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의 꿈 당신의 삶, 흐르다 - 영화 <흐르다> 김현정 감독

2023-04-12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으로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입문반〉으로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김현정 감독. 첫 장편 데뷔작인 〈흐르다〉 개봉에 맞추어 독립영화계의 신예로 떠오르는 김현정 감독을 만났습니다. 부녀 관계와 꿈,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을 담은 이번 작품에 관하여, 감독이 앞으로 걸을 여정에 관하여 이야기해 봅니다.


47956a34f4c82.jpg김현정 감독



Q. 〈흐르다〉 언론 시사회가 막 끝났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봤어요. 잘한 부분도 있고 좀 더 손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흐르다〉를 촬영한 건 2020년이고,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한 이후 시간이 꽤 지났지요. 원래는 작년 11월 개봉 예정이었는데 그때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시기가 조금 밀렸어요. 사실 독립영화는 개봉 자체가 힘든 일이어서 어쨌든 이렇게 개봉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해요. 


6fd0b82b33b5d.jpg영화 〈흐르다〉 포스터



Q. 관객 반응이 어떤 것 같았나요.

초반에 유머 코드라고 심어놓은 건 아니었는데 웃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좋았고, 영화 중반이 잔잔하게 진행되는데 끝에 가서 감정적 울림을 줄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영화 만들면서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영화 후반부에서 관객 몇몇 분들이 좀 훌쩍이시는 것 같아서 그래도 영화가 작은 힘은 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Q. 그간 단편과 중편은 영화제 중심으로 상영을 하였고 이번 장편 영화는 일반 관객에게 공개됩니다. 

오히려 마음이 좀 가벼워요. 극장 개봉에는 관객 수라는 스코어가 부담이긴 하지만 영화제는 영화끼리 경쟁하는 구도가 있거든요. 좀 더 긴장하게 되고 두려움도 커요. 극장 개봉은 오롯이 〈흐르다〉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와주시는 분들일 테니 스코어와 무관하게 조금은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요.




Q. 장편이라는 길이를 떠나 변수가 많았다고 하셨지요.

섭외 과정부터 어려움들이 많았어요. 로케이션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고, 특히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영화를 찍게 되어서 제약이 많았어요. 공장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데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섭외를 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바람에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영화 촬영 날짜 일주일 전에야 겨우 섭외가 됐는데 정말 벼랑 끝에서 성공한 거였지요. 촬영 중간에도 여러 일들이 많았고요. 


반대로 생각하면 절망 끝에 있을 때 기적 같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Q. 단순히 길이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독립영화라도 보통은 현장 편집 시스템이 갖춰 있어서 현장에서 촬영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흐르다〉 현장에선 예산 여건상 그런 환경을 갖출 수가 없어서 머릿속으로 이 영화의 호흡을 상상하면서 긴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도 호흡이나 리듬감을 생각하지만, 실제 영화를 촬영하면서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는 계속해서 상상해야 하거든요. 저희가 총 25회차, 한 달 반 정도 촬영을 했는데요, 그 기간 동안 계속 전체 작품을 상상하면서 갔지만, 촬영하며 우려가 되었던 부분은 확실히 편집실에서도 드러나더라고요. 설명적이라든가 늘어진다든가, 편집실에서의 고민이 많았어요.


99c3779328694.jpg〈흐르다〉 스틸 컷



Q. 〈입문반〉의 가영이나 〈흐르다〉의 진영 모두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어요. 이런 설정의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런 시기가 아직까지 저에게 흥미 있게 다가와요. 영화적으로 더 해 볼 수 있는 설정들이 따라오기도 하고요. 경계에 있는 나이 때라든가, 뭔가 시작하는 단계라든가, 그럴 때 사람 마음에 어떤 욕망과 열정이 가장 크게 이는데, 현실은 그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부딪치거나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겨나다 보니 영화 안에서 표현해 낼 흥미 있는 요소가 많아지지 않나 싶어요. 



Q. 감독님이 첫 단편을 찍은 때가 스물아홉, 〈흐르다〉의 진영은 서른입니다. 

제가 딱 스물아홉에 영화를 시작했는데 초반 2, 3년간은 시나리오 공부에 집중하다가, 현장 경험이 있으면 글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스텝 일을 하게 됐어요. 영화 연출은 진짜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다 시나리오가 제작 지원을 받게 되면서 연출을 하게 됐는데, 그냥 재미있어서 했고 그때도 장편까지 만들게 될 줄을 몰랐어요. 


