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흰죽을 떠 넣어주는 사람의 마음으로 - 허은실 시인 인터뷰 #1

2023-08-11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허은실 시인은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에 이어 최근 두 번째 시집 『회복기』를 발표했습니다. 두 권의 시집을 연달아 읽으면 개인의 경험이 반영된 자전적인 시에서 출발하여 점점 사회로 눈을 돌리는 광장의 자아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들의 성대가 되어 주려는 시인의 노력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한편 허은실 시인은 제주에 머물고 있습니다. 2019년 발표한 산문집 『내일 쓰는 일기』는 제주 정착 첫해의 기록을 담은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는 시인의 제주 일상과 그곳 풍경,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을 읽을 수 있지요. 당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과 티격태격하며 지낸 날들은 공감 백배의 생생한 육아(?) 일기 같기도 합니다. 

그런 허은실 시인을 만나기 위해 브릭스 매거진에서 제주로 날아갔습니다. 제주의 동쪽,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성산읍에서 차가운 커피와 함께, 성게알이 잔뜩 올라간 시원한 물회와 함께 시인과 나눈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옮겨 봅니다.


f9f69a8e38f35.jpg제주 성산읍 카페 공드리에서 만난 허은실 시인



제주도 그리고 성산읍

저는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어른이 되고 나니 시골에서 자란다는 게 어떤 건지 좀 알겠더라고요.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 대지와 숲의 리듬, 땅의 시간 속에서 자란다는 의미를요.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자연 속에서 혹은 자연 가까운 곳에서 보내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주거지도 일하는 곳도 다 서울이다 보니 떠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주는 이전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굉장히 묘한 곳이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언어, 풍토, 식생, 토양이 완전히 다르고요, 그런 것들에 매력을 느끼고 매혹되었나 봐요.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니까 더 미루다가는 제주에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 있던 시기였는데, 두 가지가 겹치며 그래 가 보자 마음먹게 되었던 거지요.

제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곳 성산의 책방 주인 한 사람밖에 없었어요. 동네에 집이 나오면 알려 달라 부탁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여기 수산마을은 집이 잘 안 나오는 동네예요. 혹시 학교 살리기 주택이라고 아세요? 학생 수가 줄다 보니 마을에서 공동주택을 지어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집인데, 제가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거길 중심으로 알아봤어요. 한참을 기다리다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직접 부동산중개소를 돌아봐야겠다 하고 제주에 온 날이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침 이 동네 공동주택 하나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이장님을 만났어요. 저희가 잘 하겠습니다,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도 할게요, 살게 해 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렸지요. 다행히 이장님이 승인을 해 주셔서 제주에 살 수 있게 되었어요.


5a5e74b5c5a5f.jpg수산마을에서



요즘 일상이라 한다면

자연 속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걷기가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요. 처음 왔을 때는 일을 안 놓고 있어서 계속 서울에 왔다 갔다 했어요.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 일도 있고, 책 계약도 된 상태였고, 이런저런 서울에서의 삶이 연장되고 있었어요. 천천히 제주 생활에 정착하면서 서울 가는 횟수가 줄고, 대신 여기서의 삶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지요. 제주 작은 서점들과 지원 사업을 함께했고요, 읽고 쓰고, 더러 북토크나 강연도 하고 개인 작업을 하면서 평화롭게, 조용하게, 가끔 외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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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마을에서



제주 에세이 『내일 쓰는 일기』

제주에 간다 하니까 미디어창비에서 시인이 본 제주 모습을 담아 보자 제안해 주셨어요. 시인이자 경계인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만의 소중한 가치들을 제주의 사계에 나누어 담았고요, 한편 이 책은 낯선 곳에 놓인 아이와 어른의 성장일기이기도 한데요. 환경은 물론 모든 관계가 다 바뀌다 보니 어른인 저도 적응하는 데 고비가 있었지만, 아이는 더 힘들어 했지요. 성장 단계에서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최초의 사회화 과정도 겪어야 했으니까요. 그런 아이의 성장 과정을 바라보는 게 제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저를 알 수 없었지만 아이를 통해 저 자신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책에 아이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어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를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저 역시 자라는 모습을 약간은 객관화해서 보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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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드리 앞 책방무사



