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마주한 공간에는 딱딱하게 흐르는 시간이란 없는 듯합니다. 사근사근 말씨, 귀여운 언어 조합, 가벼운 농담, 안녕하시냐고, 안녕하신 듯하다고, 격정과 호소 없는 안부를 묻습니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게 안녕하신가영이라는 듯, 그는 노래해 왔습니다. 완벽한 음악도 완전한 사랑도 알지 못하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다가가 보려 한다고, 그래서일까요, 오래 남을 조용한 진심이 새 노래에 담겼습니다. 봄이 한꺼번에 찾아온 듯한 날 안녕하신가영이 건네는 안부를 한껏 담아 왔습니다.
4년 만에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지난 4년 어떻게 지내셨나요?
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음악을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어서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 4년 정도 공백이 생겼어요. 공연은 계속해 왔지만, 새로운 앨범을 내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컨디션도 그랬고.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이제 조금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를 복귀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작년에 데모 작업을 여섯 곡 정도 했는데, 이거다 싶은 곡이 없었어요. 지금 쌓여 있는 곡들이 10곡이 넘는데, 앨범을 계속 발매해 왔으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저의 재미를 추구하며 흘러갔을 거예요.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려니까 어떤 노래가 좋을지 생각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곡을 새로 쓰게 됐고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에 “밤에 다녀왔어요”라는 가사가 있어요. 저의 지난 4년을 “밤에 다녀왔다”라는 말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 가사 안에는 조금은 쉽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곡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몸이 아팠고, 그러면서 마음이 좋지 않은 시기를 보냈는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가장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정말 사소한 거라도 쉽게 행복을 느끼고 싶다, 엄청 커다란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오히려 건강한 마음으로 그 시기를 버틸 수가 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큰일을 겪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일들을 끊임없이 겪잖아요. 저도 그랬지만 그럴 때 사람들은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 받길 원하는 마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사랑 그 자체가 되면 조금 더 쉽게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 이 곡이면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제 그동안 쌓여 있는 곡들을 발매하려고 해요. 시작을 하고 나니까 반응이나 성과에서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노래는 발매되면 알아서 날개를 달고 활동을 하러 가는 거라서 저는 이 곡이 나온 것만으로 만족해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 뮤직비디오에서는 직접 열연도 하셨어요. 뮤직비디오 제작 과정은 어땠나요?
뮤직비디오는 과거의 가영과 현재의 가영이 만나기도 하고, 과거의 시점에서 어떤 사랑을 그리기도 하는 내용이에요. 배우 분을 봤는데 저랑 좀 닮으셨더라고요. “어, 저랑 닮으셨네요.” 그러면서 정말 제 과거와 만나는 것처럼 재미있게 찍었어요.
제가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고 누가 제 사진을 찍으면 바로 불편해져서 카메라를 못 쳐다보고 몸이 뚝딱거리며 부자연스러워지는데, 뮤직비디오 현장에 가보니 열 분 넘게 집중을 하고 계셔서 절대 NG를 내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스튜디오 대여에 정해진 시간도 있고, 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러면서 처음으로 연기를 해 봤어요.
2009년 ‘좋아서 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시며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중고등학생 때 막연하게 제가 음악을 할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며 살았어요. 그렇다고 뭘 하지는 않았고 그냥 막연하게 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클래식은 제 성향에 안 맞았고, 어떤 형태의 음악이 될까 궁금해하며 시간이 흘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용음악학원이 생기면서 작곡을 배워볼까 하고 찾아갔어요. 처음엔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베이스가 걸려 있는 걸 보고, 줄이 두 개가 적네, 저건 좀 더 쉬울 것이다, 기타보다 좀 더 긴 것도 멋있어 보인다, 그렇게 베이스 소리가 뭔지도 모른 채 수강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베이스 소리에 매료되었고, 훅 빠져들어서 하루 일고여덟 시간씩 연습했어요. 그리고 1년 4개월 뒤에 실용음악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다들 음악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저는 앉아서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거예요. 나는 왜 이럴까,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런 딜레마에 놓여 있었어요. 졸업을 하고 세션 연주를 많이 했는데, ‘좋아서 하는 밴드’도 처음에는 세션으로 참여했었어요. 그러다 베이스 자리가 비게 되고, 너 우리 멤버가 되라, 그래서 밴드 활동을 하게 됐지요.
