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하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라면 불현듯 예술적 감수성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기도 하지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랫동안 큐레이터로 일한 류지연 과장을 멋진 한옥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하여, 예술에 좀 더 가까워지는 법에 관하여 들어보았습니다.
Q. 멋진 한옥에 살고 계십니다. 언제 이사를 오셨나요?
2018년 12월에 이사를 왔어요. 이 집은 등기상 1945년 5월에 지어졌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 전에 지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목재가 아주 좋고, 내부에 사찰이나 궁궐 등 규모가 큰 한옥에만 적용하던 양식이 적용되어 있어요. 한옥에 살고 싶은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옛날 것들을 활용해서 재사용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 집도 그런 생각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앞뒤로 작지만 마당이 있고, 미술관과 멀지 않고, 여러 조건이 맞았어요.
현판도 원래 달려 있던 것인데, 백세청풍(百世淸風: 오래도록 부는 맑은 바람), 인담여국(人澹如菊: 사람의 마음 담담하기 국화와 같다), 경운조월(耕雲釣月: 구름을 갈고 달을 낚는다), 글귀 뜻이 다 좋아서 그대로 놔두고 있어요.



Q.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언제부터 일하셨나요?
1996년 2월부터예요. 과천, 서울, 덕수궁 여러 관을 두루 다녔어요. 거의 전시 쪽이었고, 비교적 최근에는 미술관교육과와 소장품과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Q.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 새로운 방향으로 작가와 작품을 보여주려고 해요. 미술사적 가치를 부여하는 거지요. 전시를 준비할 때는 항상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해요. 그게 사회적인 가치일 수도 있고 미술사적 가치일 수도 있어요. 작가의 개인의 상황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중요하고요.
국립이다 보니 사회, 정치, 외교, 여러 변화상이 바로바로 반영되는 편이에요. 한동안 국내 작가들이 프랑스와 독일로 유학을 많이 간 적이 있는데, 저희가 운영하는 레지던시도 자연스럽게 그런 경향을 보이게 되는 식이지요.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진행 중인 〈워치 앤 칠 3.0〉 전시는 팬데믹의 영향을 받은 전시인데, 코로나 기간 동안 외국은 록다운이 훨씬 심했지요. 그래서 국외 미술관의 작품을 갖고 들어오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물질적으로 오갈 수 없는 상황이니 ‘미디어아트’를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 하여 〈워치 앤 칠〉을 기획한 거예요. 온라인 스트리밍처럼 여러 미술관이 소장한 미디어아트를 관람하는 것이지요. 첫 번째는 아시아권, 두 번째는 유럽권, 올해는 미주권과 연계해서 작품을 상영하고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전시관 내외부
Q.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생각하면 우선 다양성이 떠오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다양성의 기준도 달라졌어요. 제가 처음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그런 의식은 있었어요. 당시엔 주 관객층이 성인이다 보니까 일단 어린이, 학생 관람객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2천 년대 들어서며 어린이, 학생이 기존 관람객 대상 안으로 흡수되고, 노년층이 새롭게 등장했어요.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는 장애인, 다문화 가정, 지역 불균형에 집중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있어요. 거기에 성소수자를 향한 시선이 작품에 어떻게 편견 없이 드러나는지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요.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에 주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 중인 〈게임 사회〉는 비디오 게임이 미술에 미친 영향에 주목한 전시에요. MoMA, 구겐하임, 스미소니언 등에 소장된, 마치 게임과 같은 구조를 지닌 미디어 아트들을 빌려와 현장에서 보여주지요. 사회적인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기에 그 안에서 장애인, 성소수자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해요. 그런데 이 전시에는 필연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콘트롤러가 필요합니다. 저희도 배리어 프리를 신경 써서 국립재활원과 함께 개발한 장애인용 콘트롤러도 준비했는데, 전시를 시작하고 피드백을 받으니 콘트롤러가 놓인 구조물, 그러니까 좌대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이들도 콘트롤러를 쥘 수 있는 높이까지는 맞추어 놨는데, 휠체어는 들어갈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즉시 전부 교체했습니다. 이렇듯 사회적인 다양성, 중요한 이슈가 생각보다 미술관에 바로바로 수용되고 반영되는 편이에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게임 사회〉 중
