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10
<조은정과 사람들>이 2026년 새해이자 열 번째 인터뷰를 기념하며 특별한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바로 뉴욕의 건축가들을 만나는 시간이지요. 뉴욕의 퍼킨스 이스트만에서 근무하는 윤성환, 고해석 건축가 두 분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경계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어반 디자이너 윤성환 님부터 만나보시지요.
건축가 윤성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성환이라고 합니다. 나이로 보자면 X세대고요, 뉴욕의 퍼킨스 이스트만이라는 회사에서 건축과 어반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Q.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을 ‘잘’ 혹은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달라졌다고 합니다만, 한국의 건축계가 많이 답답했고 막연히 ‘선진국’ 가서 일하면 뭔가 다 제대로 하게 될 줄 알았지요. 그래서 건축으로 유명한, 혹은 제가 공부하던 건축가들의 출신국을 찾아보며 “유럽에 가면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을까?”, “미국에 가면 이런 디자인을 해도 팔리나?” 고민했지요.
그러는 와중 와이프가 영국을 다녀오더니 거기서는 우울해서 못 살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미국으로 가자, 미국에서 제일 좋은 곳이 어디지? 뉴욕이네! 이렇게 단순 무식하게 왔어요. 딱히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요.
Q. 조금 유치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헉 할 만한 ‘아이비리그’ 출신이시더군요. 학교 자랑을 좀 해 주시겠어요? 합격한 비결도요.
멀고먼 옛날 얘기라 현실적인 입시 전략을 알려드릴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사실 아이비리그를 가자고 해서 간 건 아니에요. 역사가 오래된 전공이다 보니 건축과가 그만큼 역사가 깊은 아이비리그에만 있었거든요. 그냥 ‘아이비리그 가고 싶은데’라는 마음으로 출발하면 답이 안 보일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갈까? 말까?”의 마음을 정하는 것이지요. 간다고 마음만 먹으면 리소스가 엄청 많더라고요. 가고 싶다는 마음을 정했고, 왜 가고 싶은지가 명확하고, 자신이 그 방향으로 계속 달려왔다면 큰 문제는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엔 이미 경력이 있고 공부도 많이 한 상태였지만, ‘이제 와서 다 때려치우고 미국을 가겠다?’ 이걸 결정하는 부분이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학원은 의지만 있다면 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한국에서 학부도 나오고 회사도 다닌 상태였어요. 한국에서도 국제 현상 설계 같은 걸 주로 하는 팀이라 포트폴리오도 나쁘지 않았고, 영어는 말하는 건 여전히 힘들긴 해도 한국식 입시 교육을 충실히 받은 터라 읽고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서 준비 시간도 오래 안 걸렸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저희 때보다는 좀 더 사정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학부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조언은 아닙니다만, 결국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할지 조준하고 일직선을 그리면 그 사이에 학교가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먼 방향을 향해서 ‘일관된’ 준비를 하면 건축과 입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 선을 읽어내는 것 같아요. 문제는 건축과 사람들은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 건축도 좋아 보이고 이 도시도 아름다워 보이고 한다는 거예요. ‘일점사’ 하듯 공부도 일도 준비하다 보면 마음대로는 안 되더라도 어딘가로 향해 가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X세대답게
Q. 재직 중인 회사 ‘퍼킨스 이스트만(Perkins Eastman)’은 1981년 뉴욕에서 시작해 현재는 해외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 ‘건축·도시설계·인테리어 전문 설계사무소’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저는 어반 디자인을 중심으로 계속 프랙티스를 했어요. 한국에서도 마스터플랜 위주로 했었고, 컬럼비아에서의 전공도 어반 디자인이었어요. 어반 디자인이 그냥 플래닝과 다르다는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요, 우선 뉴욕의 어반 디자인을 만들었다고 봐도 될 두 분이 알렉스 쿠퍼(Alex Cooper)와 스탠 엑스텃(Stan Eckstut)입니다. 1960~70년대 두 분이 회사를 함께 시작했고, 지금 맨해튼의 지도를 바꾼 프로젝트,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를 하셨죠. 나중에 갈라져서 각자 쿠퍼 로버트슨(Cooper Robertson)과 EEK라는 회사가 되었는데, 저는 컬럼비아 졸업 후에 쿠퍼 로버트슨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 컬럼비아 교수님이 쿠퍼에서 일한 덕에 몇 년간 좋은 어반 디자인 프로젝트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회사를 옮겼는데, 저의 포트폴리오와 비슷한 일을 하는 스튜디오에서 저를 뽑아 주셨어요. 알고 보니 EEK가 퍼킨스 이스트만에 합병되어서 스튜디오가 되어있던 것이더라고요.