첫 밴드 활동은 어땠나요?
매 순간 부끄러웠어요. 그 팀이 길거리 연주를 많이 하는 팀이었어요. 다들 활발한 멤버들이었는데, 저는 사람들 눈을 잘 못 보고, 멤버가 됐으니 멤버로서의 몫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재미는 있으니까 또 열심히 했고요. 저는 베이스다 보니까 가뜩이나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길에서 연주를 하면 더 안 들려서 계속 제 볼륨을 올리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제 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서요.
그러다 점점 알겠더라고요. 제가 밴드를 할 성향이 아니라는 걸. 혼자 앨범을 만들면서 늘 느끼는 건데, 제가 뭔가 작업을 할 때 다른 사람과 그다지 상의를 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기까지는 혼자 생각하는 타입이에요. 밴드에서는 어떤 일이 진행되기 전에 정말 많은 논의 과정이 있고, 저는 거기에서 상당히 많은 에너지 소모가 있었어요. 그래도 무대를 대하는 태도라든가 무대 위에서 말을 하는 것이라든가, 밴드를 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4년간의 밴드 활동을 마치시며 바로 솔로 데뷔 싱글을 발표하셨어요. 미리 준비를 해 두셨던 건가요?
밴드가 그만둔다고 바로 또 그만둬지는 게 아니잖아요. 1년 정도 유예기간이 있었어요. 미리 약속돼 있던 공연들을 마무리해야 했고요. 그 시점부터 천천히 제 걸 준비했어요. 바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고 싶어서요.
좋아서 하는 밴드는 자기가 쓴 곡은 자기가 부르는 콘셉트였어요. 저는 곡을 쓰던 사람이 아닌데 멤버가 됐으니 곡을 안 쓸 수는 없고, 한 번 써볼까 하다가 처음 쓴 곡이 <인생은 알 수가 없어>였어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예상을 못 했는데, 어, 사람들이 좋아하네, 재밌다, 그러면서 곡 쓰는 것에 흥미가 붙었어요. 밴드활동을 하면서 써 놓은 노래들이 쌓여 있었고, 무대 경험도 많아졌으니 혼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 첫 정규 앨범 <반대과정이론>을 발표하셨어요. 지금 돌이켜 보는 첫 앨범 활동은 어땠나요?
사실 대단히 포부가 있어서 만든 앨범은 아니에요. 혼자 일을 하니 진행이 이렇게 빠르구나, 그런 게 신기했고, 음반 작업 방식을 테스트하는 기간이기도 했고, 실제로 몇 달 만에 앨범이 나오는 걸 보면서 와 빠르다, 신나 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했던 시기였어요. <반대과정이론>은 정말 생각 없이 재밌게만 했을 때의 기록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초기 음반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제가 재미있어서 한다는 걸 같이 느껴주시는 것 같아요. 재미있어서 하는 데는 정말 못 이기잖아요. 혼자 신나서 음악에 취해 있던 시기가 아닐까 해요.
‘안녕하신가영’이라는 이름은 솔로 활동과 함께 지으신 건가요?
본명을 쓰면 너무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고, 음악을 하는 저와 실제 생활을 하는 제가 분리가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녕하신가영’으로 지었어요.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지은 이름은 아니에요. 그래서 요즘 좀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차라리 할머니가 되면 이 이름이 귀여울 것 같은데 중년 시기에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쨌든 이미 지은 이상 제가 잘 가지고 가야 하는 이름이지요.
이어 발표한 싱글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떼창곡’이 되었는데, 이전과 반응이 다르다는 걸 느꼈나요?
