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국시대가 흥미로운 이유 - '일상이 고고학' 황윤 작가 #2

황윤 작가와의 인터뷰 #1 읽기


역사와 산책이 어우러지는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역사 대중서를 내고 있는 황윤 작가. 지난 인터뷰에 이어 이번엔 황윤 작가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삼국시대를 집중 조명해 보았습니다.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를 집필하는 황윤 작가



Q. 처음부터 역사학자로 책을 내셨던 건 아니었지요. 어떤 계기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우선 저는 저를 역사학자로 생각한 적 없어요. 예전에 『박물관 보는 법』이라는 책을 냈는데, 반응도 좋았고 세종도서로도 선정이 되었어요. 그러자 출판사 대표님이 이제는 ‘역사학자’ 정도는 이름 앞에 붙여야 한다, 그러셨어요. 그래야 책이 팔린다고요. 그때도 했던 말이지만, 저는 그냥 역사를 좋아하고 박물관, 유적지 다니길 좋아하는 아마추어입니다. 작가 소개에 ‘역사학자’라고 들어가 있긴 하지만, 저는 여전히 역사를 취미로 삼고, 책도 취미로 쓰고 있는 사람 정도로 저 자신을 인식하고 있어요.

 

역사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아쉽게도 시험 점수대로 대학교에 가는 문화에 따라서 사학과에 가지는 못했고요. 그래도 관심이 있다 보니 계속 공부하고, 찾아다니길 멈추지 않았고, 콘텐츠가 수십 년 쌓이다 보니까 이제 책을 쓰게 된 거 같아요.

 

 

Q. 사람들은 흔히 역사를 지루하다고 여기는데요. 작가님은 역사의 어떤 면이 좋으신 건가요?

역사는 우리 삶의 일부이고, 과정입니다. 지금도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과거로 넘어가고 있고,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게 저런 박물관이에요. 그러니까 역사는 우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정체성, 한국인의 정체성이고, 국립중앙박물관은 그것의 거울인 셈이지요.

 

흔히 20대에 한다는 정체성 고민을 저도 했고, 나라는 사람을 고민하다보니까 나라는 사람이 소속돼 있는 공간과 흐름을 알고 싶어졌어요. 제가 사는 공간과 제가 몸담은 흐름이 곧 대한민국, 한반도의 역사이고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역사를 가까이하고 알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Q.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를 유적지, 박물관 견학과 일상적인 산책을 접목한 책으로 내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여행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요, 여행 유튜버들이 혼자 여행하면서도 마치 구독자가 옆에 있는 듯 떠들며 함께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콘셉트를 책으로 실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정보의 양을 담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 영상이 책을 따라가지 못하니까요. 독서 시장은 줄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내가 더 관심이 있어서 더 깊게 봐야겠다는 사람들이 찾는 게 책이기도 하고요.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는 독자와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썼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서술형 문장도 나오고,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문장도 나오고, 제 혼잣말도 나와요. 읽는 분들에게 제가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으니까요. 저와 함께 산책하며 유적지도 가고 박물관도 가는 것처럼요.

 

유튜브는, 제가 직접 만들지는 못하고, 유튜브 제작 회사에서 저와 함께 ‘일상이 고고학’을 영상화하자고 하면 기꺼이 참여할 마음은 있습니다. 많이들 연락 주세요.


황윤 작가의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Q.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는 주로 삼국시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삼국시대가 더 재미있거든요. 고려나 조선은 이미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구축되어 가는 과정, 혹은 거의 완성된 시기였습니다. 나는 고려인이다, 나는 한반도에 사는 누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 사람은 완벽히 다른 나라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서로 치고받고 죽도록 싸웠던 거고요.

 

민족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근대부터 생긴 것이기는 하지만, 그전에도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무리’라는 인식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이런 인식을 갖게 되고 공유하게 되었나, 그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약하다 보니 삼국시대에는 수많은 일이 벌어졌어요. 신라는 당나라를 끌고 오고, 백제는 일본을 끌고 오고, 고구려는 옆에 있는 유목민들을 끌고 오고.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온 방향의 결합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러니 사고방식도 열려 있었을 테고, 적극적인 동맹과 배신이 아주 치열했어요. 그게 삼국시대의 맛이라고 생각해요.

