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토록 스페인을 사랑하는 사람, 『그때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 이진희 작가

2025-12-02


최근 오직 스페인 도시만을 다룬 독특한 무크지 『그때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마드리드 편을 맡은 이진희 작가는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투어 가이드로 일했고, 현재는 한국에서 스페인 미술과 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 이진희 작가를 만나 어떻게 스페인에 매료되었는지,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여러 유럽 국가 중에서도 오직 스페인을 사랑한다는 이진희 작가를 만나니,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못지 않은 열정이 느껴지네요.


강연자이자 작가, 이진희


Q. 『그때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는 여러 저자가 모여 스페인 도시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획된 책인가요?

『그때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는 ‘스페인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기획한 책이에요. 서울 충무로에 있는 스페인 책방은 스페인을 좋아하거나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공간인데요, 책방 주인 두 분께서 스페인 관련한 재미있는 행사를 많이 기획하세요. 이 책으로 출판에도 첫 발을 내딛으셨는데, 스페인의 매력적인 도시와 그 도시를 사랑하는 한 명의 필자를 연결 지어 본 거예요. 저는 오래 전 스페인 책방에서 열린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가 이번 책에서 마드리드 편을 맡게 되었어요. 책방지기 두 분께서 마드리드를 생각할 때 저를 가장 먼저 떠올려 주셨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지요.


저는 스페인 여행 가이드 출신이라 다른 필자 분들과 조금 다른 경우인데, 다른 분들은 특정 도시와 굉장히 인연이 깊으신 분들이에요. 발렌시아, 세비아, 말라가 등 매력적인 도시들에서 지금도 살고 계신 필자 분들을 스페인 책방에서 일일이 섭외하셨어요. 


스페인 책방에서 출간한 『그때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


Q. 스페인 여러 도시 중에 마드리드를 먼저 손꼽은 이유가 있나요?

제가 스페인에서 가이드 생활을 할 때 처음 배정받았던 도시는 바르셀로나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속했던 회사가 순환 근무제라 바르셀로나에만 머물 수는 없었어요. 결국 마드리드로 떠나야 하는 날이 왔죠.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마냥 막막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좀 설렜어요. 제가 가이드로서 연차가 쌓이면서 생긴 목표가 ‘스페인 미술관 투어’ 하면 제 이름이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하자는 거였거든요. 스페인 미술관 투어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지요.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광장 | ⓒ이진희 


스페인에는 워낙 문화유산이 많다 보니 투어 프로그램도 정말 각양각색이에요. 저도 바르셀로나에서 건축 투어도 하고 수도원 투어, 와이너리 투어, 시티 투어 등 여러 주제의 프로그램을 이끌어 봤어요. 그런데 가이드로서 가장 신나고 제 스스로 일에 집중한다, 몰입한다 느꼈던 때가 미술관 투어였어요.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투어를 맡았을 때, 투어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투어를 진행하고 나서 생기는 손님들과의 친밀감도 다른 프로그램과 차이가 컸어요. 마드리드로 갈 때는 바르셀로나를 벗어나서 더 다양한 미술관이 있는 더 큰 도시로 가는 거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 마드리드가 왜 스페인 미술의 핵심 도시인가요?

일단 고전 근대 회화를 중심으로 본다고 하면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 명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미술관이 마드리드에 모여 있어요. 먼저 프라도 미술관이 있고요, 마드리드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톨레도에 엘 그레코 미술관과 그의 또다른 대작을 만나볼 수 있는 톨레도 대성당 등이 있지요. 이 두 도시에서 스페인 미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작품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어요. 물론 프라도 미술관은 미술관 규모나 작품 컬렉션에서 압도적인 곳이고요.


투어 진행 중인 이진희 작가 | ⓒ이진희 


Q. 스페인에서 일을 하기 전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나요?

저는 역사를 전공했고, 한국에서 하던 일도 역사 관련 일이었어요. 그래서 미학보다는 미술사로 접근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공부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흥미로웠죠.


