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 도시의 건축 - 『이를테면, 그단스크』의 고건수 건축가

2023-03-22

건축가와 함께 여행을 하면 어떨까요? 항상 감탄만 나오고 뭐라 표현할 길은 없던 이국적인 건축물에 관해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브라티슬라바, 그단스크, 류블랴나 등 유럽의 소도시를 여행하며 그곳의 건축물을 소개한 책 『이를테면, 그단스크』가 바로 그런 동반자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을 쓴 고건수 건축가를 정동에서 만나 여행과 건축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bc9f399c6005d.jpg고건수 건축가



Q. 사무소가 서울 정동에 있습니다. 건축가의 눈에 정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서울은 격변의 도시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게 지어지고, 그게 또 금방 없어지는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에 반해서 정동은 시간이 두툼하게 쌓여 있는 동네입니다. 다양한 시대가 공존하는 동네이지요. 그래서 건축가들 중에서도 이곳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건축사 사무소 이름이 EUS+인데요, ‘좋은 이야기를 더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설계를 할 때도 건물이 그 동네에서 풍경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동 오래된 아파트에 사무실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오게 된 거지요. 


4d285ba12a497.jpg서울시 중구 정동 ⓒ신태진



Q. 이번에 쓰신 『이를테면, 그단스크』는 브라티슬라바, 그단스크, 류블랴나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유럽 도시들입니다. 이 도시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4년을 지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파리, 베를린 같은 유명한 도시 말고 작은 도시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유럽의 대도시야 언젠간 다시 올 기회가 있을 테니 이왕 유럽에서 지내는 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 변방의 도시를 찾아다니기로 했지요.


건축가니까 여행을 가면 아무래도 건물을 주로 보게 되는데,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이 섞여 있는 풍경을 좋아합니다. 저 건물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됐을까, 언제부터 여기에 자리잡게 됐을까.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하는 강렬한 이야기가 저를 사로잡은 도시도 있고요.


한국에서 외국 건축을 바라볼 때 한정적인 면이 있어요.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나 일본의 구마 겐코, 안도 다다오 같은 분들이 항상 레퍼런스로 언급되지요. 건축 관련 책도 그분들 위주로 출간되고요. 그래서 저는 건축에 관심이 있거나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유럽의 소도시들에도 한번 가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었어요. 책을 쓰고 구체화하면서 여행과 건축을 접목한 대중서로 방향을 틀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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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수 건축가 의 『이를테면, 그단스크』



Q. 건축가님께서 이상적으로 생각하시는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다양한 모습, 얼굴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도시만 있는 게 아니라 근교에 산, 바다, 강이 있고 집에서 일터도 문화재도 가까운 그런 곳이요. 인구 밀도가 낮고 도시 안에 다양한 것들이 아기자기하게 섞여 있는 도시를 선호합니다.


제가 살았던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도시가 그런 곳이었는데, 집과 일터가 걸어서 5분 거리였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쉬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만족도는 굉장히 높아지더라고요. 일하러 가는 길에 운하도 건너야 하고 빵집도 지나쳐야 하고, 그런 다채로운 모습을 보며 출퇴근을 한다는 게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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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리가의 알베르타 거리에서 ⓒ고건수



Q. 한국에도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정착할 수 있을까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걱정이 앞서요. 지금도 지방 도시는 인구 감소, 유출로 심한 타격을 받고 있잖아요. 구도심은 이가 숭숭 빠져나가듯 빈 곳이 많아지고 있고요.


이런 추세라면 100년 후에는 인구가 절반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꾸 용적률만 높이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재개발을 하더라도 저탄소 개발, 친환경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도 여기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빨 빠진 도시가 아닌 친환경적인 도시로 나아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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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중인 폴란드 그단스크 ⓒ고건수



Q. 유럽에는 죽음의 기록에 관한 장소, 추모의 장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기억의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면 좋을까요?

