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 《인공윤리 - 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

2022-12-28

역사와 예술, 순례와 문화 창조가 한 공간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이곳에서는 12월 4일부터 2월 12일까지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인공윤리 – 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입니다.


9e309bfef2b77.jpg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특별 기획전시 《인공윤리 - 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


《인공윤리》 전시는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발달하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 사회의 도래가 머지않아 보이는 지금, 인간의 정체성과 인권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생명, 기술, 여성, 인간, 불안, 윤리, 규범, 신체 등의 키워드로 열두 명의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지요.


마침 폭설이 내려 본래 길이었던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구분이 새하얗게 사라진 날, “혼돈의 현실 속에서 인간이 걸어야 할 본연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는 취지의 전시를 만났습니다. ‘예알못’ 에디터의 감상도 곁들이며 전체 작품을 둘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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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진아 - 〈제페토의 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방에서 첫 번째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품 이름에서 절로 ‘피노키오’가 떠오르듯, 레진과 목재가 결합한 이 인형은 사람이 되길 꿈꾸는 듯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을 뜨고 말을 걸어옵니다.


〈제페토의 꿈〉 동작 센서와 음성 인식 센서를 통해 인형이 관람자와 대화를 나누는 인터랙티브 작품입니다. 머리와 상반신은 상당히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팔과 다리는 작품이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말 사람의 눈빛과 표정을 구현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섬뜩함을 동시에 안겨 줍니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더욱 흐려지는 혼돈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처럼요.


b4464c1f3212d.jpg814b672337f4f.jpg노진아 〈제페토의 꿈〉


2. 김정희 - 〈Space 2022-IDEA〉

김정희 작가는 철사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인물 조각을 선보입니다. 지하 1층에서는 푸른색의 입상 작품 한 점과 동일한 크기의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지하 3층의 하늘광장에는 높이 3.6m의 거대한 인물상이 거울처럼 세상을 반사하는 연못을 앞에 둔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텅 비어 있지만, 가느다란 역선(力線)을 통해 마치 기(氣)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철사로 만들어진 비어 잇는 몸 조각이 정신적 존재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작품 해설처럼 관람자로 하여금 어떤 이데아(IDEA)를 상상하게 하기 위함이었을까요?


de7fe1cd365c6.jpga477e4472bf44.jpg14e3b24877984.jpg김정희 〈Space 2022-IDEA〉 연작


3. 오주영 - 〈버스마크 : 디지털 대체 예술품을 감상하는 인공의 관람자〉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세상.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예술품을 관람하고 비평할 수도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창작할 수 있는가(그것을 창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그 너머로 한 발자국 나아간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2aef5bfc98c11.jpg532f87e2382d2.jpg오주영 〈버스마크 : 디지털 대체 예술품을 감상하는 인공의 관람자〉


4. 염지혜 - 〈마녀〉, 〈미래열병〉

이번 전시에는 영상 작품도 많습니다. 염지혜 작가의 〈마녀〉는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을 주제로 혐오와 폭력의 비밀을 현대적 자본 권력과 연계시켜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하 2층 기획소강당에서 상영하는 〈미래열병〉 역시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어 파시즘과 세계대전 그리고 인공지능의 시대로 확대되어 온 과학 만능의 맹신과 인권 침해의 상황을 폭로하는 작품입니다.


4dc75cf825b32.jpg염지혜 〈마녀〉, 〈미래열병〉


5. 두민 - 〈어머니의 신경망〉

지하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인공윤리》의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두민 작가의 〈어머니의 신경망〉은 유화임에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나란히 놓인 다섯 대의 모니터 속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려주는 프로그램 ‘Midjourney’에서 얻은 가상의 이미지를, 작가가 그것과 동일하게 그린 이미지와 하나의 캔버스에 직조(織造) 기법으로 묶어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합작’하여 “인공신경망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니,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새롭고, 또 적확한 것 같습니다.


