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발효의 유령이 성수동을 배회하고 있다, '퍼멘티드 고스트' 김미연 맥주 소믈리에 #1

2026-02-26


퍼멘티드 고스트 김미연 대표 인터뷰 #1


시작은, 시에라 네바다 스프링페스트 IPA입니다. 늦겨울의 이른 저물녘 다섯 시, 찬 공기도 한층 무뎌졌구나 생각하며 번화를 떨치고 나온 성수동의 어느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계절과 취향, 기분, 찾아온 사람들의 바람에 맞추어 맥주를 골라 맛보게 해 준다는, 그냥 bar라고는 할 수 없고, 정확하게는 테이스팅 바 퍼맨티드 고스트로 가는 길입니다. 창밖에 서서 거대한 샹들리에를 의식처럼 잠시 마주봅니다. 골목을 배회하던 발효 유령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제 맥주 소믈리에이자 세계 맥주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미연 대표의 옷소매를 붙잡고 제가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뺨에 달라붙은 이 지긋지긋한 겨울 공기도 곧 닿고 말 봄날의 기척에 차근차근 누그러지겠지요. 광활한 맥주의 세계의 첫 이야기는 시에라 네바다 스프링페스트 IP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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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멘티드 고스트의 맥주잔 샹들리에


북반구에서는 보통 홉을 봄에 심어서 가을에 수확해요. 맥주 라벨에 그려진 그림은 이제 막 무럭무럭 자라기 직전 홉의 모습이에요. 홉은 다년생 식물이라 봄이 되면 땅속에 남아 있는 뿌리에서 새 줄기가 올라옵니다. 그 줄기들이 여름 동안 빠르게 자라 보통 5~7미터 정도까지 성장하고, 초가을이 되면 수확을 해요. 라벨 이미지는 그런 생명력의 시작, 새 시즌이 막 열리는 순간을 상징하고 있지요. 그렇게 수확된 홉은 우리가 좋아하는 싱그러운 향과 쌉쌀한 구조를 맥주에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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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멘티드 고스트의 김미연 대표와 그가 소개해 준 시에라 네바다 스프링페스트 IPA


이 맥주는 시에라 네바다라고 하는,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꽃 피운 1세대 양조장에서 만든 IPA입니다. 크래프트 맥주의 정신과 높은 맛의 결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굉장히 멋있는 양조장이에요. 홉과 몰트,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지속 가능성이 우리의 삶에, 또 맥주 문화 전반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 맥주가 알려주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오가닉한 재료를 잘 살린 맛이 봄을 기리는 맥주로 적합할 것 같았어요. 싱그러운 홉 향과 시트러스, 청량한 느낌이 아주 예쁘게 펼쳐져 있어요.


업장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이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이곳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네요. 

저희 업장이 회전율을 포기한 곳이라는 것을 들어서자마자 딱 느끼셨지요? 빨리 한 잔 하고 가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에요. 그래서 문을 열자마자 나가시는 분들도 꽤 있어요. 제가 의도했던 맥주 문화, 특히 크래프트 맥주 문화는 굉장히 열려 있고, 모든 사람들이 맥주를 통해서 정말 가까워지는 거예요. 제가 처음 맥주에 매료되었던 게 바로 그 부분이었어요. 그런 분위기를 한국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하다 보니 이런 형태의 테이블이, 조금은 강제성을 띤 공간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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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제공


한국 사람들은 낯선 이들과 스몰토크 하는 것을 좀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뭐랄까, 약간의 거리감 두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 앉으면 반대편에 앉으신 분과 어쩔 수 없이 눈을 마주치게 돼요. 서로 시선이 오가는 걸 의도했던 거예요. 두 분이 오시는 경우 워낙 여러 맥주를 마시다 보니 풍미가 깊은 큰 병맥주를 다 드시기에 부담스럽지요. 그럴 때 살짝 눈이 마주치는 분이 있으면, 이거 한번 드셔보실래요,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돼요. 그러면서 서로 다른 맥주를 교환해서 드시기도 하고요. 시선의 부딪침으로 시작되어 좀 더 많은 접점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 디자인을 해 봤어요. 

