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야기 한 장면이 한 잔에 담깁니다, 조이하이볼 윤석열 대표

2025-12-23


지하철 6호선 보문역과 1호선 신설동역 사이. 돈암동의 웅성거림이 잦아든 길과 동대문에 납품하는 의류 제품을 만드는 공장들의 여파가 남은 길이 만나는 동네. 1930년대 처음 조성된 한옥 마을의 형태가 아직 또렷하고 그 뒤로 언덕을 타고 다양한 생김새의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동네. 그래서 어떤 동네라 설명하기 참 어려운 동네. 위스키, 바, 하이볼을 마시러 일부러 찾아간다 하면 다들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동네 한복판에 한국에서 손꼽는 하이볼 전문점이 있습니다. 

하이볼 유행이 막 시작되던 시점에 이미 완성시킨 하이볼 맛과 라인업을 갖추고서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하이볼 그 이상을 알려주던 곳. 지도앱을 따라 걸으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기가 맞나? 이런 곳에 하이볼 바가 있다고? 지도 안내가 멈춘 그곳에 어김없이 조이하이볼이 나타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래, 여기를 와야 했어, 안도하고는, 어느새 몸은 익숙한 듯 자리를 잡습니다. 메뉴를 펼치자 완전히 새로운 하이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은은하고, 묵직하고, 청량하고, 화사한 하이볼 맛에 관한 이야기를 조이하이볼 윤석열 대표님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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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이볼은 어떤 술인가요?

하이볼은 칵테일 중 하나에요. 바에서 바텐더가 믹스해 주는 칵테일은 이런저런 리큐르와 술, 과즙을 복합적으로 섞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술을 말하지요. 반면 하이볼은 화려한 치장보다 단일 주종의 순수한 맛을 잘 살리는 술입니다. 탄산수가 들어가니 원주를 그래도 좀 가볍게 즐기실 수 있고요.


Q. 하이볼은 처음 어떻게 접하시게 됐나요?

아버지의 일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일본을 자주 오가며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에 익숙했어요. 대학생이던 90년대 초반, 후쿠오카에서 유학하던 형님을 뵈러 갔다가 어느 주점에서 처음 하이볼을 마셔보게 됐어요. 제 생각에 당시에는 탄산이 그렇게 세지 않았어요. 여기 참 멋진 술집이다,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 분위기와 어울려 참 맛있는 술이다 했었지요.

제가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술을 좋아해요. 맛있는 술이라는 게 비싸고 좋은 술이 아니라 저와 향과 느낌이 딱 맞는 술을 말해요. 주량이 적다는 게 술집을 하는 데는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요, 술을 너무 좋아하고 많이 마셨으면 균형을 잡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Q. 그때 받으셨던 느낌을 살려 가게를 꾸미신 건가요?

복고 분위기랄까, 그런 분위기를 좋아해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연출하다 보니 가게가 이런 모습이 되었어요. 레트로 유행에 맞춰 보려고 한 건 아니에요. 한국은 오랫동안 개발에 심취해 있어서 옛날 거라면 무조건 부수고 봤잖아요. 일본에는 현대적인 풍경 이면에 고전적인 면도 잘 보존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는 분위기의 공간이 많이 남아 있어요. 저도 그런 멋이 좋았는데, 요새 한국 청년들도 이런 오래된 분위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조이하이볼을 찾아와 주시는 한 분 한 분이 이곳을 안식처, 쉼터로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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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문동에서 하이볼 전문점을 하게 되신 이유가 있나요?

일단 한옥을 찾고 싶었어요. 북촌, 안국동, 한옥이 있는 동네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다 둘러봤는데 저에게 딱 맞는 공간을 못 찾았어요. 이곳 보문동은 제게도 아주 생소한 동네였는데, 원래 봉제공장으로 쓰이던 이 집을 만나게 됐죠. 여기를 처음 보자마자 아,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그래도 손 댈 데가 많아서 한옥 틀만 남기고 창도 새로 내는 식으로 내부 공사를 많이 했어요. 내부는 전부 제가 꾸몄는데, 여기저기서 가지고 와서 쌓아놓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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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이볼이라는 단어에 동네 분들이 낯설어 하지는 않았나요?

계약을 하고 나서 아들에게 이 공간을 보여줬는데, 여기서 장사가 될 것 같냐, 제정신이냐, 엄청 뭐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서울시에서 해 주는 컨설팅을 받아 본 적이 있는데, 이 앞의 유동인구가 거의 0이더라고요. 저는 그저 여기 들어왔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계약한 건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무서워요. 누가 여기서 저 보고 장사하라 하면 지금은 안 할 것 같아요.

