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타버스와 현실에서 동시에 공연을? - '프로젝트 밈'의 「고스트 인 더 씨어터」

2022-12-13

공연이 메타버스로 옮겨가게 되면 연기를 하는 사람들,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실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배우들은 가상현실 안에서 연극을 하고, 관객은 가상현실 안에 들어가 배우 아바타와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연극을 관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날이 정말 올까요?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런 현실에 살고 있답니다. 메타버스와 현실이 서로 관여하며 공연마다 새로운 줄거리가 펼쳐지는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 밈’의 구도윤 대표와 전석희 개발자를 만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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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윤 작가(프로젝트 밈 대표)

‘프로젝트 밈’은 지속가능한 공연 형식에 대한 실험을 목표로 삼은 프로젝트 그룹으로 기술 융합을 베이스로 다양한 창작자들과의 느슨한 협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관객의 선택이 이머시브 앱을 통해 공연에 반영되는 SF 스릴러 〈너를 만난다〉를 시작으로, AR 앱의 퍼즐을 풀면 발생하는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서로 날씨를 교환하며 상생을 경험하는 기술융합아동극 〈이상한 날씨로 여행을 갈까요?〉, 이어 메타버스 플랫폼인 VRChat과 오프라인 공연장에서 배우의 아바타 연기를 매개로 ‘메타버스와 공연장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유령 찾기’를 진행하는 〈고스트 인 더 씨어터〉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1d9420bca1a80.jpg'프로젝트 밈'을 이끄는 구도윤 작가


〈고스트 인 더 씨어터〉는 19세기 런던(메타버스)과 23세기의 서울(공연장)의 관객들이 ‘저 너머’에서 서로 협력하여 ‘유령에 씐 연쇄살인마’를 찾아내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인데요. 메타버스 유저 관객들은 런던의 저주받은 공장의 노동자에게 깃든 유령을 찾아내고, 공연장 관객들은 23세기의 숨어있는 연쇄살인마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가상현실에 접속된 용의자들의 무의식을 읽어내야 합니다. 이 연쇄살인마와 유령은 같은 인물이고요. 이 과정에서 양쪽 관객 모두 배우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는데, 양 세계의 관객이 정보를 공유하며 진실을 밝혀 나갑니다. 배우들은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숨겨야 하고요. 시공을 초월한 유령-범인 찾기이지요.


〈고스트 인 더 씨어터〉를 구상하면서 이 ‘유령’이라는 단어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유령은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예술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가상현실’ 또한 그러한 ‘유령-예술’의 세계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상현실이야말로 바로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 그 자체니까요.


58966bbd95383.jp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이러한 생각은 메타버스에서의 예술 활동이 늘어나며 현실 예술의 영역이 줄어드는 데서 위기감을 느끼는 동료 예술인을 만나거나, 가상현실은 새로운 예술의 터전이 될 수 없다고 회의하는 말들 사이에서 홀로 키워나갔어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일이거든요. 그것이 제가 극작가로 활동하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저에겐 글이란 모험이기에,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이 다른 글쓰기의 작업과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듯, 작가로서 새로운 문법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도전해야 했어요. 하지만 언제나 백지 앞에서는 모든 게 도전인 직업이니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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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힘든 과정이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우리가 지금껏 현실에서 쌓아 온 예술적 지향, 노하우들을 놓치지 않는 상생하는 공연의 형태를 만들어서요. 


이러한 구상을 현실로 이룰 수 있었던 건 개발자인 전석희 대표님과 함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작가로서 기본 문법은 글이지만, 기술 융합 작업을 하게 되면 기술 자체가 문법이 되기도 해요. 당연히 기술 문법을 잘 알아야 하고, 함께 연구해 나갈 사람이 필요했지요. 다행히 오래전부터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시스템 기술로 새로운 공연 형태를 개발하고 있던 ‘가능행성’ 전석희 대표를 만나 서로 새로운 공연 문법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0b7ab750131d2.jp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전석희 개발자(가능행성 대표)

〈고스트 인 더 씨어터〉는 VRChat이라 불리는 메타버스와 실제 공간 사이에서 이중 스토리가 서로 침입하는 구조예요. 저한테 이런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은 현실세계에의 침입이나 전환, 위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활동 무대예요. 연극 입장에서는 새로운 무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도전이라 할 수 있겠지요.


87325a2fea7e4.jpg개발을 맡은 '가능행성' 전석희 대표

 

구도윤

보통 VR 공연이라고 한다면 메타버스 안에서 배우들이 목소리만 연기하거나 혹은 동작 연기만 해요. 배우들이 숙련된 예술가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VR 아바타 연기와 일관된 흐름으로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어요. 연기나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없어지는 지금 시대에서는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봐요. 배우들도 이런 공감 안에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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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f35127a0508.jpe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전석희

가상현실 작품이라고 하면 보통 미래 세계를 그리고, 그게 무한한 세계라고 느끼기 쉽지요. 하지만 가상현실에 접속해 보면 오히려 육체적으로는 제한이 있는 환경이라는 걸 알게 돼요. 우리가 머릿속으로는 가상현실이 무한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육체적으로는 구속되는 환경인 거지요. 그래서 메타버스 안에 좀 더 규격화된 환경을 만들었어요. 또, 이 작품은 역으로 미래가 아닌 19세기 런던을 무대로 삼지요.


