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들이 볼 수 있는 책, 지도가 있다는 사실 아세요? 손끝으로 만지는 그림책을 촉각 도서, 손끝으로 만지며 공간을 알아가는 지도를 촉각 지도(촉지도)라고 합니다. 장애인, 비장애인과 함께 촉각 도서를 만들고 촉지도를 제작해 보급하는 일을 하는 '나누미촉각연구소'의 문미희 대표를 만나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나누미촉각연구소의 문미희 대표
손끝으로 읽는 그림책, 촉각 도서
촉각 도서는 사실 제 개인 작품으로 만들어 보려고 공부한 거였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설치 작업과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2010년인가, 일본에서 시각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만든 촉각 도서를 선물 받았어요. 그때 제가 하던 작업에 응용해 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광주광역시에 있는 영광원에 찾아가 시각 장애 아이들하고 이야기하고 미술 작업도 같이 해 보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고, 점자를 배우기도 하면서 엄마들과 함께 촉각 도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만들고 보니 제 개인 작품을 넘어서 더 많은 아이들이 읽고 느낄 수 있는 책이 되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작품이 아닌 프로젝트 형태로 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시각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 등 자원 활동가를 모아 촉각 도서를 만들 수 있게 도와드리는 역할을 했지요. 도서관에서 사서분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책이 아직 낯설고, 출판되는 책은 좀 있지만 수작업으로는 거의 안 만들어지고 있어요. 반면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촉각 도서를 만들어 왔어요. 일본은 지역별 동아리가 잘 조직돼 있고, 유럽에서는 국가에서 지원을 해 줘요.
자원 활동가들이 짧은 이야기나 동시를 선택하면 그걸 책으로 만드는데, 미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교육적인 부분도 커요. 꼭 예쁘게 만들겠다는 욕심은 버려도 좋아요. 스토리 역시 다 담을 수는 없고요. 손으로 보는 시각이 어떤 건지 확실히 익히고, 뜨개질이나 바느질 등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작업에 초점을 맞춘 다음, 형태를 간소화시키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뽑아내야 해요. 물론 촉각 도서에 들어가는 사물의 재질을 실제와 비슷하게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촉각 도서 제작 및 연구 과정
‘꿈을 꾸다 눈을 떴더니 창문 밖 달빛이 내 침대에 비치고 있어’라는 글이 있으면 방이라는 공간이나 침대에 집중하기보다 창밖 달빛을 어떻게 질감으로 나타낼까 고민해서 표현하는 거지요. 이게 가장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손끝으로 공간을 이해하게 해 주는 촉지도
주로 자원 활동가들과 만나서 작업하기 때문에 대면이 어려워진 코로나 이후 책 제작 작업은 멈춰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촉각 지도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일본에서 열린 시각 장애인 워크숍에 참가해 본 적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최적의 프로그램 같아서 저도 2012년에 지하철역을 모델로 가볍게 제작해 본 적이 있어요.

나누미촉각연구소에서 제작한 촉지도 일부
이 작업의 정확한 이름은 입체 촉지도라고 하는데, 기존 촉지도를 더욱 입체화시켜서 시각 장애인들이 그 공간을 느끼고, 인지하고, 산책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이에요. 기존 촉지도는 공간의 위치 정보만 표시해 두었기에 실제로 그 공간을 인지하는 데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계단이 있다고 표시는 되어 있는데 그게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는 구별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공간을 입체화하면서 정보도 함께 담아보려 한 거예요. 이 작업은 예산이 좀 많이 들어가서 저 혼자 작업하기는 어렵고, 여러 기관 등에 계속 홍보하고 사업 제안을 하고 있어요.
2020년 경기도청북부청사 평화광장에 설치된 입체 촉지도
2012년 1호선 의정부역 촉지도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20년 경기도청북부청사, 2021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촉지도를 제작하고 설치했어요. 올해는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공원 촉지도를 만들어 설치할 예정이에요. 이제 주물 작업에 들어갔으니 11월 초면 촉지도를 만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2021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입체 촉지도
눈을 꼭 감고 촉지도를 만져 보면 처음엔 그 공간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시각으로 느끼는 것과 만져서 느끼는 것과는 정말 큰 차이가 있거든요. 눈으로 볼 때는 짧고 작게 느껴지는 것이 눈을 감고 손으로 느꼈을 때는 굉장히 크고 넓게 느껴져요. 눈을 감고 걸으면 세 발자국만 떼도 아주 멀리 온 것 같지요. 캄캄한 공간에서는 한참 온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얼마 가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 장애인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르지요. 촉지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차이를 같이 나누자는 의미가 있어요.

비장애인의 촉지도 체험 장면
시각 장애인들도 혼자서 무리 없이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걷는 것과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걷는 건 다르지요. 그건 시각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입체 촉지도가 100% 정확한 길을 알려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간에 대한 이해를 줄 수는 있어요.