동네 분들은 위스키가 뭔데 동네에서 이런 거를 파냐는 반응이셨어요. 지금도 동네 장사는 어려워요. 여기서 조이하이볼은 섬 같은 곳이에요. 조이하이볼을 둘러싸고 바다, 강이 있고, 멀리 사는 손님들이 이 섬에 찾아와 주시는 거지요. 제가 손님들 대학 졸업도 많이 시켰고, 여기서 연애하고 결혼하는 커플들도 많이 생겨서 요즘 예식장에도 자주 가요. 12년 연애 중 6년을 여기서 하셨다는 분들이 있는데, 지금도 아주 돈독해요.


Q. 처음 문을 열 때는 하이볼 전문점이 아니라 카페 앤 펍을 추구하셨더라고요.

문턱을 낮추고 싶었어요. 제 최종 목표는 하이볼을 판매하는 것이니까 위스키의 문턱을 낮춰서 하이볼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시작이 카페 앤 펍이었지요. 미국에서는 굉장히 대중적인 형태의 가게에요. 아침부터 열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낮에 커피를 마시던 공간에서 저녁에는 술을 마실 수 있고, 저는 그런 편안함을 추구했던 건데 무슨 바에서 커피를 파냐, 정체성이 뭐냐, 그런 평이 여기저기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2019년 11월 15일 오픈을 했고, 세 달 뒤쯤 코로나가 왔어요. 그때부터 펍, 바에서 낮에 바리스타를 고용하여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코로나를 지나며 이런 형태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아요. 어쨌건 저는 하이볼을 판매해야 하는 목표가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천천히 하이볼의 저변을 늘려가 본 거지요.


Q. 하이볼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 데 몇 가지 소개해 주세요.

먼저, ‘들꽃 하이볼’은 두 달 전 만든 레시피인데, 일 끝나고 새벽 3시 반쯤 성북천을 걸어가다가 가로등 밑 바위틈에서 들꽃 한 송이를 봤어요. 그 꽃에서 제 모습이 보였던 것 같아요. 누구나 인생이 장미꽃 같길 원하지만 다 그럴 수는 없잖아요. 들꽃은 은은함 속에, 고요함 속에 자기를 드러내고, 그 생명력이 그날 문득 제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제가 화려한 꽃은 아니어도 들꽃처럼 은은하게, 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마음을 맛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일단 풀 냄새가 나야 하는데, 과연 어떤 걸 주종으로 잡을까 며칠 고민하다가 베네딕틴이라는 술을 골랐어요. 오래 전 프랑스 수도사들이 스물네 가지의 꽃잎으로 만든 술인데, 풀 냄새가 나요.

‘문라이트 플라워’라는 하이볼은 들꽃 하이볼과 정반대 술이에요. 처음부터 화려함을 터뜨리면서 가는 술이고, 그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달콤하고 꽃향기 가득한 플라워의 부드러운 향을 터트려 향수 같은 여운을 남기게 했습니다. 밤에 피어나는 꽃, 문라이트 플라워를 만든 계기는 제가 사랑한 연인을 표현해 보고 싶어서였어요.

일본말로 퇴근할 때 수고했어, 수고해, 그런 뜻으로 “오츠카레”라는 말을 하는데, 일본에는 퇴근길에 매일 가는 동네 술집에 들러 간단한 음식에 술 한 잔 하고 가는 문화가 있잖아요. 따로 묻지도 않고 술이 한 잔 나오고. 첫잔은 세지 않고 가볍게 가는 게 좋지요. 그래서 퇴근길에 수고했어, 하는 느낌으로 오츠카레 하이볼을 만들었어요. 색은 노을빛 느낌으로 가고 싶었고, 그래서 원주로 캄파리를 썼는데, 이탈리아에서 허브와 과일로 만든 붉은색 식전주예요. 거기에 오렌지를 넣어서 색을 맞췄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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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문동 이름을 딴 ‘보문동 하이볼’도 있지요? 

보문동 냄새가 밴 하이볼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보문동을 생각하면 어쩐지 시나몬 향이 떠올라요. 버번을 기본으로 시나몬과 라임을 넣어서 만든 저희 시그니처 하이볼인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역 이름을 따서 만든 하이볼이에요. 이걸 만들고 나서 전국에 무슨 하이볼, 무슨 하이볼 하면서 동네 이름을 딴 하이볼들이 많이 생겼어요.


