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컴컴한 부엌, 한 여자의 몸이 냉장고 불빛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냉장고 안은 가득 차 있는데 여자는 손을 뻗기를 망설이는 것 같아요. 다이어트? 거식증? 이 여자가 궁금해졌습니다. 여자는 왜 망설이고 있을까, 잠깐의 행복에 주저하는 이유가 뭘까? 누군가의 삶을 넘겨짚고, 다 알았다는 듯 돌아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모습은 세상 앞에서 주저하는 제 모습이었으니까요. 혹시 작가님에게 직접 물어 볼 수 있을까?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 누군가를 냉장고 앞에 서게 했던 사람, 좌혜선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아트스페이스3에서 만난 좌혜선 작가
어느 여자의 이야기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냉장고, 여자> 그림을 보시고 거식증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동생 둘에 저까지, 세 아이를 보살펴야 했어요. 막내 대학도 보내야 했고, 여동생 임용고시 뒷바라지도 해야 했고, 저도 먹고 살아야 했지요. 대학원을 다니며 조교 일을 하고, 퇴근하면 방문 미술 교사를 했어요. 주말에는 서빙을 했고. 그래야 겨우 생활이 충당될 수 있었어요.
<냉장고, 여자 #2>, 2010, 한지에 분채 채색, 116x91cm
제가 고학생이란 걸 아셔서 그랬는지, 미술 수업을 하러 갈 때마다 어머니들이 밥을 차려 주셨어요. 밥상이 차려지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항상 밥이 있는 집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저희 집은 무너져 있었고, 그래서 항상 밥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 10시 조금 안 되는데, 10시에 마트 문을 닫았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어야 했지요. 이것저것 아침거리를 사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요. 그리고 다음날 동생들 아침밥을 먹여 보내고 정리하고 출근했지요. 그때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불행하지 않았어요. 그때 나름의 안정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매일 밥을 하는 사람은요, 밥을 차리고 나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아요. 줄곧 냄새를 맡아서도 그렇고, 밥이라는 게 참 버거운 게, 계속 소멸하는 일이에요. 티 나지 않고 성과가 없어요. 엄마들이 아이에게 집착하는 마음과 달리 성과라고는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 소멸하는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라고 한다면, 자기 효용감 말고 또 있을까요? 저보다 작은 존재를 위해서 음식을 할 때는 더 많은 검열과 정성이 들어가요. 분명 엄청난 행복이에요. 모자람 없이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요. 그게 정말 좋으면서도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하면 공감이 가시나요?
냉장고가 사고 싶었어요. 자취집 냉장고가 너무 작았거든요. 그래서 냉장고 그림을 그리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첫 개인전 할 즈음 냉장고를 살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되었고, 저한테 채워지지 않는 부분으로 남았어요.
<샘 #1>, 2021, 장지에 목탄, 분채 채색, 53x41cm
이 모든 게 먹고 사는 일
여자가 말랐다고 했지요? 여성의 몸을 그려 오면서 일부러 아름답게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저에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봐요. 자라면서 살찌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항상 들어오기도 했고, 살찐 여성의 몸을 그려 볼 기회가 없었어요. 모델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가늘고 볼륨 있고 균형 잡힌 몸이 학습되어 있었나 봐요.
냉장고 여자는 아주 개인적인 그림이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우주 안에서 가장 큰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끼니, 먹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 제 세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좀 더 확장된 세계를 그리려고 했지만 결국 생계라는 같은 맥락 안에 있었어요. 생계와 생존, 그리고 몸과 공간. 몸이 있으니까 계속 먹어야 하고, 그걸 위해서 계속 일해야 하지요.
<흐르고 넘치는 것 #2>, 2022, 한지에 목탄, 분채, 채색, 380x520cm.
냉장고, 부엌 여자, 다음에는 도시 풍경을 그려서 발표했지만 저는 큰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그린 거였어요. 집에 가는 것인지, 출근을 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어딘가를 가고, 오늘 어떤 계획이 있고, 또 오늘 계획이 다 끝났고. 그 사람들이 다 생계의 주체들이잖아요. 그 시간들 안에서 이렇게 하고 있지만, 또 이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함께 있고. 그래서 절망적이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해요. 인간은 갈망함으로써 변화를 만드는 거니까요.
저 깊은 어둠으로 칠한 그림
작품에 아주 깊은 흑색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물감을 제가 직접 만들어요. 동양화 분채는 바인더를 직접 조절할 수 있어서 빛 반사를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제가 바라는 만큼 깊은 어둠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인간의 불가능성에 대해 그리려면 아주 깊은 어둠이 적합할 거라 생각했어요. 인간 갈망에 대한 불가능성, 인생의 불가능성.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갈망하잖아요. 그게 다 이루어지지는 않고요. 불가능성은 삶을 명확하게 보여 주어요. 한계와 실상을 명확히 알게 해요. 시커먼 작품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게 불가능성을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저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에요.

