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12
<조은정과 사람들>의 뉴욕의 건축가 인터뷰 세 번째 편에서는 20년 넘게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현재는 뉴욕 라과다로우 아키텍츠에서 근무하고 있는 송준규 건축가를 만납니다. 미국 정착기부터 지금까지 진행한 주요 프로젝트, 그리고 건축가가 뉴욕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송준규 건축가
Q.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20년 넘게 건축 일을 하고 있는 송준규입니다. 뉴욕에 기반을 둔 건축설계사무소 라과다로우 아키텍츠(Laguarda.Low Architects) 에서 대표 건축가(Principal)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롱 아일랜드(Long Island)의 그레이트 넥(Great Neck)에 살고 있어요.
Q.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나 소설을 통해 미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한 번 더 질문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기질이라서 한국보다 미국 문화가 제 성향에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도 있었던 것 같아요.
90년대 대학생활 중 배낭여행 붐을 타고 두 달 정도 유럽을 혼자 여행했는데 이때 마주했던 유럽의 도시, 건축, 그리고 풍광에 매료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전통을 논하지만 사실 우리 세대가 자라고 커왔던 공간은 한국에 이식되고 변형된 서양건축의 공간이라 그 본류에 가서 직접 배우고 겪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이후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학사장교로 3년간 복무한 뒤, 짧은 준비 기간을 거쳐 미국의 건축 대학원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졸업 후에 취업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9·11 이후 경기 침체 시기였던 데다 여러 상황이 겹치며 취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아슬아슬하게 겨우 오퍼를 받아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껏 20년 넘게 미국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고 있네요.
출장 중에
Q. 송준규 님도 아이비 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대학교 출신이시더군요. 학교 소개와 합격 비결을 알려주세요.
전공은 건축학이고요. 유펜(UPenn, 펜실베니아대학교의 줄임말)에서 마스터 오브 아키텍처(Master of Architecture, M.Arch)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이죠.
유펜에는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han)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루이스 칸이 유펜에서 배우고 가르쳤죠. 캠퍼스 안에도 그의 건축물이 있고, 건축학과 건물 옆, 짙은 테라코타 색의 오래된 도서관 지하에 가면 루이스 칸 아카이브(서고)가 있어요. 엄청난 양의 도면, 스케치, 모형 등이 보관되어 있어서 제가 다닐 때는 신청하면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엄청난 특혜가 있었습니다.
루이스 칸 아카이브가 있는 유펜의 피셔 파인 아츠 라이브러리 ⓒ조은정
제가 유펜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캠퍼스의 분위기인데요. 미국 대학 캠퍼스는 자연 속에 독립적으로 자리한 타입과 대도시 안에서 도시 구조와 함께 섞여 있는 도시형 캠퍼스가 있는데,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유펜은 이 두 가지 요소가 굉장히 균형 있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센트럴 시티와도 가깝고, 스컬킬 리버(Schuylkill River)를 기준으로 서쪽으로는 캠퍼스, 동쪽으로는 시내 중심이 형성되어 있어서 도보로도 도시와 캠퍼스를 편하게 오갈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캠퍼스 자체의 아늑한 분위기와 학구적인 정체성은 확실히 유지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필라델피아라는 도시 자체가 역사와 전통이 있으면서도 활력이 넘치고 맛집도 많아서 2년 동안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또 학교 안에는 ‘와튼(Wharton) 스쿨’이라는 유명한 비즈니스 학교가 있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도 부동산이나 개발, 비즈니스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수업을 연계하거나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자랑일 수도,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유펜은 ‘파티 문화’로도 유명합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쉴 틈 없이 파티가 열릴 정도라, 공부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유펜의 캠퍼스 풍경 ⓒ조은정
제가 감히 합격 비결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웨이팅 리스트에 있다가 겨우겨우 뒷문을 닫고 들어갔거든요. 아마도 학교 성적과 영어 시험 점수는 거의 꼴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당시 압구정동에 있는 박정어학원에서 시험을 준비했는데 GRE를 가르치던 강사님이 제 손을 꼭 잡고는 “그 점수로는 합격하기 힘들어요. 조금 더 공부하고 지원하시죠?”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제 영어 시험 점수는 형편없었습니다.
건축 전공 입시는 학교 성적이나 영어 시험 점수도 중요하지만, 특히 유펜처럼 건축이 미술대학(School of Fine Arts) 계열에 속해 있는 경우에는 포트폴리오가 당락을 많이 좌우합니다. 성적이나 영어 점수가 조금 부족해도 포트폴리오가 탄탄하면 충분히 지원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고 싶은 합격 비결은 단순합니다. 겁내지 말고, 준비하고, 일단 저지르세요!
Q.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인 라과다로우 아키텍츠는 2000년에 설립된 뉴욕 기반의 글로벌 건축 실무 회사로, 다양한 국제 프로젝트 수행을 하고 있고, 여러 건축상 수상을 했으며, 본사가 있는 뉴욕 외에도 베이징, 도쿄 등에도 지점을 두고 있더라고요. 직접 회사 소개를 부탁드려요.
라과다로우 아키텍츠는 파트너인 파블로 라과다(Pablo Laguarda)와 존 로(John Low) 두 분이 2000년에 설립한 뉴욕 기반의 중규모 건축 설계사무소입니다.
