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움직이는 조각, 움직이는 블랙 - 《전자기력 사유: 블랙 스크린》 윤성필 작가

2023-09-13

검은 연못 같은 작품에 가까이 가자 액체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뿔이 달린 작은 공처럼 변하더니 관람자에게 빠르게 다가옵니다. 오랫동안 작품을 통해 전자기력을 다룬 윤성필 작가의 작품입니다.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윤성필 작가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전자기력 사유: 블랙 스크린》에 다녀왔습니다.


a86aa33cf0230.jpg개인전 《전자기력 사유: 블랙 스크린》전을 연 윤성필 작가


Q. 이번 전시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제 모든 작업의 주제는 ‘순환’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작품에 운동성이 깃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원의 형태를 가진 조각품을 만들다가 점점 ‘움직임’이 있는 작품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초창기에는 지금보다는 정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전시한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BK-01〉 같은 작품이 그중 하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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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BK-01〉


《전자기력 사유: 블랙 스크린》에서는 좀 더 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블랙 스크린 23-01〉은 사람이 접근하면 센서가 이를 인식하고 뿔 모양을 띤 액체 자성 유체가 가까이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관람객과 작품이 서로 교감하고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또, 천장을 보시면 자성 유체에 반사된 빛이 비치는데, 본체만큼이나 중요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Q. 작품의 소재인 액체 자성 유체는 어떤 물질인가요?

1960년대 NASA에서 우주 개발할 때 만든 물질입니다. 이 기술이 민간으로 넘어가 요즘은 터치스크린 패널, 고가의 스피커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초미립자의 철가루를 오일에 배합해 만든 물질인데 보기에는 액체이지만 기본적으로 철의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중도 높고, 전자기력에 반응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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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5d96e658fcf.jpg688c5301f6e4e.jpg〈블랙 스크린 23-01〉

 


Q. 대중적인 물질은 아닌데, 어떻게 이런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시게 되었나요?

모든 것은 순환한다는 주제에 매진하다 보니 우리 우주의 기본 규칙은 뭘까 궁금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를 이루는 힘을 강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 이 네 가지로 봅니다. 저는 그중 전자기력에 매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석과 철가루를 이용한 페인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철가루뿐만 아니라 동전, 나사못, 베어링 등 다양한 소재를 찾고 사용했는데, 그러다가 액체 자성 유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액체이면서 전자기력을 가하면 고체처럼 도트가 올라오는 점이 매력적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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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크린 23-01〉

 


Q. 작품 구현을 위해 기술적인 협업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대미술로 오면서 고전적인 장인처럼 아티스트 한 명이 작품 전체를 만드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재료와 너무나 많은 기술을 혼자 전부 섭렵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작품 전체를 구상하고 계획하는 일은 제가 해도 그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는 프로그래머나 개발자의 자문을 구하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물론 제 생각대로 100%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제 구상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게 어려우면 계획을 수정하기도 하고, 작품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매일 전시장에 나와 오류를 모니터링하고 고쳐나가지요. 이번 〈블랙 스크린 23-01〉도 자석을 달고 움직이는 로봇도 교체해 보고, 배터리와 모터 같은 부품도 바꿔 보는 등 현장에서 개선을 거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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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력 사유: 블랙 스크린》 전시장 내부

 


Q. 〈액체 조각 프로젝트 01〉이란 작품에는 ‘조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작가님의 작품은 조각의 범주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미술사에 ‘키네틱 아트’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움직임이 있는 작품에 붙이는 말인데, 저의 작품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이고, 모든 물질을 다룰 수 있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작품 활동은 조각으로 시작했지만, 저 자신은 조각가보다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다양한 범위로 사용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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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조각 프로젝트 01〉

 


Q. 검은 원뿔인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BK-02〉에도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가시광선을 99% 흡수할 수 있다는 블랙 3.0이라는 안료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검은색보다 훨씬 더 검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입체로도 보이고 평면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원뿔이 붙은 벽 전체를 같은 재료로 칠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거리감이 너무 사라져서 관람객이 다칠 위험이 있겠더군요.


781b764de117e.jpg272b82da24344.jpgf090c61686e43.jpg〈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BK-02〉

 


Q. 재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작가님의 작품에는 검은색이 많이 쓰입니다. ‘블랙’이라는 색이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전자기력 사유: 블랙 스크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은 ‘아트 앤 테크’ 전시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이루어진 작품을 생각할 때 상당히 복잡한 것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특히 시각적으로요. 저는 그 시각을 단순화시키고 또 단순화시켜 현상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블랙 앤 화이트’는 그런 미니멀한 표현을 위한 컬러이고요.

 

물론 〈액체 조각 프로젝트 01〉처럼 일부러 복잡한 배선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도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칙들이 있다는 면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예시로서요.

 

4b93b996e9771.jpg역시 액체 자성 유체를 사용 작품 〈블랙 스크린 23-02〉

 


Q. 작가님께서 궁극적으로 순환이라는 주제에 몰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5살 때부터 천식을 앓았는데, 숨도 못 쉬고 잠도 못 자니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현상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도 같고요.

 

이런 존재론적인 고민 속에서 저는 마치 질량 보존 법칙처럼 모든 것은 에너지의 형태만 달리할 뿐 그 안에서 계속 유전하고 순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이 저의 작품 세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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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진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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