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대의 감정을 되살리는 사람, 영상 미술감독 김초혜 인터뷰 #1 먼저 읽기
Q. 고증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창작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나요?
고증이 어쩌면 창작의 제약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반대로 봐요. 고증이 창작의 기준점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먼저 사료, 사진, 문헌, 도면을 광범위하게 수집합니다. 현장을 답사하고, 미니어처나 샘플을 만들면서 공간감과 질감을 고민하지요. 예를 들어 1950년대 서울이라면, 지금 그 비슷한 풍경이 남아 있는 동네를 찾아가 당시 서울은 어땠을까 상상해 봐요. 공간의 냄새도 느껴보고 공기도 느껴보고. 고증 작업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해야 창작의 방향을 잡아 줄 수 있어요. 창작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너비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고증이거든요. 창작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의 작품이 아닌 해석과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다 보니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정확히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고증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특히 그런 작업 과정을 즐기고, 가장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Q. 드라마 <파친코>는 특히 고증이 엄청나다는 평가가 있잖아요.
<파친코>는 평소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고증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면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인 것 같아요. 일본 역사학자, 한국 역사학자, 리서처 열 분 이상으로 구성된 고증팀을 미술팀 안에 꾸렸고, 그에 맞는 투자도 과감하게 했어요. 일본 장면을 대부분 한국에서 촬영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지 않은 인력거 같은 소품들을 현지 바이어와 리서처 들을 통해 하나하나 선별해서 수입했어요.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미술팀도 심혈을 기울였고, 모두가 미술에 대한 투자를 아낌없이 해줬어요. 그것 또한 미술팀으로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결과도 얻었고요. <파친코>로 미국 아트디렉터스길드에서 커다란 상패를 받았는데, 힘들었던 순간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더라고요.

<탁류> 작업장에서 쌓고 있는 언덕이 저 멀리 능선과 겹쳐진다
Q. 시대극 외에 선호하거나 특히 어려운 장르가 있나요?
선호하는 장르라 하면, 미술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으면 무조건 좋아요. 저는 스릴러나 호러 같은 장르가 영화미술의 꽃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웃음). 스릴러와 호러는 미술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르예요. 피 한 방울의 색감과 질감, 공간의 온도와 냄새까지 미술이 서사를 주도하거든요.
하지만 코미디나 로맨틱물이 표현하기 훨씬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지 못할 거예요. 디테일을 엄청나게 표현해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코미디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풍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소품 하나에도 풍자를 담거나, 인물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연구하고 간접적인 표현 방식도 만들어보고 하는데, 그래서 더 어려운 장르로 느껴져요.
Q. <악마를 보았다> 작업도 하셨는데, 잔인한 장면을 다루다 보면 정서적으로 힘들지 않으세요?
<악마를 보았다>를 마치고 그 후 연이어 호러 영화 두 편을 작업했어요. 그것들을 마치고 나니까, 역설적으로 무서운 영화가 없어졌어요. 어렸을 때는 <여고괴담>을 보고 긴장해서 몸살이 날 정도였는데요.
실제로 피를 만들기도 하고 해부학도 공부하고, 칼에 찔렸느냐, 둔기에 맞았느냐, 깨진 유리에 베였느냐를 자료를 찾아보고, 사진도 찾아보고 했어요. 둔기로 머리를 힘껏 내리쳤을 때 피가 어디까지 튀는지도 구현했고, 머리가 잘리면 어느 정도의 피가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지까지. 그러고 나니 이제는 무서운 영화도 잘 봐요. 스릴러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극적인 반전 요소를 즐기기까지 합니다. 영화 <세븐>같은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Q. <악마를 보았다> 미술팀원일 때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5개월 동안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셨다가 막상 촬영이 끝난 후 섭섭함과 아쉬움, 현장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15년이 흐른 지금의 작업 중과 작업 후의 감각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하나의 세계가 끝나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는 기대감이 더 큽니다. 이제는 완성된 세계가 마무리 되면, 그 세계를 함께 만든 팀원들에 대한 감사함을 더 챙기게 됩니다. 신입 시절에는 몇 달 만에 세트를 철거하는 일이 아쉽고 정이 들었지만, 지금은 같이 작업을 한 모두가 안전하게 정리하고 안전하게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의 과정을 더 챙기게 되더라고요..
좋은 결과물로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작품을 떠나보낼 때의 아쉬움보다는 함께 만들어낸 팀원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다음 세계는 어떤 호흡을 가져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요.
