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팝 재즈밴드 '푸딩'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푸디토리움(김정범)은 2009년 5월,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고요하지만 강한 매니아 층을 형성한 그는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담당하며 영화 음악 활동도 펼쳐나가지요. 최근 12년 만에 푸디토리움이 솔로 프로젝트 세 번째 정규 앨범 〈Episode: Hope〉를 발매했습니다. 『음악을 입다』의 저자 백영훈 작가와 함께 듣고 있으면 감정이 출렁이는 음악과 함께 푸디토리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작업실에서 만난 푸디토리움(김정범)
Q. 새 앨범은 이전 두 앨범과 다르게 모두 연주곡이네요.
푸딩이라는 밴드 이후 개인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피아노와 스트링 트리오, 콰르텟으로 앨범을 만드는 것과 한창 음악을 찾아 듣던 어린 시절 이런 음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음악을 긴 여정처럼 생각해서 제가 좋아하는 언어라든지 다양한 나라의 연주자, 음악가 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해 나가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는 피아노 콰르텟, 피아노 트리오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요. 앨범을 많이 내지 못해서 제가 생각했던 여정을 충분히 거쳐 오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앨범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요.

푸디토리움의 세 번째 정규 앨범 〈Episode: Hope〉
Q. 새 음반이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계속 내야지, 내야지 하면서 준비하고 있었어요. 일부러 안 낸 건 아니고요. 사실 이번에도 못 낼 줄 알았어요. 작년 7월쯤인가 이거 또 못 내겠다 싶었거든요.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가 뭘 좀 내려놓지 못했던 것도 같아요. 학교 수업도 그렇고, 아기 아빠가 된 일이라든가, 이런 일들 사이에서 시간을 조율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네요. 사실 제가 겪는 모든 일이 음악하고 일맥상통한 거니까, 제 주위 시스템들을 잘 조율해야 했지요.
Q. 중간에 싱글, EP 없이 바로 정규 음반을 내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CD 세대이고 또 LP 세대예요. 요즘처럼 싱글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지요. 앨범이라 하면 50분이었어요. 싱글이든 정규든 장단점이 있고 싱글들이 쌓여서 앨범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 아주 드문 시대이긴 해요. 저는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 가지고 있는 원래 성격을 좋아해요. 러닝 타임 동안 쭉 들을 수 있다는 것, 듣고 나면 곡 하나하나보다 마지막에 어떤 커다란 감정에 확 사로잡힌다는 것이요. 앨범이 끝나고 나서 한숨을 내뱉는 몇 초가 저한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에요.

정규 앨범은 단순히 러닝 타임이나 몇 곡이 들어갔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음악가가 들려주려는 음악이 앨범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끌고 가야 해요. 클라이맥스가 세 개라 사실상 세 곡으로 분리할 수 있는 곡이라도 하나로 합쳐 8분짜리로 만든다든지, 그 다음에 2분짜리 곡을 잇는다든지, 한 곡이 몇 분이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과연 앨범 러닝 타임 42분간 계속 감정을 끌고 갈 수 있을지 거기에만 집중했어요. 한 곡이 아니라 앨범 끝에 만날 감정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면서 그 지점을 향해 갔던 거지요. 그래서 제 바람, ‘Hope’가 있다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시면 좋겠다는 거예요.
Q. 콰르텟 구성을 현악 스트링이 아니라 피아노와 스트링 트리오 구성으로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보통 고전 음악의 관점에서 4중주는 현악 4중주, 피아노 4중주 그리고 목관 4중주 등 여러 구성이 있는데요. 제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이러한 여러 편성 중 피아노 4중주에 해당하는 피아노 콰르텟(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이었습니다. 제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작곡을 피아노로 하다 보니 피아노 4중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정이었지요.

Q. 연주자들의 연주를 한 번에 동시 녹음을 받으셨지요? 이런 어려운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연주자들과 한 공간에서 실시간 라이브로 녹음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녹음 방식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편집과 같은 과정이 까다로워지거나 또는 후반 믹스에서 여러 제약이 생기기 때문일 텐데요. 물론 이것이 오늘날 디지털 오디오 레코딩의 가장 큰 장점을 잘 누리지 못하는 방식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것은 음악에 맞는 녹음 환경과 진행을 결정하는 것이고, 라이브로 녹음할 것인지 오버 더빙이나 편집 등에 더 큰 초점을 둘 것인지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택인 것이지요.

