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덕의 작품의 중심에는 생명과 사랑이 있다.
- 하계훈(미술평론가)
강신덕의 최근 작품들은 굳어진 형식이 아니라 자기 감성에 충실한 것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함을 일깨운다.
- 이선영(미술평론가)
화병의 꽃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색이 달라집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평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그림이 움직입니다. 렌티큘러, 어쩌면 포스터나 수집용 카드에서 봤던 매체일 수도 있지만, 강신덕 작가의 렌티큘러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선 작품,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강신덕 작가는 무려 반세기 동안 화강암부터 패브릭, 렌티큘러까지 다양한 소재로 깊고 넓은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예술가이자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피치(Galerie PICI)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갤러리스트입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 강신덕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갤러리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강신덕 작가
Q. 오랜 세월 작가와 갤러리스트로서 활동하셨습니다. 어떻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어려서부터 미술로 수상을 하고 인정을 받으니까 부모님께서 저를 미대를 보내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홍익대에 입학하고 나서, 독립 정신이랄까, 자발적으로 작가의 길을 가는 법을 배워 나갔어요.
Q. 처음에는 조각, 특히 화강석을 이용한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화강암은 정말 무겁고 단단한 재료예요. 그 물성이 좋았고, 돌이 쪼개진 형태 그대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브론즈에 비해 재료비가 경제적이기도 했어요.
두 개나 세 개의 화강석 에스키스를 만들고, 그것들을 서로 얹거나 철로 연결하여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런 방식이 작품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물리적으로도 크기를 줄여서 운반할 수있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갤러리에 화강석 작품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어요.
강신덕 작가의 화강암 작품들
Q. 말씀하신 것처럼 무겁고 단단한 화강암으로 작업하시는 과정이 고됐을 것 같은데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 조각을 소장해 주기로 했는데, 한국에는 작품의 무게가 몇 킬로그램 이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아무래도 소장 작품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전시하기도 하니, 이동이 용이해야겠지요. 그런데 제 작품이 해당 무게를 넘어섰어요. 무게를 맞추기 위해 화강암 속을 파서 공간을 비웠습니다. 큐레이터들도 이런 방식을 생각하진 못했다고 놀라더라고요.
Q. 이후로 전혀 다른 소재인 패브릭으로 설치 작업을 하셨어요.
가장 무거운 것으로 작업을 했으니, 이번엔 가장 가벼운 재료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제일 무거운 소재에서 제일 가벼운 소재, 전혀 달라서 오히려 연장선에 있는 물성인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존재로 공간을 메우는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천으로 의자나 가구를 감싼다든지 하며 또 다른 형태를 구현하기도 했어요. 아주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게 재미있어서 정말 열심히 작업했어요. 평면의 천이 결국 입체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었던 것이에요.
패브릭 설치 작업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었던 것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줬어요. 이후에 천으로 하는 설치 작업은 조금씩 변형하여 계속해 왔어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레드 방’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붉은 천으로 채우고 가운데 심장 소리가 들리게 하여 우리가 자궁 속에 들어가 순수해져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어요.
이런 작업을 해외에도 선보였는데,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의뢰가 들어와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홍콩에서도 전시를 했어요. 홍콩 전시에서는 한국의 붉은색과 노란색을 중심으로 한복 제작에 사용하는 아주 얇은 천을 이용해 공간을 만들고 채웠어요.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놀랐어요.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지만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있고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Secret Garden>, 2025, 1200x800cm, Korean Silk @ Art Central, Hong Kong | 갤러리 피치 제공
Q. 패브릭 설치 작품을 통해 관객도 색다른 경험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얇은 천이 햇빛을 받으면 천의 색깔이 반사되어 우리 고유의 색이 바뀌기도 해요. 그런 경험이 저에게도, 관객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와요. 심지어 자신이 마음에 든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가져간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제 작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지요.
Q. 돌과 천 작업 이후 렌티큘러 작업도 시작하셨지요. 렌티큘러는 어떤 재료이고, 어떤 의도로 사용하셨나요?
렌티큘러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재료예요. 이 재료 자체는 어렸을 때 장난감이나 책에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렌티큘러 작업도 몇십 년 전부터 해 왔어요. 조각의 무게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답이 되기도 했고, 조각가가 그린 그림은 화가가 그린 그림과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결과이기도 했어요. 이차원의 그림에도 입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처음엔 실크스크린에 그림을 그리다가 철망에 그림을 찍기도 했고, 이후로 렌티큘러 작업으로 넘어왔어요. 반대로 렌티큘러에 들어가 있는 존재를 현실로 끌어낼 수도 있는데, 그게 곧 조각이 되는 거고요.