Q. 해외 OTT 드라마 작업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릴 때 <X파일>, <맥가이버> 같은 외화 시리즈를 많이 보며 자랐고,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영화 시작될 때 들리는 시그널 음악을 들으면 무언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그런 관심으로 미국에 잠시 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 덕분에 글로벌 환경에서의 작업 기회가 자연스럽게 열렸고, 국내에서는 없는 새로운 재료나 장비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작업 방식이나 다른 관점의 해석에 대해 서로 상의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많이 느꼈어요. 새로운 작업 방식을 경험하면서 국내 작품에 적용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무덕이의 일터, 마포 나루터
Q. 혹시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지만, 현재 방영하고 있는 <탁류>라는 사극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왜냐하면 정말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거든요. <탁류>에서 미술감독으로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냐고 연출감독님이 저에게 물었을 때, 제 대답은 ‘정서’였어요. 지금까지 조선 시대의 왕이나 상류층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하층민의 이야기는 많지 않았잖아요. 조선 시대 하층민들은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딱 떠오른 한 단어가 정서였습니다.
그 시대 인물들의 한, 자연에서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선, 흙에서 느껴지는 맛을 제가 한 번 표현해 보겠다는 뜻이었어요. 그들의 진한,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연출감독님도 공감해 주었고, “그래, 한 번 해보자” 하면서 서로가 신이 나서 준비했어요.
나루터로 선정된 장소도 미술팀으로서는 정말 힘든 장소였어요. 조선 시대 마을을 약 6천 평 정도 지어야 했는데, 토질 자체가 모래인 지형이라 건물을 세우기는 매우 힘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땅이었어요. 그리고 화면에는 크고 작은 동산들 사이로 길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다 평지였어요. 흙을 쌓아 4개의 동산을 만들었고, 토목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물가이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작업 중에 물이 범람하는 지역이라는 위험 정보도 미리 알고 있었어요. 왜 여기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결정한 가장 큰 키워드는 ‘정서’였고 ‘물의 반영’이었기 때문이에요.



촬영 현장의 처음 모습, 컨셉 디자인, 완성된 모습
그 장소를 처음 갔을 때 강물이 흐르는 지형, 멀리 보이는 산의 형태, 바람의 방향, 물에 반사되어 보이는 풍경의 모습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정서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결국 공사 내내 물, 비바람과 싸워야 했지만 해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무덕이’라고, 박지환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있어요. ‘무덕이’가 극 중 중요한 캐릭터였던 만큼, 나루터의 무덕이 공간에 ‘공간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조선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뭐가 있겠어요. 제가 포인트로 잡은 것은 흙, 바람, 물, 나무였고, 물이 있는 공간을 골라 흙으로 지리 지형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멀리서 봐도 무덕이의 힘을 표현해 줄 수 있도록 큰 나무를 심었어요. 나무 하나도 정서가 느껴지는 나무를 고르는 것이 미술로서 미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Q.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시대나 공간이 있다면요?
SF 장르를 정말 좋아해요. 과거든 미래든, 시간을 뛰어넘는 작업에 매력을 느끼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공간이 품은 감정을 만들고 싶어요. 관객이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어떤 정서, 그게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거예요. 프로덕션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걸 만드는 일이지만, 궁극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전달해야 하니까요.
Q. 마지막으로 좋은 영화미술이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미술이란, 미술만 보이거나 미술이 먼저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영화미술은 그 작품 안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와 함께 등장하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에게 힘을 주어야 하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살짝 힘을 빼주기도 해야 합니다. 눈에 띄는 건축의 화려한 양식이나 튀는 벽지의 색채보다는, 그 패턴이나 색이 영화에 얼마나 스며들었느냐, 공간과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얼마나 서로를 받쳐 주고 있느냐가 영화미술이 추구해야 하는 미적 가치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경우에는 1센티미터의 미학이 필요할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이 필요할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소품 하나에 영화의 모든 것을 표현이 되어야 할 때도 있고,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화음을 밑에서부터 쌓아가야 하는 순간들도 있어요. 빛이 새어 들어올 때 작은 구멍의 먼지에서도 이야기가 있을 수 있고, 바람의 방향을 눈에 보이게 비닐로 표현해 줘서 극의 실마리를 푸는 단서가 될 수도 있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미술팀은 먼지도 만들고, 물길도 만드니까요(웃음). 이런 모든 것들이 디자인적 요소이고, 이 모든 것을 켜켜이 쌓아 만드는 것이 영화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 이주호 · 신태진