저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 이렇게 사랑 받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당시에 이런 음악들이 주목을 많이 받았고, 사람들이 원하던 분위기의 노래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 곡이 꾸준히 사랑 받으면서, 나는 가사를 틀리는데 왜 저 분들은 가사를 다 외우지 이러면서 묘하게 긴장이 되기도 했어요.
어떤 곡을 만들고 나서 이 곡은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저는 그 예감이 잘 안 맞더라고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도 원래는 피아노 하나로 소박하게 가려고 하다가 녹음실에서 기타가 뒷부분에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추가로 녹음했어요. 이 곡이 제 공연의 떼창곡이 됐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에서 노래한 사랑과 10년이 지난 지금 노래하는 사랑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일단 사랑을 빼고 곡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사랑의 범위가 아주 아주 많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예전 같으면 특정 누군가와의 관계를 다룬다거나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깊게 다룬다거나 그럴 텐데, 지금은 나 이렇게 사랑하고 싶고 나는 이런 사랑이 좋아, 그런 식으로 꿈을 꾸기도 하고,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많이 이야기하게 돼요.
그래도 개인의 삶을 약간 멀리하고 가사를 쓰는 건 어려워요. 저에게는 당연히 ‘현실의 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제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역할들이 다양한 사랑의 형태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면서 계속 의문점을 안고 쓰고 있어요.
두 번째 정규앨범 <순간의 순간>은 안녕하신가영이라는 뮤지션을 더 폭넓은 대중에게 인식시켰던 음반이 아닐까 싶어요.
<반대과정이론>처럼 <순간의 순간>도 열정이 크고 곡 쓰는 일을 아주 재미있어 하던 때 만든 음반이에요. 첫 번째 앨범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그 신나는 기분이 쭉 이어지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저 혼자 음반을 제작하다 보니까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3시간에 세 곡 녹음하고, 요령이 없이 뚝딱거리면서 만든 앨범이었어요. 잘 몰라서 잘 할 수 있었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진정성이 많이 담겼고,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진솔하게 고백한, 아주 솔직한 앨범이어서 많이 좋아해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는 정규 앨범을 내면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앨범’이라는 점에서 힘이 조금 더 실리는 시기였기도 했어요.
당시 공연할 때 관객 수가 갑자기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셨나요?
공연을 찾는 사람들이 확 많아져서 난리가 나고 통제가 불가능하고, 그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항상 은은하게 저를 좋아해 주신다는 느낌이 있어요. 언젠가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가 저의 첫 번째 전성기였던 것도 같아요.
프리랜서다 보니까 항상 같은 그래프를 이어나갈 수는 없어요. 저는 그대로여도 시대가 변하고, 제가 언제든 똑같이 좋을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잖아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또 새로운 사람도 많이 늘어나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그냥 제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만이 답이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2집 앨범 이후에도 꾸준히 OST, EP, 싱글 발매, 정말 활발하게 활동을 했어요. 새 음반을 준비하기 전에 휴식기를 가질 생각은 없으셨나요?
활동이 계속 되는 만큼 점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주 좋지는 않지만,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었고, 혼자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안 해 본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시도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휴식기를 따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사실 평소에도 잘 쉬기 때문에 여기서 얼마나 더 쉴 건데 하는 생각을 해요.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쉬자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가 본 적이 있기는 한데, 똑같았어요. 여행 가서도 틈틈이 가사를 쓰고 생각하고 구상하고, 그래서 제 일상에서 음악을 떼어 놓을 수 없겠다는 걸 알았어요. 오히려 휴식을 하면 다시 시작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걸, 4년 쉬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휴식기를 가지지 않는 것이 지속 가능한 뮤지션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많은 작업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 루틴이 있으신가요?
작업 루틴은, 정하면 어차피 못 지켜서 일단 발매일을 찍어요. 그리고 공연 때 내뱉어요. 다음에 이렇게 하겠다. 데드라인이 이런 식으로 등 떠밀려서 정해지는데, 그게 저한테 큰 동기부여가 돼요.
