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으로 이은 기억, 선에서 자라난 숲 - 김영화 작가 인터뷰 #1 먼저 읽기
김영화 작가
Q. 숲속 까마귀들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실제로 숲에 까마귀가 많았어요. 첫날 만난 까마귀들이 제 가까이 다가와서 뭐라 뭐라 하는데 왜 왔냐, 뭐 하러 온 거냐 묻는 것 같았어요 다음에 갔을 때도 같은 까마귀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아이들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 번 눈에 익으니까 저쪽 터로 먼저 가서 앉아 있기도 하고, 동료들한테 까까까, 누구 왔다 알려주기도 하고, 경계한다기보다 반겨주는 것 같았어요. 저한테 무슨 말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작품 속 까마귀
까마귀를 흉조로 보는 분들이 많지만 제주도에서는 신조(神鳥)예요.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도 신격화된 새였지요. 제주 신화에서 까마귀는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왔다갔다하며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존재예요. 그런 의미에서 까마귀는 이 그림에서 저의 메신저인 거지요. 저 대신 제가 말하고 싶은 장소에 앉아 여기를 자세히 봐 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요. 과거 사람들의 말을 저에게 건네주는 느낌, 그래 잊지 않고 찾아왔구나 하고 말해주는 느낌이었지요.
처음 북받친밭에 갔을 때는 묵직한 기분이 들었는데, 자주 가다 보니 숲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고,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도 기분이 침울해질 때면 이곳을 다녀오고는 해요.

작가의 메신저, 까마귀
Q. <그 겨울로부터>가 책으로 나온다고 하셨지요?
<그 겨울로부터> 작업이 끝나고 전시만 하고 끝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 끝나고 그림을 말아서 보관해 버리면 아무도 볼 수 없게 되잖아요. 책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매체이고요. 그림책을 내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꽃 출판사 대표님께 제안했고,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어요.
그림이 병풍처럼 되어 있으니까 병풍 형태의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상태로는 글자를 배치할 빈 공간이 없어서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컴퓨터로 공간을 좀 벌렸어요. 벌려놓고 나니 연결점이 부드럽지 않아서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걸 배워서 벌어진 부분이 자연스러워지게 새로 그려 넣었어요.

『북밭친밭 이야기』의 더미북
Q.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도 4.3과 관련한 작업이었지요?
네, 2021년 시작해서 올해도 하고 있어요. 잃어버린 마을은 4.3 때 중간산 소개령으로 불타서 형태만 남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마을을 통칭해요. 공식적으로는 그런 마을이 제주에 130여 군데가 있어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은 제주에 거주하는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 초보 농사꾼들이 모여 학살터에서 조 농사를 짓고, 수확해서 4.3 제주(祭酒)를 빚어 4.3 영령들에게 술을 올리는 프로젝트예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관련 책자
처음 씨 뿌리는 날 이 과정을 일기처럼 그림으로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 해 농사가 끝나고 제를 올리고 나자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이라는 그림책이 완성되었지요. 술은 전통 방식으로 고소리(소줏고리)에 증류를 해서 소주를 내렸는데 수확량이 너무 적어서 지금은 술 내리는 것만 현대식 기계로 하고 있어요.
Q. 농사와 관련해 <기르는 손, 그리는 손>이란 작품도 있지요.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 그 땅을 그린다는 의미로 그린 그림이에요. 낮에 식물에 대해 품었던 마음을 밤에 똑같이 이어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도 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농사에 익숙해서 모든 생명,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이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키우는 작물을 더 사랑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농사라는 게 한시라도 관심을 놓으면 수확량이 틀어져 버리잖아요. 그리는 작업도 마찬가지에요. 끊임없이 하는 것이 제 숙명 같아요.
<기르는 손, 그리는 손>
Q. 전공이 조각이신데 그림 작업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드로잉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드로잉 하는 걸 원래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그림책 워크숍에서 그림책을 만들어 봤는데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왔어요. 그게 첫 책 『큰할망이 있었어』 예요.
그러다가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작업을 하면서 뭔가 그림만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도 될까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조각보다는 설치 작업을 많이 하는데, 설치로는 구현이 안 되는 것들이 꽤 많아요. 그림은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설치 작품에 비해 공간 구애를 안 받는 것도 좋고요. 그렇게 그림책을 그리다가 점점 그림 작업으로 확장돼 온 거예요.
김영화 작가의 그림책들
Q. 설치 작품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실이나 말린 덩굴을 서로 연결, 연결하면서 형상을 만들고 차곡차곡 엮어가는 작업을 해 왔어요. 실이 주는 감촉도 좋고, 실과 실 사이도 비어 있잖아요. 엮다보면 붓펜의 선 사이가 비어 있는 느낌과 비슷해요. 아무리 시커멓게 칠해도 사이가 빌 수밖에 없잖아요. 그 비어 있는 느낌, 그리고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좋아하고 공간과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실이나 덩굴을 천하고 연결하기도 해요.