건축/도시 분야는 일의 특성상 아주 보수적인 인더스트리이다보니 ‘해 본 사람’만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배터리 파크 시티의 성공 덕에 워싱턴 D.C.의 Wharf라는 프로젝트도 할 수 있었고, 그 Wharf 라는 프로젝트 역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불러오는 좋은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새로운 세대는 제2, 제3의 배터리 파크와 워프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는 중이고요. 저희 프로젝트는 언제나 10년, 20년을 보고 움직입니다.
Q. 자신을 ‘어반 디자이너(Urban Designer)’라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어반 디자이너는 도시의 공간 구조와 공공영역을 설계하여 살기·걷기·머물기 좋은 도시 경험(거리, 광장, 블록, 수변, 스카이라인 등)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반 디자인은 쉽게 말하면 하이브리드에요. 플래닝과 건축의 중간쯤이고, 실무적으론 건축이 도시와 맞닿는 접점을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회사 안에서도 저희 팀이 플래닝 전공을 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한데, 저희 팀은 모두가 건축과 출신입니다. 건축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지점이 도시라고 생각하고, 그 도시를 바꿔야 건축이 제대로 디자인되고 건축이 제대로 대응해야 도시가 잘 작동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건축의 디자인 영역이 건축물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믿으며 저희의 할 일을 넓히려고 시도하지요. 도시 디자인이라고 번역하기 애매한 것이 그 이유에요.
사무실에서
Q. 다음 인터뷰이인 고해석 건축가 님과 윤성환 건축가 님 두 분은 ‘엘리, 뉴욕은 원래 독해!(enwd.net)’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방송도 꾸준히 하고 계시지요. 뉴욕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 이유, 섭외의 기준,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와 앞으로의 목표 등을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두 부부가 함께 모여 방송을 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도요.
우선 독자 분들께 ‘엘리, 뉴욕은 원래 독해(이하 엘뉴원독)’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라따바띠에, 빠베의 원종훈 셰프님이 엘뉴원독에 출연하시고 나서 저희 부부에게 엘뉴원독이라는 방송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엘뉴원독의 운영자 독해 님(고해석 건축가)도 저희 회사 소속이었고, 그때서야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어요. 회사가 크고 한국 사람도 많다 보니 같은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한 누가 누군지 잘 모르거든요. 그게 인연이 되어서 저희 역시 엘뉴원독에 ‘뉴욕씨(엘뉴원독의 뉴요커 게스트를 일컫는 말)’로 출연했고, 아예 눌러 앉게 되었지요.
원래 엘뉴원독은 엘리, 원래, 독해, 니자, 그리고 자코라는 닉네임을 쓰는 저 이렇게 다섯 명이 운영했는데, 엘리가 자신의 브랜드 출범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남은 네 명이 운영 중입니다.
뉴욕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무대입니다. 흔히 뉴욕 하면 다양성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데요, 여행 작가님이 다양한 장소를 보고 거기에서 사람들의 삶을 읽어 내신다면, 저희는 비슷한 장소를 공유하면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만나는 것만큼 멋진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케미스트리가 폭발하니까요. 사실 방송은 출연자인 뉴욕씨와의 ‘긴 첫 인사’고요, 방송 이후에 계속 만나면서 노는 게 목적입니다. 물론 그 뉴욕씨들끼리도 서로 만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명절이나 생일 때 먹을 걸 나누고 술을 따르며 지내지요. 저희는 이런 관계가 뉴욕을 즐기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방송 준비 중에
방송 출연할 사람을 찾는 일은 원래 님의 몫이긴 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 이룬 사람’ 위주로 소개하다 보니 이거 유퀴즈인가 싶은 오해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저희의 목표는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찾다 보니,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되고 특이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면, 방송에서 ‘할 말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적확할 것 같아요. 할 말이 많은 사람 대부분은 어떤 분야에 미친 사람들이 많고요. 미치다 보니 찾다 찾다 뉴욕까지 오게 된 거고, 그런 자신만의 집착을 풀어놓다 보면 다른 전공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것 같아요. 알고 보면 인터뷰어인 조은정 작가님도 대표적인 ‘미친 사람’ 중의 하나시잖아요.
