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자, 여행 에디터 하면 굉장히 멋진 직업처럼 보입니다. 일단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자주 여행을 떠날 테니까요. 게다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업으로 한다니, 콘텐츠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럽기도 하고 궁금증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월간 여행 매거진 〈트래비〉에서 활약하는 곽서희 기자를 만나 여행 에디터에 관하여, 그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하여 들어보았습니다.

여행 매거진 〈트래비〉의 곽서희 에디터
Q. 어떤 계기로 여행 에디터가 되셨나요?
여러 우연이 있었어요.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네 살 때부터 다녔던 여행의 추억, 연인의 추천으로 구입한 카메라, 여행기 공모전 수상. 그중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여행 매거진 「트래비」에서 매년 개최하는 여행작가 양성과정 ‘트래비 아카데미’였어요. 잡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지요. 한창 여행을 기록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겼던 4년 전에 트래비 아카데미를 수강했는데, 마침 「트래비」에서 신입 에디터를 모집하고 있었어요. 대학원 졸업 후 백수였던 저는 얼른 입사 지원을 했고, 그렇게 여행 에디터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곽서희
Q. 여행 기자, 여행 에디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우선 제가 생각하는 여행 기자와 에디터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직업 같아요. 여행 기자가 현장에 직접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기사를 작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여행 에디터는 자기 원고든 남의 원고든 콘텐츠 자체를 어떻게 보여줄까 하는 고민을 해요. 여행지라고 전부 좋은 건 아니잖아요. 여행 에디터는 ‘포장을 잘하는 사람’이에요. 여행지 고유의 매력을 아름다운 언어와 사고로 포장하여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거지요. 저는 기자와 에디터 역할을 함께하고 있어요.
「트래비」의 발간 과정도 다른 월간지와 비슷해요. 우선 한 호의 마감이 끝나면 바로 다음호 기획에 들어가죠. 에디터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그 중에서 기사거리가 될 아이템을 찾아 분배해요. 여행 잡지 특성상 ‘팸 투어’라고, 관광청, 항공사, 여행사, 호텔‧리조트 등에서 기획한 취재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그중에서 누가 언제 어디로 출장을 가서 취재할지도 기획 회의 때 결정됩니다.
그러고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해요. 사진도 정리하고 보정하고요. 정신없이 촉박해요. 나흘 만에 18페이지를 마감한 적도 있어요. 귀국행 비행기에서 글을 쓰는 일도 부지기수죠. 원고가 완성되면 메인 및 사이드 사진을 선정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배치합니다. 그 다음 인쇄 직전까지 몇 번이고 교정교열을 하고, 20일경 마감이 끝나면 인쇄에 들어가요. 그 후엔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가 기획 회의를 시작하는 거지요.

곽서희 에디터의 사진으로 장식된 〈트래비〉 표지
Q. 지금까지 취재로 가셨던 여행지 중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올해 3월, 프랑스 관광청 초청으로 프랑스 최대 국제관광박람회에 참석했어요. 전 세계 여행 업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여행도 하고 비즈니스 미팅도 하는 자리이지요. 파리 근교 도시인 르망, 앙제, 낭트 모두 인상적인 도시였어요. 낭트 브르타뉴 공작성에서 열린 디너파티는 특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브르타뉴 공작성 ⓒ곽서희
낭트의 기계 섬 ⓒ곽서희
영화 〈포드 vs 페라리〉 보셨죠? 영화 속 르망 24시 레이스가 열리는 곳이 바로 르망인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후보지에 올랐을 만큼 도시 곳곳에 고대 로마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아우르는 유산이 남아 있어요. 굉장히 조용한 도시에서 24시간 동안 이어지는 카 레이싱 경주가 벌어진다니,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앙제는 앙제 성으로 유명해요. 앙제 성은 그 외관은 굉장히 위압적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아기자기한 면도 있는 게 디즈니랜드 같달까, ‘앙제랜드’라고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앙제 성뿐만 아니라 앙제 자체가 오래된 도시라 중세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볼거리가 많아요.