제주도립미술관 중정에 설치된 김영화 작가의 작품 <우주목> |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Q. 선을 긋는 행위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전시 제목으로 삼은 ‘그믓’은 제주어로 새기는 행위를 말해요. 선을 긋다와 그믓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많이 달라요. 그믓이 조금 더 센 의미이고, ‘가른다’는 느낌도 있어요. 땅에 그믓을 그어서 영역을 딱 지정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나무 하나, 풀 하나가 선만으로도 되잖아요. 나무도 생명이고 풀도 다 생명이고, 돌도 생명이고, 그 생명이 놓여 있는 장소, 과거, 현재라는 시간이 다 연결된 시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선 하나를 허투루 그릴 수가 없어요. 꽃을 예쁘게 그리는 게 아니라 특정 장소에 꽃을 놓고 있다고 생각하면 선 하나를 긋는 느낌이 달라져요. 그래서 제가 선 긋기를 ‘제의’라고 표현했는데, 그림으로써 뭘 남긴다는 뜻이에요. 선 자체가 제의일 수 있지만, 지금 이 장소든 4.3의 장소든 제가 선으로 남겨 놓는 작업 자체가 저에게 제의예요.
김영화 <맥박>
자화상으로서의 의미도 있는 <멩개낭 불놀이>의 일부
Q. 서울 전시가 끝나고 이제 또 다른 추모의 공간인 광주에서 전시를 이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추모’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잊지 않기 위한 행위, 의식이에요. 기억하지 않고,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그렇게 멀어지다 보면 언젠가 내가 그 추모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어요. 이번 비상계엄 사태 때 그런 걸 느끼신 분들이 많았지요. 추모하고 기억하고 전달했던 분들이 움직였고, 그러지 않았다면 큰 희생이 있었겠지요.
제가 해 온 작업들에 추모라는 사명감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림을 사명감으로 그려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 생활이 그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됐을 뿐이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 이야기, 제 주변 이야기가 4.3 곁을 맴돌고 있고, 오랜 기간 함께 있다 보니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추모와 연결이 되었던 거지요.
작품 앞에서, 김영화 작가
김영화 작가의 〈검은 그믓_선이 이은 기억〉 展은 8월 21일부터 9월 27일까지 광주 오월미술관에서 이어집니다. |
인터뷰 | 이주호·신태진
사진 | 신태진
:: 선으로 이은 기억, 선에서 자라난 숲 - 김영화 작가 인터뷰 #1 먼저 읽기
Q. 숲속 까마귀들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실제로 숲에 까마귀가 많았어요. 첫날 만난 까마귀들이 제 가까이 다가와서 뭐라 뭐라 하는데 왜 왔냐, 뭐 하러 온 거냐 묻는 것 같았어요 다음에 갔을 때도 같은 까마귀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아이들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 번 눈에 익으니까 저쪽 터로 먼저 가서 앉아 있기도 하고, 동료들한테 까까까, 누구 왔다 알려주기도 하고, 경계한다기보다 반겨주는 것 같았어요. 저한테 무슨 말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작품 속 까마귀
까마귀를 흉조로 보는 분들이 많지만 제주도에서는 신조(神鳥)예요.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도 신격화된 새였지요. 제주 신화에서 까마귀는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왔다갔다하며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존재예요. 그런 의미에서 까마귀는 이 그림에서 저의 메신저인 거지요. 저 대신 제가 말하고 싶은 장소에 앉아 여기를 자세히 봐 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요. 과거 사람들의 말을 저에게 건네주는 느낌, 그래 잊지 않고 찾아왔구나 하고 말해주는 느낌이었지요.
처음 북받친밭에 갔을 때는 묵직한 기분이 들었는데, 자주 가다 보니 숲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고,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도 기분이 침울해질 때면 이곳을 다녀오고는 해요.
작가의 메신저, 까마귀
Q. <그 겨울로부터>가 책으로 나온다고 하셨지요?
<그 겨울로부터> 작업이 끝나고 전시만 하고 끝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 끝나고 그림을 말아서 보관해 버리면 아무도 볼 수 없게 되잖아요. 책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매체이고요. 그림책을 내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꽃 출판사 대표님께 제안했고,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어요.
그림이 병풍처럼 되어 있으니까 병풍 형태의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상태로는 글자를 배치할 빈 공간이 없어서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컴퓨터로 공간을 좀 벌렸어요. 벌려놓고 나니 연결점이 부드럽지 않아서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걸 배워서 벌어진 부분이 자연스러워지게 새로 그려 넣었어요.