현재 아시아, 유럽, 남미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국제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마스터플랜(도시·지구 개발), 믹스드 유즈(주거, 상업, 비즈니스 등 복합 공간), 커머셜(업무 공간), 리테일(상업 공간), 호스피탈리티(숙박 공간) 등 폭넓은 분야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고, 글로벌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도시와 공간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것으로는 중국 선전에 위치한 ‘해피 하버(Happy Harbor)’입니다. 라과다로우 아키텍츠가 아시아 지역에서 믹스드 유즈 분야에서 자리잡을 수 있게 해 준, 빌리지 리조트 스타일의 관광·문화 목적지 프로젝트였습니다.
중국 선전, 해피 하버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중국 선전의 바닷가에 개발된 ‘바오완 오베이(Baon Oh-Bay)’라는 관광단지입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첫 스케치부터 마지막 디테일까지 관여한 프로젝트입니다. 영혼을 갈아 넣어서 디렉팅하고 디자인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해안공원과 상업시설을 ‘공원’과 ‘건축’으로 분리하지 않고 상업공간 자체를 3차원적인 공원으로 설계하여 도시의 해안 경험을 입체적으로 확장했어요. 전체 대지가 단순한 해안 산책로를 넘어, 자연.도시.건축.조경의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해안공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중국 선전, 바오완 오베이
아마도 뉴욕의 다른 건축사무소들도 그렇겠지만 라과다로우 아키텍츠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국적과 인종의 직원들이 같이 일하는 ‘멀티 컬처 환경’이에요. 뉴욕 오피스 내에서도 아시아, 남미, 유럽, 미국 등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건축가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서, 서로 다른 관점과 감각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시너지가 생깁니다.
재미있는 사내 문화는 매주 금요일마다 하는 비어 프라이데이(Bear Friday)입니다. 매주 한 명씩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데, 은근한 자존심 싸움이 되어서 각자 국가대표라도 된 마냥 성심성의를 다해서 준비해 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독특한 요리를 맛보기도 하고, 저녁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해집니다. 또, 일 년에 한 번씩 탁구대회도 열어요. 제가 한 탁구 하는데, 아직도 매번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지 못해 준우승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내 탁구대회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은 짧은 시간 안에 높은 퀄리티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작부터 디자인 디벨롭먼트까지 6개월 내에 끝내야 하는 극한의 스케줄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완성도를 놓치지 않고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굉장히 뛰어난 건축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Q. 이 회사에서 주로 어떤 과정의 일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일하면서 해외 출장도 많이 다니고 글로벌하게 일하시는 것 같더군요.
프로젝트들이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위치해 있다 보니 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많을 때는 1년에 8-9번 정도, 적게는 4~5번 정도 해외 출장을 가고요. 한 번 가면 보통 1주에서 2주 정도 머무릅니다.
출장을 가면 보통 며칠에 걸쳐서 건축주, 시공사, 현지설계업체, 협력사들이 같이 모여서 워크샵을 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줄이 보고와 회의가 이어지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문제점이 생기면 호텔로 돌아가 스케치를 하고 밤에는 뉴욕사무실과 화상회의를 진행해서 아침에 업데이트된 자료를 받아서 다시 회의가 이어집니다. 처음 출장에 동행하는 젊은 직원들은 너무 설레어 하면서 출장을 가지만 시차와 업무에 치여서 집에 올 때는 눈 밑에 다크 서클이 가득하죠.
공사 현장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 있으면 직접 방문해 시공 상황을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도면이나 디테일을 체크하고 현장에 만들어진 목업(Mock-up, 실제 건축물을 만들기 전 미리 디자인을 점검하기위해 실물크기나 작은 스케일로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을 꼼꼼히 검토하고 변경사항을 지시하고, 재료나 마감 같은 중요한 사안도 현장에서 결정합니다. 또 새로운 프로젝트 기회가 있을 때는 제안서를 준비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하고요. 출장 중에 몇 안 되는 기쁨(?)은 평소에 안 가보던 생경한 도시나 지역에 가기도 해서 그 지역의 전통적인 요리를 맛볼 기회가 자주 생긴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건축주 입장에선 멀리서 온 손님이다 보니 잘 접대해 주시는 경우가 많고, 덕분에 그 지역의 전통 요리를 맛볼 기회가 많아요. 또 그 지역의 문화와 건축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랜드마크를 둘러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도 갖게 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늘 느끼는 건, 결국 건축은 ‘형태를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건축과 도시, 조경과 인테리어를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는 작업도 단순히 건물을 설계한다는 것보다는 도시, 건축, 자연, 인테리어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플레이스 메이킹(Place Making)을 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결국 좋은 공간이라는 건 멋지게 보여지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다시 찾고 싶은, 감정과 기억이 쌓이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SOFTlab의 공공 예술 작품 'Nova'
특히 마스터플랜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1~2km 단위의 대지를 큰 선과 면으로 스케치하면서 시작하는데요. 그때 제가 그린 한 줄의 선이 어떤 곳에서는 도시의 흐름이 되고, 어떤 곳에서는 랜드 스케이프의 작은 시내가 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건축의 볼륨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컨설턴트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계속 재해석되고, 조정되고, 발전해 나가죠.