와이프와 함께 방송하는 건요, 저나 와이프나 굉장히 개인적인 성향이라 둘이 함께 뭘 못해요. 같이 하면 싸워요. 각자 주장이 세고 자존심도 센 디자이너다 보니까요. 그런데 방송만큼은 둘이 같이 하면 재밌어요. 방송 끝나면 둘이 방송 얘기도 하고, 뉴욕씨를 집으로 초대해서 밥 먹으면서 못 다한 얘기도 하고, 저희 가정의 중요한 엔터테인먼트라 불편할 일은 없답니다. 방송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의견 충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원래, 독해 님과 함께 하니 저희끼리 의견 충돌 같은 게 있을 일도 별로 없고요.

엘뉴원독 팀과 뉴욕씨들의 송년회 자리에서 | 장소는 다음 인터뷰이인 고해석 건축가의 자택 ⓒ조은정
Q. 건축가의 눈에 보이는 뉴욕은 어떤가요? 사무실이 뉴욕이고 집이 뉴저지이다 보니 나름 애환과 즐거움이 공존할 듯합니다. 특히 윤성환 님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출퇴근길 뉴욕의 지하철 풍경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뉴욕은 도시를 하는 저한테는 교과서이고 표준이랄까? 그런 곳이에요. 무엇이든 익스트림한 상황의 끝에 꼭 필요한 것만 남잖아요. 마치 전쟁 나면 집문서만 들고 피난 가라는 것처럼. 많은 분들이 뉴욕에서 ‘많은’ 무언가를 보는데, 저는 그 많은 것들이 꽉 차 있는 틈 속에 ‘반드시 남아야 하는’ 것들을 관찰하는 걸 즐겨요. 꼭 남아야 하는 것들이 살아남는 방식이 재밌더라고요. 예를 들면 도로를 좁히고 좁혀서 거기에 공원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기까지 해요. “도대체 저기에 의자 놓고 앉아 있는 게 얼마나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해야만 하는 일인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Park도 아니고 Parklet인 그 좁은 공원에 잠시 앉았다 가는 일을 이 도시에서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위대한 센트럴 파크보다 작은 공원이 사실 더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거든요.
원래 소셜미디어가 뜨기 전부터 사진을 찍었어요. 인스타그램은 그냥 카메라 앱일 때, 사진 공유 기능이 생기기 전에도 사용했고요. 사진은 ‘이게 왜 삶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기록이기도 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제가 기억을 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기록했다는 것도 까먹을 수 있으니 잊기 전에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러면 제 머릿속에 안 남아도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남을 테니까요. 또, “여자들이 가방을 꼭 두 개씩 메고 가더라고. 왜 그럴까?” 하는 식으로 제 관찰이 질문과 대화로 이어지기도 해요.
Q.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세요?
사실 일 외에 가장 큰 취미가 방송이에요. 그 외엔 제 집을 가꾸는 일, 철저한 I의 삶을 살고 있지요. 요즘은 AI로 소위 ‘바이브 코딩’이란 걸 해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반복적인 일을 정례화 시키는 작업을 자주 해요. 그런데 이게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서 좋은 취미 생활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건 드라마 아카이브인데요, 제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평가하면 AI가 제가 남긴 평에 맞춰 별점을 주고 데이터베이스화 시켜요. 그걸 플랫폼 별로 정리를 하면 “이번 달엔 디즈니 플러스 끊어도 되겠네” 하는 식으로 판단이 서지요. 정말 평생 딱히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만나는 사람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고 재밌는 일을 계속 벌이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사무실에서 아이와 함께
Q. 미국으로 이민 올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하신다면요?
일단 사람을 많이 만나세요. 저도 수퍼 I 이지만 I만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만납니다. 미국에 어떤 개인적 성취를 위해 오시는 분들은 자꾸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 있었으면 지겨웠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걸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없어지면 알게 되실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연암 박지원이 그랬다지요. 경계에 서 있어야 익숙한 곳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모두가 경계에 있을 수도 없고 익숙한 일을 해야 삶이 돌아가겠지만,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삶도 낯설게 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니 엘뉴원독 많이 구독해 주세요. 재밌어요. 우리가 뉴욕을 보고 읽는 이유는 뉴욕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예요. 뉴욕에 관심이 없어도, 파리를 사랑한다고 해도,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놓치지 마세요. AI 시대이자 짧은 글과 자극적인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사람이 진짜로 만드는 이야기가 소중한 것 같아요. 그냥 훑고 지나갈 콘텐츠에 중독된 삶은 너무 공허하잖아요?

