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국에서 모국어로 쓰는 시 - 『여름 가고 여름』의 채인숙 시인

2023-05-25

2015년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채인숙 시인이 최근 그의 첫 번째 시집 『여름 가고 여름』을 펴냈습니다. 1999년부터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시인은 인도네시아의 신화 서사를 독자적인 언어로 표현한 시로써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출간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채인숙 시인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475f78809a575.jpg채인숙 시인



첫 시집 『여름 가고 여름』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니까 스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거네요. 중간에 방송 작가 생활을 하다가 인도네시아로 옮겨갔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시와 떨어져 있었어요. 다시 몰입해서 시를 쓴 건 2010년 정도부터인 것 같아요. 그동안 썼던 시들을 골라서 등단이라는 걸 한번 시도해 볼까 했던 때가 2015년이고, 운 좋게 첫 투고에서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게 됐어요. 등단하고 나서 시집을 묶기까지 7년 정도 걸렸네요.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던 때로 따지면 30년이 넘는 거고요.


시집은 4부로 구성되는데, 어떻게 보면 시간 역순으로 나뉘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음사 편집부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셨는데, 워낙 시집을 많이 다루시는 분들이니까 그 시간들을 금방 눈치채고 그렇게 구성하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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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시인의 시집, 『여름 가고 여름』



인도네시아, 이국의 정서 

많은 분들이 이국적이란 표현을 하시는데 제가 그곳에 산 지 24년이니까 과연 저에게도 이국적인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익숙해진 거겠지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제 나라일 수는 없다는 생각은 자주 해요. 나라 자체의 특성도 있어요. 인도네시아는 너무 큰 나라고, 섬마다 같은 나라라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언어, 옷차림, 음식, 다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저 역시 이국의 인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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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시인이 거주하는 중부 자바의 풍경 ⓒ채인숙



신화 서사가 시가 되기까지

저는 원래 소설 창작 전공이었는데 시를 쓰시는 선배님의 권유로 동인에 들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 안에 이야기를 녹이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 소설적인 시, 시적인 소설. 그런 것에 잘 홀려요.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시로 쓰고 싶다, 그런 갈망이 있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인도네시아는 아주 적합한 나라예요. 서사가 너무나 많고 사방 천지가 신화인 나라니까요. 


게다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신화를 단지 신화로만 생각하지 않아요. 전통이나 신화, 종교가 곧 생활이고 삶이에요. 제가 사는 족자카르타엔 몇 년마다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일어나요. 여기 사람들은 화산이 터지는 걸 산이 기침한다고 표현해요. 얼마나 생활적이고 은유적인지... 심심하면 화산이 터지고 용암이 흐르고 지진이 일어나니, 신을 향한 기도가 일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 자연을 어쩌진 못하잖아요. 동네 길 5미터마다 각종 귀신이 살고 있고 온갖 종교 사원이 있어요. 제가 신화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집 2부까지는 거의 인도네시아 신화, 전설, 현지에서 살면서 제가 겪고 들었던 이야기, 방송국 촬영 코디네이터를 하며 경험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3132c34dc52ce.jpg채인숙 시인 제공



편지를 쓰듯, 안부를 전하듯 

시집을 내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제게 시가 무엇이었느냐는 거예요. 저한테 시는 안부를 묻는 거였어요. 들을 사람도 없고, 받을 사람도 없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전하는 안부였고, 내가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을 때는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아서 이메일 한 통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어요. 


