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8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교포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그 여덟 번째로 소개해 드릴 분은, 의료 선교가 일상이자 인생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부부 한의사 이요한 & 이해선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백산한의원 원장 이요한, 이해선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미국 뉴저지주 팰리사이드 파크(Palisades Park)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진 백산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 이요한과 이해선입니다. 저희는 침술과 한약 처방을 통해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소백산 밑에 있던 제 고향에서 이름을 따와 저희 한의원 이름은 ‘백산’으로 지었습니다.

백산한의원
Q. 두 분이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요한 | 1986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 유학생이라면 보통 넉넉한 집안의 자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 부모님은 농사짓는 농부셨습니다. 유학 비자 신청부터 어려워서 2번 떨어지고 3번째에 겨우 비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당시는 부모가 세금을 30만 원 이상 내야 하고, 은행 잔고도 함께 제출해야 했는데 제가 3번째 유학 비자 인터뷰에서 제출했을 때 세금 내역에 9,600원이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면이 앞장에 붙어 한꺼번에 넘어가면서 담당자가 그걸 보지 못하고 지나갔던 거지요. 당시 신학 계통 쪽으로는 유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그때 미국으로 유학 온 신학대생 단 두 명 중 한 명이 저였습니다.
이해선 | 저는 가족이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고 미술을 전공했던 저만 혼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논노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인테리어 파트의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그 후 신학과 한의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Q.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두 분이 어떻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셨나요?
이해선 | 저는 결혼을 전혀 꿈꾸지 않던 사람이었어요. 뉴욕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있었는데, 몸이 아파 지인의 소개로 지금 남편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침을 맞으면서 몸이 좋아졌고, 그 후 아버지도 모시고 와서 치료를 받게 해드렸는데 평생 결혼하란 말씀 없으셨던 아버지가 지금 제 남편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거짓말처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다정한 모습의 이요한, 이해선 부부
Q. 코로나 시기엔 무료 치료를 진행해 수많은 미국 교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1998년부터 의료 선교에 힘써 왔는데 코비드로 선교를 할 수 없게 되자, 우선 환자들을 도우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던 거예요. 폐가 굳어가는 증세에 대항할 수 있는 ‘백산 바이러스 퇴치탕’을 개발해서 2020년 4월부터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폐 기능 강화에 도움을 주는 약제들로 호흡을 편하게 해 주고 폐 섬유화를 방지하는 한약 처방이었어요. 그 후 코비드가 잠잠해지기까지 총 149명의 환자들이 이 혜택을 받으셨습니다.
의료 선교 중인 이요한, 이해선 부부
Q. 한의사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두 분은 치료로 번 돈을 의료 선교에 사용하시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지요?
이해선 | 저는 난소암에 걸린 환자였고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침을 맞고 한약을 먹으며 정성을 다해 몸을 추스른 뒤에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 후 제가 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그간의 전공과 업무 경력을 모두 버리고 한의학 공부를 시작해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5불, 10불을 가지고 살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선교를 가면 현지 아이들에게 마음껏 장학금을 주지 못해 속상해요.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돈을 열심히 모아 다음 의료 선교를 준비하지요. 그게 제 삶의 행복이에요. 제 돈으로 선교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 왔고, 그래서 그 응답으로 지금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한의사 시험도 한 번에 붙었는데 빨리 선교를 시작하라는 계시가 아니었을까요?

의료 선교 중 만난 사람들
Q. 선교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혹은 일화가 있다면요? 그리고 무엇을 느끼고 배우셨나요?
남미의 ‘아이티(Haiti)’란 나라에 가면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라고나부’라는 섬이 있어요. 지금도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곳이에요. 생활환경이 매우 취약한 곳이다 보니 당연히 환자도 많고요. 유난히 치료 대기 줄이 길던 날이었는데, 유방암 환자가 찾아왔어요.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한쪽 유방이 썩어 들어가고, 고름이 계속 나오는데, 변변한 치료제가 없어 밀가루를 뿌려두었더군요. 겨우 겨우 눈물을 삼키며 말했어요. 내가 내일 꼭 집으로 가서 기도를 해주겠다고. 다음 날 찾아가니 그토록 아픈 와중에도 어찌나 얼굴이 해처럼 밝던지. 그 환자를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선교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선교를 가면 내가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로부터 은혜를 받고 오게 됩니다. 회개도 많이 하게 되고요. 그러니 늘 다음 선교를 떠날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하루하루 살게 되고요.
한쪽 유방이 짤린 환자를 치료 중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요?
선교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는 게 꿈입니다. 다 같이 모여 기도를 하고, 선교사님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또한 제가 사는 이곳에 독거노인이 특히 많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치료를 받기도 어렵지만, 혼자 몸을 일으켜 병원을 가는 것조차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치료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꿈꾸고 있습니다.

의료 선교 중인 이요한, 이해선 부부
매주 목요일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무슬림 난민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이 또한 지속할 것이고요, 남미 의대생들을 찾아가 한의학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 일도 오래 하고 싶어요. 저희가 자주 방문할 수 없으니 현지의 의대생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치고 그들이 직접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과테말라 후띠아빠 지역의 의대생들을 만나 강의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의 작은 빛과 소금이 되는 것, 그것이 늘 한 결 같이 저희 부부가 바라온 꿈입니다.