그렇게 ‘아이디어’로 시작한 것이 실제로 구축되어 사람들이 그 공간을 즐기고, 도시의 일부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저는 건축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건축가의 눈에 보이는 뉴욕은 어떤가요? ‘애증의 도시’일까요, ‘애정의 도시’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뉴욕에 왔을 때는 이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필라델피아와 달라스를 거쳐 지금 회사의 헤드쿼터가 있는 뉴욕으로 오게 됐는데, 당시에는 커리어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에 가까웠어요. 만나는 사람들도 다 까칠하고 새침해 보였어요.
뉴욕은 말 그대로 ‘메가폴리스’입니다. 도시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와 나 사이의 유대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도시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갖기 어려운 도시였죠. 게다가 처음엔 거칠고 때로는 무례하게 느껴지는 뉴요커에게 반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어느새 뉴욕의 속도와 성격을 닮아가더라고요. 지금의 뉴욕은 제게 작가님 말씀대로 ‘애증의 도시’입니다. 예민하고 까다롭고 때로는 힘들게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어서 쉽게 떠날 수 없는 도시랄까요?
뉴욕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건축가에게 뉴욕은 말할 것도 없이 특별합니다. 이 도시는 정말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이에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 도심 곳곳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걷다 보면 골목 모퉁이에서 예고 없이 거장들의 건축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별히 ‘보러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계속 건축을 만나게 되는 도시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작업하다가 디테일이 막히거나 궁금한 요소가 생길 때 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도서관이 되어준다는 겁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직접 걸어가서 건물을 보고, 만져보고, 공간감을 느끼면서 해답을 얻을 때도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뉴욕은 저에게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스승 같은 존재입니다.
다만 뉴욕은 이 안에서 살다 보면 그 아름다움을 잊기 쉬운 도시이기도 합니다. 출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하이 라이즈(High-rise, 고층 건물)들이 빛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어요. 그 순간 “아, 내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도시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뉴욕을 즐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깨어 있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 도시에 압도당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바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뉴욕에 산다는 ‘자부심’보다는, 오늘도 이 도시와 싸우고 사랑하고 대화하면서, 일종의 ‘밀당’을 하는 중입니다.
Q. 일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시나요? 골프와 포커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결국 일의 과정 안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일하지 않는 시간만큼은 그 스트레스가 일상에 들어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특히 집에까지 스트레스를 가져가면 그 감정이 가족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최대한 조심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하루에 한 가지는 꼭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마감 때문에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면 어떻게 해서든 꼭 시간을 내서 맛집을 가거나 잠깐이라도 좋아하는 야외활동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도 안 되면 쇼핑이라도 해요.
라운딩 중에
골프를 좋아해서 거의 매주 나가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베스페이지(Bethpage) 골프장이 있어요. 작년에 라이더 컵(Ryder Cup)이 열렸던 명문 퍼블릭 골프장인데 오후쯤 느지막이 나가 혼자 걸으면서 해질 때까지 치다가 집에 와요. 친구들과 썸을 이뤄서 라운딩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속에서 혼자 오롯이 몇 시간 동안 걷고 공 치는 게 일상이 되었어요. 이렇게 혼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사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Q. 여행하면서 건축물 보는 걸 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일의 연장선이 되어서 이기 때문일까요? 여행속에서 건축물은 떼 놓을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럼 여행 중엔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시는지요? 자신만의 여행법이 궁금합니다.
배낭여행 마지막에 파리에 10일 정도 머물렀는데, 한국에서 방학 때 아르바이트하던 사무실에서 만난 선배가 마침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어요. 그분 집에 머물면서 10일 내내, 당시 엄청 핫했던 모던 건축들을 보여준다고 파리 변두리를 매일 훑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가 “베트남 음식 ‘포’가 진짜 맛있다”면서, 10일 내내 포만 먹었어요. 그렇게 건축답사를 입에 단내 나게 하고 돌아다녔죠. 그러다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 저 아래로 뭔가 하나 보이더라고요. 에펠탑이었습니다.
“아….. 안 봤네…. 에펠탑.”
에펠탑은 결국 25년 뒤에 실물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찾은 에펠탑
꼭 그런 경험이 있어서 건축물을 보러 다니지 않는 건 아니고요. 여행에서 건축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동선 속에서 마주치는 건축은 오히려 굉장히 즐겁게 봅니다. 다만 “그 건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의 흐름을 일부러 끊고, 무리해서 이동해야 하는 경우라면 굳이 가지 않는 편이에요. 건축가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들, 특히나 모더니즘 성향의 작품들은 대부분 도시 중심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동하고 보고 돌아오려면 거의 하루가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죠. 오히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제 눈에 확 들어오는 건축을 더 좋아합니다. 암스테르담은 마음에 드는 건축이 너무 많아 사진 찍느라 걷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특정 건축물을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풍경이나 자연, 도시의 일상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여행을 구성하는 편입니다.