Q. 같은 기간에 여러 전시를 동시에 기획할 때 고려하는 상황도 있나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예로 들면 현재 〈게임 사회〉, 〈워치 앤 칠 3.0〉,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이 진행 중인데, 〈게임 사회〉, 〈워치 앤 칠 3.0〉이 미디어 아트 위주이다 보니 자칫 현대미술이 그런 것만 있나 하는 오해를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60~70년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라는 전시로 선보이며 균형을 맞춘 거예요. 6월 16일부터 소장품 전시가 열리는데 그 전시는 1990년대가 중심이에요. 그래서 전시 제목도 〈백 투 더 퓨처〉라고 지었답니다.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은 5년 전부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준비하여 공동 주최한 전시에요. 구겐하임 미술관이 최근 10년 동안 아시아의 현대미술 전시를 많이 열었어요. 중국, 일본을 거쳐 이제는 한국의 작품을 전시할 차례가 된 것이지요. 구겐하임 쪽에서 저희에게 먼저 접촉을 해 왔는데, 저희에게도 한국 작품들을 국외 관람객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 중인 전시
Q. 지금까지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셨을 텐데 혹시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으신가요?
1996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와 처음 맡았던 전시가 〈근대를 보는 눈〉이었어요. 당시에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였고 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근대를 보는 눈〉은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미술사에 있어서 근대 쪽으로 다시 한 번 눈을 돌리게 된 가장 대표적인 전시였어요. 유화, 한국화, 조각, 공예 이렇게 장르별로 묶었고 당시 전시에서 나온 작품과 연구 결과가 이후 많은 전시에 영향을 미쳤어요.
그러다 1998년 10월인가, 덕수궁관을 열며 그곳에서 근대미술을 집중해서 보여주게 되었어요. 워낙 인력이 부족해 덕수궁관 큐레이터가 저 혼자였지요. 그때 혼자서 뛰어다니던 기억에 많이 남아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열 때도 비슷했어요, 과천, 서울, 덕수궁 세 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전시 준비를 했어요. 그러는 동안 배우는 게 정말 많았지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중
Q. 전시 기획자로서의 생활습관이 있나요?
뉴스를 많이 봐요. 사실을 재해석하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요. 미술 작품도 결국 어떤 현상이라 다음에 뭐가 나오고 또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인구는 줄고 있고, 그 인구마저도 대도시로 집중되며 지방 학교 수가 줄고 있어요. 그런데 현장 이야기로는 이렇게 통폐합된 학교 학생들의 문화 체험 기회가 오히려 많다고 해요. 4박5일 대도시로 문화 체험을 가서 미술관, 박물관을 관람하고 뮤지컬도 보는 거지요. 반면 이런 예체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약한 분야가 ‘미술’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교육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미술 키트를 만들어 지역에 배포했어요. 그게 반응이 아주 좋았고, 취지에 공감한 몇몇 기업이 투자를 해서 2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졌어요.
이처럼 사회 현상과 현장 상황을 알면 미술관 담장을 넘어서 여러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전시나 프로그램의 후속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다양한 접점을 찾고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Q.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들의 미술관 인증이 인기이지요.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미술에 관한 관심은 10년을 주기로 오르락내리락해요. 마치 주식처럼 한 번 정상을 찍고 모든 관심과 자본이 집중되었다가 1, 2년 지나면 훅 꺼져 버리죠. 1996년은 관심이 수그러들 때였어요. 그러다가 2006~2007년도에 30, 40대 작가들이 인기를 얻으며 활황을 맞았지요.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2017년쯤 미술계가 활성화되어야 할 주기였는데, 당시 촛불집회가 있었어요. 2020년에는 팬데믹이 터졌고요. 미술 붐이 일어날 상황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역량은 계속 축적되고 있었어요.
