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승연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2008년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네 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2015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카페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고요. 2019년부터는 비영리 국제구호단체인 코인트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인트리는 멕시코, 볼리비아, 스리랑카 세 나라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는, 도움이 필요한 빈민 가정을 돕는 구호단체입니다.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의 전승연 작가
Q. 이번에 내신 책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단순히 산티아고 여행기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인생 사용법’을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2008년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나만의 노란 화살표를 설정해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란 화살표는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해 길 곳곳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예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여러 목표를 세워두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씩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인생과도 같아요. 순례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를 향해 긴 순례길을 걸어가듯 인간의 삶도 태어나서 죽기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여정이죠. 그 가운데 나를 알게 되고,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요. 네 번의 순례를 다녀오는 동안 제 삶에 일어난 변화, 제가 얻은 깨달음을 저만의 형태로 정리하여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
Q.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건가요?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에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게 삶을 살아가는 취향 혹은 방식이잖아요. YOLO가 한창 유행했었고, 요즘에는 FIRE족이 대두됐지요. 그 외에도 많은 라이프스타일이 있겠지만, 저는 순례길을 걷듯 살아가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가 있듯, 삶을 바라보는 ‘목적’을 정해야 하고요. 목적지를 알면 ‘방향’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거예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입니다.
Q. 책을 읽어보면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의 시작은 역시 ‘나’를 찾는 일 같았습니다. 작가님께서 발견하신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되게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에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작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도 그 길을 대단한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평범한 길이라고 표현했어요. 어려서부터 공부도 중간, 운동도 중간, 아마 무엇 하나를 특출나게 잘했다면 그 한 가지에 몰두했을 텐데 평범하게 살다 보니 저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이 좀 많았어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했고요. 또, 형제자매가 없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무얼 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보통 혼자 걷지만, 사실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에요. 거기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로부터 치유를 받는 여정이에요. 그 길을 걷고 나서 제가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새로운 일,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다워지는구나 알게 되었고요.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건 갑작스레 지인 여럿을 잃고 방황할 때였어요. 상실감에 마냥 걷기로 한 거지요. 그때, 내가 조금 더 그 친구와 더 많이 함께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은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후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먼저 간 친구들의 삶을 내가 충실히 살아가는 일이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실제로 이렇게 카페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을 만나고, 코인트리 활동을 하다 보니, 누군가와 어우러지고 도움을 주는 삶이 굉장히 만족스럽고 행복감도 많이 느껴져요.


Q. 살다 보면 ‘나’를 안다는 것, 무엇보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게 쉽지 않기 마련입니다. 힘들 때, ‘나’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어렸을 땐 가진 것 없어도 항상 자신만만하고 행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도 만족스럽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다 멋지게 살고 있는데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고 그러지요. 이럴 때, 그냥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처음이 가장 힘들어요. 걷는 게 익숙하지도 않고 배낭도 무겁고, 또 내가 오늘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 감이 없기 때문에 무리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시작부터 무리하는 바람에 완주를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 쉬어가야 합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자라면서 ‘더 잘해야 해’, ‘더 열심히 해야 해’, 이런 사회의 부추김에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했다면, 충분히 했으니까 지금은 쉬어가도 된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불안하더라도 불안을 이겨내야 해요.
쉬면서 내가 방향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 내가 가지고 짊어진 책임이 너무 무겁지는 않은지, 내 현재 상황에 비해 너무 많은 욕심으로 빠르게 가려고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해요. 저도 처음 순례를 할 때는 800km를 무조건 30일 안에 완주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자칫 완주를 못할 뻔했어요. 지금은 순례길에 가도 그렇게 걷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나만의 속도로 걸을 때 더 많은 것을 보고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는 것도 중요하고요.


Q. 사람들과 함께하고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인간관계는 짐이 되기도 하지요. 작가님께서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시나요?