Q. ‘갓파더’는 영화 대부를 좋아해서 만드신 하이볼인가요? 

메뉴 그림도 그렇고 다들 영화 <대부>를 보고 만든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사실 존경하는 신부님 두 분을 생각하며 만든 하이볼이에요. 제 인생이 힘들 때마다 잡아주시고 아픔이 있을 때마다 듣고 위로해 주시는 분들이지요. 파더라는 단어가 신부님을 뜻하기도 하잖아요. 메뉴에 자세히 보시면 ‘세례자 요한 신부님과 베드로 신부님께 이 술을 바칩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Q. ‘청량리 하이볼’은 무궁화호, 통일호 맨 뒤 칸 창가 그림이 인상적이네요.

청량리 하이볼은 10분 만에 레시피를 잡았는데, 만들고 나서 이건 정말 멋진 술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대학생 때 청량리역 광장에서 모여 강촌, 대성리로 엠티를 갔잖아요. 청량리에서 열차를 탔을 때의 설렘, 청춘, 그런 느낌을 기차에서 마시던 사이더의 청량감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사이더처럼 뭔가 탁 치고 나오는 게 있어야 했고, 오렌지, 시트론, 라벤더, 장미 등이 들어간 이탈리쿠스를 기본으로 해서 뽕따, 캔디바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 나도록 의도했어요. 메뉴 그림은 말씀하셨듯, 기차의 제일 마지막 칸 창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하이볼 잔으로 디자인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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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이볼마다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있네요. 조이하이볼은 단순한 술집이 아닌 것 같아요.

조이하이볼은 제 삶의 마지막 여정이에요. 제가 없어도 조이하이볼은 남아서 이곳을 좋아하는 분들이 술 한 잔 하면서 쉬었다 가시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이름을 지어서 그 술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이 태어나 이름이 생기면 그때부터 하나의 인격이 되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 단순히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 창조와 예술이 머무는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조이하이볼을 통해 예술을 일상에 녹여내고 주류를 하나의 문화로 확장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거예요. 한 잔의 하이볼 안에 음악과 예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지요. 또, 조이하이볼은 예술가, 건축가, 영화감독, 음악인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과 협업하며 각 분야의 정신과 영감을 하이볼로 승화시키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맛과 이야기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이하이볼에 오시는 손님 중에 그림 그리는 분도 있고, 건축을 하는 분도 있어요. 그분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작명을 하고 포스터를 만들어요. 레시피에서 포스터까지 전부 하나로 이어지는 작품인 거지요. 이 술은 이거랑 섞으면 정말 맛있어질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맛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고, 들꽃하이볼처럼 어떤 느낌이 와서 그걸 맛으로 표현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하나의 레시피를 떠올리면 같이 작업할 분과 우리만의 이야기와 그림을 만들어 가요. 조이하이볼의 하이볼은 하나하나 다 작품이에요. 한 잔의 술에 문화를 담는 곳, 문화와 창작 등 예술을 일상에 녹여내고 빚어내는 곳, 그것이 조이하이볼의 정체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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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주도 그렇지만 특히 디저트가 특별하네요.

디저트를 왜 카페에서만 먹어야 하지? 게다가 밤 10시가 넘으면 디저트를 파는 곳도 없고요. 그래서 조이하이볼에서 디저트까지 먹으면 되겠네 하고 생각한 거예요. 디저트가 저희 하이볼과 잘 맞기도 했고요. 조이하이볼의 디저트는 모두 다 저희가 직접 만들어요. 그게 자존심이지요.

메뉴 개발과 요리는 조이하이볼의 실장님께서 하시는데요, 제가 만드는 하이볼을 보시고 어떤 컬러감의 음식이 함께 나가면 좋겠다고 고민하세요. 그러다가 어느 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선보이시고요. 그걸 어울리는 콘셉트와 감성으로 다듬어서 새 메뉴로 만드는 거예요.

안주로는 피자, 파스타, 감바스 같은 보편적인 메뉴는 물론, 김치볶음밥도 있고 해물 라면도 있어요. 퇴근하고 혼자 오는 분들이 늦은 밤에라도 여기서 배를 채우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거예요. 조이하이볼에 오시는 분들에게 집중을 하다 보니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어지게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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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겨울 조이하이볼에서 마시면 좋을 메뉴를 추천해 주세요.

‘포치드 페어’와 ‘들꽃하이볼’을 함께 드시는 걸 추천해요. 호치드 페어는 서양 배를 레드 와인에 1시간 동안 절여서 만든 디저트인데,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디저트에요. 이게 들꽃하이볼의 은은한 향과 정말 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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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사진 | 이주호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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