작업은 한 번에 몰아서 하기보다 꾸준히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다작을 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곡을 쓰다 보면 갑자기 그 곡이 싫어지는 순간이 와요. 그러면 다른 곡을 썼다가, 어떤 날은 다시 하던 작업을 하다가,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곡들이 저한테 항상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 매일매일이 쌓여서 결국은 뭐라도 완성이 되고, 발매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몇 시에 작업실로 가서 몇 시까지 일하고 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따로 정하지는 않아요. 작업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게끔 은근슬쩍 저를 유도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혼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나가서 홀로 좋은 시간을 보낸다든지, 개인적으로 어떤 여백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저는 곡을 쓸 때 대부분 가사를 먼저 써요. 이런 말이 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면 곡이 시작돼요. 그러면서 생각을 발전시키고 주절주절 쓰기도 하고, 여러 번 수정을 거쳐요. 수정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어떤 한 가지 고민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고, 이렇게도 한 번은 들여다봐야 하지 않나 하는 지점들도 생겨나요.
그래서 요즘 느끼기에 제 팬층이 코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대중적인 포인트가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시간을 두고서 가사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곡을 먼저 쓰시는 뮤지션들이 많기는 한데, 저는 가사를 먼저 쓰다 보니까 작사와 작곡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가 많아요. 어떤 정서가 묻어나는 가사가 있으면 그게 멜로디를 닮아가게 돼요.
2021년에 발표한 <가장 () 자리에서>는 어른의 고민, 슬픔, 무게감이 많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고, 동시에 제가 발매했던 곡들이 쌓여 가면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저라는 사람 자체를 놓고 봤을 때는 가장자리가 편하고, 주변과 너무 많이 섞이지 않길 원해요. 그런데 또 자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자리에만 머물고 있다는 생각으로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장과 자리 사이를 띄우고 괄호를 넣어서 그 자리를 사람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될 수도 있고, 각자 그 괄호를 채웠으면 좋겠다고 바란 거예요. 그런데 역시 코로나 때라 앨범 자체가 좀 어두웠던 것 같기는 해요.
데뷔하신 지 15년이 됐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 아직 미뤄둔 일,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손에 꼽을 만한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활동한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쭉 흘러가는 영상처럼 지난날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도 재미있고요.
해보고 싶은 건 많이 해봤어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노력할 거고요. 그동안은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많아서 완성이 어려웠는데, 완벽을 꿈꾸기보다 완성을 목표로 나아가야 더 오래오래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할 수 있었던 부분도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일을 키웠는데,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작업을 해야 저의 색깔이 더 묻어나겠구나 생각해요.
3월 29일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 공연이 있어요. 어떤 이야기와 구성을 담은 공연인가요?
오랜만에 밴드셋으로 하는 공연이에요. 한 4~5년 전에는 대부분 공연을 밴드 셋으로 구성했는데, 다시 컴백한 이후로는 주로 혼자서 공연을 했어요. 이번에는 원래 사운드의 노래들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오랫동안 같이 했던 친구들이랑 공연을 준비했어요.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감기 조심하자, 컨디션 관리하자, 아프면 안 된다, 이런 아주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나쁜 거 안 먹고, 합주도 하고 있어요.
이참에 다음 앨범 계획을 내뱉어주세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가 정말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만큼 들었는데 어떻게 댓글은 이렇게 많고 연락도 많이 오지, 너무 오랜만에 내기도 했지만 진짜 기다려 준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본업 모먼트에 충실해서 여름에 EP를 내려고 해요. 물건이 넘치는 세상에 물건을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 내키지는 않지만, CD는 그래도 저의 본업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여름이 한 10월까지는 되지요?