앙제 성 ⓒ곽서희
Q. 출장이 아닌 ‘여행’으로 가셨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일까요?
계속 달라지기는 하는데, 지금은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꼽고 싶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동쪽으로 750km 넘게 떨어진 소도시예요. 한겨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갔어요. 실제 온도가 거의 –35℃였는데, 체감은 더 추웠어요. 비현실적으로 추운 가운데 바다 전체가 꽝꽝 얼어붙었고, 그 언 바다 위를 걸으며 석양을 봤던 추억이 아직까지 강렬해요. 역시 고생을 좀 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한 곳을 꼽자면 포르투갈의 신트라예요.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함께 간 곳이라 기억에 많이 남은 거 같아요. 신트라산을 세그웨이를 타고 올라가는 투어가 있어서 참여했는데, 색다른 액티비티였어요.
Q.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서 어떤 작업들을 하시나요?
주최 측, 초청자가 있는 투어에는 그분들이 준비해 주시는 자료를 우선적으로 참고해요. 사실 누구나 조금만 검색해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럼에도 여행 기사, 여행 에세이를 찾아보는 이유는 새롭게 각색된 정보에는 글쓴이만의 취향과 시선이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터의 역할에서 말씀드렸듯 같은 정보도 훨씬 재미있게, 혹은 사소한 것도 의미 있게 보여주는 거지요.
팩트를 다루는 데 있어 항상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온라인 정보는 물론이고 현지에서 가이드 분들이 하는 말, 제공 받은 보도 자료까지 꼭 다시 체크를 해요. 카페나 식당 같은 곳은 항상 실시간 정보를 재확인 하고요. 어제 갔던 카페가 오늘 폐업한 경우도 겪어 봤거든요.
그리고 항상 수집해요. 에디터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수집이라고 생각해요. 여행 매거진 특성상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정보가 많지 않은 특수 지역에 갈 일이 많아요. 그런 곳에서는 기차역, 호텔, 식당 등에 비치된 팜플렛, 명함 이런 걸 꼭 챙겨 와요. 거기 적힌 정보가 기사를 쓸 때 소중한 자산이 되거든요.
오스트리아 노이지들러 호수 ⓒ곽서희
Q. 여행 기자, 에디터가 되기 전부터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외할아버지께서 국문학 교수셨고, 외할머니도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다가 은퇴하신 후 수필가로 활동하세요. 어머니도 작가시고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늘 책이 있었고 뭔가 쓰고 읽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어요. 사실 제 이름 서희도 글 서(書)에 기쁠 희(僖), 글로써 세상을 기쁘게 하라는 뜻이거든요. 실제로 글로써 세상을 기쁘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스스로는 기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웃음).
이스탄불 발랏 ⓒ곽서희
대학원에서 19세기 영국 소설을 전공했는데, 굉장히 긴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힘이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특징이에요. 소설을 공부하면서 그런 법을 많이 익혔던 거 같아요. 여행 에세이에 있어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간단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힘 있게 전달하는 하루키의 글쓰기 방식을 배우려 노력했어요.
매일 쓰는 기사 하나하나가 글쓰기 훈련이 되는 것 같아요. 매달 잡지가 한 권씩 발행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기분이에요. 사실 사람들이 남의 여행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그래서 읽고 싶은 여행 에세이의 품격이라면 그 장소를 해석하는 작가만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는 너무 많은 자극이 있어서 무엇을 선택하여 집중할지 고민해야 하고, 거기에서 개성이 드러나게 되지요.

빈 시내, 이탈리아 트레비소 ⓒ곽서희
Q. 여행지를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출장을 가면 아시아 같은 단거리는 3~5일 정도, 유럽이나 미주 같은 장거리는 1주에서 2주 정도 머물러요. 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체력이 엄청나게 많이 소모돼요. 러닝머신을 꾸준히 하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요. 여행 기자들 사이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체력이 곧 취재력이라는 말을 해요.
예를 들어 리조트에 갔다, 그럼 그냥 아침에 좀 더 자고 싶고 조식 먹고 수영하고 그러고 싶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출장 가서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출을 찍으러 가기도 하고, 리조트와 면한 바다도 다녀오고 그러는데, 그럴 때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그러니 저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지요.
ⓒ곽서희
체력도 방전되고 마감에도 쫓기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저는, 여행의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풀어요. 아무리 여행과 출장의 경계가 애매한 직업이라고 해도 둘은 확실히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길게 출장을 다녀오면 제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가벼운 여행을 다녀와요. 마음을 정리하고 시간도 마음껏 쓰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해요.
