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시에 담긴 저(苧)마다의 이야기 - 자유직조가 김보연

2023-08-03

모시풀은 쐐기풀의 일종으로, 줄기의 겉껍질을 잘게 쪼개고 이어 실을 만든다. 이 실로 짠 모시는 가볍고 통풍이 잘되어 전통적으로 각광받은 우수한 여름 섬유로 꼽힌다. 특히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모시가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한산모시짜기’는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모시는 동아시아 3국 모두 전통직물로서 오랫동안 이어져 보존되고 있다.

한산 지역은 잦은 안개와 높은 습도 등 모시 재배에 최적화되어있는 지역이다. 모시풀은 일 년에 세 차례 수확한다. 모시풀의 줄기섬유를 가늘게 가르고 잇는 한산모시의 방적 기술은 도구가 효율적이고 공정이 세분화 되어있어 한중일 삼국 가운데서도 뛰어나다.

실을 이용해 모시를 제작하는 직조 과정은 ‘날기(한 필의 길이와 올 수를 맞추어 날실을 준비)’와 ‘매기(날실에 풀을 먹여 가지런히 감아 보풀을 줄이고 강도를 높이는 과정)’로 이루어진다. 그 다음 제직 단계에 이르면 베틀에서 날실 사이로 씨실이 교차하여 서로 엮이면서 직물을 완성해나간다. 제직 단계에서는, 건조하거나 너무 습하면 모시올이 끊어지거나 보풀이 일어나기 십상이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마지막 후처리 과정에서 풀과 오염만을 제거하면 ‘생저生苧’, 하얗게 표백하면 ‘백저白苧’라고 한다. 이번 김보연의 전시 ‘저(苧)마다의’에서는 생저와 백저가 주를 이루며, 이 외에 두들겨 올을 깨뜨려 윤이 나는 모시 또한 선보인다.

섬유예술가 김보연은 한산모시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전통 모시의 기술과 전승을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조사하여 비교하는 연구 활동을 겸하고 있다. 작업자로서 한산모시의 미감을 동시대에 알리고자 한산의 제직 방식을 따르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물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한국적 모시의 속성을 드러내면서 현대에 살아남는 방식을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다. 


- 갤러리LVS · 이유진의 전시 개요 중


bd1a6aa29fb26.jpg7a6fc7f49de8e.jpg‘저(苧)마다의’ 전시장에서


섬유예술가, 혹은 자유직조가 김보연이 한산에서 체류하며 짠 모시로 전시를 엽니다. 전시 제목은 ‘저(苧)마다의’.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듯 한 필의 모시에도 ‘苧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제작자의 사유를 담았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너울지는 모시는 전통과 현대가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는 듯한 인상을 자아냅니다. 자유직조가 김보연을 만나 한산모시와 전시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f77433218b9ad.jpg자유직조가 김보연 


전시 ‘저(苧)마다의’를 열며

모시를 뜻하는 한자는 ‘모시 저(苧)’입니다. 저는 이 ‘저’ 자를 일인칭 ‘저’, ‘자신’과 동일시하는 시도를 계속 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시를 의인화해 왔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사 과정 때 했던 전시의 제목은 ‘저(苧)는 말입니다’였습니다. 모시에게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지요. 그 다음 전시 제목은 ‘저(苧)와 함께’였는데, 전시를 연 저와 함께하자는 뜻과 모시와 함께하자는 뜻을 같이 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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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저(苧)마다의’는 모시 하나 하나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제가 직조한 모시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이 짠 모시, 심지어 누가 짰는지도 모르는 모시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고 보고요. 제 자신과 모시를 잇는 작업자로서의 제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산에 뿌리 내려 모시를 짜는 유구한 문화를 계승하는 오래된 장인들 또한 이 제목 안에 함께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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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모시로 만든 옷을 가져다 놓지 않았어요. 화려하거나 실용적인 목적을 지니지 않은, 막 삶이 시작된 자연 모시 섬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어떠한 모습도 하지 않은 천의 형태의 모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미래처럼 걸려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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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저와 표백을 통해 희게 만든 백저