강신덕 작가의 렌티큘러 작품
렌티큘러 작업을 할 때는 먼저 세 장의 그림을 그리고, 렌즈가 빼곡히 정렬된 판을 프레스로 눌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요. 이때 세 장의 그림 색을 조화롭게 구성해야 해요. 한 장의 그림을 그릴 때 미리 세 장의 컬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작업을 해요.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세 작품 정도 소장되어 있어요.
렌티큘러 속 이미지가 조각이 된 작품
Q. 여러 소재로 작품을 만드시지만, 일관된 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언젠가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왔어요. 이미 아는 사람만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도,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멀리 떨어져서 지냈지만 언젠가는 다 같이 만나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나 하는 상상을 이미지로 구현해 온 거예요. 지금 우리도 전혀 모르던 사이였는데 작품을 통해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듯이요.
작품으로 어떤 경계선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거나 감상하며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가 생면부지라도, 마치 계속 만나왔던 것처럼 작품과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이지요.
작품 옆에 선 강신덕 작가
Q. 작가님은 다른 한편으로 갤러리피치(Galerie PICI)를 운영하는 갤러리스트이시기도 합니다. 갤러리피치는 어떻게 설립하게 되셨나요?
2003년 문을 연 갤러리피치는 한 중학생 아이의 꿈이 이뤄진 거예요. 제가 중학생 때 언젠가는 내가 건물을 짓고, 그 건물 스스로 작동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갤러리’였고요.
40대 때 조그마한 여자애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그대로 건축으로 옮긴 거라 창피하기도 해요. 화장실은 여기, 문 열면 이런 공간, 이곳은 전시를 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고, 건축가 분들이 보시면 다소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제 머릿속에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현실이 된 거예요.
우연히 2003년 오스트리아 전시가 개관전이었고, 이후로 유럽 전시를 많이 하게 되면서 이탈리아 대통령 훈장 수상으로 이어졌어요. 이탈리아 대사가 세 번 바뀔 때까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시를 많이 했는데, 그런 것도 정말 재미있고 특별한 일이었어요.

Q. 갤러리피치를 통해 많은 후배 작가를 이끌어주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말씀드렸듯 건물이 스스로 작동해야 하니까 당연히 갤러리가 된 것이고, 이것으로 돈을 번다든가 하는 목적이 있지는 않았어요. 문화를 전파하고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지요.
그래도 한국의 작가를 외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한국이나 아시아의 예술계에서는 이미 유명해진 사람의 작품 위주로 전시가 열리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서양은 그렇지 않아요. 유명하지 않아도 함께 전시를 열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면 관심을 갖고 인정을 해 주지요. 저는 단 한 명의 천재만 주목받는 시대는 끝났고 서로가 힘을 합치면 더 좋은 공동체로 태어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믿어요. 갤러리피치는 그런 목표를 위해서 설립된 공간이에요.
갤러리 피치 앞에서
Q. 강의 이력도 많으신데, 가르치는 일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군산대에서 12년 강의를 하면서 겸임교수를 했는데,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 학장님께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 작품 활동을 쭉 지켜보시다가 “작가님이 작품 활동을 하며 12개 이상의 재료를 쓰시던데, 그에 관해 강의를 맡아 줬으면 좋겠다.” 돌, 천, 철망, 브론즈, 스테인리스, 한지, 캔버스, 알루미늄, 렌티큘러 등 세어 보니 정말 12개는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미대’가 아니라 ‘생활과학대’에서 입체 조형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미대생이 아닌 친구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게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알루미늄 소재 작품
가르치는 일 자체는 제 체질 같아요. 강의는 보통 네 시간 수업이고, 그 안에 작품을 만들어 수업이 끝나면서 점수를 매겨요. 그러니까 교수와 학생이 전쟁을 벌일 일이 없지요. 오늘은 네가 잘했어, 오늘은 네가 충실하지 못했어,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나니까요.
물론 그런 와중에도 툭하면 수업에 불참하거나 겉도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무작정 나쁜 점수를 주기보다는 그 학생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어요. 수업에 참여를 못 했으니 어떻게 할지, 다른 자료를 내서라도 점수를 만회할 건지 기회를 주는 거예요. 사실 그냥 F를 줘버릴 수도 있지만, 그 학생에게 제가 모르는, 이 수업보다 더 중요하거나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을지 모르잖아요.
이건 보스톤에서 유학할 때 배운 자세예요. 그곳 선생님들은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돕고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 모습이 좋아 보여서, 그때 배운 것을 제가 가르칠 때 그대로 적용했어요.