사실 작품에 VR 공간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능성보다는 어떤 제약을 부여할지 고민해야 해요.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게 완전한 자유 같지만, 백지 한가운데 떨어지면 어떤 방향으로 가도 의미가 없게 되잖아요. 그때 화살표가 그려진 표지판이 나타나 그걸 따라간다고 해서 자유가 제약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 공연에서 제가 부여한 제약은 속도예요. 원래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는 뛰고, 날고, 모든 게 가능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원래 VR이 제공하고 있는 이동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이동하도록 만들었어요. 천천히 이동하는 경험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게 했지요. 


f614fd0841fae.jpg1dab71e2c8224.png메타버스 내 구현된 극중 브란덴 공장 / 프로젝트 밈 제공


구도윤

메타버스의 유저 관객들은 관습적인 이야기에 접속하게 돼요. 공장 안의 유령을 찾아라, 하는 아주 익숙한 서사 안에서 VR이라는 낯선 환경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이야기에 빨리 적응하고 외부와 정보를 공유해요. 반대로 공연장 관객은 현실 이야기와 가상공간 이야기에 동시에 노출되는 열린 서사 구조에 놓이게 되고요. 


메타버스의 유저 관객은 아바타-배우들과 함께 공장 노동자라는 캐릭터로 참여하며 공연을 만들어가요. 배우들은 그때그때 관객의 물음에 대답하고 그것이 바로 신(scene)이 됩니다. 캐릭터 해석, 그날 관객의 추리, 배우의 대답, 이 세 요소가 서사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09843d6e42a4e.jp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관객이 차원이 다른 두 세계에 분리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 저 너머의 우리, 한 사건을 가운에 두고 양면에 존재하는 우리를 보여주는 시도이기도 해요. VR 관객과 공연장 관객은 서로에게 유령 같은 존재지만, 마음을 맞춰서 당면한 문제에 함께 대응하면 정답을 알아 낼 수 있어요.

 

사실 공연을 하기 전에는 누가 고스트인지 맞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양쪽 관객들이 함께 같은 유령을 지목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제가 작가지만, 관객이라는 내포 작가들이 내용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서사로 탈바꿈하게 되더라고요.


4f564c99adb1b.jp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전석희

사실 VR 안에서는 목소리와 움직임 정도밖에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제약된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현존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행동하니까 네가 바뀌고, 내가 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반응형 공연을 만들게 되는 거고요. 게임 장르에서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즐거움을 주잖아요. 그래서 어떤 공연에서는 관객들이랑 같이 마을을 만들기도 하고, 당신은 배우인데 우리 영화에 캐스팅되었으니 이제 달에 있는 연기를 해야 해, 하면서 같이 영화를 찍기도 해요. 플레이어 관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려는 탐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d683aaa4ba309.jp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구도윤

저희 공연을 진행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데요. ‘유령행진’이라는 안무 장면이에요. 마치 맥베스의 ‘마녀들의 밤’의 장면처럼 유령 찾기에 나서는 캐릭터들이 제의적인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사실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으로 구성하였는데 오픈 리허설이 시작되자마자 유저 관객들이 한두 분 따라 추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다 같이 추는 광란의 공연 문법이 되었어요. 사실 공연장에서 우리 다 같이 춤을 춰야 해요, 한다면 참여하는 관객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이런 건 VR 공연만의 장점이에요. 모두 다 자기만의 공간에 혼자 있고, 내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가상현실만으로는 공연을 체험할 수 없지요. 공연장에 찾아와 두 곳을 비교하면서 관람하시면 더 풍부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프로토타입인 첫 번째 공연을 마쳤고, 이 공연의 작업과정을 담은 아카이빙 전시가 진행 중이에요. 또 내년에는 이 작품으로 더 많은 관객분들과 만나고 싶고요.


eb25c709ce7ac.jpeg사진 제공: 프로젝트밈 ⓒ스튜디오쉼표


더불어 앞서 말씀드렸던 〈이상한 날씨로 여행을 갈까요?〉는 아동극 전문제작사와 유통 협의 중에 있고 〈너를 만난다〉도 뮤지컬로 장르를 탈바꿈해서 제작 협의 중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스트 인 더 씨어터〉의 아카이빙 전시는 12월 5일부터 13일까지 메타버스 플랫폼 VRChat 월드 〈Ghost in the Theatre Archive 브록덴 방직공장〉에서 열립니다. 작품을 만든 과정, 연출 의도, 안무, 사운드 디자인, 개발 방식 등을 전시하고 있어요. 저희가 치열하게 작업해 온 과정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작품이 어떤 식으로 구성됐는지 코멘터리를 듣고 싶으시다면 오셔서 공연 형태를 가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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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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