인터뷰 | 조은정
사진 제공 | 윤성환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blog.naver.com/eiffel
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10
<조은정과 사람들>이 2026년 새해이자 열 번째 인터뷰를 기념하며 특별한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바로 뉴욕의 건축가들을 만나는 시간이지요. 뉴욕의 퍼킨스 이스트만에서 근무하는 윤성환, 고해석 건축가 두 분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경계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어반 디자이너 윤성환 님부터 만나보시지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성환이라고 합니다. 나이로 보자면 X세대고요, 뉴욕의 퍼킨스 이스트만이라는 회사에서 건축과 어반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Q.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을 ‘잘’ 혹은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달라졌다고 합니다만, 한국의 건축계가 많이 답답했고 막연히 ‘선진국’ 가서 일하면 뭔가 다 제대로 하게 될 줄 알았지요. 그래서 건축으로 유명한, 혹은 제가 공부하던 건축가들의 출신국을 찾아보며 “유럽에 가면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을까?”, “미국에 가면 이런 디자인을 해도 팔리나?” 고민했지요.
그러는 와중 와이프가 영국을 다녀오더니 거기서는 우울해서 못 살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미국으로 가자, 미국에서 제일 좋은 곳이 어디지? 뉴욕이네! 이렇게 단순 무식하게 왔어요. 딱히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요.
Q. 조금 유치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헉 할 만한 ‘아이비리그’ 출신이시더군요. 학교 자랑을 좀 해 주시겠어요? 합격한 비결도요.
멀고먼 옛날 얘기라 현실적인 입시 전략을 알려드릴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사실 아이비리그를 가자고 해서 간 건 아니에요. 역사가 오래된 전공이다 보니 건축과가 그만큼 역사가 깊은 아이비리그에만 있었거든요. 그냥 ‘아이비리그 가고 싶은데’라는 마음으로 출발하면 답이 안 보일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갈까? 말까?”의 마음을 정하는 것이지요. 간다고 마음만 먹으면 리소스가 엄청 많더라고요. 가고 싶다는 마음을 정했고, 왜 가고 싶은지가 명확하고, 자신이 그 방향으로 계속 달려왔다면 큰 문제는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엔 이미 경력이 있고 공부도 많이 한 상태였지만, ‘이제 와서 다 때려치우고 미국을 가겠다?’ 이걸 결정하는 부분이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학원은 의지만 있다면 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한국에서 학부도 나오고 회사도 다닌 상태였어요. 한국에서도 국제 현상 설계 같은 걸 주로 하는 팀이라 포트폴리오도 나쁘지 않았고, 영어는 말하는 건 여전히 힘들긴 해도 한국식 입시 교육을 충실히 받은 터라 읽고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서 준비 시간도 오래 안 걸렸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저희 때보다는 좀 더 사정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학부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조언은 아닙니다만, 결국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할지 조준하고 일직선을 그리면 그 사이에 학교가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먼 방향을 향해서 ‘일관된’ 준비를 하면 건축과 입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 선을 읽어내는 것 같아요. 문제는 건축과 사람들은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 건축도 좋아 보이고 이 도시도 아름다워 보이고 한다는 거예요. ‘일점사’ 하듯 공부도 일도 준비하다 보면 마음대로는 안 되더라도 어딘가로 향해 가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Q. 재직 중인 회사 ‘퍼킨스 이스트만(Perkins Eastman)’은 1981년 뉴욕에서 시작해 현재는 해외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 ‘건축·도시설계·인테리어 전문 설계사무소’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저는 어반 디자인을 중심으로 계속 프랙티스를 했어요. 한국에서도 마스터플랜 위주로 했었고, 컬럼비아에서의 전공도 어반 디자인이었어요. 어반 디자인이 그냥 플래닝과 다르다는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요, 우선 뉴욕의 어반 디자인을 만들었다고 봐도 될 두 분이 알렉스 쿠퍼(Alex Cooper)와 스탠 엑스텃(Stan Eckstut)입니다. 1960~70년대 두 분이 회사를 함께 시작했고, 지금 맨해튼의 지도를 바꾼 프로젝트,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를 하셨죠. 나중에 갈라져서 각자 쿠퍼 로버트슨(Cooper Robertson)과 EEK라는 회사가 되었는데, 저는 컬럼비아 졸업 후에 쿠퍼 로버트슨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 컬럼비아 교수님이 쿠퍼에서 일한 덕에 몇 년간 좋은 어반 디자인 프로젝트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회사를 옮겼는데, 저의 포트폴리오와 비슷한 일을 하는 스튜디오에서 저를 뽑아 주셨어요. 알고 보니 EEK가 퍼킨스 이스트만에 합병되어서 스튜디오가 되어있던 것이더라고요.
