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메라를 들고 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 김가람 PD #2

[인터뷰] 카메라를 들고 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 김가람 PD #1 읽기

 

Q. 현재는 〈환경스페셜〉 팀에서 일하고 계시지요. 〈걸세〉하고는 달리 이른바 ‘제3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환경스페셜〉을 만들며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에요. 가난한 나라가 늘 그렇게 힘들고 열악하게 사는 이야기로만 비춰지면 안 된다, 그렇게 전시가 되면 안 된다고요.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의 방글라데시에는 더러운 강물이 흐르고,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의 콩고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맥락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당연히 아, 저 나라가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네,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그 나라가 가난하고 정치가 부패한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를 비롯한 선진국이 그곳들을 외주화한 공장으로 삼고, 우리의 화장실과 부엌으로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도요.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 나오는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도 사실 우리에게서 시작된 거예요. 한국은 의류 쓰레기 수출 규모가 전 세계 5위예요. 이 프로그램에서 가나와 방글라데시는 15분 분량밖에 안돼요. 나머지 35분은 한국 이야기로 채웠어요. 우리가 옷을 버릴 때 버려진 옷이 가나로 건너가 쓰레기 산이 된다는 생각은 못 하잖아요. 모르고 살면 좋은 일이니까 아무도 알리지 않은 그런 사실을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2022 방송대상 수상작 〈환경스페셜 -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물론 가나 마을 하나를 가지고 내러티브를 뽑아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어요. 마을의 삶을 감정선을 갖고 밀착해서 보여주는 거지요. 예컨대 더러운 옷 무덤가에 사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식으로요. 그러면 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이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KBS는 공중파이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보지 않아요. 그래서 긴 몰입을 유도한다기보다는 3분씩, 5분씩 끊어져서 소비되길 바랐어요. “그거 봤어?” “아, 내가 버린 옷이 이렇게 되는 구나.” 그런 식으로요.

저희 어머니도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보고 옛날에는 한국도 비슷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대구 섬유공단 이런 데서 빨간 연기, 파란 연기가 나오고 목동 안양천도 남색 강물이 흘렀대요. 70년대 외국의 PD나 기자가 한국에 와서 그걸 찍었으면 그 모습이 지금의 가나고 방글라데시였을 거예요. 환경이라는 게 딱 더럽다 깨끗하다, 이렇게 나눠지진 않아요.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요. ‘환경 정의’라고 하지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집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거고, 여력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쓰레기가 계속 버려지는 걸 막지 못해요. 오염을 떠안고 살아야 하지요. 우리의 공장, 우리의 화장실을 다른 이웃에 떠넘겨 놓고 이웃집에서 냄새 난다고 손가락질 하는 일은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걸세〉를 만들면서 느낀 건데, 흔히 말하는 생태 관광, 지속가능한 관광에도 이면이 있어요. 아프리카 사파리를 가면 백인 직원들이 관광객 뒤치다꺼리를 하는 흑인 노동자들에게 팁을 많이 주라고 강요해요. 자기들이 월급은 적게 주면서 여러분이 팁을 많이 주어야 그들이 먹고 산다고 하지요. 생태 관광은 어떨까요? 사파리 안에서 쓰레기 안 만들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롯지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 백만 원씩 내야 해요. 거기서 보는 수천 개의 별은 다 돈 내고 관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지요. 그런 보호구역을 만들기 위해 거기 살던 원래 주민들은 쫓겨나야 하고요. 보호구역에 동물만 있고 사람은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걸세〉에서는 할 수 없으니 〈환경스페셜〉에서 많이 풀어나가고 있어요.


〈환경스페셜 -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Q. 공영방송으로서 제작 환경의 한계는 없나요?

〈걸세〉만 하더라도 여행자들이 잘 안 찾고 잘 모르는 도시에 가면 광고, 협찬이 붙기 어려워요. 〈환경스페셜〉은 수신료를 받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잇는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13년째 PD를 하고 있는데 10년차가 되기 전에는 뭐랄까, 안타까웠어요. 대형 예능처럼 예산이 많지 않아서 심층 취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야 해서 회의감도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광고나 협찬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 경제로 치자면 안 팔리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자본을 가진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치 안 보고 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고요. 취재를 가면 촬영을 거부당하고, 종일 대기만 하고, 경찰에게 쫓기기도 하고 욕도 많이 먹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화로운 직업, 특권을 가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환경스페셜 -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

 

Q. 〈걸세〉의 희망적인 세상과 〈환경스페셜〉의 절망적인 세상을 모두 걸어 다닌 PD님에게 세계는 어떻게 보이나요?

저희 팀 FD가 촬영분을 보며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역시 제가 멸종해야 하는 거겠죠.” 맞아요, 절망적이에요. 꼭 환경만이 아니더라도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 양극화는 심해지고 서로 대화가 안 되고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걸 어떻게 정리해야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괴로워질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저는 ‘유병장수’하는 지구에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사람도 어릴 때야 병치레 잘 안 하고 건강하지만 서른 넘어가고 마흔 넘어가면 어디 아픈 데가 생기잖아요. 그렇다고 죽을 수야 없지요. 자기 관리를 하면서 가능한 좋은 방향으로, 술도 좀 덜 마시고 몸에 안 좋은 거 덜 먹고 운동도 좀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세계도 마찬가지에요. 환경적인 면에서든 정치적인 면에서든 아픈 데를 잘 관리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 나아가서는 나 가까이 있는 자녀 세대들이 사는 동안 그나마 덜 큰 일이 일어나게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지요.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방송 이후 ‘재고 의류 폐기 금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해요. 서명 운동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도 있어요. 큰 보람이지요. 옷이 저렇게 버려지고 누군가에게 떠안겨지는 현실을 방관하는 게 불편해진 사람들이 서명하고, 법이 생기고, 그게 일반인으로서 사회를 바꾸는 제일 큰 방법이 아닐까요?

사실 이상주의자면 〈환경스페셜〉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을 거예요. 발을 갖다 대는 순간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저는 제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걸세〉에서 만난 사람들 / 김가람 PD 제공


Q. 책을 내며 영상이 아닌 글로 이야기를 전하셨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방송을 하나 만들면 흔히 ‘턴다’고 해요. 사실 파일만 넘기면 당일에 휴가 가도 돼요. 늘 그렇게 해 왔어요. 그런데 책은 내고 나니까 시작이고, 물건이니까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더라고요. TV와 책은 정말 다른 매체 같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에요. TV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화면이 넘어가는데 책은 그렇지도 않아요. 손으로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야 하는데 그 순간순간이 저에겐 굉장히 무서운 일이에요.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팀을 이끌고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절대로 ‘힘들다’,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돼요. 그래서 항상 무슨 감정이나 어떤 생각이 들어도 참는 게 습관이어요. 작년에 헬스장에서 처음으로 PT를 받아봤는데 트레이너가 왜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냐 묻는 거예요. 힘들다, 무겁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냥 참는 게 습관이 된 거예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제 속내를 이야기하게 됐어요. 그게 부끄럽기도 했고요. 책을 읽은 PD나 제작자, 스태프 분들도 아, 네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처음 알았다고 해요. 이 책을 쓰며 13년 동안 쉬지 않고 흘러 온 제 삶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아요.

지금은 환경 에세이를 한 권 쓰고 있어요. 제가 〈환경스페셜 – 지구는 없다〉 시리즈를 세 개 했는데 제가 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이런 이야기부터 그간 방송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또 방송 들어가면 쓸 시간이 전혀 없으니까 가능할 때 빨리 써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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