코로나로 외국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장기화되자 사람들은 국내에서 이색적이고, 내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미술관이었던 것 같아요. 디뮤지엄 등에서 열린 몇몇 기획 전시가 큰 성공을 거두며 사람들이 전시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면도 있고요. 그 관심이 국공립 미술관으로도 넘어온 것이지요.
사실 미술관은 저렴해요.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을 제외하고는 장식도 별로 없으니까 셀카를 찍기도 좋지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기증전이 열리며 노년층의 관심이 높아졌고, 이런 상황들이 맞물리며 2022년은 오랜만에 정점을 찍은 시기였어요. 어마어마한 관람객들이 찾아오셨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Q.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른 미술관과 갖는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아요. 기존 전시에서 연결 고리를 만들어 다음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과천관에서 1960~70년대의 시대사적인 소장품 전시를 했는데, 그 전시를 본 사람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하는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을 본다면, 흐름이 한 번에 이해가 될 거예요. 4개관의 전시가 서로 연계되고 이어진다는 점이 국립미술관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국립이라 저렴해요. 1천 원, 2천 원, 부담 없이 보실 수 있어요. 관람에 재미를 붙이신 분들은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보셔도 좋으실 거예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Q. 흔히 말하는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요?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중세시대 작가가 있어요. 판화로 유명한 작가인데, 저희가 뒤러 전시를 한다니 현대미술관이 왜 중세시대 판화를 전시해야 하는가, 의견이 많았어요.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판화라는 것 자체가 ‘복제’ 개념인데,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복제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중세시대 작품이라 해도 현대적인 요소가 있는 거예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현대성’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현대미술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 스스로,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본인이 원하는 방식과 재료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요.
인상주의 때 처음 작가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현상을 그림으로 옮겼어요. 그 후 마르셀 뒤샹 같은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작품으로 옮겨냈지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미술관교육과 쪽에서
현대 미술은 재료의 선택도 다양해요. 전통적인 붓, 나이프를 선호하는 분들도 있지만, 예를 들어 피카소는 소머리 조각을 만드는 데 자전거 안장을 떼다가 바꿔서 거는 식으로 표현을 했고, 뒤샹은 모자걸이를 뒤집어 거미처럼 보이게 했어요. 이렇듯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기한테 맞는 방식이나 질감을 찾는 데 시간을 굉장히 많이 할애하게 됩니다.
결국 현대성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를 할 때도 본인이 생각한 것들을 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해 놓으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 기록이 언제 어떻게 자신의 작품에 연관이 될지 모르고 그 자체로도 작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추상, 현대미술만이 아니라 고전을 바라보더라도 작가가 표현했던 바와 관람객이 느끼는 바와 그 중간에 있는 큐레이터들이 전시를 기획하며 이야기하려는 바가 다 다를 수 있어요. 정답이 없다, 그것도 현대미술의 특징인 것 같아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추상미술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거예요. “자, 오늘은 노란색 네모를 보고 가셨습니다.” 하는 거지요. 그걸로 됐어요. 예술을 향유하는 유일한 방법도, 절대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미술관교육과 쪽에서
Q. 그래도 과장님께서 작품을 보는 방식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일단 설명이나 이런 것 없이 작품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연도, 사이즈, 재료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바로 작품을 마주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전시를 굉장히 많이 보러 다니는데 예전에는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같은 큰 전시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한 작가의 개인전을 더 많이 보고 있어요. 비엔날레는 기획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아요. 반면 개인전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작가가 몇 년 동안 자기가 생각하고 작업한 것들을 온전히 다 쏟아 붓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관람객으로서 개인전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Q.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술을 꼭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20대까지는 국영수, 이성의 시기예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지요.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은 감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더 발전시킬지 노력하는 음미체(음악‧미술‧체육)의 시기를 살아가요.
꼭 대단한 일이 아니라 노래방을 다닌다든지 헬스를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든지, 아니면 패션에 신경을 쓴다든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에요. 조금 더 예쁜 거, 조금 더 맛있는 걸 찾는 일들이요. 물론 예술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일 역시 그런 감성의 영역에 포함되고요. 제가 예술 가까이 머무는 이유는 이거예요.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지요.