건축/도시 분야는 일의 특성상 아주 보수적인 인더스트리이다보니 ‘해 본 사람’만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배터리 파크 시티의 성공 덕에 워싱턴 D.C.의 Wharf라는 프로젝트도 할 수 있었고, 그 Wharf 라는 프로젝트 역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불러오는 좋은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새로운 세대는 제2, 제3의 배터리 파크와 워프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는 중이고요. 저희 프로젝트는 언제나 10년, 20년을 보고 움직입니다.
Q. 자신을 ‘어반 디자이너(Urban Designer)’라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어반 디자이너는 도시의 공간 구조와 공공영역을 설계하여 살기·걷기·머물기 좋은 도시 경험(거리, 광장, 블록, 수변, 스카이라인 등)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반 디자인은 쉽게 말하면 하이브리드에요. 플래닝과 건축의 중간쯤이고, 실무적으론 건축이 도시와 맞닿는 접점을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회사 안에서도 저희 팀이 플래닝 전공을 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한데, 저희 팀은 모두가 건축과 출신입니다. 건축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지점이 도시라고 생각하고, 그 도시를 바꿔야 건축이 제대로 디자인되고 건축이 제대로 대응해야 도시가 잘 작동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건축의 디자인 영역이 건축물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믿으며 저희의 할 일을 넓히려고 시도하지요. 도시 디자인이라고 번역하기 애매한 것이 그 이유에요.
Q. 다음 인터뷰이인 고해석 건축가 님과 윤성환 건축가 님 두 분은 ‘엘리, 뉴욕은 원래 독해!(enwd.net)’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방송도 꾸준히 하고 계시지요. 뉴욕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 이유, 섭외의 기준,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와 앞으로의 목표 등을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두 부부가 함께 모여 방송을 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도요.
우선 독자 분들께 ‘엘리, 뉴욕은 원래 독해(이하 엘뉴원독)’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라따바띠에, 빠베의 원종훈 셰프님이 엘뉴원독에 출연하시고 나서 저희 부부에게 엘뉴원독이라는 방송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엘뉴원독의 운영자 독해 님(고해석 건축가)도 저희 회사 소속이었고, 그때서야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어요. 회사가 크고 한국 사람도 많다 보니 같은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한 누가 누군지 잘 모르거든요. 그게 인연이 되어서 저희 역시 엘뉴원독에 ‘뉴욕씨(엘뉴원독의 뉴요커 게스트를 일컫는 말)’로 출연했고, 아예 눌러 앉게 되었지요.
원래 엘뉴원독은 엘리, 원래, 독해, 니자, 그리고 자코라는 닉네임을 쓰는 저 이렇게 다섯 명이 운영했는데, 엘리가 자신의 브랜드 출범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남은 네 명이 운영 중입니다.
뉴욕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무대입니다. 흔히 뉴욕 하면 다양성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데요, 여행 작가님이 다양한 장소를 보고 거기에서 사람들의 삶을 읽어 내신다면, 저희는 비슷한 장소를 공유하면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만나는 것만큼 멋진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케미스트리가 폭발하니까요. 사실 방송은 출연자인 뉴욕씨와의 ‘긴 첫 인사’고요, 방송 이후에 계속 만나면서 노는 게 목적입니다. 물론 그 뉴욕씨들끼리도 서로 만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명절이나 생일 때 먹을 걸 나누고 술을 따르며 지내지요. 저희는 이런 관계가 뉴욕을 즐기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방송 출연할 사람을 찾는 일은 원래 님의 몫이긴 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 이룬 사람’ 위주로 소개하다 보니 이거 유퀴즈인가 싶은 오해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저희의 목표는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찾다 보니,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되고 특이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면, 방송에서 ‘할 말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적확할 것 같아요. 할 말이 많은 사람 대부분은 어떤 분야에 미친 사람들이 많고요. 미치다 보니 찾다 찾다 뉴욕까지 오게 된 거고, 그런 자신만의 집착을 풀어놓다 보면 다른 전공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것 같아요. 알고 보면 인터뷰어인 조은정 작가님도 대표적인 ‘미친 사람’ 중의 하나시잖아요.
