나를 담는 진실이에요. 에너지, 질주 이런 것도 사실 부수적인 얘기예요. 달리는 다리를 통해서 그걸 드러내고 싶었어요. 누구나 이 순간, 이런 현실을 살고 있으니, 오직 이 순간만이 리얼리티이지요. 


〈순간〉



〈Shell〉, 인간은 껍질일 뿐 

이 작업의 첫 번째 힌트는 부유하는 천이었어요. 작업장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까마득한 적막과 어둠 속에서 하나의 점이 떠올라요. 그리고는 흩날리는 천 형상이 공중을 떠다니다 하나의 형태를 이루다가, 순간 다른 형태로 눈에 잡혔다 이내 사라져요. 천이 부유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조각에 담기 위해 실제 천을 작업장에 걸어놓고 형상이 어떻게 움직이나 관찰한 다음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단계로 들어갔지요.


결국 인간이 다 껍질이지요. 우리는 세포라는 막의 총합이에요. 언젠가는 다 말라 없어질 껍질. 젊었을 때는 아무래도 외형적인 형태에 더 집착을 하게 돼요. 혈기 왕성하니까 어떻게 하든지 분출하는 에너지를 가득 담고 싶어 해요. 하지만 시간과 함께 젊음, 에너지는 빠져 나가고 내면화되지요. 그게 더 의미 있고 어려운 에너지의 표현 방법이라 생각해요.


〈Shell, 비〉


〈Shell, 몽〉



조각, 몸의 언어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조각들에는 얼굴이 없어요. 얼굴은 극명한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얼굴보다 몸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합니다. 인간이라는 몸을 매개로 하는 조각 회화는 수천 년을 우려먹은 소재이고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지요. 단순한 재현이나, 나아가 표현을 통해 감정을 증폭하는 방식도 있겠지요. 여기까지는 조금의 노력으로도 가능합니다. 하나, 이 세상과 닿을 수 없는 평행선에서 서서, 너머 갈 수 없는 사이의 강을 두고 있는 나에겐 숙명과 같은 과제가 있지요.


인간이라는 물질덩어리를 담은 그 물질덩어리에 시공이 멈추어 버린, 호흡마저 끊겨버린 초월적인 영원성을 담고자 하는 꿈입니다. 이는 결코 다다르기에 쉽지 않고, 그 강을 건너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꿈만 꾸다 주어진 시간을 다 할 가능성이 농후 하죠.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어디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로 그나마 위안을 받습니다.




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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