처음에는 저도 노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관계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했는데 그 관계가 건강하지 않은 관계,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관계라면 완전히 끊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선을 찾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예컨대 저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는데 상대방은 조금 다르게 느낄 수 있겠죠. 그러면 서운해하기보다는 자연스레 우리에게 적정한 거리를 찾아 물러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카페를 운영할 때도 비슷해요. 일상을 사는 사람들도 ‘일상의 순례자’, 하루하루 힘들게 길을 걷는 순례자라고 생각해서 그들이 이 공간에서 조금 쉬어갔으면 하는 마음에 카페 알베르게를 열었어요. 순례길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쉬게 해 주는 ‘알베르게’처럼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제 공간에 오신 분들을 맞이하려 합니다.
하지만 종종 무례한 분들, 말을 막 하는 분들이 오기도 해요. 그런 분들이 오셨다가 가시면 저나 저희 공간에 악의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여기에 오기 전에 나쁜 일이 있었을 수 있겠죠. 집이나 회사가 힘든 상황에 있을 수도, 그날 스트레스가 심했을 수도 있고요. 저도 그런 분과의 만남에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최대한 그분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처지를 생각하며 기분을 다스리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책을 읽다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면 반드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메슬로가 정의한 다섯 가지 욕구 기억하세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가장 원초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는 합니다. 어릴 적 느낀 사소한 행복들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발견하게 하지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공동체에 속하는 기쁨도 누리고, 매일 목표한 거리를 걷는다는 성취감도 얻어요. 스페인의 찬란한 태양, 걷기라는 운동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고요.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그 길을 간다기보다는 그 길에서 자연스레 행복을 발견하려고 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행복을 찾기 위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면 과연 그 길이 행복할까요? 제가 순례길 관련 세미나를 열거나 강연을 할 때 항상 청중께 제일 처음 드리는 질문이 있어요. “왜 순례길에 가려고 하시나요?” 꼭 답을 바라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한 번 정도 자문하고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예요.

순례길을 걸으면, 대부분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고난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다른 이들에게서 감동을 느끼고. 그런데 그게 비슷하다는 거지 다 똑같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느끼는 범위가 다르달까, 정도가 다르달까, 개인차가 있어요. 그러니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낀다기보다는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30일에서 40일 동안 800km를 걷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서면 의외로 담담해요. 오히려 저를 변화시키고 감동시켰던 건 거기까지 걸어왔던 길 위에서의 경험이었죠. 일상에서도 목표를 세우는 건 필요하지만, 그걸 이루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루하루 소소하고 행복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어떤 상태의 감정에 가까워요.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여기서는 다른 것들에 의해 너무 많이 덮여있어 느끼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순례길 위에서는 모든 게 굉장히 단순해요. 아침 일찍 일어나 걷고, 그러면 힘들고 목도 마르고, “나는 누구인가, 이 길 위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하는 철학적인 질문은 싹 날아가고 “얼른 마을에 도착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쉬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만 남아요. 그 상태로 하루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는 거지요. 일상에서도 퇴근하고 마시는 맥주가 같은 감정을 줄 수 있지만, 그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날 출근 걱정, 집안일 걱정 등 외적인 것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나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크게 다가오는 거 같아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작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노력, 훈련도 포함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경험했던 감정을 일상 속에서 “나 그때 맥주 한잔에도 그렇게 행복했었지” 떠올리도록 하는 거예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여기에서의 삶도 더 풍성하게, 길을 걷듯 행복하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분들은 다시 떠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여러 번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상으로 돌아오면 길에서 느꼈던 감정을 너무나 빨리 잊게 돼요. 거기서는 굉장히 느리고 단순하게 살았는데 사회로 돌아오면 복잡하고 빠른 일상에 휘말리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문득 그 길이 떠오르기 마련이에요.