7df9c1a5f4cbf.jpgd30e7e256f566.jpgbf57b0c446b61.jpg두민 〈어머니의 신경망〉 외


6. 우주+림희영 - 〈호모캐피탈리쿠스〉, 〈새〉

듀오 아티스트인 유주와 림희영 작가는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두 작품을 선보입니다. 먼저 〈호모캐피탈리쿠스〉는 정교한 기계 장치 위에 시멘트 덩이가 놓여 있는데요, 기계 장치가 조금씩 시멘트 덩어리를 움직이며 기이한 소음을 냅니다.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도 끼어 있고요. 매달린 채 회전하는 〈새〉 역시 벽과 부딪히는 소음, 잔뜩 낀 머리카락 등이 불안한 느낌을 줍니다. 완벽한 무생물의 결합체가 실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작품 해설에 따르면 생존에 몸부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고도 하니 관람자가 받는 인상이 착각은 아닌가 봅니다.


cf34ac7c0bf68.jpg7c155be4c0faa.jpg0014a9a7c7b02.jpg25f7b9466e7d4.jpg우주+림희영 〈호모캐피탈리쿠스〉, 〈새〉


7. 오원배 - 〈무제〉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으로 그려진 오원배 작가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표현된 주제는 가볍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짓이 언어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작가는 기술 메커니즘에 의해 억눌린 인간의 무력감과,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인체의 몸짓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과 인공지능이 힘을 겨루는 형상을 통해 A.I. 윤리와 인간과 기술의 긴장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고도 하네요.


8e8002c797f83.jpg672b936dd79e3.jpg오원배 〈무제〉


8. 박관우 - 〈인간의 대화 1〉, 〈인간의 대화 2〉

박관우 작가는 거울과 대화하는 인물(〈인간의 대화 1〉), 각자의 모니터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대화하는 두 인물(〈인간의 대화 2〉)을 표현한 영상 작품을 선보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테스트인 ‘튜링 테스트’에서 착안한 작품들로,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일으키고자 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서서 인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의 대화를 들어보세요.


98c7a16d53977.jpg0b065342b44f7.jpg박관우 〈인간의 대화 1〉, 〈인간의 대화 2〉


9. 양아치 - 〈Sally〉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인 지하 3층 ‘콘솔레이션홀’에서는 거대한 네 벽면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양아치 작가의 작품 〈Sally〉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메타 휴먼’인 샐리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스마트시티,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의 기술과 그 기술에 의해 감시와 통제를 당하는 인간의 문제를 4채널 영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ae3102bd5b320.jpg7d1b02f442926.jpg양아치 〈Sally〉


10. 이민수 - 〈주 1〉, 〈다시〉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들어서며 보았던 이민수 조각가의 〈주 1〉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소조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으로 《인공윤리》의 프롤로그 격이라고 합니다. 생생하게 드러난 인간의 몸은 사물이나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되묻는다고 하는데요, 서로 뒤엉킨 몸들이 마치 외압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기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하 3층 하늘공원에서 거대한 조각상 〈다시〉를 만납니다. 이 작품은 조각가가 추락사고를 겪고 재활에 성공한 후 만든 작품으로서 제목 그대로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을 딛고 일어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침 눈에 덮인 작품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당장 달려나갈 듯한 생생한 기운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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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 〈주 1〉, 〈다시〉, 〈원1*〉


11. 강현욱 - 〈흐려진 약속〉

하늘공원으로 나가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바깥 소음인가?’ 싶지만, 사실 강현욱 작가의 〈흐려진 약속〉에서 나오는 12개 언어로 번역된 ‘인권선언문’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서 있는 12개의 스피커에서는 각 언어의 인공지능이 읊는 인권선언문이 흘러나오는데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어쩐지 허망하고 무의미한 외침처럼 들리는 것은 기술 발전으로 점점 위태로워지는 인간의 생존, 존엄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c4bab8f6f598d.jpg강현욱 〈흐려진 약속〉


12. 이예승 - 〈Floating Scenery〉

하늘공원으로 나왔다면 하늘길에도 꼭 올라가 봐야 합니다. 들어서는 순간 바닥에 쏟아지는 초현실적인 영상들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시대로 나아가며 우리가 맞닥트릴 희망과 상상, 혼란과 혼돈의 길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QR코드가 떠다니는 데요, 놓치지 말고 포착해 보세요. 길 전체가 작품인 이 장면을 여러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옮겨올 수 있습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긴밀하게 호응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매일 SNS에 올릴 거리를 찾는 분에게는 이보다 좋은 포스팅 거리도 또 없을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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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승 〈Floating Scenery〉




자료 제공 및 촬영 협조: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 이민수 조각가의 〈원1〉 사진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글/사진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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