모시의 성격

모시는 보기에는 무척 곱지만, 성질은 빳빳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강직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면이 결핍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시를 통해 그런 미덕을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편으로 모시에는 약한 면이 있습니다. 모시로 만든 옷은 잘 구겨지지요. 사람으로 치면 예민한 면이 있다고 할까요. 표백을 하지 않은 생저를 펼쳐 놓고 들여다보면 빗금 같은 게 그어져 있기도 합니다. 꺾이면 그 자리에 갈색 반점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 게 심한 모시는 상품으로서는 B품으로 치거나 표백을 강하게 해서 흉을 지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저도 보다 보면 예뻐 보이거나 예쁘게 안 보여도 상처가 그것의 일부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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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강한 면과 약한 면이 함께 있는 모시의 특징은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살면서 좋은 일도 겪고 나쁜 일도 겪으며 상처 받고 회복하는 과정, 그 모든 것이 모시 안에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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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226일

이번 전시의 부제는 ‘Hansan 226 days’입니다. 한산에 머물며 직조를 한 날들을 센 것입니다. 사실 한산에는 더 길게 있었고, 베틀방에 들어갔다 나온 날만 세어보았습니다. 그날들 동안 매일 사진을 찍어 폴라로이드 형식으로 인화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과거, 추억, 향수의 느낌이 더 많이 나더라고요. 다른 선생님들 사진도 있고 일상이나 풍경 사진도 있습니다. 영상도 촬영했고요. 사진과 영상은 전시장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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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를 짜는 데 있어 이례적인 일이지만, 각 모시에는 직조를 시작한 날과 마친 날을 적어두고 그 기간에 느꼈던 뭔가를 써두기도 했습니다. 동양화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낙관을 찍기도 했고요. 이런 작업을 통해 각 모시에 사연이나 스토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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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 이미 누군가 열어준 길을 걷다

한 필은 대략 21.6m입니다. 직조를 하다 보면 이게 제가 걸어가야 하는 길 같아 보이기도 해요. 모시 실은 누군가가 제 앞에 깔아준 길인 것이고요. 저에겐 안 가본 길이지만, 누군가는 이미 다녀온 길입니다. 전통의 길을 제가 현재로 채워간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다 보면 이 길이 언제 끝날까 하는 의문도 들어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 똑바로 가고 있나. 날실과 씨실을 엮어야 하기 때문에 직조 과정은 직선이 아니라 갈지자예요. 좌충우돌하는 삶 같기도 한데, 결국에는 가고 있어요. 직진이 아닌 것 같지만 계속 나아가고 있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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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랫동안 모시를 짜던 선생님 중 몸이 좋지 않아 직조를 그만두는 분이 계세요. 실을 다 담아놓고 베틀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허리가 나아지면 짜야지 하고 다짐만 하시다가 결국 3년, 4년이 지나버린 것이지요. 그 실을 제가 받아서 모시를 짠 적도 있습니다. 그러자 제가 이어받아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 제가 베틀을 돌리고 있지만 사실 이미 길은 놓여 있고 저는 그냥 걸어가기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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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 모시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전시장에 들어와 모시를 보자마자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천이 공간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시원한 것도 있고, 천이 이렇게 반투명하고 뒤가 비치기 때문에 시원하기도 하고. 여름옷을 짓는 데 많이 사용했던 모시 본래의 특징을 섬유만으로도 느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모시 한 필 한 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한산모시짜기’는 한국의 무형문화재입니다. 모시를 짜는 기술은 전승되지요. 그런데 이 전승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도 포함됩니다. 모시를 향유하거나 실용적으로 소비하는 층이 있어야 진정한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해요. 이번 전시가 모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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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苧)마다의, Hansan 226 days』 김보연 개인전
· 전시기간: 2023.7.28.(Fri)-8.11(Fri) OPENING RECEPTION 5PM 7.28(Fri)
· 전시장소: Gallery LVS (갤러리 엘비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27길 33(신사동, 쟈스미빌딩 B1)
· 전시시간: 09:00 - 18:00(평일) / 10:00 - 17:00(토)
· 전시문의 : 02-3443-7475 / info@gallerylv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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