서른은 사회 통념상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잖아요. 진영은 그런 통념에 휘둘려서 억눌러진 상태이면서 그 상태를 깰 수 있을까 딜레마를 겪는 인물이에요. 아무래도 제 삶의 면면들이 반영이 된 것 같아요. 그 당시 저도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생각했고, 그래도 괜찮으니 조금은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봐, 목소리를 좀 내 봐 생각했어요. 이런 응원하는 마음을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50385e8e027d3.jpg〈흐르다〉 스틸 컷



Q. 그러면서도 줄곧 그래 왔듯 〈흐르다〉에서도 관계 문제를 다루셨어요.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가족이라든가 친구라든가 동료에게, 크지는 않아도 서로에게 무언가 바라는 지점들이 있는데 각자 원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관계에 충돌이나 불균형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흐르다〉 속 엄마는 소소한 가족의 행복을 바라지만 남편은 본인의 성취 같은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요. 각자 다른 데 사로잡혀 있는 욕망들이 수면 위에서 만날 때 서로 아껴 주어야 할 관계가 어그러지게 되지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진솔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그런 관계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Q. 관계 중에서도 부녀 관계는 특히 힘든 주제 아니었나요?

저도 아버지와 관계가 되게 서먹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무슨 얘기를 나눌까, 어떤 장면이 그려질까 굉장히 궁금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두 사람을 붙여 놓을 상황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외부적인 설정이 필요했어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뭔가 도움이 필요하고, 이런 설정들을 넣어서 물리적으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Q. 진영은 왜 그토록 그 관계를 떠나고 싶어 했을까요?

나이 서른까지 뭔가 대단히 이룬 게 없고 본인이 해 왔던 선택들이 결과를 내지 못했어요.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더 큰 반발 심리로 나는 외국계 회사를 갈 거야, 나는 외국에서 살 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진영의 선택도 오롯이 자기만의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더라도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면 이전과 전혀 다른 선택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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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다〉 스틸 컷


Q. 대구에서 영화를 만들고 계시지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구라는 이유로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네, 강하게 있어요. 〈흐르다〉에서 담아내는 부녀는 지역 범위를 좁혀 제게 가장 익숙한 설정이에요. 경상도 가정의 부녀 관계에는 표현의 부재라는 문제가 있고, 그걸 위주로 묘사하려 했던 거지요. 제 영화 속 인물들은 다들 결핍이 있어요. 넓은 곳으로 가야 기회도 많고 성공한 삶을 향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내심 자기 지역을 좁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저도 초반에는 대구에서 어떻게 영화를 찍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요. 여기는 아주 흥미로운 사람들이 많다, 서울이 아닌 변방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작년엔 강원도에서 작업을 했는데요, 앞으로도 지역에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다니며 활동하게 될 것 같아요.


39bcebdbf7c44.jpg〈흐르다〉 김현정 감독



Q. 이설 배우를 만나게 된 과정을 알려주세요. 

배우를 찾을 당시 이설 배우 님 소속사에서 제안을 해 주셨고, 그분 이미지를 찾아보면서 완전히 반해 버렸어요. 첫 제안은 소속사 쪽에서 주셨지만 최종적으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출연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배우님의 몫이니까 저는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마냥 기다렸어요. 솔직히 안 하실 줄 알았어요. 이설 배우님이 출연한 작품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찾아보면서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커졌어요. 독립 영화를 계속 하다 보니 눈여겨 본 배우들 있긴 했지만 이설 배우님을 계속 기다렸고, 다행히 같이 하게 되었어요. 



Q. 이제 남은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29일이 정식 개봉일이에요. 처음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이설 배우님과 GV를 다니게 될 것 같고요, 그 다음에는 조연 분들, 편집 기사님과 함께하는 GV가 잡혀 있어요. 나중에는 지역에 있는 독립 영화관들에도 찾아가게 될 것 같아요. 



Q. 다음 작품 계획도 있으신가요?

작년에 찍은 단편 하나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요. 제목이 〈유령극〉인데, 오래된 극장을 배경으로 하는 25분짜리 단편이에요. 단편 섹션으로 묶여 서너 편의 다른 작품과 함께 상영될 거예요. 전주영화제에 오시는 분들 계시면 한번 보러 와주시면 좋겠어요. 


d89411718825d.jpg김현정 감독의 단편영화 〈유령극〉 중에서 /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그리고 작년 여름 찍은 작품의 후반 작업을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흐르다〉 이후 공식적인 두 번째 장편을 하고 싶어요. 첫 번째 작품은 감독이 모든 걸 갈아 넣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거고, 그래서 두 번째 작품부터 진짜라는 얘기가 있어요. 저도 그런 이야기에 신경을 쓰면서 너무 늦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Q. 모든 걸 갈아 넣었는데, 금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영화를 하며 다시 태어났어요. 20대까지만 해도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어떤 선택을 해도 제 자신을 믿지 못했어요. 영화를 하면서 어려움은 많았지만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고, 제 삶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을 영화로 끄집어내며 성장할 수 있었어요.


〈흐르다〉는 저한테 너무 어려웠던 작품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결국 또 하고 싶은 얘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또 영화를 찍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어요. 영화라는 게 제가 살아가는 많은 것들과 너무나 가깝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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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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