제가 인테리어나 업장 운영 경험이 전무하지 않았다면 이런 디자인은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상업적 효율보다는 경험의 밀도를 선택한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잘 모를 때라 용감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거지요. 대신 제 몸 크기에 맞게 짜 놓았고, 제 동선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서빙하고 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어요.


맥주 소믈리에, 비어 소믈리에, 생소하네요. 

네 생소하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생소할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맥주의 세계가 그만큼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맥주 하면 딱 떠오르시는 게 뭔가요? 카스? 편의점 네 캔 맥주? 우리에게 맥주라는 세상은 많이 제한되어 있고, 다채롭다는 인식을 갖기가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맥주 소믈리에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요. 지금 알고 있는 데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정말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고, 그걸 제가 안내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맥주 소믈리에는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맥주가 있다는 걸 소개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맥주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에요. 당연히 국제 자격증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일반적인 이론과 분석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건 이 직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어요. 

그 시작점을 지나면 굉장히 다양한 테이스팅 훈련을 거치고, 실제로 이렇게 환대해 줘야 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떤 경험을 쌓아갈 것인지, 어떻게 관계를 구축할 것인지 많이 부딪치면서 방향성을 찾아가야 해요. 특히 한국처럼 맥주가 대중적으로 넓게 소비되지 않는 시장에서 적합한 모델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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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대회에서 심사 중인 김미연 대표 | 김미연 제공


기술적인 면으로 보자면 맥주를 분류하는 체계가 있어요. 오늘 친구랑 와인 한 잔 하려고 하면 어떻게 고르시나요? 오늘은 화이트가 좀 당기는데, 고기를 먹으니까 좀 볼드한, 강렬한 맛의 레드가 어떨까, 오늘은 프랑스 와인의 섬세함을 즐기고 싶어,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학습되어 있어요. 그런데 맥주 같은 경우 치맥, 노가리에 맥주 한 잔, 조금 다르게는 흑맥주를 마셔볼까 하는 정도지요. 그 이상의 디테일을 표현할 가이드라인이 없어요. 

하지만 맥주에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약속된 시스템이 있고, 맥주 소믈리에라면 그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맥주의 관능을 평가하고 테이스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는 게 필수예요. 기본적인 재료와 양조 기법에 따라 맥주가 어떤 결과물로 나올 것인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실무적으로 다양한 스타일별로 맥주를 취급하는 방식 그러니까 서빙하고 온도를 관리하고 재고를 관리하고,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 하는 부분까지 알고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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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소믈리에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저는 IT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어요. 맥주를 정말 좋아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시행하는 여러 소믈리에 자격증, 미국의 자격증, 국제 자격증들에 도전하게 되었지요. 자격증 취득 이후에는 여러 국제 맥주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좀 더 폭넓은 테이스팅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센서리 워크숍을 열면서 실질적으로 맥주 소믈리에로서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해 왔어요. 지금도 그 과정에 놓여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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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ET라고,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와인 소믈리에 기관에서 작년에 맥주 과정을 론칭했어요. 커리큘럼을 만드신 분이 전 세계에 몇 분 안 계시는 마스터이신데, 맥주 대회 심사에서 자주 뵌 분이라 친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이 과정에 참여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론칭하면 꼭 알려달라 부탁했어요. 그 덕에 한국에서 제일 먼저 WSET 맥주 소믈리에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맥주 아카데미를 런칭해 레벨2 단계까지 국제자격증 과정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단계라 제가 직접 맥주 소믈리에를 양성하는 활동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맥주를 직접 양조할 생각은 없으셨나요?