촉각 도서나 지도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폭넓게 보급되려면 맹학교 내에 책이나 지도 제작 그룹이 형성되고 정부 부처나 기관, 재단 등에서 지원을 해 주어야 해요. 현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책과 지도를 만들고 전시 기회를 찾아다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지요. 누군가 필요해서 전화가 오면 도움을 드리고요. 또, 비대면으로도 촉각 도서 제작 교육을 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도 구축해 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시각 장애인들이 볼 수 있는 책, 지도가 있다는 사실 아세요? 손끝으로 만지는 그림책을 촉각 도서, 손끝으로 만지며 공간을 알아가는 지도를 촉각 지도(촉지도)라고 합니다. 장애인, 비장애인과 함께 촉각 도서를 만들고 촉지도를 제작해 보급하는 일을 하는 '나누미촉각연구소'의 문미희 대표를 만나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나누미촉각연구소의 문미희 대표
손끝으로 읽는 그림책, 촉각 도서
촉각 도서는 사실 제 개인 작품으로 만들어 보려고 공부한 거였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설치 작업과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2010년인가, 일본에서 시각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만든 촉각 도서를 선물 받았어요. 그때 제가 하던 작업에 응용해 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광주광역시에 있는 영광원에 찾아가 시각 장애 아이들하고 이야기하고 미술 작업도 같이 해 보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고, 점자를 배우기도 하면서 엄마들과 함께 촉각 도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만들고 보니 제 개인 작품을 넘어서 더 많은 아이들이 읽고 느낄 수 있는 책이 되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작품이 아닌 프로젝트 형태로 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시각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 등 자원 활동가를 모아 촉각 도서를 만들 수 있게 도와드리는 역할을 했지요. 도서관에서 사서분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책이 아직 낯설고, 출판되는 책은 좀 있지만 수작업으로는 거의 안 만들어지고 있어요. 반면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촉각 도서를 만들어 왔어요. 일본은 지역별 동아리가 잘 조직돼 있고, 유럽에서는 국가에서 지원을 해 줘요.
자원 활동가들이 짧은 이야기나 동시를 선택하면 그걸 책으로 만드는데, 미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교육적인 부분도 커요. 꼭 예쁘게 만들겠다는 욕심은 버려도 좋아요. 스토리 역시 다 담을 수는 없고요. 손으로 보는 시각이 어떤 건지 확실히 익히고, 뜨개질이나 바느질 등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작업에 초점을 맞춘 다음, 형태를 간소화시키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뽑아내야 해요. 물론 촉각 도서에 들어가는 사물의 재질을 실제와 비슷하게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꿈을 꾸다 눈을 떴더니 창문 밖 달빛이 내 침대에 비치고 있어’라는 글이 있으면 방이라는 공간이나 침대에 집중하기보다 창밖 달빛을 어떻게 질감으로 나타낼까 고민해서 표현하는 거지요. 이게 가장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손끝으로 공간을 이해하게 해 주는 촉지도
주로 자원 활동가들과 만나서 작업하기 때문에 대면이 어려워진 코로나 이후 책 제작 작업은 멈춰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촉각 지도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일본에서 열린 시각 장애인 워크숍에 참가해 본 적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최적의 프로그램 같아서 저도 2012년에 지하철역을 모델로 가볍게 제작해 본 적이 있어요.
이 작업의 정확한 이름은 입체 촉지도라고 하는데, 기존 촉지도를 더욱 입체화시켜서 시각 장애인들이 그 공간을 느끼고, 인지하고, 산책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이에요. 기존 촉지도는 공간의 위치 정보만 표시해 두었기에 실제로 그 공간을 인지하는 데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계단이 있다고 표시는 되어 있는데 그게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는 구별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공간을 입체화하면서 정보도 함께 담아보려 한 거예요. 이 작업은 예산이 좀 많이 들어가서 저 혼자 작업하기는 어렵고, 여러 기관 등에 계속 홍보하고 사업 제안을 하고 있어요.
2012년 1호선 의정부역 촉지도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20년 경기도청북부청사, 2021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촉지도를 제작하고 설치했어요. 올해는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공원 촉지도를 만들어 설치할 예정이에요. 이제 주물 작업에 들어갔으니 11월 초면 촉지도를 만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눈을 꼭 감고 촉지도를 만져 보면 처음엔 그 공간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시각으로 느끼는 것과 만져서 느끼는 것과는 정말 큰 차이가 있거든요. 눈으로 볼 때는 짧고 작게 느껴지는 것이 눈을 감고 손으로 느꼈을 때는 굉장히 크고 넓게 느껴져요. 눈을 감고 걸으면 세 발자국만 떼도 아주 멀리 온 것 같지요. 캄캄한 공간에서는 한참 온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얼마 가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 장애인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르지요. 촉지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차이를 같이 나누자는 의미가 있어요.
시각 장애인들도 혼자서 무리 없이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걷는 것과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걷는 건 다르지요. 그건 시각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입체 촉지도가 100% 정확한 길을 알려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간에 대한 이해를 줄 수는 있어요.
촉각 도서나 지도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폭넓게 보급되려면 맹학교 내에 책이나 지도 제작 그룹이 형성되고 정부 부처나 기관, 재단 등에서 지원을 해 주어야 해요. 현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책과 지도를 만들고 전시 기회를 찾아다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지요. 누군가 필요해서 전화가 오면 도움을 드리고요. 또, 비대면으로도 촉각 도서 제작 교육을 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도 구축해 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