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기행]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곳 - 금호동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금호동 언덕길 위 서점 '프루스트의 서재'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와 오래된 골목길이 공존하는 풍경 속에 있습니다. 문을 연 지 7년이 넘은 이곳은 서점에 감도는 분위기의 그 한결같음에 있어서도 시간의 무자비한 손길에서 한 걸음 빗겨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브릭스와도 오랜 인연이 있는 프루스트의 서재 박성민 님을 만나 서점의 과거와 미래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Q. 서점이 금호동 언덕길 위에 있지요. 어떻게 여기에 서점을 여시게 되셨나요?


처음 서점을 연 건 2015년이었어요. 서점 자리를 알아보고 다닌 건 2013년부터였고요. 부동산을 통해서 알아본 것은 아니었고 그냥 자전거 타니면서 여기서 책방 하면 좋겠네, 그런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구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간발의 차이로 계약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죠.


처음엔 사람들이 좀 모이는 곳에 열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서촌이나 연남동, 해방촌을 알아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잘 알려진 동네에서는 서점을 오래하기 힘들겠더라고요. 마침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대두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집 근처를 산책하는데 이곳이 딱 비어 있는 걸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는 동네인 이곳 금호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에 서점을 여니까 근처 사는 동네 친구들도 자주 오고, 동네 분들이 오시면 얘기할 거리도 많고 장점이 있었어요.




Q. 2015년부터였으니 7년 넘게 서점을 운영하셨어요. 다른 동네 서점들이 2~3년 정도 안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렇게 오래 운영하실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처음에 성동구 도서관들과 연계되어 희망도서 대출 사업에 참여했어요. 구민들이 도서관에 새로운 책을 신청할 때 저희 책방에 신청하시고 책을 빌려 보시는 거지요. 도서관보다 저희 책방이 더 가까운 분들은 거리적 이점이 생기는 거지요. 또, 도서관은 아무래도 희망도서를 모았다가 한 번에 신청하는데, 서점은 바로 바로 주문이 가능하니까 더 빨리 받으실 수도 있고요.


그게 재정적인 도움도 되지만, 아, 이런 곳에 서점이 있구나, 동네 분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이 외에도 도서관 납품, 각종 프로그램 진행 등 동네 도서관과 연계하는 사업이 많아요. 다른 성동구 소재 책방이나 공방 들과 함께 플리마켓을 열기도 했고요. 그런 지역 기반 사업들이 이곳에서 오래 서점을 할 수 있었던 기반 중 하나였던 거 같아요.




Q. 책방을 찾으시는 손님들은 주로 이 지역 분들이 많으신가요?


프루스트의 서재를 처음 열었을 땐 헌책을 위주로 다루었어요. 그러다가 독립 출판물도 들여놓고, 일반 도서들도 늘려나갔지요. 동네 분들도 이런 곳에 서점이 있나 호기심에 찾으시기도 했지만, 제가 서점을 했던 당시에는 헌책과 독립 출판물을 다루는 동네 서점이 많지 않아 궁금해 하신 다른 지역 분들이 더 많이 오셨던 거 같기는 해요. 지금은 반반 정도이신 거 같고요.




Q. 헌책방으로 시작하신 건 헌책의 매력 때문이셨겠지요?


네, 우선 제가 책방을 열기 전 헌책방에서 오래 일을 했어요. 그래서 헌책방의 시스템을 알고 있었지요. 헌책의 매력은 참 다양해요. 우선 요즘은 전반적으로 출판 시장이 위축되어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새 책을 낼 때 인쇄를 많이 하지 않아요.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으면 중쇄도 하지 않고요. 그래서 책이 금방 절판이 됩니다. 그런데 헌책방에서 이런 책을 보유하고 있다면, 시간이 흘러 이 책을 찾는 분들이 자연스레 헌책방 문을 두드리시게 되지요.


때마다 헌책을 들이고 보관하는 일이 어렵기는 해요. 요즘은 독립출판물과 일반 도서위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 상 서점에서 헌책을 취급하지 못하고 있어요. 저희 집에 쌓아두었는데, 한 3천 권은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온라인 헌책방을 열 준비를 하고 있어요.

또, 이건 그냥 바람이긴 한데 바닷가에 작은 자리를 구해서 헌책방을 열고 싶기도 해요. 평일에는 프루스트의 서재, 주말에는 바닷가 헌책방을 여는 거지요.