베네치아 부라노 섬
저의 경우는 1~2년에 한 번씩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가는데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루트 짜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기차나 비행기로 도시와 도시를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루트, 차를 렌트해서 자연과 소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정 등을 골고루 섞어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베니스에서 머물다 기차로 피렌체로 이동해서 차를 렌트한 후 토스카나에서 농가 민박(아그리투리수모)을 하면서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소도시들을 구경하다가 이탈리아 남부의 포지타노를 따라 절벽길을 달리다가 잠시 차를 세우고 멋진 풍광에 취해도 보고, 로마로 돌아와 다시 며칠동안 터덜터덜 포로 로마노와 로마를 거니는 거죠. 가족 네 명의 각자 속도와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에 도시와 자연, 자극과 여유, ‘와글와글’과 ‘고요함’이 적당히 섞인 여행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가족과의 여유로운 시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그곳의 사람들과 자연, 문화, 그리고 일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가족 여행을 주로 하다 보니, 여행은 일상에서 놓치고 지나갔던 가족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서로 대화를 더 많이 나누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다음과 같은 LIFE 잡지의 모토가 나오지요.
“세상을 보고, 위험한 곳에 다가가고, 벽 너머를 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찾고, 그리고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
토스카나에서
Q. 가족이 달라스에 살던 시절, 한 달에 한번씩 뉴욕에서 그곳으로 방문할 때마다 한국 치킨을 구입해 비행기 기내에 들고 탔다는 이야기가 몹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을 향한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드님 2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꿈도 혹시 건축가일까요? 만약 아드님이 미래의 전공과 직업으로 건축을 택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해주고 싶으신지요?
달라스에 살다가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 두고 혼자서 2년 동안 뉴욕에서 일종의 기러기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갈 때마다, 그 당시 달라스에는 한국 브랜드가 없었는데 치킨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비행기로 치킨 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 둘이 있는데, 첫째는 한때 건축가를 꿈꾸다가 바이오를 전공으로 대학교에 진학했고, 둘째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 합니다. 만약 아들들이 앞으로 전공이나 직업으로 건축을 선택한다면, 저는 당연히 전폭적으로 응원할 거예요. 다만 “건축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술이나 디자인 감각 이전에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들과 함께
건축은 결국 사람들의 일상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왜 그럴까?”,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까?” 같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태도, 그런 호기심과 관찰력이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좋은 건축은 사람을 향한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이 있다면 언제나 시작해도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Q. 건축가로서 혹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나라 혹은 도시가 있다면? 그 이유는요?
가장 애정하는 도시는 ‘서울’과 ‘뉴욕’입니다. 두 도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굉장히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겉으로 보면 다소 무질서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무질서함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어요.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고 섞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힘이랄까요?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진부함과 참신함, 식민지 시대의 흔적과 6·25 이후의 근현대사가 정리되지 못한 채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레이어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고, 그 복잡함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활력이 나옵니다.
반면 뉴욕은 비교적 규칙과 계획이 강한 도시입니다. 도시 구조 자체가 명확하고 체계적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규칙 안에서 오히려 밀도와 에너지가 극대화된다는 점입니다. 한정된 틀 안에서 최대한의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움직임이 있고, 그 과정에서 ‘팽창하고 싶지만 팽창할 수 없는’ 압축된 에너지가 만들어져요. 그 밀도감이 만들어내는 과할 정도의 활력이 뉴욕만의 매력이라고 느낍니다.
결국 서울과 뉴욕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활력과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도시이고, 그래서 건축가로서도, 개인적으로도 늘 끌리는 도시들입니다.
Q. 앞으로의 삶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크게 거창한 목표라기 보다는, 지금처럼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잘 모아서 오래 이어가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고요.
건축가로서의 목표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속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겁니다. ‘엘뉴원독’에 초대받아서 얼마 전 타계한 프랭크 게리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유명한 스타 건축가도 매번 처음 하는 마음으로 새 프로젝트에 뛰어든다고 하더라고요.
건축은 정답이 없잖아요. 사실 어떤 일을 20년 넘게 하면 익숙해지고 편안해질 법도 한데, 매번 다른 걸 만들어내려면 결국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기대도 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긴장되고 힘들기도 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긴장과 고통이 없다면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작업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그린 아이디어와 팀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 실제 공간이 되어 사람들과 만나고, 그 공간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기억되는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요.
결국 목표는 단순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프로젝트를 오래 하고, 그 과정 속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앞으로의 바람입니다.
Q. 앞으로 미국으로 이민 올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처음 미국에 유학을 왔을 때는 한 번도 스스로를 ‘이민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민을 와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과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비슷해졌고, 어쩌면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기에 가끔은 한국과 미국 사이,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어딘 가에 발을 디디고 사는 ‘중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주변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남들이 어떻게 볼지를 계속 고민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 더 잘 맞는 곳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주변 평가에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방향과 속도를 믿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살면서 확실히 느낀 게 하나 있는데, 한국에서 익숙한 ‘겸손’이라는 태도는 분명 좋은 미덕이지만 여기에서는 그게 오히려 자기 강점을 숨기는 방식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결국 미국에서는 실력만큼이나, 그 실력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겸손은 잠시 내려두고, 자신 있게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릴 줄 아는 태도”를 꼭 갖추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Q. 한국 그리고 해외에서 이 글을 보실 많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삶의 순간순간 마주치는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고, 또 타지에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가족을 이루고 생활해보니 어디에 살고 있느냐, 어떤 지위에 있느냐가 행복이나 만족도를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뉴욕이든 서울이든, 혹은 또 다른 어떤 도시든, 심지어 전원 속이든… 중요한 건 장소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느냐 인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 스스로를 잃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나를 찾아가고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터뷰 | 조은정
사진 | 조은정, 송준규 제공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blog.naver.com/eiffel
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12
<조은정과 사람들>의 뉴욕의 건축가 인터뷰 세 번째 편에서는 20년 넘게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현재는 뉴욕 라과다로우 아키텍츠에서 근무하고 있는 송준규 건축가를 만납니다. 미국 정착기부터 지금까지 진행한 주요 프로젝트, 그리고 건축가가 뉴욕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20년 넘게 건축 일을 하고 있는 송준규입니다. 뉴욕에 기반을 둔 건축설계사무소 라과다로우 아키텍츠(Laguarda.Low Architects) 에서 대표 건축가(Principal)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롱 아일랜드(Long Island)의 그레이트 넥(Great Neck)에 살고 있어요.