작품 앞 좌혜선 작가
:: 좌혜선 작가와의 인터뷰 #2 이어서 읽기
인터뷰 | 이주호
사진 | 신태진
불 꺼진 컴컴한 부엌, 한 여자의 몸이 냉장고 불빛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냉장고 안은 가득 차 있는데 여자는 손을 뻗기를 망설이는 것 같아요. 다이어트? 거식증? 이 여자가 궁금해졌습니다. 여자는 왜 망설이고 있을까, 잠깐의 행복에 주저하는 이유가 뭘까? 누군가의 삶을 넘겨짚고, 다 알았다는 듯 돌아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모습은 세상 앞에서 주저하는 제 모습이었으니까요. 혹시 작가님에게 직접 물어 볼 수 있을까?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 누군가를 냉장고 앞에 서게 했던 사람, 좌혜선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자의 이야기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냉장고, 여자> 그림을 보시고 거식증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동생 둘에 저까지, 세 아이를 보살펴야 했어요. 막내 대학도 보내야 했고, 여동생 임용고시 뒷바라지도 해야 했고, 저도 먹고 살아야 했지요. 대학원을 다니며 조교 일을 하고, 퇴근하면 방문 미술 교사를 했어요. 주말에는 서빙을 했고. 그래야 겨우 생활이 충당될 수 있었어요.
제가 고학생이란 걸 아셔서 그랬는지, 미술 수업을 하러 갈 때마다 어머니들이 밥을 차려 주셨어요. 밥상이 차려지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항상 밥이 있는 집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저희 집은 무너져 있었고, 그래서 항상 밥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 10시 조금 안 되는데, 10시에 마트 문을 닫았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어야 했지요. 이것저것 아침거리를 사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요. 그리고 다음날 동생들 아침밥을 먹여 보내고 정리하고 출근했지요. 그때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불행하지 않았어요. 그때 나름의 안정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매일 밥을 하는 사람은요, 밥을 차리고 나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아요. 줄곧 냄새를 맡아서도 그렇고, 밥이라는 게 참 버거운 게, 계속 소멸하는 일이에요. 티 나지 않고 성과가 없어요. 엄마들이 아이에게 집착하는 마음과 달리 성과라고는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 소멸하는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라고 한다면, 자기 효용감 말고 또 있을까요? 저보다 작은 존재를 위해서 음식을 할 때는 더 많은 검열과 정성이 들어가요. 분명 엄청난 행복이에요. 모자람 없이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요. 그게 정말 좋으면서도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하면 공감이 가시나요?
냉장고가 사고 싶었어요. 자취집 냉장고가 너무 작았거든요. 그래서 냉장고 그림을 그리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첫 개인전 할 즈음 냉장고를 살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되었고, 저한테 채워지지 않는 부분으로 남았어요.
이 모든 게 먹고 사는 일
여자가 말랐다고 했지요? 여성의 몸을 그려 오면서 일부러 아름답게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저에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봐요. 자라면서 살찌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항상 들어오기도 했고, 살찐 여성의 몸을 그려 볼 기회가 없었어요. 모델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가늘고 볼륨 있고 균형 잡힌 몸이 학습되어 있었나 봐요.
냉장고 여자는 아주 개인적인 그림이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우주 안에서 가장 큰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끼니, 먹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 제 세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좀 더 확장된 세계를 그리려고 했지만 결국 생계라는 같은 맥락 안에 있었어요. 생계와 생존, 그리고 몸과 공간. 몸이 있으니까 계속 먹어야 하고, 그걸 위해서 계속 일해야 하지요.
냉장고, 부엌 여자, 다음에는 도시 풍경을 그려서 발표했지만 저는 큰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그린 거였어요. 집에 가는 것인지, 출근을 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어딘가를 가고, 오늘 어떤 계획이 있고, 또 오늘 계획이 다 끝났고. 그 사람들이 다 생계의 주체들이잖아요. 그 시간들 안에서 이렇게 하고 있지만, 또 이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함께 있고. 그래서 절망적이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해요. 인간은 갈망함으로써 변화를 만드는 거니까요.
저 깊은 어둠으로 칠한 그림
작품에 아주 깊은 흑색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물감을 제가 직접 만들어요. 동양화 분채는 바인더를 직접 조절할 수 있어서 빛 반사를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제가 바라는 만큼 깊은 어둠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인간의 불가능성에 대해 그리려면 아주 깊은 어둠이 적합할 거라 생각했어요. 인간 갈망에 대한 불가능성, 인생의 불가능성.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갈망하잖아요. 그게 다 이루어지지는 않고요. 불가능성은 삶을 명확하게 보여 주어요. 한계와 실상을 명확히 알게 해요. 시커먼 작품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게 불가능성을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저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에요.
작품 앞 좌혜선 작가
:: 좌혜선 작가와의 인터뷰 #2 이어서 읽기
인터뷰 | 이주호
사진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