제가 그리워했던 것들, 사람들, 대상이 있든 없든 제가 쓰는 편지가 시가 된 거예요. 한국에서 시를 썼다면 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깊어졌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절절하게 외롭다 보니, 그저 저 개인의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었어요. 시집을 엮으면서도 이게 시가 맞나 굉장히 많이 의심했어요. 그 역시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겠지만, 어쨌든 그런 의심을 하는 데 참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만이 쓸 수 있는 시가 된 것일 수도 있고요. 


c44c2e8a51d55.jpg중부 자바 풍경 ⓒ채인숙



신전을 오르며, 신의 이름을 갈망하며 

신에 대한 문제를 굉장히 오래 고민했어요. 가톨릭에 굉장히 심취했던 긴 시간이 있었어요. 의심의 여지 없이 종교 안에 몰입했던 때였어요. 어떤 계기로 약간의 거리를 두게 됐고, 그러면서 근본적인 고민이 다시 시작됐어요. 그러니까,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부터요. 결론은 그래요. 어디에나 사랑이 있고, 어디에나 미움이 있듯 세상천지 어디에나 신은 존재한다. 심지어는 우주 너머까지라고 믿어요.   


인도네시아는 원래 힌두 국가였는데, 불교가 들어왔다가 이슬람 국가로 변하는 과정을 겪었어요. 결국 온갖 종교 사원이 다 남게 됐어요. 이슬람 사원이 마을 곳곳에 있는 거야 당연하고 세계 최대의 단일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과 힌두의 프람바난 사원이 대표적이죠. 특히 제가 사는 중부 자바는 신들의 땅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원이 있어요. 가톨릭 성지도 많고요. 저 역시 종교를 불문하고 온갖 사원을 찾아 떠돌았는데, 무슨 신을 찾겠다고 헤맨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보다 훨씬 현실적인 이유였어요. 외로워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서 계속 사원에 올랐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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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사원 ⓒ채인숙


저의 시 「아홉 개의 힌두 사원으로 가는 숲」에 나오는 힌두 사원은 실제 아주 높은 산 위에 있는 사원이었어요. 말을 타고 굉장히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는데,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러다 말 타는 데 약간 익숙해지면서 그제야 저 아래 마을들이 나무 사이로 들어왔다 사라졌다 하더라고요. 내가 신을 찾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였어요.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가, 이유를 알았다가 몰랐다가, 알고 싶었다가 외면했다가… 그 순간을 어떻게 시로 쓸까 궁리하다 사원을 오르는 과정 전체를 필름으로 옮기듯 썼던 거였어요.


c3601c36dacbc.jpg아홉 개의 힌두사원이 있는 숲으로 가는 길  ⓒ채인숙



인간에게는 결국 고향이 필요한 걸까?

저는 한국을 와도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삼천포에 잘 가지 않았어요. 가도 오래 머물지를 않았고요. 멀기도 하고 친구들과는 오래 소식이 끊겼지요. 그러다 SNS 덕분에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됐는데, 물론 바닷가 사람들 특유의 정서도 있지만, 이 친구들이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조금의 거리낌 없이 나를 포옹해 주었어요. 


외국에서 산다는 건 기본적으로 불안감을 안고 사는 거예요. 아무리 익숙해지고 동화되었다 하더라도 마음 한 군데는 언제나 불안과 의심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그 경계나 의심, 불안함을 완전히 배제하고 만나도 되는 존재가 고향에 있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그게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건지도 몰라요. 젊었을 때는 그게 보이지도 않았고, 고향을 들먹이거나 거기서 연대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불편하기도 했어요. 고맙게도 제가 약해지니까, 아프니까, 항복하게 되더라고요. 나이 들며 조금 유연하게 객관화가 된 걸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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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db9d00a8bba8.jpg중부 자바 사람들 ⓒ채인숙



시를 열망하고 산 세월

제법 거리 두기를 잘해 왔어요. 그러다 시를 본격적으로 쓰면서 저도 몰랐던 병적인 열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처음엔 시에 대해서 품고 있던 마음 자체를 터뜨리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할 것 같았어요. 내가 시를 만나고 사랑하고 외면당하고 떠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애원하고 몰입하고... 그런 과정들을 시로 많이 썼어요. 마치 열렬한 연애시처럼요. 하지만 그런 시일수록 이게 과연 시일까 의심이 들었어요. ‘습작 일기’ 같은 시들이 그런 마음을 다 쏟아냈던 초창기 시들 중 하나예요.