제가 맥주 소비자로서 느꼈던 가장 아쉬운 점은 맥주라는 멋있는 결과물을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에 공백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맥주를 정말 잘 만들고, 맛도 정말 훌륭한데 맥주 시장이 굉장히 귀하고 마이너해요. 사람들이 맥주를 즐기고 소비하는 환경이 10년, 20년 전과 변함이 없어요. 저도 언젠가 제 양조장을 세우길 꿈꾸고 있어요. 하지만 맥주 시장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맥주를 어떻게 소비하고 어떤 감정으로 마시고 계속해서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이냐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퍼멘티드 고스트는 단순한 맥주 바가 아니라 맥주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이에요.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맥주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과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요.


심사를 많이 하시는데, 좋은 맥주의 기준을 어디에 두시나요?

1차적으로는 기술적 완성도겠지요. 맥주는 당연히 제품이고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야 해요. IPA, 스타우트, 각각의 맥주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되고, 얼마나 적합한가, 밸런스가 얼마나 좋은가, 결함이 없는가 하는 부분이 1차적이에요. 그런데 이 맥주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그게 높은 해상도로 구현되고 있는가 하는 부분도 못지않게 중요해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맥주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한 방향을 향해서 정렬되어 있어야 하는데, 정렬이 잘 된 맥주는 설득하지 않아도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이 맥주를 마셨을 때 바로 느낌을 표현했잖아요. 처음에는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가벼운 아로마로 기분이 전환되는 것 같다든가, 어떤 인상이 남게 되지요. 양조사가 의도한 방향과 이런 감정적인 요소들이 저는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굳이 말로 설득하지 않아도 음용하는 분들이 느낄 수 있는 의도의 간결성, 선명함이 좋은 맥주의 기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맥주 패키지 디자인의 경우는 개인의 취향 영역이라 어떤 게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크래프트 맥주 같은 경우에는 강한 개성, 자기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 보여주려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그런 걸 아예 무시하고 정말 자유롭게 ‘나는 놀겠어’라는 라벨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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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대회에서 | 김미연 제공


양조장과 협업 프로젝트도 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고 맥주의 완성도도 정말 높은 맥주인데, 크래프트 맥주라는 시장 상황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맥주들이 있어요. 그런 맥주를 그야말로 사랑으로 브루어리 쇼케이스 이벤트를 한 적이 있어요.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었는데 그곳 맥주를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양조사도 맥주 대회에서 여러 번 만났어요. 대화할 기회가 정말 많았고, 좋은 철학과 좋은 의도를 가지고 계시다 생각했는데 이 신에서 이상하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수입사 사장님을 설득해서 여기서 쇼 케이싱을 하면서 양조장의 철학을 전달하고 테이스팅도 같이 해 드렸어요.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한국의 한 로컬 브루어리와 함께 만드는 맥주인데, 출발점은 우크라이나 크래프트 맥주 문화였어요. 그 지역에는 토마토를 활용한 독특한 맥주 장르가 있고, 저는 그 스타일을 한국 양조 환경 안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어요. 단순히 새로운 재료를 써보는 실험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을 연결해보는 시도에 가까워요. 우크라이나 쪽에는 한국의 청양 고춧가루를 보내고, 그들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금을 보내왔어요. 각자의 재료를 가지고 같은 장르를 다른 환경에서 양조해 보는 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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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협업 | 김미연 제공


저는 이 과정에서 스타일의 맥락을 정리하고, 왜 지금 이 장르가 한국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하고, 양조사와 소비자 사이의 언어를 번역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맥주를 만드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권을 연결하는 중간자로서요. 저는 퍼멘티드 고스트라는 브랜드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이런 연결 구조를 만드는 일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맥주는 취향이 아니라 관계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맥주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어요. 맥주가 하나의 음료를 넘어 문화적 대화가 되는 순간을 만드는 데 공헌하고 싶은 거예요. 


:: 김미연 대표와의 인터뷰는 두 번째 편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 브릭스
사진 | 김미연,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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