시의 소재, 에세이의 소재

무엇이든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어떤 이미지를 봤을 때 그 이미지를 저도 모르게 묘사하거나 표현을 해요. 어떤 경우엔 그게 시가 될지 에세이가 될지 품고 있어 봐야 해요. 쓰다 보니 에세이가 됐는데 에세이로는 다 표현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시 「새」 같은 경우가 그래요. ‘새가 죽었다’라는 하나의 상징적인 모티브가 있고, 이걸 에세이로 써 가는데 에세이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 너머의 것이 계속 남아 있던 거지요. 그러면 그걸 조금 더 오래 가지고 있다가 시를 써요. 10년을 갖고 있을 수도 있어요. 계속 제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가 다른 무언가와 만나서 하나의 시가 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리고 아, 이제 됐다 싶으면 소재는 저를 떠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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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드리에서


방송, 에세이, 시

방송작가 허은실은 직업인, 기능인에 가까운 것 같아요. 사실의 세계에서 기능적인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했지요. 특히 저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출발했고 그 분야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사실을 정확하게 장악하고 이것이 우리 현실 세계에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달해야 했어요. 방송 일은 정해진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어떻게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성실함도 있어야 하지요.

거기에 비하면 에세이는 말랑하면서 부드러워요. 현실 세계에 기반하고 있지만 생활과 삶에 더 밀착한 자아가 써 나가지요. 그러다 보면 좀 더 섬세해지고요. 주변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많이 쓰다 보니 주변 일을 좀 더 응시하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게 되고요.

시는 아주 많이 달라요. 에세이는 제가 끌고 간다고 할까, 이걸 써야지 하면 어떤 길이 대충은 보여요. 이렇게 전개해서 이렇게 마무리해야지 하는 길이 보이는 상태에서 저의 정신과 사유로 소재를 끌고 간다면, 시는 제가 끌려가는 면이 있어요. 어떤 한 줄이 딱 던져지면 저는 그 한 줄이 자기 말을 하고 싶어서 저한테 온 거라고 생각해요. 그 언어가 혹은 이미지가 혹은 소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한테 온 걸까 계속 생각해요. 철학적 사유를 하듯이 생각한다기보다는 그것을 놓지 않고 계속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지니고 있던 것들이 자기 언어를 붙여가는 거 같아요. 난 이걸 써야지 하는 게 산문이라면, 시는 언어가 자기 형상을 찾아가게끔 제 몸을 빌린다는 느낌이에요. 저는 성실한 사제가 되어 그 언어를 따라가고, 기다리고, 무엇보다 제 몸을 시를 잘 받아쓸 수 있는 상태로 유지시켜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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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언어의 확장을 기다리며

시는 질투가 많은 애인 같아요. 시를 쓰려면 번잡함을 떠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제가 다른 일에 눈길을 주고 즐거워하면 시는 안 오는 것 같아요. 시와 제가 독대를 할 때 제 옆으로 조금 다가와 주더라고요. 갸륵한 노력이랄까요, 그런 거지요. 아이가 있고 생활이 있으니 전적으로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더라도 시의 씨앗을 품고 그 시를 완성하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갖고 있어요.

 

『나는 잠깐 설웁다』

방송 원고는 대중의 귀에 스쳤다 휘발돼 버리잖아요. 제 자신을 갈아 넣고 소진돼 버리는 일들의 반작용으로 다른 창이 필요했어요. 혼자 쓰는 것보다 외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시 합평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방송 원고를 쓰면서도 뭔가 생각날 때 바로 메모할 수 있게 모니터에 시의 창을 따로 열어두고 있었지요. 처음 시라는 걸 써봤던 때로 치면 굉장히 오랜 후, 등단 기준으로는 7년 만에 첫 시집을 냈어요. 「검은 개」, 「이별하는 사람들의 가정식 백반」, 「푸른 손아귀」 이런 시들은 등단 훨씬 이전에 썼던 시예요.

완성했다고 생각해서 바로 발표를 하거나 시집에 싣거나 하지 않아요. 아직 완성이 아니야, 뭔가 어딘가 미흡해, 그래서 고쳐보고 몇 년 잊어버리고 살다가 다시 열어보고서 몇 줄 고치고. 쓰고 나서도 시가 나를 통해 하려는 말이 아직 남은 것 같아 계속 찾아가는 건데, 어느 순간 이런 건가 보다 싶을 때가 있어요. 두 번째 시집 『회복기』의 마지막은 「첫눈」이라는 아주 짧은 시예요.