최근 여행으로 갔던 싱가포르 ⓒ곽서희
Q. 여행 사진 잘 찍는 팁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전 조사라고 하면 보통 여행 정보만 생각하는데, 사진도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면 좋은 컷을 얻을 수 있어요. 먼저 구글링으로 그 장소를 대표하는 유명한 사진을 찾아 봐요. 에펠탑이라면 에펠탑을 전면에 두는 익숙한 구도의 사진 같은 거요. 두 번째로는 SNS에서 그 장소에서 요즘 유행하는 사진을 찾아 봐요. 유명한 사진과 유행하는 사진은 조금 다른데, 어느 카페 어느 포토존에서 사람들이 이런 구도로 즐겨 찍어 SNS에 올리더라, 그런 경향을 파악하는 거지요.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대성당 ⓒ곽서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앞의 두 사진을 피해서 사진을 찍는 거예요. 유명한 사진, 유행하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 개성이 생기거든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누군가 찍은 괜찮은 구도에서 아쉬운 점을 좀 보완해서 찍어 보기도 해요. 에세이를 쓸 때도 그렇지만, 사진에도 나만의 시선을 부여하는 거지요. 물론 때에 따라 유명하고 유행하는 사진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그 둘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요.

이탈리아 빌라 스파리나 리조트, 파리 개선문 ⓒ곽서희
Q. 문화 관련 단체와 인터뷰도 하시고, 여행지에서 문화, 예술 스폿을 많이 소개하시기도 합니다. 평소의 관심 분야가 반영된 건가요?
여행 기자, 에디터라고 자기가 가고 싶은 출장만 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와 기사를 써야할 때도 있고, 커피를 못 마시는데 에스프레소바에 관한 최근 트렌드 기사를 써야 할 때도 있지요. 저한테는 문화, 예술 쪽이 그런 분야였어요. 원래 여행을 가면 미술관, 박물관은 일정에서 제외하고 오로지 골목만 걸어 다녔거든요. 그런데 에디터로 일하면서 그런 곳을 많이 가게 된 거죠. 처음엔 관심 없는 분야라 어색하기만 했는데, 점점 흥미가 생겼고,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이 일은 여러 방면에 얇지만 아주 지대하게 넓은 관심이 있어야 더 수월한 거 같아요. 자기가 싫어하는 일도 과감하게 해볼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고요. 사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쇼핑이에요. 최근 유럽 소재 세 군데 아웃렛을 다니는 취재를 했는데 ‘개취’와 맞아떨어진 출장이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웠어요.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 ⓒ곽서희
Q. 코로나 기간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건 여행을 다루는 여행 잡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요, 어떻게 그 기간을 견디셨나요?
힘든 시기였고, 위기인 건 분명했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어요. 코로나 이전에 해외여행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그래서 〈트래비〉도 해외 여행기를 주로 다뤘어요. 그런데 코로나를 계기로 국내 취재를 많이 다니게 되었어요. 지자체와 협업도 많이 하고 외주로 가이드북도 편찬했고요. 덕분에 국내 여행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바깥으로만 뻗어 있던 시선을 안으로, 주변으로 돌리게 된 거예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던 것이죠.
또, 지난 여행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워낙 여행, 출장이 잦다보니까 저희가 모든 여행을 100% 다 지면에 소화하기가 불가능했거든요. 미처 소개하지 못한 사진과 글을 다시 꺼내어 상기시키면서 독자들에게 해외여행에 대한 대리 만족을 시켜드릴 수도 있었던 거 같아요.

Q. 코로나를 이겨내면서 다시 여행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행 에디터이자 기자로서 감회가 어떠신가요?
반가운 마음이 제일 커요. 오랜만에 다시 여행을 떠나니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얼마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는지 확인하게 되어요. 세계 각국의 여행지들이 코로나 기간을 기회로 삼아 재단장을 많이 했어요. 리뉴얼한 호텔에 새로 생긴 스폿까지.
파리를 유난히 여러 번 갔는데, 오랜만에 그곳에 가니 코로나 기간 동안 못 보던 건물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한편으로 어떤 것들은 그 어려운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반갑기도 했고요.
파리 사마리텐 백화점 ⓒ곽서희
Q. 마지막으로 여행 에디터, 기자,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실질적인 팁을 먼저 드리자면, 메모가 아주 중요해요.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온전한 문장으로 쓸 필요는 없어요. 스마트폰 메모장에 단어 형태로 짧은 감상만 바로바로 적어두어도, 나중에 콘텐츠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어요. 제 기사의 제목과 리드 문장도 90%는 현장에서 쓴 메모에서 나와요.