'현대미술' 하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라면 불현듯 예술적 감수성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기도 하지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랫동안 큐레이터로 일한 류지연 과장을 멋진 한옥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하여, 예술에 좀 더 가까워지는 법에 관하여 들어보았습니다.
Q. 멋진 한옥에 살고 계십니다. 언제 이사를 오셨나요?
2018년 12월에 이사를 왔어요. 이 집은 등기상 1945년 5월에 지어졌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 전에 지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목재가 아주 좋고, 내부에 사찰이나 궁궐 등 규모가 큰 한옥에만 적용하던 양식이 적용되어 있어요. 한옥에 살고 싶은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옛날 것들을 활용해서 재사용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 집도 그런 생각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앞뒤로 작지만 마당이 있고, 미술관과 멀지 않고, 여러 조건이 맞았어요.
현판도 원래 달려 있던 것인데, 백세청풍(百世淸風: 오래도록 부는 맑은 바람), 인담여국(人澹如菊: 사람의 마음 담담하기 국화와 같다), 경운조월(耕雲釣月: 구름을 갈고 달을 낚는다), 글귀 뜻이 다 좋아서 그대로 놔두고 있어요.
Q.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언제부터 일하셨나요?
1996년 2월부터예요. 과천, 서울, 덕수궁 여러 관을 두루 다녔어요. 거의 전시 쪽이었고, 비교적 최근에는 미술관교육과와 소장품과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어요.
Q.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 새로운 방향으로 작가와 작품을 보여주려고 해요. 미술사적 가치를 부여하는 거지요. 전시를 준비할 때는 항상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해요. 그게 사회적인 가치일 수도 있고 미술사적 가치일 수도 있어요. 작가의 개인의 상황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중요하고요.
국립이다 보니 사회, 정치, 외교, 여러 변화상이 바로바로 반영되는 편이에요. 한동안 국내 작가들이 프랑스와 독일로 유학을 많이 간 적이 있는데, 저희가 운영하는 레지던시도 자연스럽게 그런 경향을 보이게 되는 식이지요.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진행 중인 〈워치 앤 칠 3.0〉 전시는 팬데믹의 영향을 받은 전시인데, 코로나 기간 동안 외국은 록다운이 훨씬 심했지요. 그래서 국외 미술관의 작품을 갖고 들어오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물질적으로 오갈 수 없는 상황이니 ‘미디어아트’를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 하여 〈워치 앤 칠〉을 기획한 거예요. 온라인 스트리밍처럼 여러 미술관이 소장한 미디어아트를 관람하는 것이지요. 첫 번째는 아시아권, 두 번째는 유럽권, 올해는 미주권과 연계해서 작품을 상영하고 있어요.
Q.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생각하면 우선 다양성이 떠오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다양성의 기준도 달라졌어요. 제가 처음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그런 의식은 있었어요. 당시엔 주 관객층이 성인이다 보니까 일단 어린이, 학생 관람객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2천 년대 들어서며 어린이, 학생이 기존 관람객 대상 안으로 흡수되고, 노년층이 새롭게 등장했어요.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는 장애인, 다문화 가정, 지역 불균형에 집중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있어요. 거기에 성소수자를 향한 시선이 작품에 어떻게 편견 없이 드러나는지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요.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에 주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 중인 〈게임 사회〉는 비디오 게임이 미술에 미친 영향에 주목한 전시에요. MoMA, 구겐하임, 스미소니언 등에 소장된, 마치 게임과 같은 구조를 지닌 미디어 아트들을 빌려와 현장에서 보여주지요. 사회적인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기에 그 안에서 장애인, 성소수자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해요. 그런데 이 전시에는 필연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콘트롤러가 필요합니다. 저희도 배리어 프리를 신경 써서 국립재활원과 함께 개발한 장애인용 콘트롤러도 준비했는데, 전시를 시작하고 피드백을 받으니 콘트롤러가 놓인 구조물, 그러니까 좌대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이들도 콘트롤러를 쥘 수 있는 높이까지는 맞추어 놨는데, 휠체어는 들어갈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즉시 전부 교체했습니다. 이렇듯 사회적인 다양성, 중요한 이슈가 생각보다 미술관에 바로바로 수용되고 반영되는 편이에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게임 사회〉 중