Q. 어떤 미술관, 혹은 어떤 작품이 작가님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인 건가요?

처음 미술관 투어를 해야겠다, 잘하고 싶다 결심했던 건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투어를 맡게 되면서였어요. 피카소가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잖아요. 피카소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라도 미술관, 벨라스케스, 고야까지 연결이 되었어요. 스페인 미술을 인지해 가는 과정이었지요.


마드리드로 발령을 받은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입시 공부하듯 매일 프라도 미술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어요. 하루에 한 작품씩 집중하면서 제가 해설해야 될 작품 리스트를 만들어 갔어요. 그 시기가 지금 제 모습, 그리고 이 책에 참여하는 데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프라도 미술관 앞에서 | ⓒ이진희 


Q. 프라도 미술관을 한나절 돌아본다고 하면 어떤 식으로 보는 게 좋을까요? 

단순히 작품만 본다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구글에 검색하면 모든 그림이 고해상도로 펼쳐지니까요. 유명한 그림을 누가 보라고 해서 봤다는 데 그치지 말고, 한 작품 혹은 한 층만 집중해서 보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거나 현지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세요.


스페인에서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가 아니예요. 여행에서 중요한 건 매 순간을 즐기는 것, 잊지 못할 나만의 추억을 만드는 거니까요. 하지만 미술관만큼은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해설을 듣는 것과 그냥 혼자 가는 것이 아예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해요. 시각적으로 잘 그렸다, 멋있다는 느낌으로 보는 그림과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보는 그림은 아예 다른 그림이라고 할까요? 프라도 미술관에 가봐야겠다고 계획하셨다면 도슨트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고 꼭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셨으면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은 항상 미술관에서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프라도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말고 스페인 미술을 소박하게 만나는 방법은 없을까요?

고전 회화를 좋아한다면 프라도 미술관에 비할 데가 없지요.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호아킨 소로야 미술관을 추천 드려요. 특히 소로야 미술관은 스페인의 인상주의 작가 ‘호아킨 소로야’가 살던 집이자 그의 작품들을 소장한 정말 매력적인 미술관이에요. 2020년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제가 현지에서 그의 미술관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거예요. 


Q. 지금은 스페인 관련해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지금 제 일의 80%는 스페인 인문학 그리고 여행 강연이에요. 전국 도서관, 공공기관, 기업체를 다니며 스페인, 조금 더 포괄적으로는 유럽 여행을 주제로 예술, 역사, 문화, 미식,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어요. 


ⓒ이진희


Q. 처음 유럽으로 이민을 결심하셨을 때,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을 선택했던 이유가 있나요? 

당시 저는 홍콩,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행은 많이 가봤는데 유럽은 스페인 여행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처음이 너무 충격적으로 좋았나 봐요. 어딘가로 여행을 가서 ‘여기서 뿌리내리고 살아보고 싶다, 이곳 사람들 정말 매력적이다, 나도 이들과 동화되어 함께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스페인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얼마나 푹 빠졌던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일상생활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함께 다녀왔던 회사 동료는 출근하자마자 여행에서의 추억은 가슴에 싹 묻고 일상으로 원상복귀가 바로 됐는데 저만 두고 온 스페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어요.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스페인에 가서 살 수 있는 방법이 뭘까만 생각했지요. 그러니까 첫사랑이었던 거예요, 저한테는.


Q. 스페인에 살며 다른 유럽을 경험했을 때도 그 마음이 여전하던가요?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스페인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위기도 그렇고, 사람들 태도도 그렇고, 음식도 입에 잘 맞고. 스페인에 살면서 유럽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건 분명 행운이었지만, 여행을 다닐수록 제가 스페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어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 ⓒ이진희


Q. 『90일 밤의 미술관』이라는 책도 쓰셨는데,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참여한 책이에요. 제가 있던 회사 프랑스 지점에서 일하셨던 선배 분이 각 나라에서 활동했던 가이드들이 모여서 미술관 투어 책을 내보자 제안해 주셨어요. 그래서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미술관 여행 책이 만들어진 거죠.