 

고려만 해도 그 정도는 안 됩니다.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으니까요. 조선은 더 심해요. 더 단순해졌지요. 오로지 명나라, 나중에 가면 청나라, 가면 갈수록 중국만 바라보는 외교가 되어버린 거예요. 지금은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를 하고 있지요. 현대처럼 복잡한 다극화 시대에는 한쪽에만 ‘올인’하는 외교를 경계해야 해요. 지금이야말로 삼국시대의 역사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시대인 거지요.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진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

 


Q. 삼국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본보기가 되는지 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조선을 보지요. 명청 교체기 이전과 이후의 조선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명나라 시대만 하더라도 조선은 자기 밑에 일본도 있고 여진족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둘 다 때만 되면 조선에 조공을 바치러 왔으니, ‘우리는 중국 다음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중화 의식이 팽배하던 중국이 조선을 가리켜 너희도 우리 중화 못지않게 나름의 문화가 있구나, 해 주니까 ‘소중화 의식’도 생겼지요.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50년도 안 돼 병자호란이 터졌고요. 자기들이 그렇게 무시하던 일본과 여진족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급기야 청나라가 명나라를 무너뜨리자 더 큰 충격을 받았지요. 이후 조선의 세계관은 움츠러들었어요. 패배주의도 생겼고요. 그게 결국 근대를 지나 패망 시기까지 이어지게 돼요.

 

삼국시대를 보면 나라가 쪼개져 있고 이권에 따라 언제든 동맹을 교체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신라 같은 나라도 고구려나 백제의 공격 속에서 살아날 방법을 고민하다가 당나라와 손을 잡았잖아요. 그리고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에 승리하자 이번에는 나당전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신라가 승리를 했어요. 당나라가 내 편이었지만 언제는 나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러니 나도 언제든 당나라와 싸울 수 있다, 이런 준비를 했기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나라도 세계관을 넓히고 더 다양한 국가와 더 다양한 교류를 해야 해요. 강대국 사이에 껴 있기에 외교가 중요해요. 나라의 이권을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주변국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공주 수촌리무덤에서 출토된 백제의 왕관(복제품)

 


Q. 그런데 삼국시대는 오래되기도 했고 기록도 많지 않아 사료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요?

자료가 별로 없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삼국사기』, 『삼국유사』나 일본 쪽 기록, 비석에 새겨진 글들이 남아 있고, 그런 것들에 관해 여러 교수님들이 다양한 논문을 써 두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당시 사회가 어떻고 흐름이 어떠했다, 알 수 있어요. 공간이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채울 여지가 있는 것이지요.

 

보통 조선사는 『조선왕조실록』에 다 담겨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중요한 기록도 있지만, 필요 없는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기록 자체도 왕과 육조판서 위주이고요. 예를 들어 주변국과 도자기나 회화 작품을 주고받았다는 기록은 있어도 어떤 도자기를 어떻게 얼마나 생산했는지 세부적인 내용은 빠져 있어요. 전쟁 기록도 자세한 병력, 세부적인 전략은 나와 있지 않고요.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개인이 작성한 문서도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환란과 정치적 분쟁 때문에 소실된 게 많습니다. 아무래도 중앙집권국가이다 보니 지배층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록을 썼다가는 역적으로 몰려 죽을 수 있으니 다양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면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 조선의 역사도 빈 공간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Q. 작가님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역사적 사건, 인물, 혹은 지역은 무엇인가요?

제일 애착이 가는 공간은 아무래도 경주예요. 도시 자체가 좋기도 하고, 삼국시대 때 제일 약했던 신라라는 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하거든요. 나라에 관심이 있으니 여러 과업을 완료했던 인물들, 김유신이나 문무왕 같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도 굉장히 높고요. 이런 신라 인물들이 노력한 결과가 현재 한반도 정체성의 5~60%는 차지한다고 봅니다. 이들이 1차로 기반을 다져놨기 때문에 그 위로 여러 사건이 쌓이면서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만들어졌다고 보는 거지요.

 

지금은 신라 인물들이 많이 저평가 되어 있는 편입니다. 민족주의적 관점을 통해 이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에요. 조선 말기 고종은 국력을 키우지 못하고 자꾸 외부 세력을 끌어 들였어요. 일본이 위협하니까 중국도 끌고 오고 러시아도 끌고 오고 그랬죠. 왕이 그러니 신하들도 이런저런 세력을 따라 지리멸렬 흩어졌고요. 그 이후 근대의 지식인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외부의 적을 데리고 오다 망한 조선을 보면서 역사를 재해석한 거예요. 신라의 외교도 자연스럽게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고요.

 

말씀드렸듯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친 후 다시 당나라와도 전쟁을 해서 승리했어요. 조선 말기와는 확연히 달랐던 게 조선에는 군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중국군이 오면 중일 전쟁, 러시아군이 오면 러일 전쟁이 일어났지요. 이와 달리 나당 연합군에 신라군은 엄연히 존재했어요. 화랑을 비롯해 군대의 힘을 계속 기르고 있었고, 결국 당나라까지 물리치는 능력을 보여줬어요. 외교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외부의 힘을 이용하여 승리하고, 최종적으로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니까 그것까지 차단하는 능력, 이건 솔직히 조선과 비교할 수 없는 외교 능력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꾸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삼국시대를 바라보니까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가 이상한 모습으로 비치는 거예요. 그런 인식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은 어떻게 작은 국가가 승리할 수 있었는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귀감이 될 이야기이니까요.


경주 안압지


황윤 작가와의 인터뷰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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