 

곡기를 끊고
누운 사람처럼
대지는 속을 비워 가고

바람이
그 꺼칠한 얼굴을
쓸어본다

돌아누운 등뒤에
오래 앉았는 이가 있었다

아- 해봐요 응?
마른 입술에
떠넣어 주던
흰죽

세상에는 이런 것이 아직 있다

- 허은실, 「첫눈」 (『회복기』, 문학동네, 2022)

 

‘돌아누운 등뒤에 /오래 앉았는 이가 있었다’ 이 부분을 쓰지 못해 완성이 안 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마른 입술에 /떠넣어 주던 /흰죽” 이라는 이미지만으로는 시가 평평한 느낌이었죠. 물론 ‘마른 입술에 떠 넣어주던 흰죽’까지만 써도 시가 될 수는 있지만, 발표하면 사람들이 시 같은 거라고 생각은 해주겠지만, 제 생각에 그것만으로 다가 아니었어요. 여기서 더 말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어,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래 앉아 기다리는 누군가가 들어왔고, 그 다음에 마지막 한 줄 - 저만의 진술 혹은 시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 언어로 표현이 되어야 했는데 그래서 ‘세상에는 이런 것이 아직 있다’가 쓰여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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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기』로 넘어오며

많은 시인들이 첫 시집은 자전적인 데서 출발하지요. 저도 첫 시집에 과거 일들이 모티브가 된 시가 많았고요. 하지만 그 안에도 세월호 관련 「저녁의 호명」과 「제망매」, 「보호자」라는 시가 있었고, 4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가요’에 실린 도시적 삶에서의 빈곤이나 소외 등을 다룬 시들까지 사회적인 내용이 없지는 않았어요.

마지막 시가 「광장이 공원으로 바뀌어도」로 끝나는데 당연히 작정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회복기』가 나오고 보니 두 번째 시집의 어떤 예비, 예고 같은 게 되었어요. 사실 그 시는 어디에 놓아야 할지 애매했는데, 자아의 흐름이 개인사에서 천천히 사회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구성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사회적 자아를 전면에 내세워 광장에 서 있는 화자로 마무리했거든요. 보통 마지막 시는 짧은 시로 사람들 마음에 여운을 주면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뜬금없는 구성이었지요.

지금 시점에서는 두 시집이 그래서 연결성이 생겼어요. 화자는 뜨겁게 시위하고 투쟁하던 광장이 산뜻한 공원이 돼 버린 현실에서 당혹감을 느껴요. 그러다 두 번째 시집에 와서는 그 화자가 좀 더 적극성을 가지게 돼요. 저 개인의 반영이기도 하고요. 그 사이 세계는 너무 나빠졌는데 제주에 산다고 자연 이야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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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그렇더라도 『회복기』의 첫 번째 시를 엄중하고 무겁게 놓고 싶지는 않았어요. 마침 편집부에서도 「반려」라는 시를 이 시집의 서시로, 독자를 좀더 분명하게 환대하는 역할로써 배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해 주셨고요.

 

이제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 책임이 있어요

거친 여울 저무는 기슭에서
서로의 눈에 스민 계절을 헤아리며
표정이 닮아갈 날들

그리하여 어느 날
세상에 지고 돌아온 당신이
웅크려 누울 때

적막한 등뒤에
내 몸을 가만히 포개고
우리는 인간의 말을 버리기로 해요

우리 숨이 나란하도록
밤이 깊도록
당신이 나를 업고 걷던 그 밤처럼

당신의 등에
내 글썽임과 부끄럼까지를
잠시 올려두고
긴 밤을 낙타처럼 걸어갈 거예요

서로의 잠 속으로 스며들어가
젖은 얼굴 어루만지면
새 빛은 다시
우리 가난한 창으로

- 허은실, 「반려」 (『회복기』, 문학동네, 2022)

 

「반려」는 원래 결혼 축시였는데, 결혼이야 당연히 내가 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이지만, 나아가 우리는 서로 어떻게든 다 연결이 되어 있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서로 조금씩 이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 시가 맨앞으로 나오는 게 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다들 연루되어 있는 존재들이기에 누군가의 행위에 공범이 될 수도 있고, 조력자도 될 수도 있어요. ‘책임이 있어요’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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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아직 이런 것이 있다 - 허은실 시인 인터뷰 #2 읽기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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