와이프와 함께 방송하는 건요, 저나 와이프나 굉장히 개인적인 성향이라 둘이 함께 뭘 못해요. 같이 하면 싸워요. 각자 주장이 세고 자존심도 센 디자이너다 보니까요. 그런데 방송만큼은 둘이 같이 하면 재밌어요. 방송 끝나면 둘이 방송 얘기도 하고, 뉴욕씨를 집으로 초대해서 밥 먹으면서 못 다한 얘기도 하고, 저희 가정의 중요한 엔터테인먼트라 불편할 일은 없답니다. 방송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의견 충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원래, 독해 님과 함께 하니 저희끼리 의견 충돌 같은 게 있을 일도 별로 없고요.
Q. 건축가의 눈에 보이는 뉴욕은 어떤가요? 사무실이 뉴욕이고 집이 뉴저지이다 보니 나름 애환과 즐거움이 공존할 듯합니다. 특히 윤성환 님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출퇴근길 뉴욕의 지하철 풍경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뉴욕은 도시를 하는 저한테는 교과서이고 표준이랄까? 그런 곳이에요. 무엇이든 익스트림한 상황의 끝에 꼭 필요한 것만 남잖아요. 마치 전쟁 나면 집문서만 들고 피난 가라는 것처럼. 많은 분들이 뉴욕에서 ‘많은’ 무언가를 보는데, 저는 그 많은 것들이 꽉 차 있는 틈 속에 ‘반드시 남아야 하는’ 것들을 관찰하는 걸 즐겨요. 꼭 남아야 하는 것들이 살아남는 방식이 재밌더라고요. 예를 들면 도로를 좁히고 좁혀서 거기에 공원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기까지 해요. “도대체 저기에 의자 놓고 앉아 있는 게 얼마나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해야만 하는 일인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Park도 아니고 Parklet인 그 좁은 공원에 잠시 앉았다 가는 일을 이 도시에서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위대한 센트럴 파크보다 작은 공원이 사실 더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거든요.
원래 소셜미디어가 뜨기 전부터 사진을 찍었어요. 인스타그램은 그냥 카메라 앱일 때, 사진 공유 기능이 생기기 전에도 사용했고요. 사진은 ‘이게 왜 삶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기록이기도 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제가 기억을 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기록했다는 것도 까먹을 수 있으니 잊기 전에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러면 제 머릿속에 안 남아도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남을 테니까요. 또, “여자들이 가방을 꼭 두 개씩 메고 가더라고. 왜 그럴까?” 하는 식으로 제 관찰이 질문과 대화로 이어지기도 해요.
Q.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세요?
사실 일 외에 가장 큰 취미가 방송이에요. 그 외엔 제 집을 가꾸는 일, 철저한 I의 삶을 살고 있지요. 요즘은 AI로 소위 ‘바이브 코딩’이란 걸 해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반복적인 일을 정례화 시키는 작업을 자주 해요. 그런데 이게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서 좋은 취미 생활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건 드라마 아카이브인데요, 제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평가하면 AI가 제가 남긴 평에 맞춰 별점을 주고 데이터베이스화 시켜요. 그걸 플랫폼 별로 정리를 하면 “이번 달엔 디즈니 플러스 끊어도 되겠네” 하는 식으로 판단이 서지요. 정말 평생 딱히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만나는 사람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고 재밌는 일을 계속 벌이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Q. 미국으로 이민 올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하신다면요?
일단 사람을 많이 만나세요. 저도 수퍼 I 이지만 I만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만납니다. 미국에 어떤 개인적 성취를 위해 오시는 분들은 자꾸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 있었으면 지겨웠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걸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없어지면 알게 되실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연암 박지원이 그랬다지요. 경계에 서 있어야 익숙한 곳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모두가 경계에 있을 수도 없고 익숙한 일을 해야 삶이 돌아가겠지만,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삶도 낯설게 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니 엘뉴원독 많이 구독해 주세요. 재밌어요. 우리가 뉴욕을 보고 읽는 이유는 뉴욕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예요. 뉴욕에 관심이 없어도, 파리를 사랑한다고 해도,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놓치지 마세요. AI 시대이자 짧은 글과 자극적인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사람이 진짜로 만드는 이야기가 소중한 것 같아요. 그냥 훑고 지나갈 콘텐츠에 중독된 삶은 너무 공허하잖아요?
인터뷰 | 조은정
사진 제공 | 윤성환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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