Q.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나 소설을 통해 미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한 번 더 질문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기질이라서 한국보다 미국 문화가 제 성향에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도 있었던 것 같아요.
90년대 대학생활 중 배낭여행 붐을 타고 두 달 정도 유럽을 혼자 여행했는데 이때 마주했던 유럽의 도시, 건축, 그리고 풍광에 매료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전통을 논하지만 사실 우리 세대가 자라고 커왔던 공간은 한국에 이식되고 변형된 서양건축의 공간이라 그 본류에 가서 직접 배우고 겪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이후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학사장교로 3년간 복무한 뒤, 짧은 준비 기간을 거쳐 미국의 건축 대학원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졸업 후에 취업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9·11 이후 경기 침체 시기였던 데다 여러 상황이 겹치며 취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아슬아슬하게 겨우 오퍼를 받아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껏 20년 넘게 미국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고 있네요.
Q. 송준규 님도 아이비 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대학교 출신이시더군요. 학교 소개와 합격 비결을 알려주세요.
전공은 건축학이고요. 유펜(UPenn, 펜실베니아대학교의 줄임말)에서 마스터 오브 아키텍처(Master of Architecture, M.Arch)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이죠.
유펜에는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han)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루이스 칸이 유펜에서 배우고 가르쳤죠. 캠퍼스 안에도 그의 건축물이 있고, 건축학과 건물 옆, 짙은 테라코타 색의 오래된 도서관 지하에 가면 루이스 칸 아카이브(서고)가 있어요. 엄청난 양의 도면, 스케치, 모형 등이 보관되어 있어서 제가 다닐 때는 신청하면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엄청난 특혜가 있었습니다.
제가 유펜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캠퍼스의 분위기인데요. 미국 대학 캠퍼스는 자연 속에 독립적으로 자리한 타입과 대도시 안에서 도시 구조와 함께 섞여 있는 도시형 캠퍼스가 있는데,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유펜은 이 두 가지 요소가 굉장히 균형 있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센트럴 시티와도 가깝고, 스컬킬 리버(Schuylkill River)를 기준으로 서쪽으로는 캠퍼스, 동쪽으로는 시내 중심이 형성되어 있어서 도보로도 도시와 캠퍼스를 편하게 오갈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캠퍼스 자체의 아늑한 분위기와 학구적인 정체성은 확실히 유지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필라델피아라는 도시 자체가 역사와 전통이 있으면서도 활력이 넘치고 맛집도 많아서 2년 동안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또 학교 안에는 ‘와튼(Wharton) 스쿨’이라는 유명한 비즈니스 학교가 있어서, 건축을 공부하면서도 부동산이나 개발, 비즈니스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수업을 연계하거나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자랑일 수도,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유펜은 ‘파티 문화’로도 유명합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쉴 틈 없이 파티가 열릴 정도라, 공부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감히 합격 비결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웨이팅 리스트에 있다가 겨우겨우 뒷문을 닫고 들어갔거든요. 아마도 학교 성적과 영어 시험 점수는 거의 꼴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당시 압구정동에 있는 박정어학원에서 시험을 준비했는데 GRE를 가르치던 강사님이 제 손을 꼭 잡고는 “그 점수로는 합격하기 힘들어요. 조금 더 공부하고 지원하시죠?”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제 영어 시험 점수는 형편없었습니다.
건축 전공 입시는 학교 성적이나 영어 시험 점수도 중요하지만, 특히 유펜처럼 건축이 미술대학(School of Fine Arts) 계열에 속해 있는 경우에는 포트폴리오가 당락을 많이 좌우합니다. 성적이나 영어 점수가 조금 부족해도 포트폴리오가 탄탄하면 충분히 지원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고 싶은 합격 비결은 단순합니다. 겁내지 말고, 준비하고, 일단 저지르세요!
Q.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인 라과다로우 아키텍츠는 2000년에 설립된 뉴욕 기반의 글로벌 건축 실무 회사로, 다양한 국제 프로젝트 수행을 하고 있고, 여러 건축상 수상을 했으며, 본사가 있는 뉴욕 외에도 베이징, 도쿄 등에도 지점을 두고 있더라고요. 직접 회사 소개를 부탁드려요.