그와 마주한 공간에는 딱딱하게 흐르는 시간이란 없는 듯합니다. 사근사근 말씨, 귀여운 언어 조합, 가벼운 농담, 안녕하시냐고, 안녕하신 듯하다고, 격정과 호소 없는 안부를 묻습니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게 안녕하신가영이라는 듯, 그는 노래해 왔습니다. 완벽한 음악도 완전한 사랑도 알지 못하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다가가 보려 한다고, 그래서일까요, 오래 남을 조용한 진심이 새 노래에 담겼습니다. 봄이 한꺼번에 찾아온 듯한 날 안녕하신가영이 건네는 안부를 한껏 담아 왔습니다.
4년 만에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지난 4년 어떻게 지내셨나요?
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음악을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어서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 4년 정도 공백이 생겼어요. 공연은 계속해 왔지만, 새로운 앨범을 내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컨디션도 그랬고.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이제 조금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를 복귀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작년에 데모 작업을 여섯 곡 정도 했는데, 이거다 싶은 곡이 없었어요. 지금 쌓여 있는 곡들이 10곡이 넘는데, 앨범을 계속 발매해 왔으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저의 재미를 추구하며 흘러갔을 거예요.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려니까 어떤 노래가 좋을지 생각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곡을 새로 쓰게 됐고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에 “밤에 다녀왔어요”라는 가사가 있어요. 저의 지난 4년을 “밤에 다녀왔다”라는 말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 가사 안에는 조금은 쉽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곡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몸이 아팠고, 그러면서 마음이 좋지 않은 시기를 보냈는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가장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정말 사소한 거라도 쉽게 행복을 느끼고 싶다, 엄청 커다란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오히려 건강한 마음으로 그 시기를 버틸 수가 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큰일을 겪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일들을 끊임없이 겪잖아요. 저도 그랬지만 그럴 때 사람들은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 받길 원하는 마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사랑 그 자체가 되면 조금 더 쉽게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 이 곡이면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제 그동안 쌓여 있는 곡들을 발매하려고 해요. 시작을 하고 나니까 반응이나 성과에서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노래는 발매되면 알아서 날개를 달고 활동을 하러 가는 거라서 저는 이 곡이 나온 것만으로 만족해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 뮤직비디오에서는 직접 열연도 하셨어요. 뮤직비디오 제작 과정은 어땠나요?
뮤직비디오는 과거의 가영과 현재의 가영이 만나기도 하고, 과거의 시점에서 어떤 사랑을 그리기도 하는 내용이에요. 배우 분을 봤는데 저랑 좀 닮으셨더라고요. “어, 저랑 닮으셨네요.” 그러면서 정말 제 과거와 만나는 것처럼 재미있게 찍었어요.
제가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고 누가 제 사진을 찍으면 바로 불편해져서 카메라를 못 쳐다보고 몸이 뚝딱거리며 부자연스러워지는데, 뮤직비디오 현장에 가보니 열 분 넘게 집중을 하고 계셔서 절대 NG를 내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스튜디오 대여에 정해진 시간도 있고, 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러면서 처음으로 연기를 해 봤어요.
2009년 ‘좋아서 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시며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중고등학생 때 막연하게 제가 음악을 할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며 살았어요. 그렇다고 뭘 하지는 않았고 그냥 막연하게 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클래식은 제 성향에 안 맞았고, 어떤 형태의 음악이 될까 궁금해하며 시간이 흘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용음악학원이 생기면서 작곡을 배워볼까 하고 찾아갔어요. 처음엔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베이스가 걸려 있는 걸 보고, 줄이 두 개가 적네, 저건 좀 더 쉬울 것이다, 기타보다 좀 더 긴 것도 멋있어 보인다, 그렇게 베이스 소리가 뭔지도 모른 채 수강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베이스 소리에 매료되었고, 훅 빠져들어서 하루 일고여덟 시간씩 연습했어요. 그리고 1년 4개월 뒤에 실용음악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다들 음악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저는 앉아서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거예요. 나는 왜 이럴까,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런 딜레마에 놓여 있었어요. 졸업을 하고 세션 연주를 많이 했는데, ‘좋아서 하는 밴드’도 처음에는 세션으로 참여했었어요. 그러다 베이스 자리가 비게 되고, 너 우리 멤버가 되라, 그래서 밴드 활동을 하게 됐지요.