직접 쓰기 전까지는 책을 쓴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워낙 공부한 양도 많았고 매일 투어로 풀어냈던 이야기라 겁 없이 덤벼들었다가 정말 큰 고통을 맛봤지요. 또 책을 집필하다 보니 스페인에 있을 때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크더라고요. 현지에 거주하던 시절, 몇 번인가 잡지에 제가 쓴 여행기가 실리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쓴 글이 적은 게 너무 아쉬웠어요. 지금 제 가장 큰 바람은 딱 100일만 스페인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스페인에 대해 아직 다루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싶다는 거예요. 이글을 읽는 분들이 함께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책 나올 겁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페인의 엄청난 매력을 담은 제 책이!


마드리드 알무데나 대성당(Catedral de la Almudena) 앞 광장 | ⓒ이진희 


Q. 스페인을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언제이고, 시간이 부족한 분들이 스페인을 여행할 때 선택하면 좋을 지역은 어디인가요?

스페인 날씨는 지역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한국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아무래도 10월이죠. 10월에 가면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서는 가벼운 물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좋고,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서도 얇은 셔츠 하나만 걸치면 충분해요. 


스페인이 처음이신 분들에게는 바르셀로나만한 데가 없을 거예요.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도 매력적이고 주변에 예쁜 소도시도 많아서 운전이 가능하신 분이라면 바르셀로나에 베이스를 두고 30분,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해변 들을 다녀 보셔도 좋고요. 인천에서 직항 노선이 생긴 이후로 바르셀로나와 주변 카탈루냐 지방만 일주일 여행하고 오시는 분들도 정말 많이 뵀어요.


철도도 아주 잘 깔려 있어서 우리나라로 치면 예전 무궁화호 같은 저렴한 열차가 작은 역마다 정차하는데, 이름이 마음에 드는 역 아무 데나 내려서 돌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작은 마을에도 미슐랭 레스토랑이 있고, 멋진 바다와 이 멋진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숙소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Q. 스페인 주요 도시를 이미 다녀 온 분들이 스페인을 다시 찾을 때 가면 좋을 여행지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스페인 북부 하면 산티아고 순례자길이 잘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다들 그곳에 가면 무조건 몇 백 킬로미터씩 걸어야 할 것만 같으실 텐데, 9세기 경부터 성지 순례 목적지로 자리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오랜 흔적과 대서양을 낀 주변 도시 풍경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어서 종교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며칠 머무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라 코루냐는 피카소가 잠시 살았던 동네로도 유명하고, 의류 브랜드 ZARA 1호점이 시작된 도시이기도 해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등대도 있고요. 먼 옛날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지요. 라 코루냐 여행 당시 이런 생각을 하며 등대 앞에 서니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이 장엄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수세기 전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며 바다를 바라보았을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들었어요. 


라 코루냐 | ⓒ이진희


Q. 강연 의뢰는 어떤 식으로 들어오나요?

저는 주로 추천, 입소문으로 강연 의뢰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SNS형 타입은 아니라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데, 한 번 강의를 다녀오면 담당자분들께서 주변에 엄청 추천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추천에 추천이 이어진 결과 한국 귀국 후 6년째 전국으로 활발하게 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제 대표 강연 프로그램은 <인문학으로 만나는 스페인>과 <예술과 미식으로 만나는 스페인>인데 2시간, 길게는 3시간짜리 강연이에요. 물론 바르셀로나, 알람브라 궁전, 피카소, 건축가 가우디 이런 식으로 원하는 주제를 요청해 주시기도 하고요. 제 인스타그램 계정도 있으니 DM으로 강연 요청 많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론 파워블로거를 목표로 스페인 관련 포스팅도 꾸준히 해보겠습니다!





인터뷰 | 이주호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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