평소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주변에서 늘 새로운 걸 찾고, 여행을, 여행지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기르고, 그걸 어떻게 보여줄지 항상 고민해야 하고요. 체력 관리도 필수이고요. 저도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그런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곽서희
여행 기자, 여행 에디터 하면 굉장히 멋진 직업처럼 보입니다. 일단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자주 여행을 떠날 테니까요. 게다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업으로 한다니, 콘텐츠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럽기도 하고 궁금증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월간 여행 매거진 〈트래비〉에서 활약하는 곽서희 기자를 만나 여행 에디터에 관하여, 그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하여 들어보았습니다.
여행 매거진 〈트래비〉의 곽서희 에디터
Q. 어떤 계기로 여행 에디터가 되셨나요?
여러 우연이 있었어요.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네 살 때부터 다녔던 여행의 추억, 연인의 추천으로 구입한 카메라, 여행기 공모전 수상. 그중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여행 매거진 「트래비」에서 매년 개최하는 여행작가 양성과정 ‘트래비 아카데미’였어요. 잡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지요. 한창 여행을 기록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겼던 4년 전에 트래비 아카데미를 수강했는데, 마침 「트래비」에서 신입 에디터를 모집하고 있었어요. 대학원 졸업 후 백수였던 저는 얼른 입사 지원을 했고, 그렇게 여행 에디터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곽서희
Q. 여행 기자, 여행 에디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우선 제가 생각하는 여행 기자와 에디터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직업 같아요. 여행 기자가 현장에 직접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기사를 작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여행 에디터는 자기 원고든 남의 원고든 콘텐츠 자체를 어떻게 보여줄까 하는 고민을 해요. 여행지라고 전부 좋은 건 아니잖아요. 여행 에디터는 ‘포장을 잘하는 사람’이에요. 여행지 고유의 매력을 아름다운 언어와 사고로 포장하여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거지요. 저는 기자와 에디터 역할을 함께하고 있어요.
「트래비」의 발간 과정도 다른 월간지와 비슷해요. 우선 한 호의 마감이 끝나면 바로 다음호 기획에 들어가죠. 에디터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그 중에서 기사거리가 될 아이템을 찾아 분배해요. 여행 잡지 특성상 ‘팸 투어’라고, 관광청, 항공사, 여행사, 호텔‧리조트 등에서 기획한 취재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그중에서 누가 언제 어디로 출장을 가서 취재할지도 기획 회의 때 결정됩니다.
그러고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해요. 사진도 정리하고 보정하고요. 정신없이 촉박해요. 나흘 만에 18페이지를 마감한 적도 있어요. 귀국행 비행기에서 글을 쓰는 일도 부지기수죠. 원고가 완성되면 메인 및 사이드 사진을 선정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배치합니다. 그 다음 인쇄 직전까지 몇 번이고 교정교열을 하고, 20일경 마감이 끝나면 인쇄에 들어가요. 그 후엔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가 기획 회의를 시작하는 거지요.
곽서희 에디터의 사진으로 장식된 〈트래비〉 표지
Q. 지금까지 취재로 가셨던 여행지 중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올해 3월, 프랑스 관광청 초청으로 프랑스 최대 국제관광박람회에 참석했어요. 전 세계 여행 업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여행도 하고 비즈니스 미팅도 하는 자리이지요. 파리 근교 도시인 르망, 앙제, 낭트 모두 인상적인 도시였어요. 낭트 브르타뉴 공작성에서 열린 디너파티는 특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 보셨죠? 영화 속 르망 24시 레이스가 열리는 곳이 바로 르망인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후보지에 올랐을 만큼 도시 곳곳에 고대 로마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아우르는 유산이 남아 있어요. 굉장히 조용한 도시에서 24시간 동안 이어지는 카 레이싱 경주가 벌어진다니,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앙제는 앙제 성으로 유명해요. 앙제 성은 그 외관은 굉장히 위압적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아기자기한 면도 있는 게 디즈니랜드 같달까, ‘앙제랜드’라고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앙제 성뿐만 아니라 앙제 자체가 오래된 도시라 중세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볼거리가 많아요.