첫 밴드 활동은 어땠나요?
매 순간 부끄러웠어요. 그 팀이 길거리 연주를 많이 하는 팀이었어요. 다들 활발한 멤버들이었는데, 저는 사람들 눈을 잘 못 보고, 멤버가 됐으니 멤버로서의 몫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재미는 있으니까 또 열심히 했고요. 저는 베이스다 보니까 가뜩이나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길에서 연주를 하면 더 안 들려서 계속 제 볼륨을 올리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제 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서요.
그러다 점점 알겠더라고요. 제가 밴드를 할 성향이 아니라는 걸. 혼자 앨범을 만들면서 늘 느끼는 건데, 제가 뭔가 작업을 할 때 다른 사람과 그다지 상의를 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기까지는 혼자 생각하는 타입이에요. 밴드에서는 어떤 일이 진행되기 전에 정말 많은 논의 과정이 있고, 저는 거기에서 상당히 많은 에너지 소모가 있었어요. 그래도 무대를 대하는 태도라든가 무대 위에서 말을 하는 것이라든가, 밴드를 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4년간의 밴드 활동을 마치시며 바로 솔로 데뷔 싱글을 발표하셨어요. 미리 준비를 해 두셨던 건가요?
밴드가 그만둔다고 바로 또 그만둬지는 게 아니잖아요. 1년 정도 유예기간이 있었어요. 미리 약속돼 있던 공연들을 마무리해야 했고요. 그 시점부터 천천히 제 걸 준비했어요. 바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고 싶어서요.
좋아서 하는 밴드는 자기가 쓴 곡은 자기가 부르는 콘셉트였어요. 저는 곡을 쓰던 사람이 아닌데 멤버가 됐으니 곡을 안 쓸 수는 없고, 한 번 써볼까 하다가 처음 쓴 곡이 <인생은 알 수가 없어>였어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예상을 못 했는데, 어, 사람들이 좋아하네, 재밌다, 그러면서 곡 쓰는 것에 흥미가 붙었어요. 밴드활동을 하면서 써 놓은 노래들이 쌓여 있었고, 무대 경험도 많아졌으니 혼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 첫 정규 앨범 <반대과정이론>을 발표하셨어요. 지금 돌이켜 보는 첫 앨범 활동은 어땠나요?
사실 대단히 포부가 있어서 만든 앨범은 아니에요. 혼자 일을 하니 진행이 이렇게 빠르구나, 그런 게 신기했고, 음반 작업 방식을 테스트하는 기간이기도 했고, 실제로 몇 달 만에 앨범이 나오는 걸 보면서 와 빠르다, 신나 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했던 시기였어요. <반대과정이론>은 정말 생각 없이 재밌게만 했을 때의 기록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초기 음반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제가 재미있어서 한다는 걸 같이 느껴주시는 것 같아요. 재미있어서 하는 데는 정말 못 이기잖아요. 혼자 신나서 음악에 취해 있던 시기가 아닐까 해요.
‘안녕하신가영’이라는 이름은 솔로 활동과 함께 지으신 건가요?
본명을 쓰면 너무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고, 음악을 하는 저와 실제 생활을 하는 제가 분리가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녕하신가영’으로 지었어요.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지은 이름은 아니에요. 그래서 요즘 좀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차라리 할머니가 되면 이 이름이 귀여울 것 같은데 중년 시기에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쨌든 이미 지은 이상 제가 잘 가지고 가야 하는 이름이지요.
이어 발표한 싱글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떼창곡’이 되었는데, 이전과 반응이 다르다는 걸 느꼈나요?