많은 순례자가 순례를 다녀오고 일 년 정도 후에 여기 카페 알베르게를 찾아오세요. 요즘 SNS에서 1년 전 내가 뭘 했나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작년엔 거기에 있었구나 떠오르기도 하고, 그리움을 느끼는 거지요. 그때는 힘들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1년 전의 나는 길을 걸으며 굉장히 행복했구나,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떠나시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 힘든 건 잊고 좋은 것만 남잖아요. 당시엔 엄청 힘들었을 텐데 나를 충전하고 싶다, 나를 찾고 싶다, 그때 감정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그런 바람이 피어오르는 거예요. 제가 아는 어느 어르신은 10년간 매년 봄마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세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래요. “나는 거기 갔다 와서 1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채우고 와.”

Q. 이 책을,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을 어떤 분들에 권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삶의 방향을 잃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청년일 수도 있지만, 삼사십 대는 삼사십 대, 오륙십 대는 오륙십 대 나름의 고민이 항상 있잖아요.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잘 살고 있나,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끝없이 회의하게 되니까요.
또, 저처럼 삶에서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경험하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그게 관계의 상실일 수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원치 않게 직업을 잃은 분들일 수도 있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더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못하게 된 분들일 수도 있겠죠.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되찾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다음 목적지, 콤포스텔라는 무엇인가요?
살면서 제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제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여겼어요. 또, 제 아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바라기도 하고요. 그래서 카페 알베르게도 열고, 코인트리 활동도 하고,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도 쓰게 됐지요. 내년에는 이 책과 함께 계속 여정을 떠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싶어요. 오는 12월 15일에 서촌 ‘책방 79-1’에서 여는 낭독회도 그 일환이에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건데 방향을 잃고 힘들어하는 청년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거나 아니면 보내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멕시코 아이들을 돕는 기부 이벤트도 열고 있는데, 그 목표 금액이 다 채워져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건물을 얼른 지을 수 있길 바라요.
제가 순례길 위에서, 삶 속에서 도움을 받았듯, 제가 도움을 드린 분들이 분명 또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며 누군가를 도울 거로 생각해요. 그렇게 세상은 더 따뜻하고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갈 거예요.
전승연 작가 부부
인터뷰 신태진
Q. 전승연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2008년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네 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2015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카페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고요. 2019년부터는 비영리 국제구호단체인 코인트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인트리는 멕시코, 볼리비아, 스리랑카 세 나라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는, 도움이 필요한 빈민 가정을 돕는 구호단체입니다.
Q. 이번에 내신 책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단순히 산티아고 여행기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인생 사용법’을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2008년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나만의 노란 화살표를 설정해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란 화살표는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해 길 곳곳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예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여러 목표를 세워두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씩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인생과도 같아요. 순례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를 향해 긴 순례길을 걸어가듯 인간의 삶도 태어나서 죽기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여정이죠. 그 가운데 나를 알게 되고,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요. 네 번의 순례를 다녀오는 동안 제 삶에 일어난 변화, 제가 얻은 깨달음을 저만의 형태로 정리하여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
Q.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건가요?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에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게 삶을 살아가는 취향 혹은 방식이잖아요. YOLO가 한창 유행했었고, 요즘에는 FIRE족이 대두됐지요. 그 외에도 많은 라이프스타일이 있겠지만, 저는 순례길을 걷듯 살아가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가 있듯, 삶을 바라보는 ‘목적’을 정해야 하고요. 목적지를 알면 ‘방향’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거예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입니다.
Q. 책을 읽어보면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의 시작은 역시 ‘나’를 찾는 일 같았습니다. 작가님께서 발견하신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되게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에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작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도 그 길을 대단한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평범한 길이라고 표현했어요. 어려서부터 공부도 중간, 운동도 중간, 아마 무엇 하나를 특출나게 잘했다면 그 한 가지에 몰두했을 텐데 평범하게 살다 보니 저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이 좀 많았어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했고요. 또, 형제자매가 없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무얼 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보통 혼자 걷지만, 사실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에요. 거기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로부터 치유를 받는 여정이에요. 그 길을 걷고 나서 제가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새로운 일,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다워지는구나 알게 되었고요.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건 갑작스레 지인 여럿을 잃고 방황할 때였어요. 상실감에 마냥 걷기로 한 거지요. 그때, 내가 조금 더 그 친구와 더 많이 함께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은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후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먼저 간 친구들의 삶을 내가 충실히 살아가는 일이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실제로 이렇게 카페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을 만나고, 코인트리 활동을 하다 보니, 누군가와 어우러지고 도움을 주는 삶이 굉장히 만족스럽고 행복감도 많이 느껴져요.