과테말라 의대생들과 함께
인터뷰·사진 | 조은정
사진 | 이요한, 이해선 제공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blog.naver.com/eiffel
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8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교포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그 여덟 번째로 소개해 드릴 분은, 의료 선교가 일상이자 인생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부부 한의사 이요한 & 이해선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미국 뉴저지주 팰리사이드 파크(Palisades Park)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진 백산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 이요한과 이해선입니다. 저희는 침술과 한약 처방을 통해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소백산 밑에 있던 제 고향에서 이름을 따와 저희 한의원 이름은 ‘백산’으로 지었습니다.
Q. 두 분이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요한 | 1986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 유학생이라면 보통 넉넉한 집안의 자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 부모님은 농사짓는 농부셨습니다. 유학 비자 신청부터 어려워서 2번 떨어지고 3번째에 겨우 비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당시는 부모가 세금을 30만 원 이상 내야 하고, 은행 잔고도 함께 제출해야 했는데 제가 3번째 유학 비자 인터뷰에서 제출했을 때 세금 내역에 9,600원이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면이 앞장에 붙어 한꺼번에 넘어가면서 담당자가 그걸 보지 못하고 지나갔던 거지요. 당시 신학 계통 쪽으로는 유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그때 미국으로 유학 온 신학대생 단 두 명 중 한 명이 저였습니다.
이해선 | 저는 가족이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고 미술을 전공했던 저만 혼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논노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인테리어 파트의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그 후 신학과 한의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Q.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두 분이 어떻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셨나요?
이해선 | 저는 결혼을 전혀 꿈꾸지 않던 사람이었어요. 뉴욕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있었는데, 몸이 아파 지인의 소개로 지금 남편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침을 맞으면서 몸이 좋아졌고, 그 후 아버지도 모시고 와서 치료를 받게 해드렸는데 평생 결혼하란 말씀 없으셨던 아버지가 지금 제 남편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거짓말처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Q. 코로나 시기엔 무료 치료를 진행해 수많은 미국 교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1998년부터 의료 선교에 힘써 왔는데 코비드로 선교를 할 수 없게 되자, 우선 환자들을 도우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던 거예요. 폐가 굳어가는 증세에 대항할 수 있는 ‘백산 바이러스 퇴치탕’을 개발해서 2020년 4월부터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폐 기능 강화에 도움을 주는 약제들로 호흡을 편하게 해 주고 폐 섬유화를 방지하는 한약 처방이었어요. 그 후 코비드가 잠잠해지기까지 총 149명의 환자들이 이 혜택을 받으셨습니다.
Q. 한의사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두 분은 치료로 번 돈을 의료 선교에 사용하시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지요?
이해선 | 저는 난소암에 걸린 환자였고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침을 맞고 한약을 먹으며 정성을 다해 몸을 추스른 뒤에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 후 제가 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그간의 전공과 업무 경력을 모두 버리고 한의학 공부를 시작해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5불, 10불을 가지고 살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선교를 가면 현지 아이들에게 마음껏 장학금을 주지 못해 속상해요.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돈을 열심히 모아 다음 의료 선교를 준비하지요. 그게 제 삶의 행복이에요. 제 돈으로 선교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 왔고, 그래서 그 응답으로 지금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한의사 시험도 한 번에 붙었는데 빨리 선교를 시작하라는 계시가 아니었을까요?
Q. 선교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혹은 일화가 있다면요? 그리고 무엇을 느끼고 배우셨나요?
남미의 ‘아이티(Haiti)’란 나라에 가면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라고나부’라는 섬이 있어요. 지금도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곳이에요. 생활환경이 매우 취약한 곳이다 보니 당연히 환자도 많고요. 유난히 치료 대기 줄이 길던 날이었는데, 유방암 환자가 찾아왔어요.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한쪽 유방이 썩어 들어가고, 고름이 계속 나오는데, 변변한 치료제가 없어 밀가루를 뿌려두었더군요. 겨우 겨우 눈물을 삼키며 말했어요. 내가 내일 꼭 집으로 가서 기도를 해주겠다고. 다음 날 찾아가니 그토록 아픈 와중에도 어찌나 얼굴이 해처럼 밝던지. 그 환자를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선교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선교를 가면 내가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로부터 은혜를 받고 오게 됩니다. 회개도 많이 하게 되고요. 그러니 늘 다음 선교를 떠날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하루하루 살게 되고요.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요?
선교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는 게 꿈입니다. 다 같이 모여 기도를 하고, 선교사님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또한 제가 사는 이곳에 독거노인이 특히 많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치료를 받기도 어렵지만, 혼자 몸을 일으켜 병원을 가는 것조차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치료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꿈꾸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무슬림 난민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이 또한 지속할 것이고요, 남미 의대생들을 찾아가 한의학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 일도 오래 하고 싶어요. 저희가 자주 방문할 수 없으니 현지의 의대생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치고 그들이 직접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과테말라 후띠아빠 지역의 의대생들을 만나 강의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의 작은 빛과 소금이 되는 것, 그것이 늘 한 결 같이 저희 부부가 바라온 꿈입니다.
인터뷰·사진 | 조은정
사진 | 이요한, 이해선 제공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blog.naver.com/eiff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