라과다로우 아키텍츠는 파트너인 파블로 라과다(Pablo Laguarda)와 존 로(John Low) 두 분이 2000년에 설립한 뉴욕 기반의 중규모 건축 설계사무소입니다.
현재 아시아, 유럽, 남미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국제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마스터플랜(도시·지구 개발), 믹스드 유즈(주거, 상업, 비즈니스 등 복합 공간), 커머셜(업무 공간), 리테일(상업 공간), 호스피탈리티(숙박 공간) 등 폭넓은 분야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고, 글로벌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도시와 공간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것으로는 중국 선전에 위치한 ‘해피 하버(Happy Harbor)’입니다. 라과다로우 아키텍츠가 아시아 지역에서 믹스드 유즈 분야에서 자리잡을 수 있게 해 준, 빌리지 리조트 스타일의 관광·문화 목적지 프로젝트였습니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중국 선전의 바닷가에 개발된 ‘바오완 오베이(Baon Oh-Bay)’라는 관광단지입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첫 스케치부터 마지막 디테일까지 관여한 프로젝트입니다. 영혼을 갈아 넣어서 디렉팅하고 디자인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해안공원과 상업시설을 ‘공원’과 ‘건축’으로 분리하지 않고 상업공간 자체를 3차원적인 공원으로 설계하여 도시의 해안 경험을 입체적으로 확장했어요. 전체 대지가 단순한 해안 산책로를 넘어, 자연.도시.건축.조경의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해안공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마도 뉴욕의 다른 건축사무소들도 그렇겠지만 라과다로우 아키텍츠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국적과 인종의 직원들이 같이 일하는 ‘멀티 컬처 환경’이에요. 뉴욕 오피스 내에서도 아시아, 남미, 유럽, 미국 등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건축가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서, 서로 다른 관점과 감각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시너지가 생깁니다.
재미있는 사내 문화는 매주 금요일마다 하는 비어 프라이데이(Bear Friday)입니다. 매주 한 명씩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데, 은근한 자존심 싸움이 되어서 각자 국가대표라도 된 마냥 성심성의를 다해서 준비해 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독특한 요리를 맛보기도 하고, 저녁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해집니다. 또, 일 년에 한 번씩 탁구대회도 열어요. 제가 한 탁구 하는데, 아직도 매번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지 못해 준우승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은 짧은 시간 안에 높은 퀄리티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작부터 디자인 디벨롭먼트까지 6개월 내에 끝내야 하는 극한의 스케줄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완성도를 놓치지 않고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굉장히 뛰어난 건축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Q. 이 회사에서 주로 어떤 과정의 일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일하면서 해외 출장도 많이 다니고 글로벌하게 일하시는 것 같더군요.
프로젝트들이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위치해 있다 보니 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많을 때는 1년에 8-9번 정도, 적게는 4~5번 정도 해외 출장을 가고요. 한 번 가면 보통 1주에서 2주 정도 머무릅니다.
출장을 가면 보통 며칠에 걸쳐서 건축주, 시공사, 현지설계업체, 협력사들이 같이 모여서 워크샵을 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줄이 보고와 회의가 이어지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문제점이 생기면 호텔로 돌아가 스케치를 하고 밤에는 뉴욕사무실과 화상회의를 진행해서 아침에 업데이트된 자료를 받아서 다시 회의가 이어집니다. 처음 출장에 동행하는 젊은 직원들은 너무 설레어 하면서 출장을 가지만 시차와 업무에 치여서 집에 올 때는 눈 밑에 다크 서클이 가득하죠.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 있으면 직접 방문해 시공 상황을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도면이나 디테일을 체크하고 현장에 만들어진 목업(Mock-up, 실제 건축물을 만들기 전 미리 디자인을 점검하기위해 실물크기나 작은 스케일로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을 꼼꼼히 검토하고 변경사항을 지시하고, 재료나 마감 같은 중요한 사안도 현장에서 결정합니다. 또 새로운 프로젝트 기회가 있을 때는 제안서를 준비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하고요. 출장 중에 몇 안 되는 기쁨(?)은 평소에 안 가보던 생경한 도시나 지역에 가기도 해서 그 지역의 전통적인 요리를 맛볼 기회가 자주 생긴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건축주 입장에선 멀리서 온 손님이다 보니 잘 접대해 주시는 경우가 많고, 덕분에 그 지역의 전통 요리를 맛볼 기회가 많아요. 또 그 지역의 문화와 건축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랜드마크를 둘러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도 갖게 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늘 느끼는 건, 결국 건축은 ‘형태를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건축과 도시, 조경과 인테리어를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는 작업도 단순히 건물을 설계한다는 것보다는 도시, 건축, 자연, 인테리어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플레이스 메이킹(Place Making)을 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결국 좋은 공간이라는 건 멋지게 보여지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다시 찾고 싶은, 감정과 기억이 쌓이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스터플랜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1~2km 단위의 대지를 큰 선과 면으로 스케치하면서 시작하는데요. 그때 제가 그린 한 줄의 선이 어떤 곳에서는 도시의 흐름이 되고, 어떤 곳에서는 랜드 스케이프의 작은 시내가 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건축의 볼륨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컨설턴트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계속 재해석되고, 조정되고, 발전해 나가죠.