Q. 살다 보면 ‘나’를 안다는 것, 무엇보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게 쉽지 않기 마련입니다. 힘들 때, ‘나’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어렸을 땐 가진 것 없어도 항상 자신만만하고 행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도 만족스럽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다 멋지게 살고 있는데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고 그러지요. 이럴 때, 그냥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처음이 가장 힘들어요. 걷는 게 익숙하지도 않고 배낭도 무겁고, 또 내가 오늘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 감이 없기 때문에 무리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시작부터 무리하는 바람에 완주를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 쉬어가야 합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자라면서 ‘더 잘해야 해’, ‘더 열심히 해야 해’, 이런 사회의 부추김에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했다면, 충분히 했으니까 지금은 쉬어가도 된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불안하더라도 불안을 이겨내야 해요.
쉬면서 내가 방향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 내가 가지고 짊어진 책임이 너무 무겁지는 않은지, 내 현재 상황에 비해 너무 많은 욕심으로 빠르게 가려고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해요. 저도 처음 순례를 할 때는 800km를 무조건 30일 안에 완주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자칫 완주를 못할 뻔했어요. 지금은 순례길에 가도 그렇게 걷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나만의 속도로 걸을 때 더 많은 것을 보고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는 것도 중요하고요.
Q. 사람들과 함께하고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인간관계는 짐이 되기도 하지요. 작가님께서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시나요?
처음에는 저도 노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관계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했는데 그 관계가 건강하지 않은 관계,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관계라면 완전히 끊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선을 찾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예컨대 저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는데 상대방은 조금 다르게 느낄 수 있겠죠. 그러면 서운해하기보다는 자연스레 우리에게 적정한 거리를 찾아 물러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카페를 운영할 때도 비슷해요. 일상을 사는 사람들도 ‘일상의 순례자’, 하루하루 힘들게 길을 걷는 순례자라고 생각해서 그들이 이 공간에서 조금 쉬어갔으면 하는 마음에 카페 알베르게를 열었어요. 순례길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쉬게 해 주는 ‘알베르게’처럼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제 공간에 오신 분들을 맞이하려 합니다.
하지만 종종 무례한 분들, 말을 막 하는 분들이 오기도 해요. 그런 분들이 오셨다가 가시면 저나 저희 공간에 악의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여기에 오기 전에 나쁜 일이 있었을 수 있겠죠. 집이나 회사가 힘든 상황에 있을 수도, 그날 스트레스가 심했을 수도 있고요. 저도 그런 분과의 만남에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최대한 그분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처지를 생각하며 기분을 다스리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책을 읽다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면 반드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메슬로가 정의한 다섯 가지 욕구 기억하세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가장 원초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는 합니다. 어릴 적 느낀 사소한 행복들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발견하게 하지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공동체에 속하는 기쁨도 누리고, 매일 목표한 거리를 걷는다는 성취감도 얻어요. 스페인의 찬란한 태양, 걷기라는 운동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고요.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그 길을 간다기보다는 그 길에서 자연스레 행복을 발견하려고 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행복을 찾기 위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면 과연 그 길이 행복할까요? 제가 순례길 관련 세미나를 열거나 강연을 할 때 항상 청중께 제일 처음 드리는 질문이 있어요. “왜 순례길에 가려고 하시나요?” 꼭 답을 바라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한 번 정도 자문하고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예요.