Q.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도 4.3과 관련한 작업이었지요?
네, 2021년 시작해서 올해도 하고 있어요. 잃어버린 마을은 4.3 때 중간산 소개령으로 불타서 형태만 남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마을을 통칭해요. 공식적으로는 그런 마을이 제주에 130여 군데가 있어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은 제주에 거주하는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 초보 농사꾼들이 모여 학살터에서 조 농사를 짓고, 수확해서 4.3 제주(祭酒)를 빚어 4.3 영령들에게 술을 올리는 프로젝트예요.
처음 씨 뿌리는 날 이 과정을 일기처럼 그림으로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 해 농사가 끝나고 제를 올리고 나자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이라는 그림책이 완성되었지요. 술은 전통 방식으로 고소리(소줏고리)에 증류를 해서 소주를 내렸는데 수확량이 너무 적어서 지금은 술 내리는 것만 현대식 기계로 하고 있어요.
Q. 농사와 관련해 <기르는 손, 그리는 손>이란 작품도 있지요.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 그 땅을 그린다는 의미로 그린 그림이에요. 낮에 식물에 대해 품었던 마음을 밤에 똑같이 이어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도 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농사에 익숙해서 모든 생명,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이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키우는 작물을 더 사랑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농사라는 게 한시라도 관심을 놓으면 수확량이 틀어져 버리잖아요. 그리는 작업도 마찬가지에요. 끊임없이 하는 것이 제 숙명 같아요.
Q. 전공이 조각이신데 그림 작업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드로잉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드로잉 하는 걸 원래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그림책 워크숍에서 그림책을 만들어 봤는데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왔어요. 그게 첫 책 『큰할망이 있었어』 예요.
그러다가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작업을 하면서 뭔가 그림만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도 될까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조각보다는 설치 작업을 많이 하는데, 설치로는 구현이 안 되는 것들이 꽤 많아요. 그림은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설치 작품에 비해 공간 구애를 안 받는 것도 좋고요. 그렇게 그림책을 그리다가 점점 그림 작업으로 확장돼 온 거예요.
Q. 설치 작품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실이나 말린 덩굴을 서로 연결, 연결하면서 형상을 만들고 차곡차곡 엮어가는 작업을 해 왔어요. 실이 주는 감촉도 좋고, 실과 실 사이도 비어 있잖아요. 엮다보면 붓펜의 선 사이가 비어 있는 느낌과 비슷해요. 아무리 시커멓게 칠해도 사이가 빌 수밖에 없잖아요. 그 비어 있는 느낌, 그리고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좋아하고 공간과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실이나 덩굴을 천하고 연결하기도 해요.
Q. 선을 긋는 행위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전시 제목으로 삼은 ‘그믓’은 제주어로 새기는 행위를 말해요. 선을 긋다와 그믓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많이 달라요. 그믓이 조금 더 센 의미이고, ‘가른다’는 느낌도 있어요. 땅에 그믓을 그어서 영역을 딱 지정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나무 하나, 풀 하나가 선만으로도 되잖아요. 나무도 생명이고 풀도 다 생명이고, 돌도 생명이고, 그 생명이 놓여 있는 장소, 과거, 현재라는 시간이 다 연결된 시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선 하나를 허투루 그릴 수가 없어요. 꽃을 예쁘게 그리는 게 아니라 특정 장소에 꽃을 놓고 있다고 생각하면 선 하나를 긋는 느낌이 달라져요. 그래서 제가 선 긋기를 ‘제의’라고 표현했는데, 그림으로써 뭘 남긴다는 뜻이에요. 선 자체가 제의일 수 있지만, 지금 이 장소든 4.3의 장소든 제가 선으로 남겨 놓는 작업 자체가 저에게 제의예요.
Q. 서울 전시가 끝나고 이제 또 다른 추모의 공간인 광주에서 전시를 이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추모’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잊지 않기 위한 행위, 의식이에요. 기억하지 않고,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그렇게 멀어지다 보면 언젠가 내가 그 추모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어요. 이번 비상계엄 사태 때 그런 걸 느끼신 분들이 많았지요. 추모하고 기억하고 전달했던 분들이 움직였고, 그러지 않았다면 큰 희생이 있었겠지요.
제가 해 온 작업들에 추모라는 사명감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림을 사명감으로 그려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 생활이 그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됐을 뿐이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 이야기, 제 주변 이야기가 4.3 곁을 맴돌고 있고, 오랜 기간 함께 있다 보니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추모와 연결이 되었던 거지요.
김영화 작가의 〈검은 그믓_선이 이은 기억〉 展은 8월 21일부터 9월 27일까지 광주 오월미술관에서 이어집니다.
인터뷰 | 이주호·신태진
사진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