:: 지난 시대의 감정을 되살리는 사람, 영상 미술감독 김초혜 인터뷰 #1 먼저 읽기
Q. 고증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창작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나요?
고증이 어쩌면 창작의 제약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반대로 봐요. 고증이 창작의 기준점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먼저 사료, 사진, 문헌, 도면을 광범위하게 수집합니다. 현장을 답사하고, 미니어처나 샘플을 만들면서 공간감과 질감을 고민하지요. 예를 들어 1950년대 서울이라면, 지금 그 비슷한 풍경이 남아 있는 동네를 찾아가 당시 서울은 어땠을까 상상해 봐요. 공간의 냄새도 느껴보고 공기도 느껴보고. 고증 작업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해야 창작의 방향을 잡아 줄 수 있어요. 창작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너비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고증이거든요. 창작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의 작품이 아닌 해석과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다 보니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정확히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고증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특히 그런 작업 과정을 즐기고, 가장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Q. 드라마 <파친코>는 특히 고증이 엄청나다는 평가가 있잖아요.
<파친코>는 평소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고증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면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인 것 같아요. 일본 역사학자, 한국 역사학자, 리서처 열 분 이상으로 구성된 고증팀을 미술팀 안에 꾸렸고, 그에 맞는 투자도 과감하게 했어요. 일본 장면을 대부분 한국에서 촬영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지 않은 인력거 같은 소품들을 현지 바이어와 리서처 들을 통해 하나하나 선별해서 수입했어요.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미술팀도 심혈을 기울였고, 모두가 미술에 대한 투자를 아낌없이 해줬어요. 그것 또한 미술팀으로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결과도 얻었고요. <파친코>로 미국 아트디렉터스길드에서 커다란 상패를 받았는데, 힘들었던 순간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더라고요.
<탁류> 작업장에서 쌓고 있는 언덕이 저 멀리 능선과 겹쳐진다
Q. 시대극 외에 선호하거나 특히 어려운 장르가 있나요?
선호하는 장르라 하면, 미술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으면 무조건 좋아요. 저는 스릴러나 호러 같은 장르가 영화미술의 꽃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웃음). 스릴러와 호러는 미술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르예요. 피 한 방울의 색감과 질감, 공간의 온도와 냄새까지 미술이 서사를 주도하거든요.
하지만 코미디나 로맨틱물이 표현하기 훨씬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지 못할 거예요. 디테일을 엄청나게 표현해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코미디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풍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소품 하나에도 풍자를 담거나, 인물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연구하고 간접적인 표현 방식도 만들어보고 하는데, 그래서 더 어려운 장르로 느껴져요.
Q. <악마를 보았다> 작업도 하셨는데, 잔인한 장면을 다루다 보면 정서적으로 힘들지 않으세요?
<악마를 보았다>를 마치고 그 후 연이어 호러 영화 두 편을 작업했어요. 그것들을 마치고 나니까, 역설적으로 무서운 영화가 없어졌어요. 어렸을 때는 <여고괴담>을 보고 긴장해서 몸살이 날 정도였는데요.
실제로 피를 만들기도 하고 해부학도 공부하고, 칼에 찔렸느냐, 둔기에 맞았느냐, 깨진 유리에 베였느냐를 자료를 찾아보고, 사진도 찾아보고 했어요. 둔기로 머리를 힘껏 내리쳤을 때 피가 어디까지 튀는지도 구현했고, 머리가 잘리면 어느 정도의 피가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지까지. 그러고 나니 이제는 무서운 영화도 잘 봐요. 스릴러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극적인 반전 요소를 즐기기까지 합니다. 영화 <세븐>같은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Q. <악마를 보았다> 미술팀원일 때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5개월 동안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셨다가 막상 촬영이 끝난 후 섭섭함과 아쉬움, 현장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15년이 흐른 지금의 작업 중과 작업 후의 감각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하나의 세계가 끝나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는 기대감이 더 큽니다. 이제는 완성된 세계가 마무리 되면, 그 세계를 함께 만든 팀원들에 대한 감사함을 더 챙기게 됩니다. 신입 시절에는 몇 달 만에 세트를 철거하는 일이 아쉽고 정이 들었지만, 지금은 같이 작업을 한 모두가 안전하게 정리하고 안전하게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의 과정을 더 챙기게 되더라고요..
좋은 결과물로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작품을 떠나보낼 때의 아쉬움보다는 함께 만들어낸 팀원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다음 세계는 어떤 호흡을 가져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요.
