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역이 공간과 예술을 만나는 순간 - 문화살롱 공 박이창식 대표

2022-10-19

공간 재생, 공간 기획. 요즘 많이 듣는 말이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사라질 공간을 아카이빙 하고, 버려진 공간을 재생하여 지역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거점으로 기획해 온 '문화살롱 공'의 박이창식 대표를 만나 공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db3612306c9a1.jpg'문화살롱 공'의 박이창식 대표



문화살롱 공과 공간 프로젝트


‘공’이라는 건 공간일 수도 있고, 뚫린 구멍일 수도 있고, 하나의 점일 수도 있어요. 다양한 방식의 예술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로 ‘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활동하고 있고요. 특정 지역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하면 그 지역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빠지기 쉬워요. 반면 저희는 그 장소와 실질적으로 몸으로 부대끼면서 생활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어요.


예컨대 오는 10월 11일부터 20일까지 예정된 민통선 지역 탐방 프로그램이 그래요. 파주 임진각 인근에 있는 파주 DMZ 해마루촌,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 최북단 마을 연천군 중면 횡산리. 이 세 마을에서 ‘문화유목의 길’이라는 테마로 3박 4일씩 보내요. 세 마을의 공간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뭘 하기보다는 뭘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거예요. 참여 예술가들의 분야도 연극, 뮤지컬, 사진, 영상, 조각, 문화정책 전문가, 아주 다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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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프로젝트를 한 지는 20년 정도 됐어요. 제주도가 시작이었는데, 올레길도 형성되어 있지 않던 시기였지요. 소비되는 예술 말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의미 있는 예술 활동을 해 보자, 예술가들을 모아 함께 제주를 걸어 다녔죠. 당시에는 제주에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 주민들이 경계를 하기도 했지만, 관계가 쌓이고 시간이 흐르니 요새는 저희에게 활동을 요청해 오기도 해요. 제주 성산읍에 제2공항 건설이 발표되면서 비자림이 잘려나가는 일이 있었지요? 계획상 성산읍 수산리는 활주로가 놓이는 곳인데, 활주로를 짓기 위해서는 제주의 오름을 깎아내야 한대요. 마을은 당연히 사라지겠지요.


평생 수산리에 살며 농사만 짓던 분들이 머리에 대동단결 띠를 두르고 모이긴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 주기를 바란 건데, 저희는 사라질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 집을 골라 그 옆 귤 창고에 살림살이 백서 전시장을 만들었어요. 할머니께서 쓰시던 걸레까지 전시했지요. 그런 것마저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그분들이 살아온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고, 그걸 지켜나가는 거점이 되길 바랐던 거지요.


017116cab27fe.jpg여강길 프로젝트로 세운 '생활문화전시관 여주두지' 내부 / '문화살롱 공' 제공



폐 벽돌 공장,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다


연천군에 있는 폐 벽돌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만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어져요. 1988년 지어져 2001년 문을 닫은 벽돌 공장이 있어요. 20년간 방치되어 있었지만 벽돌 굽던 가마도 그대로 있고, 공장 한 편 살구나무도 잘 자라고 있어요. 이 공장을 어떻게 변화시키면 좋을지 의뢰하셨던 분들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을 염두에 두고 계셨어요. 하지만 저는 이 공간이 예술가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문화 거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경기도 북부에는 문화 공간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어요. 이 공간이 잘 자리 잡는다면 평화 시대 문화 교두보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이 벽돌 공장의 새 이름은 ‘연천 DMZ 피스브릭하우스(Peace Brick House)’예요. 연천군에서 공간을 매입해서 이미 설계가 들어갔어요.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내후년 공개될 거고요. 지금도 이민수 작가, 박찬용 작가 작품이 야외에 전시돼 있고 하니, 근처 재인폭포공원이나 한탄강 캠핑장에 찾아오신 분들께서 한 번쯤 들러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7751e8b70eedb.jpg897d03794aafa.jpg'연천 DMZ 피스브릭하우스'로 재생될 폐 벽돌 공장 / '문화살롱 공' 제공


공간이란 건 물리적 재생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뭔가 이 공간이 문화적인 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해요. 이번 민통선 ‘문화유목의 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예요. 접경지역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두기보다 다양한 생태와 문화, 생활을 끄집어내고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 문화 축제의 가능성을 점쳐 보는 거예요.


‘연천 DMZ 피스브릭하우스’ 앞에는 지역 농민께서 사용하시던 농기구를 전시했어요. 몇백 년 된 물건만 귀한 게 아니라 당대 생활사와 관계된 자료도 매우 가치 있다고 말하는 건 제가 줄곧 견지해 온 주제예요. 우리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물건마다 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문화적으로 쓰일 시기가 곧 오게 돼 있다고요. 


987e740e15b4b.jpg4861bda204a01.jpg2021년 폐 벽돌 공장에 미리 전시되었던 각종 조각과 조형, 사진 작품들 / '문화살롱 공' 제공



문화‧예술 공간, 공동체를 위한 구심점


문화살롱 공도 초기에는 작가 중심의 레지던시 형태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연천군에 한탄강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예술가들을 모아 그 마을을 조사하고 아카이빙 하면서 제 생각이 바깥으로 펼쳐지게 되었지요. 사실 내용은 별거 없었어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들, 우리가 서로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현안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의 의견. 그러면서 상류인 포천시 중리 교동마을도 찾아가게 되었지요.


마을에 들어가면 주민들은 벽화 좀 그리다가 떠날 거로 생각해요. 저는 수몰지의 생활사들을 남겨보고 싶고, 그걸 모아 새로 이주한 지역에 작은 마을 박물관을 만든다면 이주민들의 구심점이 되어 주지 않을까, 그걸 매개로 마을의 공동체가 다시 복원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포천 교동 주민들의 생각은 결국 저희와 달랐어요. 저희는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분들이 원하는 건 그냥 생활할 수 있는 자기 집을 짓는 거였지요. 저희는 한 노부부의 집 한 채를 맡아 두 분의 삶과 생활을 아카이빙하고 이주지에 새로운 집까지 지어드렸어요. 두 분은 여전히 그 집에서 여생을 보내시는 중이고, 저희는 작업이 삶과 계속해서 연계되는 특별한 경험을 했지요. 나중에 저희와 함께 지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시는 마을 분들도 있었지요.


d65ff4b470618.jpg02335bb1dccff.jpg547fa12dd1c9d.jpg0250714021ebd.jpg집 이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마을 영화 '교동로맨스' 촬영 장면과 연극 공연 장면 / '문화살롱 공' 제공


공간의 가치는 결국 주민들의 생활과 연계되어야 해요. 거기서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건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심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드는 것이고요. 수십 년 된 마을 공동체를 누가 무슨 수로 다시 만들겠어요. 징검다리를 놓으려면 돌을 하나 놓고, 다시 돌아가서 다음 깊이에 맞는 돌을 구해 다시 놓고 하는 일을 반복해야 해요. 제가 하는 예술 활동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미래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과거의 것들을 계속 연동하는 거예요.


이제 문을 열 연천의 벽돌 공장 ‘연천 DMZ 피스브릭하우스’도 주민들이 외면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주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해요. 예술가의 역할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밑에서 누군가를 받쳐 주면서 함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a4d1dd6964d7b.jpg연천군 홍보 전시 '연천, 사람을 만나다'에서 마을 주민이 직접 제작한 작품들 / '문화살롱 공' 제공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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