어려운 문제이자 중요한 숙제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때 수십 일 만에 구조된 할머니가 구조대원들에게 미안하다 그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분의 잘못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폐를 끼쳤다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일본과 반대로 한국은 그런 사건, 사회적인 죽음이 발생하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감하고, 슬퍼하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경각심을 가지지요. 문제는 그런 사회적인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애도하고 위로할 시간도 없이 대립의 구도로 몰아가는 거지요. 사회적인 죽음을 기릴 때는 오브제나 탑을 세우는 것보다는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공간, 장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공간은 관련된 사람들, 특히 유가족의 생각이 우선 반영되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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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그단스크 ⓒ고건수



Q. 서울 도심은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용산, 을지로 재개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중심 업무지구나 교통 요지는 용적률이 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문제는 모든 곳이 다 그런 기조로 간다는 것입니다. 굳이 멀쩡한 아파트도 다시 짓고, 그걸 또 엄청 높여서 짓지요.


도시 개발은 저탄소 정책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강남 사는 사람들이 판교에 가서 일하고 판교 사는 사람들이 강남에서 일하고, 이런 식으로 인구 이동을 유발하는 개발은 지양해야 합니다. 사람의 이동에도 탄소가 발생하니까요. 정책적으로 그런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책을 만들고 도시 계획을 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6f2092c45013f.jpg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리가의 구시가지 ⓒ고건수



Q. 리가의 국립도서관처럼 도시의 문화, 역사와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비판 받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맥락 없이, 뭔가 오브제처럼 세워지는 건물이 있어요. 아시겠지만 DDP도 처음 생겼을 때 건축계에서 정말 논란이 많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곽을 가로지르는 문제, 상징적인 스포츠 경기장을 무시하는 맥락. 사실 지금도 말은 많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도 비판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완공된 후 거기 잔디 광장에 들어가 주변을 바라보니, 아, 주변 건물들이 더 심각한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어느 게 맞는 걸까 생각도 많아지고요. 어쨌든 권력에 좌지우지되고, 과시하기 위해 지어지는 이런 건물들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동네가 읽혀야 하는데 건물만 읽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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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단스크 성캐서린 성당 ⓒ고건수



Q. 언젠가 꼭 짓고 싶은 건축물이 있으신가요?

저의 집입니다. 도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짓고 싶어요. 사실 건축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자본으로 건물을 짓기 때문에 마음대로 디자인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집 하나 정도는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벽돌 소재를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조그마한 걸 계속 쌓아서 만들다 보니까 한 번에 크게 지은 것보다 위압감도 덜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교차가 크고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는 잘 안 맞는 소재예요. 금방 백화 현상이 일어나거든요. 바닷가 마을의 벽돌집들은 특히 이런 이슈가 굉장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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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메트로폴 라피신 미술관 ⓒ고건수



Q. 『이를테면, 그단스크』에 소개된 도시 외에도 건축학적으로 관심 있으신 도시가 있으신가요?

포르투갈의 포르투입니다. 포르투 하면 흔히 옛날 건물들, 고풍스러운 분위기, 파란색 타일 이런 걸 떠올리시지만, 포르투에도 현대 건축물이 많아요. 특히 현대 건축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주 미메시스 사옥을 설계하셨지요. 이분이 포르투에 거주하기도 하셔서 젊은 시절에 설계하신 것부터 아흔이 넘은 지금 설계하시는 것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은 굉장히 오브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자연주의적 시각이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알바로 시자의 제자이면서 저와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소토 무라라는 건축가의 건축물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마침 올 초에 소토 무라의 전시가 열렸는데요, 최근에 3월 말까지 연장됐다고 하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이를테면, 그단스크』에서 독자 분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여행에서는 도시를 보고 건물을 보는 게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떻게 봐야하나 막연한 분들도 많으실 텐데, 이 책을 통해 건축가의 관점은 이렇다 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책을 구성할 때도 각 도시마다 서로 겹치는 건축물이 없게끔 했습니다. 도시마다 성당 이야기만 하면 지루하잖아요? 성당, 시장, 묘지, 도서관 등 건축물의 종류에서도 밸런스를 맞추었어요.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건축물에 호기심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건물은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왜 여기에 있을까, 궁금해 하시기를, 더 나아가 직접 찾고 공부도 하며 건축과 친해지시길 바랍니다.


cbdefa897498a.jpg네덜란드 힐베르쉼 시청사에서 ⓒ고건수




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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