그렇게 ‘아이디어’로 시작한 것이 실제로 구축되어 사람들이 그 공간을 즐기고, 도시의 일부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저는 건축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건축가의 눈에 보이는 뉴욕은 어떤가요? ‘애증의 도시’일까요, ‘애정의 도시’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뉴욕에 왔을 때는 이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필라델피아와 달라스를 거쳐 지금 회사의 헤드쿼터가 있는 뉴욕으로 오게 됐는데, 당시에는 커리어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에 가까웠어요. 만나는 사람들도 다 까칠하고 새침해 보였어요.
뉴욕은 말 그대로 ‘메가폴리스’입니다. 도시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와 나 사이의 유대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도시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갖기 어려운 도시였죠. 게다가 처음엔 거칠고 때로는 무례하게 느껴지는 뉴요커에게 반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어느새 뉴욕의 속도와 성격을 닮아가더라고요. 지금의 뉴욕은 제게 작가님 말씀대로 ‘애증의 도시’입니다. 예민하고 까다롭고 때로는 힘들게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어서 쉽게 떠날 수 없는 도시랄까요?
건축가에게 뉴욕은 말할 것도 없이 특별합니다. 이 도시는 정말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이에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 도심 곳곳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걷다 보면 골목 모퉁이에서 예고 없이 거장들의 건축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별히 ‘보러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계속 건축을 만나게 되는 도시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작업하다가 디테일이 막히거나 궁금한 요소가 생길 때 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도서관이 되어준다는 겁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직접 걸어가서 건물을 보고, 만져보고, 공간감을 느끼면서 해답을 얻을 때도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뉴욕은 저에게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스승 같은 존재입니다.
다만 뉴욕은 이 안에서 살다 보면 그 아름다움을 잊기 쉬운 도시이기도 합니다. 출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하이 라이즈(High-rise, 고층 건물)들이 빛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어요. 그 순간 “아, 내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도시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뉴욕을 즐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깨어 있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 도시에 압도당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바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뉴욕에 산다는 ‘자부심’보다는, 오늘도 이 도시와 싸우고 사랑하고 대화하면서, 일종의 ‘밀당’을 하는 중입니다.
Q. 일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시나요? 골프와 포커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결국 일의 과정 안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일하지 않는 시간만큼은 그 스트레스가 일상에 들어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특히 집에까지 스트레스를 가져가면 그 감정이 가족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최대한 조심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하루에 한 가지는 꼭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마감 때문에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면 어떻게 해서든 꼭 시간을 내서 맛집을 가거나 잠깐이라도 좋아하는 야외활동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도 안 되면 쇼핑이라도 해요.
골프를 좋아해서 거의 매주 나가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베스페이지(Bethpage) 골프장이 있어요. 작년에 라이더 컵(Ryder Cup)이 열렸던 명문 퍼블릭 골프장인데 오후쯤 느지막이 나가 혼자 걸으면서 해질 때까지 치다가 집에 와요. 친구들과 썸을 이뤄서 라운딩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속에서 혼자 오롯이 몇 시간 동안 걷고 공 치는 게 일상이 되었어요. 이렇게 혼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사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Q. 여행하면서 건축물 보는 걸 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일의 연장선이 되어서 이기 때문일까요? 여행속에서 건축물은 떼 놓을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럼 여행 중엔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시는지요? 자신만의 여행법이 궁금합니다.
배낭여행 마지막에 파리에 10일 정도 머물렀는데, 한국에서 방학 때 아르바이트하던 사무실에서 만난 선배가 마침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어요. 그분 집에 머물면서 10일 내내, 당시 엄청 핫했던 모던 건축들을 보여준다고 파리 변두리를 매일 훑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가 “베트남 음식 ‘포’가 진짜 맛있다”면서, 10일 내내 포만 먹었어요. 그렇게 건축답사를 입에 단내 나게 하고 돌아다녔죠. 그러다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 저 아래로 뭔가 하나 보이더라고요. 에펠탑이었습니다.
“아….. 안 봤네…. 에펠탑.”
에펠탑은 결국 25년 뒤에 실물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꼭 그런 경험이 있어서 건축물을 보러 다니지 않는 건 아니고요. 여행에서 건축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동선 속에서 마주치는 건축은 오히려 굉장히 즐겁게 봅니다. 다만 “그 건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의 흐름을 일부러 끊고, 무리해서 이동해야 하는 경우라면 굳이 가지 않는 편이에요. 건축가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들, 특히나 모더니즘 성향의 작품들은 대부분 도시 중심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동하고 보고 돌아오려면 거의 하루가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죠. 오히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제 눈에 확 들어오는 건축을 더 좋아합니다. 암스테르담은 마음에 드는 건축이 너무 많아 사진 찍느라 걷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특정 건축물을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풍경이나 자연, 도시의 일상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여행을 구성하는 편입니다.