여름 가면 또 여름

한국은 계절 변화가 있고 그 변화 안에서 생활의 변화가 있지요. 1년 내내 여름옷을 입고, 여름 감정으로 사는 삶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8,000일 넘는 시간을 한 계절만 보낸 거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즐긴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견뎌가면서 사는 거였어요. 나의 시들을 대표하는 게 뭘까, 내 삶을 대표하고,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게 뭘까 생각하니 그게 ‘여름’이었어요. 내가 사는 곳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고, 내가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여름의 서사들을 시로 썼기 때문에, 『여름 가고 여름』이라는 제목이 모든 걸 응축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를 쓰는 여름밤 

이 시집을 묶으려고 원고를 정리하면서 왜 모든 시에 여름이 등장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어요. 여름이 아닌 계절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여름이 아닌 계절에 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공간에서 있었는지 다 잊혔어요. 한국에서조차 기억나는 밤이 여름밤이고 바다도 여름 바다예요. 잊힌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기가 너무 힘들어졌어요.


c97c6a393fba2.jpgⓒ채인숙



사계절을 보냈다면 덜 외로웠을까?

이건 좀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되겠지만...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15일간 병실에서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자세히 지켜보게 되었죠. 결국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구나 생각했어요. 그저 한 줌의 가루로 돌아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없어졌어요. 영혼의 문제를 떠나, 결국 죽는다는 건 내 육체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비워 내는 거더라고요.

 

언젠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네덜란드인들을 위한 묘지에 간 적이 있어요. 이국에서 죽은 이 사람들의 영혼은 얼마나 외로울까 싶었어요. 지배자로 왔건 지배를 당해 왔건 외로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에게도 이국에서 나눈 사랑이 있고 추억이 있겠지 생각하면서 「네덜란드 인 묘지」라는 시를 썼어요. 그들도 사계절이 있는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들이었죠.


사실,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많이 하고 살았어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식으로 장례를 지내기 때문에 죽은 다음 날 바로 매장을 해요. 화장은 허용되지 않고요. 물론 요즘은 중국인들이 장례를 치르는 화장터와 장례식장도 많아졌지만 내 마지막 육신조차 이국에 묻히고 어느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굉장히 외롭고 두려웠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뼈를 작은 손수건 같은 데 싸서 땅에 묻고 나니, 죽음으로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섞인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자연 안에서 우리는 어디서든 만나거나 헤어지는 존재가 될 수 있어요. 너무 다행인 거죠. 그건 완전한 자유를 얻는 거예요. 사계절이 있건 없건... 너무 이야기가 멀리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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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이국에서 모국어로 쓰는 시

시를 쓰려는 사람들은 비극을 쌓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비극과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게, 주로 태생적이고 유전적인 문제겠지만요. 게다가 저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동네에 살고 있고, 한국어를 쓰는 시간이 하루에 30분도 채 되지 않아요. 민음사 편집자가 처음 제 시를 읽고 ‘어디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는 시 같다’라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은 제 시가 전형적인 틀 안에서 보면 그리 좋은 시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몰라요. 낯선 이미지고, 한국의 시인들이 쓰지 않는 언어가 들었고, 쓰지 않는 이야기라는 거겠지요. 누구에게도 평가 받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의 언어, 그게 제가 쓰고 싶은 시예요. 한국어이고 모국어이긴 하나 한국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다르게 들리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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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열망을 터뜨리고 난 다음의 시

첫 번째 축제가 무사히 끝났어요. 다음은 아직 생각 못 했어요. 시를 쓰기 시작해서 시집 한 권을 묶기까지 30년이 흐른 거잖아요. 부끄럽다, 민망하다, 이런 겸손한 소회를 밝히면 좋겠는데, 하나도 겸손해지지가 않아요. 그냥 시원해요. 30년 동안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숙제 하나를 내려놓았다는 후련함이 너무 커요. 그다지 성취는 아닐지 모르지만 해방은 확실해요. 아, 숙제에서 해방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다음 시집은 첫 번째보다 더 빨리 나올 수도 있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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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장소협조 데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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