이번 앨범은 음악의 성격상 공연장에서의 실내악 녹음과 같은 필드 레코딩 현장이 아닌 이보다는 물리적 환경의 제어가 수월한 스튜디오 앨범 사운드가 더 적합한 음악이었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는 악기 소리 간의 간섭이 있도록 실제 라이브 같은 형태의 레코딩이 적합하다고 보았기에 연주자들이 다 함께 한 공간에서 녹음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프로덕션 기간 동안 저를 포함한 연주자들의 집중도와 에너지가 예민하고 균형 있게 조절되어야 했어요. 이 점이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리허설과 레코딩 기간 동안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었습니다.

Q. 앨범 이름 ‘Hope’에는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원래는 ‘바램’으로 하려고 했어요. 맞춤법상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라 해야 하는데, 그 어감에는 제가 의도한 느낌이 실리지 않는 것 같아서 Hope라고 했어요. 희망이라기보다는 ‘바라다’는 뜻을 담고 있고요.
바람을 가지는 이유는 무언가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에는 동시에 그 반대되는 감정이나 상황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강렬하게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걸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면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결국 바람은 내가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그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런 고민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Q. 긴 작업이었는데 앨범 완성 후 혹시 허탈함 같은 건 느끼시지 않았나요?
사실 저는 작업을 마치면 허탈함이 정말 심했어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20대 때는 왜 아이돌만 1등하고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이렇게 적은 걸까, 화가 나기도 했지요.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번 앨범 작업을 마치고는 허탈한 감정이 전혀 없었어요. 푸딩은 제가 곡을 다 쓰기는 하지만 밴드이다 보니 멤버끼리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전 푸디토리움 앨범에도 수많은 연주자가 참여했어요. 이 앨범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정말 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곡을 쓰고 악보가 완성되면 리허설하고 녹음하고 그렇게만 생활했어요.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여기서 악보만 그리고 있었던 거지요.
이거는 녹음을 해도 되겠다 싶으면 했고 아니다 싶으면 안 했어요. 앨범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가 가장 어려웠고, 지금은 앨범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계속 앨범을 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어요. 이 앨범을 못 내면 다시는 앨범을 못 낼 것 같다는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Q. 푸딩부터 이어온 오랜 팬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요리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는 연락을 종종 받긴 합니다만, 저는 팬층이 두터운 음악가가 아니고, 또 음악을 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않았어요. 이 앨범도 12년 만에 냈고, 공연 계획도 없어요. 그러니까 반응보다는 앨범을 완성했다는 안도감이 더 클 수밖에 없지요. 사실 푸딩 시절 혈기 왕성하게 공연을 하고 다닐 때도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맙긴 했지만, 그분들의 평가나 반응이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어요.
인터뷰어 『음악을 입다』의 저자 백영훈 작가
Q. 혹시 이 다음 앨범에 대해 생각해 놓으신 게 있나요?
솔로 피아노 앨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곳에 있는 피아노로 레코딩을 하려고 작년 초부터 엔지니어와 녹음을 해 보고 있어요. 콘셉트처럼 이번 앨범과 연결되는 몇 개의 다리를 만들고 싶어서 업라이트 피아노 연주곡을 쓰기도 했고요. 좀 더 멜로디컬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피아노답게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좀 더 사운드에 가깝게, 피아노 소리가 마치 앨범의 공기처럼 작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멋진 하루〉, 〈어느 날〉, 〈허삼관〉 등 영화 음악도 많이 하셨어요.
사실 영화음악이란 것을 따로 들어본 적도 없었고, 제가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멋진 하루〉도 이윤기 감독님이 회사로 연락을 주셔서 하게 됐고요. 당시 유학 시절이었는데, 그때 하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거기 맞춰서 수업을 들었어요. 〈멋진 하루〉 작업을 맡게 되면서 영화 음악 과목을 많이 들었지요. 그런 인연으로 영화 작업을 이어오게 됐고요.

Q. 지금 창작을 하고 있는 음악인으로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저는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각자의 인생이고, 자신들만의 몫이 있을 거라 믿어요. 저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제가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요. 성실하게 수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 같아요. 가르치는 사람 역시 음악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음악을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발표 공연이 얼마 안 남은 학생에게 곡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보고 악기를 이렇게 해 봐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지금 나도 엉망이야, 내가 오늘 뭐 했는지 아니, 하면서 반응을 주고받아요. 음악 하는 사람에게 동료가 중요한 이유는 서로 배워가면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적어도 음악가 선생님이라면 계속 플레이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계속 발표해야 하고, 계속 평가받아야 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요. 그게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백영훈 / 인터뷰 협조 스톰프 뮤직 / 진행 이주호 / 촬영 신태진
2003년 팝 재즈밴드 '푸딩'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푸디토리움(김정범)은 2009년 5월,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고요하지만 강한 매니아 층을 형성한 그는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담당하며 영화 음악 활동도 펼쳐나가지요. 최근 12년 만에 푸디토리움이 솔로 프로젝트 세 번째 정규 앨범 〈Episode: Hope〉를 발매했습니다. 『음악을 입다』의 저자 백영훈 작가와 함께 듣고 있으면 감정이 출렁이는 음악과 함께 푸디토리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Q. 새 앨범은 이전 두 앨범과 다르게 모두 연주곡이네요.