Q. 같은 기간에 여러 전시를 동시에 기획할 때 고려하는 상황도 있나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예로 들면 현재 〈게임 사회〉, 〈워치 앤 칠 3.0〉,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이 진행 중인데, 〈게임 사회〉, 〈워치 앤 칠 3.0〉이 미디어 아트 위주이다 보니 자칫 현대미술이 그런 것만 있나 하는 오해를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60~70년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라는 전시로 선보이며 균형을 맞춘 거예요. 6월 16일부터 소장품 전시가 열리는데 그 전시는 1990년대가 중심이에요. 그래서 전시 제목도 〈백 투 더 퓨처〉라고 지었답니다.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은 5년 전부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준비하여 공동 주최한 전시에요. 구겐하임 미술관이 최근 10년 동안 아시아의 현대미술 전시를 많이 열었어요. 중국, 일본을 거쳐 이제는 한국의 작품을 전시할 차례가 된 것이지요. 구겐하임 쪽에서 저희에게 먼저 접촉을 해 왔는데, 저희에게도 한국 작품들을 국외 관람객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Q. 지금까지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셨을 텐데 혹시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으신가요?
1996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와 처음 맡았던 전시가 〈근대를 보는 눈〉이었어요. 당시에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였고 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근대를 보는 눈〉은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미술사에 있어서 근대 쪽으로 다시 한 번 눈을 돌리게 된 가장 대표적인 전시였어요. 유화, 한국화, 조각, 공예 이렇게 장르별로 묶었고 당시 전시에서 나온 작품과 연구 결과가 이후 많은 전시에 영향을 미쳤어요.
그러다 1998년 10월인가, 덕수궁관을 열며 그곳에서 근대미술을 집중해서 보여주게 되었어요. 워낙 인력이 부족해 덕수궁관 큐레이터가 저 혼자였지요. 그때 혼자서 뛰어다니던 기억에 많이 남아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열 때도 비슷했어요, 과천, 서울, 덕수궁 세 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전시 준비를 했어요. 그러는 동안 배우는 게 정말 많았지요.
Q. 전시 기획자로서의 생활습관이 있나요?
뉴스를 많이 봐요. 사실을 재해석하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요. 미술 작품도 결국 어떤 현상이라 다음에 뭐가 나오고 또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인구는 줄고 있고, 그 인구마저도 대도시로 집중되며 지방 학교 수가 줄고 있어요. 그런데 현장 이야기로는 이렇게 통폐합된 학교 학생들의 문화 체험 기회가 오히려 많다고 해요. 4박5일 대도시로 문화 체험을 가서 미술관, 박물관을 관람하고 뮤지컬도 보는 거지요. 반면 이런 예체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약한 분야가 ‘미술’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교육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미술 키트를 만들어 지역에 배포했어요. 그게 반응이 아주 좋았고, 취지에 공감한 몇몇 기업이 투자를 해서 2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졌어요.
이처럼 사회 현상과 현장 상황을 알면 미술관 담장을 넘어서 여러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전시나 프로그램의 후속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다양한 접점을 찾고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Q.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들의 미술관 인증이 인기이지요.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미술에 관한 관심은 10년을 주기로 오르락내리락해요. 마치 주식처럼 한 번 정상을 찍고 모든 관심과 자본이 집중되었다가 1, 2년 지나면 훅 꺼져 버리죠. 1996년은 관심이 수그러들 때였어요. 그러다가 2006~2007년도에 30, 40대 작가들이 인기를 얻으며 활황을 맞았지요.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2017년쯤 미술계가 활성화되어야 할 주기였는데, 당시 촛불집회가 있었어요. 2020년에는 팬데믹이 터졌고요. 미술 붐이 일어날 상황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역량은 계속 축적되고 있었어요.
