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현경 번역가가 말하는 이탈로 칼비노와 번역의 세계 #2

2022-09-28

[인터뷰] 이현경 번역가가 말하는 이탈로 칼비노와 번역의 세계 #1


#2 이현경 번역가, 이탈로 칼비노에 관해 말하다 (1편에서 계속)


Q. 칼비노의 독자로서 인상적이었던 작품 중 하나가 『모든 우주만화』였습니다. 과학적, 신화적 지명이나 인명이 많이 나오고 상상력과 사고 실험의 극한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아서 번역하시는 데도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번역하실 때 겪으셨던 번역가로서의 일화 같은 게 있으신가요?

『모든 우주만화』는 ‘과학적 환상성’이 두드러진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학, 물리학, 천문학, 미생물학 같은 자연과학들을 글쓰기의 소재를 이용해 소설로 형상화한 실험적인 작품인 것이지요. 무한하고 변덕스럽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와 마주 보며 그 우주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해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인간만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우주에서 존재할 가능성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를 예견하는 작품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인간만이 아니며 비인간적 존재들과 상호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환기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 『우주만화』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되기도 합니다. 칼비노의 혜안에 새삼 놀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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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는 하지만 칼비노 작품 중 번역하느라 가장 애를 먹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먼저 번역을 할 때 특이한 인명이나 지명들을 우리말로 새롭게 만들어내느라 고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크프우프크의 경우, 이탈리아어로는 ‘Qfwfq’인데,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말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음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이라 이를 우리말 소리로 재현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자음 뒤에 모음 ‘으’를 넣고 ‘w’는 ‘우’로 해서 ‘크프우프크’를 만들어 냈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러한 부분보다 칼비노의 언어와 상상력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 『우주만화』로 출간되었다가 이후에 크프우프크가 등장하는 다른 단편들을 모은 『모든 우주만화』로 재출간되었는데요. 특히 『모든 우주만화』에 새롭게 수록된 단편들의 경우 과연 번역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꼭 끝내겠다는 다짐 사이를 오가는, 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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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



Q. 칼비노의 작품은 유난히 ‘도시’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도시 배경이 두드러지거나 아예 제목에 ‘도시’가 붙는 작품도 많은데요. 칼비노의 작품에서 ‘도시’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도시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들 수 있습니다. 칼비노는 『문학 강의』에서 자신의 모든 성찰, 경험, 가정들을 도시라는 상징에 집중했다고 말합니다. 칼비노는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 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의 도시들로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도시에서 찾고자 했던 이미지들과 특성들을 그려냅니다. 그는 이상적인 도시뿐만 아니라 결함이 많은 현대 도시들을 보여주면서 도시가 근원적으로 지녀야 할 가치들을 제시합니다. 그러니까 칼비노는 이제까지 작품의 배경으로만 등장했던 도시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고, 도시를 인간이 살아가야 할 공간으로 상정하면서 도시를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해체해서 도시를 본질적인 요소들로 축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도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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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경 번역가, 칼비노와 함께 프리모 레비, 움베르토 에코에 관해 말하다


Q. 이탈로 칼비노, 프리모 레비 같은 이전 세대 이탈리아 작가들의 언어를 지금 세대의 한국어로 바꿀 때 어떤 점에 신경을 쓰셨나요?

이탈로 칼비노와 프리모 레비의 작품들은 대개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쓰였습니다. 칼비노의 네오리얼리즘적 소설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의 이탈리아 상황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상황을 알아야 번역할 수 있습니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이 그런 작품에 해당합니다.

이후 칼비노의 작품들은 환상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시대 상황보다는 무한하게 우주로 뻗어 나가는 칼비노의 상상력을 따라가며 그것이 형상화된 문장들을 읽어내고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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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의 경우는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자료들을 참고했는데요. 특히 『주기율표』는 각 장이 화학 원소의 성질과 연결되어 있는데 저는 화학을 전혀 알지 못해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결국 화학 용어는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작가 모두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공을 들이는 작가들로서 같은 단어 사용을 자제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작가들의 의도를 살려보려 단어 선택에 고심하곤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 작가의 문장들은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는 현대적인 문장들이어서 지금 세대의 한국어로 바꾸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c5768b1d69acf.jpg프리모 레비



Q. 프리모 레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도 번역하셨는데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과 어떤 점이 달랐나요? 문장의 측면에서, 그리고 ‘무게감’ 혹은 ‘가벼움’의 측면에서 작업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칼비노의 작품은 전집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까지 하면 아홉 권을 번역했고 움베르토 에코와 레비의 작품은 각각 세 편을 번역했습니다.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세 작가의 작품들을 번역할 수 있었던 게 제게는 큰 영광이자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세 작가 모두 번역하기에 쉬운 작가들은 아니었습니다. 에코와 레비의 작품도 거의 다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번역했던 세 권의 책에 관해서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에코는 기호학자이자 소설가로서 그 박학다식함이 잘 알려졌는데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바우돌리노』라는 소설을 번역했는데 중세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여러 방언, 인명, 지명, 기묘하게 묘사된 인물들을 번역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생만큼이나 역사와 허구를 오가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미의 역사를 다룬 『미의 역사』는 예술 서적을 번역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에코를 번역할 때는 부수적인 자료들을 정말 많이 참고하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번역 전에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했지요. 


5ab380eea0acf.jpg움베르토 에코


칼비노 역시 여러 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를 그려냈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번역의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레비의 경우는 앞의 두 작가보다는 조금 편하게 번역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기율표』 이외에 『이것이 인간인가』와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레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간결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감정선을 따라가며 번역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칼비노는 『문학 강의』에서 ‘가벼움’이란 ‘이야기와 언어에서 무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제 개인적으로는 세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무게가 있으면서도 ‘가벼움’을 지닌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세 작가의 공통적인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게 작품에 녹아 있는 유머러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우주를 만든 작가들이지만 특이하게도 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장난스럽고도 재치 있으며 인간적인 유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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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Q. 칼비노와 프리모 레비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장소를 살다갔으면서도, 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두 사람 사이에 교차점이나 함께 빚어진 이야기는 없나요?

레비와 칼비노는 네 살 정도 차이가 나며 토리노 대학을 졸업했고 토리노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레비가 평생 토리노를 떠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칼비노는 프랑스 파리에서 오래 거주하기는 했지만요. 둘 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과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 모두 과학 이론에서 도출할 수 있는 이미지와 은유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서 환상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문학과 과학의 융합을 시도한 공통점이 있는 것이지요.

또한 서로의 작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칼비노는 레비의 『휴전』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칼비노는 레비가 ‘과학적으로 상상력을 발전’시켰으며 상상력과 과학 두 분야에서 글쓰기 재료를 가져온 성공적인 작가라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레비는 칼비노가 ‘과학적인 글을 썼는데 그 과학적인 글들에 자연적인 것까지 합칠 수 있는’ 작가였다고 평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의 재능을 존중하고 격려하던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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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레모 시립도서관 입구에 있는 고등학교 시절의 칼비노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현경



Q. 만약 칼비노가 현재까지 살아 있었다면 『팔로마르』 이후 어떤 작품을 선보였을까요?

칼비노는 평생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을 써왔습니다. 그는 이미 완성한 작품에서는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가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사망하기 전에 발표한 『팔로마르』도 우화와 ‘짧은 산문시’의 중간 정도 되는 실험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시처럼 ‘짧은 소설’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보는데, 그래도 어떤 새로운 글쓰기를 보여주었을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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