Q. 해외 OTT 드라마 작업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릴 때 <X파일>, <맥가이버> 같은 외화 시리즈를 많이 보며 자랐고,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영화 시작될 때 들리는 시그널 음악을 들으면 무언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그런 관심으로 미국에 잠시 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 덕분에 글로벌 환경에서의 작업 기회가 자연스럽게 열렸고, 국내에서는 없는 새로운 재료나 장비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작업 방식이나 다른 관점의 해석에 대해 서로 상의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많이 느꼈어요. 새로운 작업 방식을 경험하면서 국내 작품에 적용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무덕이의 일터, 마포 나루터
Q. 혹시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지만, 현재 방영하고 있는 <탁류>라는 사극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왜냐하면 정말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거든요. <탁류>에서 미술감독으로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냐고 연출감독님이 저에게 물었을 때, 제 대답은 ‘정서’였어요. 지금까지 조선 시대의 왕이나 상류층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하층민의 이야기는 많지 않았잖아요. 조선 시대 하층민들은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딱 떠오른 한 단어가 정서였습니다.
그 시대 인물들의 한, 자연에서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선, 흙에서 느껴지는 맛을 제가 한 번 표현해 보겠다는 뜻이었어요. 그들의 진한,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연출감독님도 공감해 주었고, “그래, 한 번 해보자” 하면서 서로가 신이 나서 준비했어요.
나루터로 선정된 장소도 미술팀으로서는 정말 힘든 장소였어요. 조선 시대 마을을 약 6천 평 정도 지어야 했는데, 토질 자체가 모래인 지형이라 건물을 세우기는 매우 힘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땅이었어요. 그리고 화면에는 크고 작은 동산들 사이로 길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다 평지였어요. 흙을 쌓아 4개의 동산을 만들었고, 토목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물가이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작업 중에 물이 범람하는 지역이라는 위험 정보도 미리 알고 있었어요. 왜 여기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결정한 가장 큰 키워드는 ‘정서’였고 ‘물의 반영’이었기 때문이에요.
촬영 현장의 처음 모습, 컨셉 디자인, 완성된 모습
그 장소를 처음 갔을 때 강물이 흐르는 지형, 멀리 보이는 산의 형태, 바람의 방향, 물에 반사되어 보이는 풍경의 모습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정서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결국 공사 내내 물, 비바람과 싸워야 했지만 해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무덕이’라고, 박지환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있어요. ‘무덕이’가 극 중 중요한 캐릭터였던 만큼, 나루터의 무덕이 공간에 ‘공간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조선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뭐가 있겠어요. 제가 포인트로 잡은 것은 흙, 바람, 물, 나무였고, 물이 있는 공간을 골라 흙으로 지리 지형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멀리서 봐도 무덕이의 힘을 표현해 줄 수 있도록 큰 나무를 심었어요. 나무 하나도 정서가 느껴지는 나무를 고르는 것이 미술로서 미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Q.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시대나 공간이 있다면요?
SF 장르를 정말 좋아해요. 과거든 미래든, 시간을 뛰어넘는 작업에 매력을 느끼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공간이 품은 감정을 만들고 싶어요. 관객이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어떤 정서, 그게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거예요. 프로덕션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걸 만드는 일이지만, 궁극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전달해야 하니까요.
Q. 마지막으로 좋은 영화미술이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미술이란, 미술만 보이거나 미술이 먼저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영화미술은 그 작품 안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와 함께 등장하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에게 힘을 주어야 하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살짝 힘을 빼주기도 해야 합니다. 눈에 띄는 건축의 화려한 양식이나 튀는 벽지의 색채보다는, 그 패턴이나 색이 영화에 얼마나 스며들었느냐, 공간과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얼마나 서로를 받쳐 주고 있느냐가 영화미술이 추구해야 하는 미적 가치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경우에는 1센티미터의 미학이 필요할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이 필요할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소품 하나에 영화의 모든 것을 표현이 되어야 할 때도 있고,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화음을 밑에서부터 쌓아가야 하는 순간들도 있어요. 빛이 새어 들어올 때 작은 구멍의 먼지에서도 이야기가 있을 수 있고, 바람의 방향을 눈에 보이게 비닐로 표현해 줘서 극의 실마리를 푸는 단서가 될 수도 있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미술팀은 먼지도 만들고, 물길도 만드니까요(웃음). 이런 모든 것들이 디자인적 요소이고, 이 모든 것을 켜켜이 쌓아 만드는 것이 영화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 이주호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