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으로 이은 기억, 선에서 자라난 숲 - 김영화 작가 인터뷰 #1

2025-08-21

그믓: 접거나 긋거나 한 자국. 갈라지지 않고 터지기만 한 흔적.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선을 그어야 했을까요. 그 여린 선이 모여 숲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했을까요. 셀 수 없이 긋고 그어 우거진 제주 숲으로 들어가 김영화 작가를 만납니다.


김영화 작가


Q. 대형 작품 <그 겨울로부터>를 비롯해 이번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의 작품들을 대부분 붓펜으로 작업하셨습니다. 언제부터 붓펜을 사용하셨나요?

붓펜을 쓰기 시작한 지 한 8~9년 정도 되는 것 같네요. 펜 드로잉 수업을 할 때였는데, 켈리그라피를 하시던 분이 저 켈리용 붓펜을 들고 오셨어요. 색이 아주 까맣고 붓끝이 단단하고 힘 조절이 매우 자유로워서 저와 잘 맞았어요. 일반 유성 펜들은 처음과 끝이 똑같은 굵기로 나오는데, 이 펜은 힘을 주고 빼고에 따라 자유롭게 굵기 조절이 가능하고 변색도 안 되는 장점이 있어요. 


<그 겨울로부터>


Q. 그 붓펜으로 저 거대한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린 걸까요.

<그 겨울로부터>를 그린 기간은 6개월이에요. 구상하고 답사하고 종이 준비하고 테스트해 보고 하는 것까지 하면 8개월 정도 되고요. 전시장에 다 쓴 펜을 쌓아둔 작품이 있는데, 그게 전부 <그 겨울로부터>를 그리면서 쓴 것들이에요. 세어 보니까 150개가 조금 넘더라고요.


<그 겨울로부터>를 그리며 쓴 펜


Q. 현장 사진을 찍어서 그리신 건가요, 인상으로 그리신 건가요? 

기억 반, 사진 반이에요. 처음부터 이 나무를 그려야지 하고 특정해서 그린 건 아니에요. 제가 처음 들어섰던 눈 오는 숲길에서 시선을 따라 눈에 들어온 나무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고 관찰을 했어요. 하지만 계절이 계속 바뀌는 건 사진만으로는 담을 수가 없어서 미세한 변화를 제 눈으로 보고 기억해야 했어요. 실재하는 숲이기 때문에 마냥 임의대로 그릴 수는 없었지요. 나무 하나, 풀 하나 보고 관찰해야 했어요. 

 <그 겨울로부터>의 일부


Q. 이 숲은 어디에 있나요?

한라산이에요. 흔히 ‘이덕구 산전’으로 불리는 4·3 항쟁의 대표적인 유적지인데, 원래 지명은 ‘북받친밭’이에요. 한라산 초입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여기가 계곡 하나를 더 넘어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숨기에 좋았고 아래를 조망할 수도 있었어요. 토벌대가 올라오지 않나 망을 볼 수 있는 곳이었지요. 그때는 지금처럼 숲이 아니었어요. 화전민들이 불을 놓고 농사를 짓던 곳이라 나무가 없었어요. 제주도에는 원래 화전민 없어요.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한라산까지 가서 아무도 모르게 농사를 지어야 했을까요. 


북받친밭


4.3 당시 대부분 한라산으로 피난을 갔어요. 중산간을 불태우고 나서 토벌대들이 해안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다 폭도 빨갱이로 간주하고 현장에서 사살하겠다는 경고를 해요. 사람들은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마을이 불타니 피난을 가야 했고, 토끼몰이 하듯이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으니 한라산에 오르는 수밖에 없었지요. 한라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사람들도 꽤 있어요.


4.3 당시 피난민들이 몸을 피하고 지냈던 궤(작은 동굴)를 그린 <경계에 선>


Q. 그 겨울 숲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나요?

2021년 4.3 예술축전에서 메인 포스터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이덕구라는 인물의 마지막을 그려달라는 의뢰였는데, 이덕구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고 제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관덕정 앞 형틀에 매달려서 죽은 모습, 형틀에 매달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항쟁의 뜻을 마음에 품고서 산에 올랐고, 산에서 마지막을 맞은 사람이니 산처럼 그리고 싶었어요. 나무인 듯, 숲인 듯. 그때 이덕구 산전을 처음 혼자 올랐는데, 언젠가 내가 이 숲을 담고 싶다, 이덕구가 떠났던 그 겨울, 그리고 피난민들 이야기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항쟁이 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김영화 작가가 그린 2021년 4.3 예술축전 메인 포스터 그림


4.3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숲에 과거의 흔적들이 그대로 있는 흐르는 숲을 그리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갤러리에 입주하며 공간이 생겨서 이 작업부터 실행에 옮기게 되었지요. 


힘들었어요. 두세 시간도 못 잔 날도 많고, 낮에 한두 시간 쪽잠 자는 날도 많고, 주변에서 너 쓰러진다, 쓰러진다,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도 하나하나 저 빈 터를 향해 가는, 빈 터를 채워가는 결실이 눈에 보여서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어요.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하나씩, 한 줄씩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어요.



Q. 너무나 큰 작업이라 밑그림을 그려 놓아야 하시지 않았나요?

크게 나무의 위치, 나뭇가지 방향 정도만 연필로 대충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 즉흥으로 그렸어요. 제가 어떤 숲을 만나게 될지 미리 장담할 수가 없었고, 계절을 따라가며 그려야 하다 보니까 이 나무를 정확하게 이 위치에 그려야지 하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어요. 그리면서 숲을 만났어요. 그리고 있으면 낮에 본 숲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렇게 큰 그림도 처음이지만 흐르는 시간을 한 화면에 담아본 것도 처음이에요. 계절이 지나가며 숲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Q. 나무와 풀 사이의 눈과 빛이 마치 따로 그려 놓은 듯 보여요. 

눈을 남긴 거지요. 선을 긋지 않고 남겨두면 길이 되고 눈이 되고 꽃이 돼요. 제가 시커먼 그림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랬으면 붓으로 칠하든가 두꺼운 매직으로 빈틈을 완벽하게 막았겠지요. 저는 막힘을 정말 싫어해요. 펜은 막힌 듯 보이는 부분도 선과 선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가 비어 있어요. 비어 있는 자리가 눈이 되었고, 숨 쉴 구멍이 되지요. 


남겨둠으로써 그린 눈


대토벌이 벌어지던 그 해 겨울에 눈이 그렇게 많이 왔다고 해요. 그래서 눈 발자국에 대한 증언이 많아요. 들킬까봐 뒷걸음으로 갔다, 뒤로 가며 발자국을 지웠다. 그 겨울이 지나 6월이 되자 때죽나무 꽃이 이 길을 하얗게 덮었지요.


작품 왼쪽의 발자국, 작품 오른쪽의 때죽나무 꽃잎


:: 김영화 작가와의 인터뷰 #2 이어서 읽기


김영화 작가는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바느질과 드로잉 등 손 작업을 통해 제주의 역사와 기억을 시각화해 온 작가다.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큰할망이 있었어』『봄이 들면』 등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으며, 이번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 전시를 통해 펜화 작품을 선보였다.

 



인터뷰 | 이주호·신태진
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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