Q. 출장이 아닌 ‘여행’으로 가셨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일까요?
계속 달라지기는 하는데, 지금은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꼽고 싶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동쪽으로 750km 넘게 떨어진 소도시예요. 한겨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갔어요. 실제 온도가 거의 –35℃였는데, 체감은 더 추웠어요. 비현실적으로 추운 가운데 바다 전체가 꽝꽝 얼어붙었고, 그 언 바다 위를 걸으며 석양을 봤던 추억이 아직까지 강렬해요. 역시 고생을 좀 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한 곳을 꼽자면 포르투갈의 신트라예요.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함께 간 곳이라 기억에 많이 남은 거 같아요. 신트라산을 세그웨이를 타고 올라가는 투어가 있어서 참여했는데, 색다른 액티비티였어요.
Q.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서 어떤 작업들을 하시나요?
주최 측, 초청자가 있는 투어에는 그분들이 준비해 주시는 자료를 우선적으로 참고해요. 사실 누구나 조금만 검색해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럼에도 여행 기사, 여행 에세이를 찾아보는 이유는 새롭게 각색된 정보에는 글쓴이만의 취향과 시선이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터의 역할에서 말씀드렸듯 같은 정보도 훨씬 재미있게, 혹은 사소한 것도 의미 있게 보여주는 거지요.
팩트를 다루는 데 있어 항상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온라인 정보는 물론이고 현지에서 가이드 분들이 하는 말, 제공 받은 보도 자료까지 꼭 다시 체크를 해요. 카페나 식당 같은 곳은 항상 실시간 정보를 재확인 하고요. 어제 갔던 카페가 오늘 폐업한 경우도 겪어 봤거든요.
그리고 항상 수집해요. 에디터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수집이라고 생각해요. 여행 매거진 특성상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정보가 많지 않은 특수 지역에 갈 일이 많아요. 그런 곳에서는 기차역, 호텔, 식당 등에 비치된 팜플렛, 명함 이런 걸 꼭 챙겨 와요. 거기 적힌 정보가 기사를 쓸 때 소중한 자산이 되거든요.
Q. 여행 기자, 에디터가 되기 전부터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외할아버지께서 국문학 교수셨고, 외할머니도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다가 은퇴하신 후 수필가로 활동하세요. 어머니도 작가시고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늘 책이 있었고 뭔가 쓰고 읽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어요. 사실 제 이름 서희도 글 서(書)에 기쁠 희(僖), 글로써 세상을 기쁘게 하라는 뜻이거든요. 실제로 글로써 세상을 기쁘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스스로는 기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웃음).
대학원에서 19세기 영국 소설을 전공했는데, 굉장히 긴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힘이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특징이에요. 소설을 공부하면서 그런 법을 많이 익혔던 거 같아요. 여행 에세이에 있어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간단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힘 있게 전달하는 하루키의 글쓰기 방식을 배우려 노력했어요.
매일 쓰는 기사 하나하나가 글쓰기 훈련이 되는 것 같아요. 매달 잡지가 한 권씩 발행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기분이에요. 사실 사람들이 남의 여행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그래서 읽고 싶은 여행 에세이의 품격이라면 그 장소를 해석하는 작가만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는 너무 많은 자극이 있어서 무엇을 선택하여 집중할지 고민해야 하고, 거기에서 개성이 드러나게 되지요.
Q. 여행지를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출장을 가면 아시아 같은 단거리는 3~5일 정도, 유럽이나 미주 같은 장거리는 1주에서 2주 정도 머물러요. 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체력이 엄청나게 많이 소모돼요. 러닝머신을 꾸준히 하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요. 여행 기자들 사이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체력이 곧 취재력이라는 말을 해요.
예를 들어 리조트에 갔다, 그럼 그냥 아침에 좀 더 자고 싶고 조식 먹고 수영하고 그러고 싶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출장 가서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출을 찍으러 가기도 하고, 리조트와 면한 바다도 다녀오고 그러는데, 그럴 때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그러니 저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지요.
체력도 방전되고 마감에도 쫓기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저는, 여행의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풀어요. 아무리 여행과 출장의 경계가 애매한 직업이라고 해도 둘은 확실히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길게 출장을 다녀오면 제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가벼운 여행을 다녀와요. 마음을 정리하고 시간도 마음껏 쓰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해요.