순례길을 걸으면, 대부분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고난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다른 이들에게서 감동을 느끼고. 그런데 그게 비슷하다는 거지 다 똑같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느끼는 범위가 다르달까, 정도가 다르달까, 개인차가 있어요. 그러니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낀다기보다는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30일에서 40일 동안 800km를 걷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서면 의외로 담담해요. 오히려 저를 변화시키고 감동시켰던 건 거기까지 걸어왔던 길 위에서의 경험이었죠. 일상에서도 목표를 세우는 건 필요하지만, 그걸 이루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루하루 소소하고 행복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어떤 상태의 감정에 가까워요.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여기서는 다른 것들에 의해 너무 많이 덮여있어 느끼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순례길 위에서는 모든 게 굉장히 단순해요. 아침 일찍 일어나 걷고, 그러면 힘들고 목도 마르고, “나는 누구인가, 이 길 위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하는 철학적인 질문은 싹 날아가고 “얼른 마을에 도착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쉬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만 남아요. 그 상태로 하루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는 거지요. 일상에서도 퇴근하고 마시는 맥주가 같은 감정을 줄 수 있지만, 그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날 출근 걱정, 집안일 걱정 등 외적인 것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나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크게 다가오는 거 같아요.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은 작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노력, 훈련도 포함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경험했던 감정을 일상 속에서 “나 그때 맥주 한잔에도 그렇게 행복했었지” 떠올리도록 하는 거예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여기에서의 삶도 더 풍성하게, 길을 걷듯 행복하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분들은 다시 떠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여러 번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상으로 돌아오면 길에서 느꼈던 감정을 너무나 빨리 잊게 돼요. 거기서는 굉장히 느리고 단순하게 살았는데 사회로 돌아오면 복잡하고 빠른 일상에 휘말리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문득 그 길이 떠오르기 마련이에요.
많은 순례자가 순례를 다녀오고 일 년 정도 후에 여기 카페 알베르게를 찾아오세요. 요즘 SNS에서 1년 전 내가 뭘 했나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작년엔 거기에 있었구나 떠오르기도 하고, 그리움을 느끼는 거지요. 그때는 힘들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1년 전의 나는 길을 걸으며 굉장히 행복했구나,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떠나시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 힘든 건 잊고 좋은 것만 남잖아요. 당시엔 엄청 힘들었을 텐데 나를 충전하고 싶다, 나를 찾고 싶다, 그때 감정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그런 바람이 피어오르는 거예요. 제가 아는 어느 어르신은 10년간 매년 봄마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세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래요. “나는 거기 갔다 와서 1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채우고 와.”
Q. 이 책을,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을 어떤 분들에 권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삶의 방향을 잃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청년일 수도 있지만, 삼사십 대는 삼사십 대, 오륙십 대는 오륙십 대 나름의 고민이 항상 있잖아요.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잘 살고 있나,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끝없이 회의하게 되니까요.
또, 저처럼 삶에서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경험하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그게 관계의 상실일 수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원치 않게 직업을 잃은 분들일 수도 있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더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못하게 된 분들일 수도 있겠죠.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되찾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다음 목적지, 콤포스텔라는 무엇인가요?
살면서 제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제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여겼어요. 또, 제 아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바라기도 하고요. 그래서 카페 알베르게도 열고, 코인트리 활동도 하고,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도 쓰게 됐지요. 내년에는 이 책과 함께 계속 여정을 떠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싶어요. 오는 12월 15일에 서촌 ‘책방 79-1’에서 여는 낭독회도 그 일환이에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건데 방향을 잃고 힘들어하는 청년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거나 아니면 보내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멕시코 아이들을 돕는 기부 이벤트도 열고 있는데, 그 목표 금액이 다 채워져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건물을 얼른 지을 수 있길 바라요.
제가 순례길 위에서, 삶 속에서 도움을 받았듯, 제가 도움을 드린 분들이 분명 또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며 누군가를 도울 거로 생각해요. 그렇게 세상은 더 따뜻하고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갈 거예요.
인터뷰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