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포들에 띄우는 전상서,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쓴 김종현 작가 #1

2024-10-11

여러분에게도 단골 노포가 있으신가요? 사람마다 ‘노포’를 정의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오래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며 느끼는 평온함과 만족감은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허기를 채워주는 걸 넘어 영혼을 배불리 먹여주는 곳, 그런 식당이 바로 ‘노포’라 불릴 만한 곳인지도 모르고요.

김종현 작가는 노포를 잘 보존하고 활성화하는 외국의 사례를 보며 한국의 노포를 알리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초빼이’라는 독특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필명을 쓰는 김종현 작가는, 그렇게 200여 군데 넘게 다닌 노포 중에서 70여 곳을 골라 『초빼이의 노포일기』라는 두 권의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서울과 인천은 물론 전국 곳곳의 노포를 취재한 결정체인 이 책만 있으면 어딜 가도 뭘 먹을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노포가 되기도 힘들고 노포로 살아남기도 힘든 시대. 『초빼이의 노포일기』는 그럼에도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노포의 장인들에게 보내는 전상서입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 ‘초빼이’ 김종현 작가를 만나 노포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계기부터 현대 사회에 노포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3503bb6ac5bf5.jpg‘초빼이’ 김종현 작가


Q. 노포와 맛집에 관한 글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8년, 중국으로 첫 해외 출장을 갔습니다. 중국 측 담당자가 저희에게 다양한 곳을 소개해 줬는데,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천진의 만둣집 ‘천진 구부리’, 북경의 오리 요릿집 ‘전취덕’, 그리고 차를 마시기 위해 들렀던 오래된 다관(茶館)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백 년이 넘은 건물을 여전히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데서 우리에게는 이런 노포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중국은 ‘노자호’라는 노포 인증제로 노포를 발굴하고 검증하는 등 노포를 보존의 대상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노포를 정상회담 같은 중요한 행사에 사용하며 관광 자원화하고 있고요.


이후로 일본과 같은 나라에도 가면서 많은 나라가 노포를 보존하고 활성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한국의 노포에 관해 알리고 싶어졌어요. 2003년 당시에는 ‘페이퍼’라 불리던, 네이버 블로그에 술자리나 식사를 위해 들렀던 가게에 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소강기가 있었지만, 2022년부터 브런치스토리라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노포 탐방기를 썼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노포와 노포가 되면 좋을 것 같은 식당에 집중했지요. 이런 기록을 모아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네이버 블로그는 누적 56만 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브런치스토리는 2년 동안 54만 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노포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 분들, 알고 있었지만 살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 글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계속 노포에 관한 글을 연재할 힘을 얻었고요.


26e6a6886ca76.jpg김종현 작가의 『초빼이의 노포일기』경인편


Q.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읽으면 어려서부터 식도락을 즐기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경상남도 창원 분이시고, 어머니는 전라남도 나주 분이십니다. 그런 두 분이 결혼하셨으니, 당시에는 꽤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었죠. 아버지께서 나주의 공장에서 근무하시며 하숙을 하셨는데, 어머님께서 그 하숙집의 장녀였습니다. 결혼 후 어머님이 창원으로 오셨고요.


전라도 음식이야 팔도에서 맛있기로 소문났지만, 어머님께서 손맛도 굉장히 좋으셨습니다. 자라면서 집에서는 전라도 출신 어머님의 음식을 먹고 주변에서는 경상도 음식을 먹었으니, 상반된 두 지역의 음식을 모두 접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김치만 하더라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맛이 다르잖아요. 저희 어머니 김치는 경상도 집성촌이던 마을에서도 대단한 인기였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이 자연스레 제 안에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또, 어머니께는 가죽나물(참죽나물)이나, 고들빼기김치, 콩잎 같은 요즘은 재료 구하는 것도 힘들고 손도 많이 가는 음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도 요리를 좋아하게 됐고요.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집에 손님이 올 때는 항상 제가 요리를 하고요. 아무래도 음식을 만들다 보니 어떤 재료를 어떤 식으로 요리하면 어떤 맛이 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됐고, 그게 노포에 관한 글을 쓸 때도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먹으면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덕분에 집필할 때 좀 더 세밀하게, 그러면서도 쉬운 언어로 풀 수 있었고요.


ac8058c5d5652.jpg전남 목포시 독천식당의 낙지비빔밥 | ⓒ 김종현


Q. 그런데 필명을 ‘초빼이’로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빼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 술에 항상 절어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많은 노포가 그렇듯 예전에는 밥집과 술집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국밥을 먹다가도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저도 애주가로서 노포를 취재할 때 반주를 많이 하고요.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고는 임팩트 있는 필명을 짓고 싶었는데, 식당과 술집의 구분이 흐릿한 세대를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초빼이’란 단어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술도 음식이라는 생각을 늘상 합니다. 식도락가나 미식가라는 단어가 아직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좋은 음식을 즐기고 그에 맞는 술도 즐기는 사람, ‘초빼이’는 저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필명이 아닐까 합니다.


