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타인의 고통을 보고 전하는 일에 관하여,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기자 인터뷰 #1

2023-11-29

김인정 기자는 광주MBC 보도국에서 10년간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했고, 2020년 미국으로 건너가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도 미국에 머물며 프리랜서 기자로 다양한 매체와 협업하고 있으며, 최근 첫 번째 저서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발간했습니다.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김인정 기자를 만나 책과 기자로서의 삶, 그리고 언론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김인정 기자 ⓒ무궁화소녀



Q. 언제, 어떤 이유로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나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잘 전달할까’라는 질문은 기자로서 오랫동안 품어온 화두입니다. 경력의 대부분을 사회부 기자로 보내면서 사건·사고와 재난·재해 현장에 있을 일이 많았고, 고통을 겪고 있거나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취재해야 했는데요. 마이크나 카메라 앞에 서달라고 설득해서 이들의 아픔을 뉴스로 만드는 일에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숙지하고 있었음에도, 어렵사리 입을 열어준 사람들의 아픔을 뉴스로 전달하는 과정이 제겐 대개 수월하지 않았고 쉽지 않은 질문과 마주하게끔 했어요. 


퇴근길에 차 안에 앉아있다 보면 그런 질문이 한가득 쌓여갔고, 종종 그걸 글로 옮기곤 했습니다.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의 실마리가 되어준 건 그렇게 쓰인 글 중 하나였는데요. 편집 동인으로 활동 중인 사진 잡지 『보스토크』에 실었던 ‘고통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은 프롤로그 격인 ‘들어가며'로 책 안에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웨일북 출판사의 이정주 에디터가 이 글을 읽고, “고통을 보여주는 일을 하며 느꼈던 딜레마와 고민의 내용”을 책으로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줬어요. 방송기자로서,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늘 카메라 앞에서 사진과 영상 언어로 재현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생각, 그 윤리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해왔기에, 큰 망설임 없이 제안을 수락했고요. 고통을 보여주는 역할이 기자에게만 맡겨져 있는 시대가 아니라 매우 많은 사람이 고통의 전달자로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에 나름대로 효용이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목차를 짜기 시작했던 기억입니다. 


김인정 기자의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



Q.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쓰며 영향을 받으신 레퍼런스가 있으신가요?

이 책에 앞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유를 담은 책들이 있죠. 책에 부분적으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의 서문을 읽으며 영감을 받았고요. 비평가 존 버거의 많은 책, 그중에서도 『사진의 이해』가 생각을 개진시키는 데 힘이 되어 주었어요. 수지 린필드의 『무정한 빛』을 비판적으로 읽은 경험도 도움을 줬습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이 분야의 고전인데요. 이런 책들을 잘 읽고, 한국의 맥락에서, 그리고 현장 기자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제가 말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멀리 나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썼네요.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Q. 기사 쓰기와 책 쓰기는 또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일단 데일리 뉴스를 만드는 뉴스룸에서는 칼 같은 마감이 잦은 간격으로 주어지는데요. 단행본 마감은 그렇지는 않다 보니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 스스로를 감시해야 했다는 점이 크게 달랐네요. 또한 짤막하게 요약된 문장으로 영상과 함께 소화되도록 해야 하는 방송 기사의 텍스트와 단행본 분량으로 읽힐 텍스트는 그 길이도 스타일도 매우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반적으로는 글쓰기의 심폐 지구력을 길러 호흡을 좀 더 길게 해본 느낌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자주 써온 기사는 방송기사고, 다음으로 많이 써본 건 잡지용 탐사 보도 기사인데요. 일단 기사는 대체로 주어가 ‘나’가 아닙니다. 타인이 주어가 되거나 ‘우리’가 주어가 되는 문장으로 기사가 쓰이죠. 기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정과 편집에 개입하게 되면서, 혼자 쓴 글이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에 비해 제 이름으로 나오는 단행본은 아무래도 저의 시각과 의견이 조금은 더 많이 들어가고 주어가 제가 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저널리즘과 윤리, 타인의 고통에 관한 글이니만큼 저를 메시지 전달 도구 정도로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사에서 단행본으로 넘어가면서 에고가 훨씬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내용과 메시지에 맞추어 그 수위를 조절하려고 했던 게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무궁화소녀


Q. ‘자극적으로 보여주기’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딜레마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 책에는 제가 어떤 딜레마를 해결했다는 식으로, 해답이 시원하게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는 의도적이기도 한데요. 책 한 권을 통틀어 질문하는 경험으로 독자 분들을 초대하고 싶었고요. 고통을 보여주는 일에는 주저함, 무력감, 죄책감 등의 감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그런 통증을 넘어서라도 우리가 대면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어떻게 보고 보여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고, 그 뒤에 무엇을 해야 할지 역시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일이라는 것도요.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해서도 끝없는 사유를 거듭해야 하는 문제라고, 고통의 전달자가 상황과 맥락에 맞춰 매번 고민하고 저울질해야 하는 문제라고 일단 답하고 싶네요. 저는 ‘보여주기’가 고통을 하이라이트하는 성격과 대상화하는 성격을 늘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보고요. 이 비율을 어떻게 최적화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궁화소녀



Q. 광주 MBC를 휴직하신 후 미국에서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7년에 광주 MBC에서 탐사 다큐멘터리 팀장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광주 지역 기자로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오랫동안 취재를 해왔는데요. 당시 프로젝트는 한국을 넘어 미국까지, 5.18 발포 책임자를 찾는 기획이었어요. 학살의 책임자는 당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전권을 잡고 있던 전두환 씨지만, 그가 책임을 끝까지 부인했기 때문에, 쉽게 말하자면 시민 학살에 대한 책임자가 누구인지 최대한 많은 증거를 모아보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취재를 진행하면서 미국에서 당시 백악관 관료나 주한 미군 사령관 등을 인터뷰하며 중요한 사료가 될 법한 자료들을 발굴하거나 접하게 됐고요. 제한된 취재 권역을 벗어나 한계 없는 취재에 도전해 봤던 경험이 무척 좋았기에, 또 스스로 취재 권역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미국에서 저널리즘 유학을 하게 됐네요.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 시도가 마음에 들어서 조금 더 지속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쯤 전에 퇴사했고, 프리랜서 기자로 미국에서 활동 중입니다.


ⓒ무궁화소녀



※ 변화의 가능성을 단념하지 않도록,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기자 인터뷰 #2 이어서 읽기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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