푸딩이라는 밴드 이후 개인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피아노와 스트링 트리오, 콰르텟으로 앨범을 만드는 것과 한창 음악을 찾아 듣던 어린 시절 이런 음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음악을 긴 여정처럼 생각해서 제가 좋아하는 언어라든지 다양한 나라의 연주자, 음악가 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해 나가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는 피아노 콰르텟, 피아노 트리오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요. 앨범을 많이 내지 못해서 제가 생각했던 여정을 충분히 거쳐 오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앨범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요.
푸디토리움의 세 번째 정규 앨범 〈Episode: Hope〉
Q. 새 음반이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계속 내야지, 내야지 하면서 준비하고 있었어요. 일부러 안 낸 건 아니고요. 사실 이번에도 못 낼 줄 알았어요. 작년 7월쯤인가 이거 또 못 내겠다 싶었거든요.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가 뭘 좀 내려놓지 못했던 것도 같아요. 학교 수업도 그렇고, 아기 아빠가 된 일이라든가, 이런 일들 사이에서 시간을 조율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네요. 사실 제가 겪는 모든 일이 음악하고 일맥상통한 거니까, 제 주위 시스템들을 잘 조율해야 했지요.
Q. 중간에 싱글, EP 없이 바로 정규 음반을 내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CD 세대이고 또 LP 세대예요. 요즘처럼 싱글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지요. 앨범이라 하면 50분이었어요. 싱글이든 정규든 장단점이 있고 싱글들이 쌓여서 앨범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 아주 드문 시대이긴 해요. 저는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 가지고 있는 원래 성격을 좋아해요. 러닝 타임 동안 쭉 들을 수 있다는 것, 듣고 나면 곡 하나하나보다 마지막에 어떤 커다란 감정에 확 사로잡힌다는 것이요. 앨범이 끝나고 나서 한숨을 내뱉는 몇 초가 저한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에요.
정규 앨범은 단순히 러닝 타임이나 몇 곡이 들어갔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음악가가 들려주려는 음악이 앨범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끌고 가야 해요. 클라이맥스가 세 개라 사실상 세 곡으로 분리할 수 있는 곡이라도 하나로 합쳐 8분짜리로 만든다든지, 그 다음에 2분짜리 곡을 잇는다든지, 한 곡이 몇 분이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과연 앨범 러닝 타임 42분간 계속 감정을 끌고 갈 수 있을지 거기에만 집중했어요. 한 곡이 아니라 앨범 끝에 만날 감정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면서 그 지점을 향해 갔던 거지요. 그래서 제 바람, ‘Hope’가 있다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시면 좋겠다는 거예요.
Q. 콰르텟 구성을 현악 스트링이 아니라 피아노와 스트링 트리오 구성으로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보통 고전 음악의 관점에서 4중주는 현악 4중주, 피아노 4중주 그리고 목관 4중주 등 여러 구성이 있는데요. 제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이러한 여러 편성 중 피아노 4중주에 해당하는 피아노 콰르텟(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이었습니다. 제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작곡을 피아노로 하다 보니 피아노 4중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정이었지요.
Q. 연주자들의 연주를 한 번에 동시 녹음을 받으셨지요? 이런 어려운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연주자들과 한 공간에서 실시간 라이브로 녹음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녹음 방식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편집과 같은 과정이 까다로워지거나 또는 후반 믹스에서 여러 제약이 생기기 때문일 텐데요. 물론 이것이 오늘날 디지털 오디오 레코딩의 가장 큰 장점을 잘 누리지 못하는 방식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것은 음악에 맞는 녹음 환경과 진행을 결정하는 것이고, 라이브로 녹음할 것인지 오버 더빙이나 편집 등에 더 큰 초점을 둘 것인지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택인 것이지요.