저의 경우는 1~2년에 한 번씩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가는데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루트 짜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기차나 비행기로 도시와 도시를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루트, 차를 렌트해서 자연과 소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정 등을 골고루 섞어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베니스에서 머물다 기차로 피렌체로 이동해서 차를 렌트한 후 토스카나에서 농가 민박(아그리투리수모)을 하면서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소도시들을 구경하다가 이탈리아 남부의 포지타노를 따라 절벽길을 달리다가 잠시 차를 세우고 멋진 풍광에 취해도 보고, 로마로 돌아와 다시 며칠동안 터덜터덜 포로 로마노와 로마를 거니는 거죠. 가족 네 명의 각자 속도와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에 도시와 자연, 자극과 여유, ‘와글와글’과 ‘고요함’이 적당히 섞인 여행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그곳의 사람들과 자연, 문화, 그리고 일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가족 여행을 주로 하다 보니, 여행은 일상에서 놓치고 지나갔던 가족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서로 대화를 더 많이 나누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다음과 같은 LIFE 잡지의 모토가 나오지요.
“세상을 보고, 위험한 곳에 다가가고, 벽 너머를 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찾고, 그리고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
Q. 가족이 달라스에 살던 시절, 한 달에 한번씩 뉴욕에서 그곳으로 방문할 때마다 한국 치킨을 구입해 비행기 기내에 들고 탔다는 이야기가 몹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을 향한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드님 2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꿈도 혹시 건축가일까요? 만약 아드님이 미래의 전공과 직업으로 건축을 택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해주고 싶으신지요?
달라스에 살다가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 두고 혼자서 2년 동안 뉴욕에서 일종의 기러기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갈 때마다, 그 당시 달라스에는 한국 브랜드가 없었는데 치킨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비행기로 치킨 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 둘이 있는데, 첫째는 한때 건축가를 꿈꾸다가 바이오를 전공으로 대학교에 진학했고, 둘째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 합니다. 만약 아들들이 앞으로 전공이나 직업으로 건축을 선택한다면, 저는 당연히 전폭적으로 응원할 거예요. 다만 “건축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술이나 디자인 감각 이전에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들의 일상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왜 그럴까?”,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까?” 같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태도, 그런 호기심과 관찰력이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좋은 건축은 사람을 향한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이 있다면 언제나 시작해도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Q. 건축가로서 혹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나라 혹은 도시가 있다면? 그 이유는요?
가장 애정하는 도시는 ‘서울’과 ‘뉴욕’입니다. 두 도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굉장히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겉으로 보면 다소 무질서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무질서함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어요.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고 섞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힘이랄까요?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진부함과 참신함, 식민지 시대의 흔적과 6·25 이후의 근현대사가 정리되지 못한 채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레이어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고, 그 복잡함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활력이 나옵니다.
반면 뉴욕은 비교적 규칙과 계획이 강한 도시입니다. 도시 구조 자체가 명확하고 체계적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규칙 안에서 오히려 밀도와 에너지가 극대화된다는 점입니다. 한정된 틀 안에서 최대한의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움직임이 있고, 그 과정에서 ‘팽창하고 싶지만 팽창할 수 없는’ 압축된 에너지가 만들어져요. 그 밀도감이 만들어내는 과할 정도의 활력이 뉴욕만의 매력이라고 느낍니다.
결국 서울과 뉴욕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활력과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도시이고, 그래서 건축가로서도, 개인적으로도 늘 끌리는 도시들입니다.
Q. 앞으로의 삶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크게 거창한 목표라기 보다는, 지금처럼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잘 모아서 오래 이어가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고요.
건축가로서의 목표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속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겁니다. ‘엘뉴원독’에 초대받아서 얼마 전 타계한 프랭크 게리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유명한 스타 건축가도 매번 처음 하는 마음으로 새 프로젝트에 뛰어든다고 하더라고요.
건축은 정답이 없잖아요. 사실 어떤 일을 20년 넘게 하면 익숙해지고 편안해질 법도 한데, 매번 다른 걸 만들어내려면 결국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기대도 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긴장되고 힘들기도 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긴장과 고통이 없다면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작업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그린 아이디어와 팀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 실제 공간이 되어 사람들과 만나고, 그 공간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기억되는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요.
결국 목표는 단순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프로젝트를 오래 하고, 그 과정 속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앞으로의 바람입니다.
Q. 앞으로 미국으로 이민 올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처음 미국에 유학을 왔을 때는 한 번도 스스로를 ‘이민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민을 와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과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비슷해졌고, 어쩌면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기에 가끔은 한국과 미국 사이,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어딘 가에 발을 디디고 사는 ‘중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주변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남들이 어떻게 볼지를 계속 고민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 더 잘 맞는 곳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주변 평가에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방향과 속도를 믿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살면서 확실히 느낀 게 하나 있는데, 한국에서 익숙한 ‘겸손’이라는 태도는 분명 좋은 미덕이지만 여기에서는 그게 오히려 자기 강점을 숨기는 방식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결국 미국에서는 실력만큼이나, 그 실력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겸손은 잠시 내려두고, 자신 있게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릴 줄 아는 태도”를 꼭 갖추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Q. 한국 그리고 해외에서 이 글을 보실 많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삶의 순간순간 마주치는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고, 또 타지에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가족을 이루고 생활해보니 어디에 살고 있느냐, 어떤 지위에 있느냐가 행복이나 만족도를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뉴욕이든 서울이든, 혹은 또 다른 어떤 도시든, 심지어 전원 속이든… 중요한 건 장소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느냐 인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 스스로를 잃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나를 찾아가고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터뷰 | 조은정
사진 | 조은정, 송준규 제공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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