Q. 여행 사진 잘 찍는 팁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전 조사라고 하면 보통 여행 정보만 생각하는데, 사진도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면 좋은 컷을 얻을 수 있어요. 먼저 구글링으로 그 장소를 대표하는 유명한 사진을 찾아 봐요. 에펠탑이라면 에펠탑을 전면에 두는 익숙한 구도의 사진 같은 거요. 두 번째로는 SNS에서 그 장소에서 요즘 유행하는 사진을 찾아 봐요. 유명한 사진과 유행하는 사진은 조금 다른데, 어느 카페 어느 포토존에서 사람들이 이런 구도로 즐겨 찍어 SNS에 올리더라, 그런 경향을 파악하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앞의 두 사진을 피해서 사진을 찍는 거예요. 유명한 사진, 유행하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 개성이 생기거든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누군가 찍은 괜찮은 구도에서 아쉬운 점을 좀 보완해서 찍어 보기도 해요. 에세이를 쓸 때도 그렇지만, 사진에도 나만의 시선을 부여하는 거지요. 물론 때에 따라 유명하고 유행하는 사진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그 둘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요.
Q. 문화 관련 단체와 인터뷰도 하시고, 여행지에서 문화, 예술 스폿을 많이 소개하시기도 합니다. 평소의 관심 분야가 반영된 건가요?
여행 기자, 에디터라고 자기가 가고 싶은 출장만 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와 기사를 써야할 때도 있고, 커피를 못 마시는데 에스프레소바에 관한 최근 트렌드 기사를 써야 할 때도 있지요. 저한테는 문화, 예술 쪽이 그런 분야였어요. 원래 여행을 가면 미술관, 박물관은 일정에서 제외하고 오로지 골목만 걸어 다녔거든요. 그런데 에디터로 일하면서 그런 곳을 많이 가게 된 거죠. 처음엔 관심 없는 분야라 어색하기만 했는데, 점점 흥미가 생겼고,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이 일은 여러 방면에 얇지만 아주 지대하게 넓은 관심이 있어야 더 수월한 거 같아요. 자기가 싫어하는 일도 과감하게 해볼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고요. 사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쇼핑이에요. 최근 유럽 소재 세 군데 아웃렛을 다니는 취재를 했는데 ‘개취’와 맞아떨어진 출장이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웠어요.
Q. 코로나 기간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건 여행을 다루는 여행 잡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요, 어떻게 그 기간을 견디셨나요?
힘든 시기였고, 위기인 건 분명했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어요. 코로나 이전에 해외여행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그래서 〈트래비〉도 해외 여행기를 주로 다뤘어요. 그런데 코로나를 계기로 국내 취재를 많이 다니게 되었어요. 지자체와 협업도 많이 하고 외주로 가이드북도 편찬했고요. 덕분에 국내 여행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바깥으로만 뻗어 있던 시선을 안으로, 주변으로 돌리게 된 거예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던 것이죠.
또, 지난 여행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워낙 여행, 출장이 잦다보니까 저희가 모든 여행을 100% 다 지면에 소화하기가 불가능했거든요. 미처 소개하지 못한 사진과 글을 다시 꺼내어 상기시키면서 독자들에게 해외여행에 대한 대리 만족을 시켜드릴 수도 있었던 거 같아요.
Q. 코로나를 이겨내면서 다시 여행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행 에디터이자 기자로서 감회가 어떠신가요?
반가운 마음이 제일 커요. 오랜만에 다시 여행을 떠나니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얼마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는지 확인하게 되어요. 세계 각국의 여행지들이 코로나 기간을 기회로 삼아 재단장을 많이 했어요. 리뉴얼한 호텔에 새로 생긴 스폿까지.
파리를 유난히 여러 번 갔는데, 오랜만에 그곳에 가니 코로나 기간 동안 못 보던 건물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한편으로 어떤 것들은 그 어려운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반갑기도 했고요.
Q. 마지막으로 여행 에디터, 기자,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실질적인 팁을 먼저 드리자면, 메모가 아주 중요해요.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온전한 문장으로 쓸 필요는 없어요. 스마트폰 메모장에 단어 형태로 짧은 감상만 바로바로 적어두어도, 나중에 콘텐츠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어요. 제 기사의 제목과 리드 문장도 90%는 현장에서 쓴 메모에서 나와요.
평소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주변에서 늘 새로운 걸 찾고, 여행을, 여행지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기르고, 그걸 어떻게 보여줄지 항상 고민해야 하고요. 체력 관리도 필수이고요. 저도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그런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곽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