저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 이렇게 사랑 받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당시에 이런 음악들이 주목을 많이 받았고, 사람들이 원하던 분위기의 노래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 곡이 꾸준히 사랑 받으면서, 나는 가사를 틀리는데 왜 저 분들은 가사를 다 외우지 이러면서 묘하게 긴장이 되기도 했어요.
어떤 곡을 만들고 나서 이 곡은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저는 그 예감이 잘 안 맞더라고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도 원래는 피아노 하나로 소박하게 가려고 하다가 녹음실에서 기타가 뒷부분에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추가로 녹음했어요. 이 곡이 제 공연의 떼창곡이 됐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에서 노래한 사랑과 10년이 지난 지금 노래하는 사랑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일단 사랑을 빼고 곡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사랑의 범위가 아주 아주 많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예전 같으면 특정 누군가와의 관계를 다룬다거나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깊게 다룬다거나 그럴 텐데, 지금은 나 이렇게 사랑하고 싶고 나는 이런 사랑이 좋아, 그런 식으로 꿈을 꾸기도 하고,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많이 이야기하게 돼요.
그래도 개인의 삶을 약간 멀리하고 가사를 쓰는 건 어려워요. 저에게는 당연히 ‘현실의 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제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역할들이 다양한 사랑의 형태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면서 계속 의문점을 안고 쓰고 있어요.
두 번째 정규앨범 <순간의 순간>은 안녕하신가영이라는 뮤지션을 더 폭넓은 대중에게 인식시켰던 음반이 아닐까 싶어요.
<반대과정이론>처럼 <순간의 순간>도 열정이 크고 곡 쓰는 일을 아주 재미있어 하던 때 만든 음반이에요. 첫 번째 앨범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그 신나는 기분이 쭉 이어지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저 혼자 음반을 제작하다 보니까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3시간에 세 곡 녹음하고, 요령이 없이 뚝딱거리면서 만든 앨범이었어요. 잘 몰라서 잘 할 수 있었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진정성이 많이 담겼고,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진솔하게 고백한, 아주 솔직한 앨범이어서 많이 좋아해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는 정규 앨범을 내면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앨범’이라는 점에서 힘이 조금 더 실리는 시기였기도 했어요.
당시 공연할 때 관객 수가 갑자기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셨나요?
공연을 찾는 사람들이 확 많아져서 난리가 나고 통제가 불가능하고, 그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항상 은은하게 저를 좋아해 주신다는 느낌이 있어요. 언젠가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가 저의 첫 번째 전성기였던 것도 같아요.
프리랜서다 보니까 항상 같은 그래프를 이어나갈 수는 없어요. 저는 그대로여도 시대가 변하고, 제가 언제든 똑같이 좋을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잖아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또 새로운 사람도 많이 늘어나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그냥 제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만이 답이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2집 앨범 이후에도 꾸준히 OST, EP, 싱글 발매, 정말 활발하게 활동을 했어요. 새 음반을 준비하기 전에 휴식기를 가질 생각은 없으셨나요?
활동이 계속 되는 만큼 점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주 좋지는 않지만,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었고, 혼자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안 해 본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시도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휴식기를 따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사실 평소에도 잘 쉬기 때문에 여기서 얼마나 더 쉴 건데 하는 생각을 해요.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쉬자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가 본 적이 있기는 한데, 똑같았어요. 여행 가서도 틈틈이 가사를 쓰고 생각하고 구상하고, 그래서 제 일상에서 음악을 떼어 놓을 수 없겠다는 걸 알았어요. 오히려 휴식을 하면 다시 시작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걸, 4년 쉬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휴식기를 가지지 않는 것이 지속 가능한 뮤지션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많은 작업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 루틴이 있으신가요?
작업 루틴은, 정하면 어차피 못 지켜서 일단 발매일을 찍어요. 그리고 공연 때 내뱉어요. 다음에 이렇게 하겠다. 데드라인이 이런 식으로 등 떠밀려서 정해지는데, 그게 저한테 큰 동기부여가 돼요.