8125107c6e338.jpg전남 목포시 중동 장터식당의 게살비빔밥, 그리고 희석식 소주 | ⓒ 김종현


Q. 노포에 관한 정보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평소 노포, 식당 검색을 많이 하다 보니까 검색 알고리즘에 굉장히 많이 걸려요. 어떤 지역을 취재해야겠다고 하면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를 목록화하고요. 기본적으로 방문 전에 조사를 합니다. 기사도 찾아보고, 그 노포를 이미 다녀온 분들의 글을 읽기도 하지요. 또, 분위기나 음식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숏폼 동영상이 있으면 찾아봅니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조사를 해도 막상 갔더니 실망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요.


Q. ‘노포’로 생각하시는 식당의 업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단순히 영업을 오래 했다는 것이 기준은 아닌 듯합니다.

제가 감히 노포를 나누는 기준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세대 정도의 업력이 있어야 노포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요식업계 평균 수명이 10년이 안 되거든요. 30여 년을 같은 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 맛있어야 해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곳이어야 사람들이 계속 찾을 테고, 노포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니까요.


또, 한 가지 요건을 보자면 노포가 속한 지역과 함께 성장해 가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지역의 중심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역할도 해야 하지요. 고용도 일으켜야 하고요. 지금도 그런 기능을 하는 업체들이 꽤 있습니다.


81045463c2aae.jpg충남 예산군 삽교읍 한일식당의 소머리국밥과 수육.
73년 된 노포이지만 위생, 고객 편의, 새로운 기술 도입 등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되는 식당으로 소개되었다. | ⓒ 김종현


마지막으로 노포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포를 세우게 된 일화, 역사적인 이야기, 이런 서사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노포로서 성장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제 책에는 사실 아직 노포라 부르기는 힘든 업력을 지닌 식당도 몇 곳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면이 있고, 자신만의 역사도 조금씩 만들어간다고 보이는 식당들이지요. 아직 노포는 아니지만 노포가 되었으면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이 집에 가서 무언가를 보고 배웠으면 하는 곳들입니다.


6170c897649e0.jpg김종현 작가가 『초빼이의 노포일기』에서 노포보다 더 노포다운 곳으로 소개한 용인 고기리막국수 | ⓒ 김종현


Q. 『초빼이의 노포일기』는 단순히 노포를 소개하려는 것 외의 목표가 있는 책 같습니다.

한국에서 노포는 ‘음식점’에 국한된 편입니다. 반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 서구권에서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다른 산업까지, 하나의 가게뿐만 아니라 기업까지 ‘노포’에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는 ‘곤고구미(金剛組)’라는 1500년 정도 된 회사입니다. 사찰만 전문으로 하는 건축 기업이지요. 중국에서도 북경에 동인당(同仁堂)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문을 연 지 350년이 넘은 약재상으로 현재는 카페, 화장품으로도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조선 말기 무역 상인인 임상옥을 다뤘던 『상도』라는 소설에서도 동인당이 등장하기도 하죠. 


이렇듯 일본이나 중국에서 긴 업력의 노포가 존재할 수 있던 기저에는 제도적으로 노포를 보호하고 육성하고자 하는 사회적 협의와 정책이 있습니다. 우선 일본은 기본적으로 노포들이 임대료나 개발 이슈로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법을 잘 마련해 놓았습니다. 또, 노포를 위한 지원센터를 따로 운영하고요. 지원센터에서는 기본적인 마케팅, 홍보 교육을 심도 있게 해 줍니다. 특히 놀라운 부분은 각 분야의 장인들을 전부 데이터베이스화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느 노포 우동집이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면, 그곳에 맞는 요리사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 추천하여 후계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1fa5bc71e34d1.jpg전북 익산 황등면의 시장비빔밥. 이곳의 비빔밥은 고깃국물에 토렴한 밥 위에 육회를 올려준다. | ⓒ 김종현


중국도 원래 노포가 많은 나라였지만, 공산화되고 문화혁명을 거치며 수많은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 정부도 20세기 후반부터 노포 지원법을 만들어 노포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상무부에서 노포를 담당하고 있는데, 중국은 기업화된 노포가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노포는 관광‧문화 자원으로서 국내외 여행자들의 방문을 촉진하는 기반입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이 오래된 가게를 찾아 일본이나 유럽 여행을 많이 떠나는 것만 봐도 노포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도 ‘백년가게’처럼 정책적으로 노포를 육성하고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노포가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몇 년 전 있었습니다. 『초빼이의 노포일기』 연재를 시작할 무렵, 을지OB베어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을지OB베어가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을지로에서 쫓겨난 사건입니다. 이런 사태를 지켜보며 ‘노포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을 해야겠구나.’ 다짐했습니다. 정부나 관료들이 노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 언젠가는 조사나 통계를 통해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길 시기가 올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저는 그들이 기록하지 못하는, 오직 개인이 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려는 것입니다. 먼 훗날 누군가가 제 기록을 보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음식을 만들고 먹었는지, 그런 음식을 내는 가게들이 어떠했는지 참고할 자료가 될 수도 있겠지요.


3dbb13a9c113a.jpg

노포를 향한 진심을 두 손에 든 김종현 작가


::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쓴 김종현 작가 인터뷰 #2 이어서 읽기




인터뷰·인물 촬영 | 신태진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