이번 앨범은 음악의 성격상 공연장에서의 실내악 녹음과 같은 필드 레코딩 현장이 아닌 이보다는 물리적 환경의 제어가 수월한 스튜디오 앨범 사운드가 더 적합한 음악이었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는 악기 소리 간의 간섭이 있도록 실제 라이브 같은 형태의 레코딩이 적합하다고 보았기에 연주자들이 다 함께 한 공간에서 녹음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프로덕션 기간 동안 저를 포함한 연주자들의 집중도와 에너지가 예민하고 균형 있게 조절되어야 했어요. 이 점이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리허설과 레코딩 기간 동안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었습니다.
Q. 앨범 이름 ‘Hope’에는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원래는 ‘바램’으로 하려고 했어요. 맞춤법상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라 해야 하는데, 그 어감에는 제가 의도한 느낌이 실리지 않는 것 같아서 Hope라고 했어요. 희망이라기보다는 ‘바라다’는 뜻을 담고 있고요.
바람을 가지는 이유는 무언가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에는 동시에 그 반대되는 감정이나 상황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강렬하게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걸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면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결국 바람은 내가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그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런 고민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Q. 긴 작업이었는데 앨범 완성 후 혹시 허탈함 같은 건 느끼시지 않았나요?
사실 저는 작업을 마치면 허탈함이 정말 심했어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20대 때는 왜 아이돌만 1등하고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이렇게 적은 걸까, 화가 나기도 했지요.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번 앨범 작업을 마치고는 허탈한 감정이 전혀 없었어요. 푸딩은 제가 곡을 다 쓰기는 하지만 밴드이다 보니 멤버끼리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전 푸디토리움 앨범에도 수많은 연주자가 참여했어요. 이 앨범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정말 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곡을 쓰고 악보가 완성되면 리허설하고 녹음하고 그렇게만 생활했어요.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여기서 악보만 그리고 있었던 거지요.
이거는 녹음을 해도 되겠다 싶으면 했고 아니다 싶으면 안 했어요. 앨범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가 가장 어려웠고, 지금은 앨범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계속 앨범을 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어요. 이 앨범을 못 내면 다시는 앨범을 못 낼 것 같다는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Q. 푸딩부터 이어온 오랜 팬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요리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는 연락을 종종 받긴 합니다만, 저는 팬층이 두터운 음악가가 아니고, 또 음악을 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않았어요. 이 앨범도 12년 만에 냈고, 공연 계획도 없어요. 그러니까 반응보다는 앨범을 완성했다는 안도감이 더 클 수밖에 없지요. 사실 푸딩 시절 혈기 왕성하게 공연을 하고 다닐 때도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맙긴 했지만, 그분들의 평가나 반응이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어요.
Q. 혹시 이 다음 앨범에 대해 생각해 놓으신 게 있나요?
솔로 피아노 앨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곳에 있는 피아노로 레코딩을 하려고 작년 초부터 엔지니어와 녹음을 해 보고 있어요. 콘셉트처럼 이번 앨범과 연결되는 몇 개의 다리를 만들고 싶어서 업라이트 피아노 연주곡을 쓰기도 했고요. 좀 더 멜로디컬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피아노답게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좀 더 사운드에 가깝게, 피아노 소리가 마치 앨범의 공기처럼 작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멋진 하루〉, 〈어느 날〉, 〈허삼관〉 등 영화 음악도 많이 하셨어요.
사실 영화음악이란 것을 따로 들어본 적도 없었고, 제가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멋진 하루〉도 이윤기 감독님이 회사로 연락을 주셔서 하게 됐고요. 당시 유학 시절이었는데, 그때 하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거기 맞춰서 수업을 들었어요. 〈멋진 하루〉 작업을 맡게 되면서 영화 음악 과목을 많이 들었지요. 그런 인연으로 영화 작업을 이어오게 됐고요.
Q. 지금 창작을 하고 있는 음악인으로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저는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각자의 인생이고, 자신들만의 몫이 있을 거라 믿어요. 저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제가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요. 성실하게 수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 같아요. 가르치는 사람 역시 음악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음악을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발표 공연이 얼마 안 남은 학생에게 곡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보고 악기를 이렇게 해 봐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지금 나도 엉망이야, 내가 오늘 뭐 했는지 아니, 하면서 반응을 주고받아요. 음악 하는 사람에게 동료가 중요한 이유는 서로 배워가면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적어도 음악가 선생님이라면 계속 플레이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계속 발표해야 하고, 계속 평가받아야 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요. 그게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백영훈 / 인터뷰 협조 스톰프 뮤직 / 진행 이주호 / 촬영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