작업은 한 번에 몰아서 하기보다 꾸준히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다작을 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곡을 쓰다 보면 갑자기 그 곡이 싫어지는 순간이 와요. 그러면 다른 곡을 썼다가, 어떤 날은 다시 하던 작업을 하다가,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곡들이 저한테 항상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 매일매일이 쌓여서 결국은 뭐라도 완성이 되고, 발매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몇 시에 작업실로 가서 몇 시까지 일하고 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따로 정하지는 않아요. 작업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게끔 은근슬쩍 저를 유도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혼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나가서 홀로 좋은 시간을 보낸다든지, 개인적으로 어떤 여백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안녕하신가영이라는 활동명도 그렇지만, <특별히 대단할 것>이라는 음반처럼 언어 조합이 자유롭고 재미있어요.
저는 곡을 쓸 때 대부분 가사를 먼저 써요. 이런 말이 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면 곡이 시작돼요. 그러면서 생각을 발전시키고 주절주절 쓰기도 하고, 여러 번 수정을 거쳐요. 수정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어떤 한 가지 고민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고, 이렇게도 한 번은 들여다봐야 하지 않나 하는 지점들도 생겨나요.
그래서 요즘 느끼기에 제 팬층이 코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대중적인 포인트가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시간을 두고서 가사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곡을 먼저 쓰시는 뮤지션들이 많기는 한데, 저는 가사를 먼저 쓰다 보니까 작사와 작곡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가 많아요. 어떤 정서가 묻어나는 가사가 있으면 그게 멜로디를 닮아가게 돼요.
2021년에 발표한 <가장 () 자리에서>는 어른의 고민, 슬픔, 무게감이 많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고, 동시에 제가 발매했던 곡들이 쌓여 가면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저라는 사람 자체를 놓고 봤을 때는 가장자리가 편하고, 주변과 너무 많이 섞이지 않길 원해요. 그런데 또 자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자리에만 머물고 있다는 생각으로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장과 자리 사이를 띄우고 괄호를 넣어서 그 자리를 사람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될 수도 있고, 각자 그 괄호를 채웠으면 좋겠다고 바란 거예요. 그런데 역시 코로나 때라 앨범 자체가 좀 어두웠던 것 같기는 해요.
데뷔하신 지 15년이 됐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 아직 미뤄둔 일,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손에 꼽을 만한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활동한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쭉 흘러가는 영상처럼 지난날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도 재미있고요.
해보고 싶은 건 많이 해봤어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노력할 거고요. 그동안은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많아서 완성이 어려웠는데, 완벽을 꿈꾸기보다 완성을 목표로 나아가야 더 오래오래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할 수 있었던 부분도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일을 키웠는데,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작업을 해야 저의 색깔이 더 묻어나겠구나 생각해요.
3월 29일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 공연이 있어요. 어떤 이야기와 구성을 담은 공연인가요?
오랜만에 밴드셋으로 하는 공연이에요. 한 4~5년 전에는 대부분 공연을 밴드 셋으로 구성했는데, 다시 컴백한 이후로는 주로 혼자서 공연을 했어요. 이번에는 원래 사운드의 노래들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오랫동안 같이 했던 친구들이랑 공연을 준비했어요.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감기 조심하자, 컨디션 관리하자, 아프면 안 된다, 이런 아주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나쁜 거 안 먹고, 합주도 하고 있어요.
이참에 다음 앨범 계획을 내뱉어주세요.
<우리는 사랑이 돼요>가 정말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만큼 들었는데 어떻게 댓글은 이렇게 많고 연락도 많이 오지, 너무 오랜만에 내기도 했지만 진짜 기다려 준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본업 모먼트에 충실해서 여름에 EP를 내려고 해요. 물건이 넘치는 세상에 물건을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 내키지는 않지만, CD는 그래도 저의 본업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여름이 한 10월까지는 되지요?
인터뷰 | 이주호
사진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