코로나로 외국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장기화되자 사람들은 국내에서 이색적이고, 내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미술관이었던 것 같아요. 디뮤지엄 등에서 열린 몇몇 기획 전시가 큰 성공을 거두며 사람들이 전시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면도 있고요. 그 관심이 국공립 미술관으로도 넘어온 것이지요.
사실 미술관은 저렴해요.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을 제외하고는 장식도 별로 없으니까 셀카를 찍기도 좋지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기증전이 열리며 노년층의 관심이 높아졌고, 이런 상황들이 맞물리며 2022년은 오랜만에 정점을 찍은 시기였어요. 어마어마한 관람객들이 찾아오셨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Q.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른 미술관과 갖는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아요. 기존 전시에서 연결 고리를 만들어 다음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과천관에서 1960~70년대의 시대사적인 소장품 전시를 했는데, 그 전시를 본 사람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하는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을 본다면, 흐름이 한 번에 이해가 될 거예요. 4개관의 전시가 서로 연계되고 이어진다는 점이 국립미술관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국립이라 저렴해요. 1천 원, 2천 원, 부담 없이 보실 수 있어요. 관람에 재미를 붙이신 분들은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보셔도 좋으실 거예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Q. 흔히 말하는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요?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중세시대 작가가 있어요. 판화로 유명한 작가인데, 저희가 뒤러 전시를 한다니 현대미술관이 왜 중세시대 판화를 전시해야 하는가, 의견이 많았어요.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판화라는 것 자체가 ‘복제’ 개념인데,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복제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중세시대 작품이라 해도 현대적인 요소가 있는 거예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현대성’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현대미술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 스스로,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본인이 원하는 방식과 재료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요.
인상주의 때 처음 작가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현상을 그림으로 옮겼어요. 그 후 마르셀 뒤샹 같은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작품으로 옮겨냈지요.
현대 미술은 재료의 선택도 다양해요. 전통적인 붓, 나이프를 선호하는 분들도 있지만, 예를 들어 피카소는 소머리 조각을 만드는 데 자전거 안장을 떼다가 바꿔서 거는 식으로 표현을 했고, 뒤샹은 모자걸이를 뒤집어 거미처럼 보이게 했어요. 이렇듯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기한테 맞는 방식이나 질감을 찾는 데 시간을 굉장히 많이 할애하게 됩니다.
결국 현대성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를 할 때도 본인이 생각한 것들을 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해 놓으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 기록이 언제 어떻게 자신의 작품에 연관이 될지 모르고 그 자체로도 작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추상, 현대미술만이 아니라 고전을 바라보더라도 작가가 표현했던 바와 관람객이 느끼는 바와 그 중간에 있는 큐레이터들이 전시를 기획하며 이야기하려는 바가 다 다를 수 있어요. 정답이 없다, 그것도 현대미술의 특징인 것 같아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추상미술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거예요. “자, 오늘은 노란색 네모를 보고 가셨습니다.” 하는 거지요. 그걸로 됐어요. 예술을 향유하는 유일한 방법도, 절대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미술관교육과 쪽에서
Q. 그래도 과장님께서 작품을 보는 방식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일단 설명이나 이런 것 없이 작품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연도, 사이즈, 재료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바로 작품을 마주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전시를 굉장히 많이 보러 다니는데 예전에는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같은 큰 전시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한 작가의 개인전을 더 많이 보고 있어요. 비엔날레는 기획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아요. 반면 개인전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작가가 몇 년 동안 자기가 생각하고 작업한 것들을 온전히 다 쏟아 붓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관람객으로서 개인전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Q.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술을 꼭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20대까지는 국영수, 이성의 시기예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지요.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은 감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더 발전시킬지 노력하는 음미체(음악‧미술‧체육)의 시기를 살아가요.
꼭 대단한 일이 아니라 노래방을 다닌다든지 헬스를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든지, 아니면 패션에 신경을 쓴다든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에요. 조금 더 예쁜 거, 조금 더 맛있는 걸 찾는 일들이요. 물론 예술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일 역시 그런 감성의 영역에 포함되고요. 제가 예술 가까이 머무는 이유는 이거예요.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