Q. 평일에는 서울, 주말에는 바닷가, 아주 이상적인 삶처럼 그려져요. 혹시 생각하신 지역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강원도 쪽이 괜찮을 거 같은데, 양양, 강릉, 속초 이쪽 모두 세가 많이 올라가서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고성을 생각했는데, 거리가 먼 게 조금 걸려요. 이동할 때는 바이크로 다닐 생각이거든요.




Q. 그러고 보니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여행을 많이 다니셨지요?


자전거와 바이크로 국내외 여행을 여러 번 다녔어요. 확실히 자전거나 바이크가 자동차보다 더 자유로운 느낌이라 좋아요. 바람을 맞는 것도 좋고, 시야도 더 넓어지고요. 특히 자동차는 제가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추기 힘든 면이 있는 반면, 자전거와 바이크는 내리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내릴 수 있어서 좋아요.


최근에는 바이크로 제주도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여수까지 가서 배를 타고 제주로 넘어갔었죠. 8월에는 자전거로 남해를 여행할 계획이에요. 버스로 내려갔다가 자전거로 다니려고요. 나중에 혹시 강원도 바닷가 쪽에 헌책방을 새로 연다면 그때도 바이크로 오갈 거 같아요.




Q. 프루스트의 서재를 상징하는 친구가 바로 검은 고양이 까순이입니다. 까순이는 어떻게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지내게 됐나요?


까순이는 옆동네 신당동에서 발견된 아이에요. 친구가 그쪽에 사는데, 어느 날 못 보던 고양이 예닐곱 마리가 집 근처에 나타났다고 한 번 와 보라는 거예요. 친구와 만나 고양이들을 찾는데, 언덕길에서 한 남자분이 걸어오고 계셨어요. 그 옆에 쫄래쫄래 따라오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고요. 혹시 키우시는 고양이냐고 여쭤보니 아니라고, 난 그냥 집에 가고 있는데 어느새 옆에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고 하시대요. 그게 까순이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당시 그 동네 살던 어떤 사람이 유학인가 가면서 키우던 고양이들을 모두 유기한 거라고 해요. 다른 고양이들은 사람들을 경계하고 숨어 다녔는데, 까순이는 사람을 잘 따랐어요. 마침 늦가을이라서 추워지면 못 버틸 거 같아 데려와 여기 책방에서 함께 지내게 됐어요. 책 위에서 볕을 쬐며 낮잠도 자고, 손님들이 오시면 말도 걸고 하면서 말이지요.




Q. 서점을 처음 여시고 1년 동안 운영한 기록을 책으로 내신 게 『되찾은 : 시간』이었지요.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때와는 책방을 운영하는 마음도 조금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처음엔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이 어떻게 될지 하나도 알지 못했어요. 계속 세를 내며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지, 손님은 얼마나 올지……. 그게 긴장도 되고 한편으로는 헤쳐 나가는 재미도 있었어요.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반복되는 일상이 생겼습니다. 책을 들이고 정리하고 납품하고 그런 일들이요. 안정적이 되자 좀 늘어지는 기분도 들기도 하고, 요즘엔 책방을 운영한다기보단 그냥 제가 책방에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네에서 서점을 하시려는 분들이 종종 찾아오셔서 어떻게 운영하면 될지 물어보시기도 한다는 거예요. 책방마다 콘셉트나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아주 큰 도움은 못 드려도, 그렇게 새로 연 책방도 있고 곧 문을 열 책방도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혹시 다른 책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서점을 운영하기 전에도 서점에서 십 년 넘게 일을 했어요. 글을 쓰기 위해서 책과 가까운 직업을 구해야 한다는 게 당연해 보였거든요. 물론 그때는 일이 되다 보니 책을 사랑하던 시절의 마음이 조금 퇴색하기도 했어요. 책방을 열며 이름을 ‘프루스트의 서재’로 지은 것도, 첫 책의 제목을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와 『되찾은 : 시간』으로 정한 것도 나의 시간을 되찾자는 의미로, 책방이지만 저의 서재이자 작업실로 쓰자는 의미였고요.


다음에는 소설이나 시를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코로나 이전에 시 쓰기 모임을 하고, 참석자들이 발표한 시를 모아 손으로 만든 시집을 만든 것도 그런 마음의 일환이었을지 몰라요. 코로나로 모든 프로그램을 멈췄지만, 이제 천천히 그런 모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저와 책의 시간을 되찾아 가려고 해요. 그게 아까 말씀드린 헌책방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책의 매력을 느끼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터뷰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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