Q. 마지막으로 작가님, 혹은 갤러리피치의 올해 계획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올해는 이미 싱가폴, 홍콩, 시카고 등지의 주요 아트페어를 다녀왔어요. 싱가폴에서는 다문화권 국가답게 다양한 작품이 주목을 받았고, 홍콩에서는 주로 강렬한 색채의 작품이 선호도가 높았어요. 시카고에서는 렌티큘러가 큰 인기를 얻었어요. 이거 해볼 만하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바쁜 4개월이었어요. 그런데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앞으로 어떤 일 이 일어날지 그 연결선 상에 있는 일들은 미지수예요. 다른 예술 분야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갤러리피치에서 6월 30일까지 영국의 아티스트 마크 슬로퍼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영국 여왕과 영국의 문화권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와서 보시면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갤러리 피치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슬로퍼 전시(~6.30)
강신덕 작가(b. 1952)
서울 출신 강신덕 작가는 조각에서 시작하여 판화, 드로잉, 렌티큘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중견작가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교육대학원 조소 전공을 졸업하였고 88년 도미하여 보스턴 White Place Studio에서 세라믹 아트를 공부하였다. 1977년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5년 광주비엔날레로 유명해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석 달간의 초대개인전을 선보이는 등 40회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단체전을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독일, 오스트리아, 사라예보 등지에서 가졌다. 2006년에는 한국문화상(한국 문화 예술 재단) 이탈리아 공화국 수여 기사 훈장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에는 Sovereign Art Foundation에서 수여하는 Sovereign Asian Art Prize를 수상하였다.
인터뷰 · 사진 | 신태진
화병의 꽃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색이 달라집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평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그림이 움직입니다. 렌티큘러, 어쩌면 포스터나 수집용 카드에서 봤던 매체일 수도 있지만, 강신덕 작가의 렌티큘러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선 작품,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강신덕 작가는 무려 반세기 동안 화강암부터 패브릭, 렌티큘러까지 다양한 소재로 깊고 넓은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예술가이자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피치(Galerie PICI)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갤러리스트입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 강신덕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갤러리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강신덕 작가
Q. 오랜 세월 작가와 갤러리스트로서 활동하셨습니다. 어떻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어려서부터 미술로 수상을 하고 인정을 받으니까 부모님께서 저를 미대를 보내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홍익대에 입학하고 나서, 독립 정신이랄까, 자발적으로 작가의 길을 가는 법을 배워 나갔어요.
Q. 처음에는 조각, 특히 화강석을 이용한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화강암은 정말 무겁고 단단한 재료예요. 그 물성이 좋았고, 돌이 쪼개진 형태 그대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브론즈에 비해 재료비가 경제적이기도 했어요.
두 개나 세 개의 화강석 에스키스를 만들고, 그것들을 서로 얹거나 철로 연결하여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런 방식이 작품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물리적으로도 크기를 줄여서 운반할 수있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갤러리에 화강석 작품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어요.
Q. 말씀하신 것처럼 무겁고 단단한 화강암으로 작업하시는 과정이 고됐을 것 같은데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 조각을 소장해 주기로 했는데, 한국에는 작품의 무게가 몇 킬로그램 이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아무래도 소장 작품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전시하기도 하니, 이동이 용이해야겠지요. 그런데 제 작품이 해당 무게를 넘어섰어요. 무게를 맞추기 위해 화강암 속을 파서 공간을 비웠습니다. 큐레이터들도 이런 방식을 생각하진 못했다고 놀라더라고요.
Q. 이후로 전혀 다른 소재인 패브릭으로 설치 작업을 하셨어요.
가장 무거운 것으로 작업을 했으니, 이번엔 가장 가벼운 재료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제일 무거운 소재에서 제일 가벼운 소재, 전혀 달라서 오히려 연장선에 있는 물성인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존재로 공간을 메우는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천으로 의자나 가구를 감싼다든지 하며 또 다른 형태를 구현하기도 했어요. 아주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게 재미있어서 정말 열심히 작업했어요. 평면의 천이 결국 입체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었던 것이에요.
패브릭 설치 작업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었던 것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줬어요. 이후에 천으로 하는 설치 작업은 조금씩 변형하여 계속해 왔어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레드 방’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붉은 천으로 채우고 가운데 심장 소리가 들리게 하여 우리가 자궁 속에 들어가 순수해져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어요.
이런 작업을 해외에도 선보였는데,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의뢰가 들어와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홍콩에서도 전시를 했어요. 홍콩 전시에서는 한국의 붉은색과 노란색을 중심으로 한복 제작에 사용하는 아주 얇은 천을 이용해 공간을 만들고 채웠어요.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놀랐어요.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지만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있고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Q. 패브릭 설치 작품을 통해 관객도 색다른 경험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얇은 천이 햇빛을 받으면 천의 색깔이 반사되어 우리 고유의 색이 바뀌기도 해요. 그런 경험이 저에게도, 관객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와요. 심지어 자신이 마음에 든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가져간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제 작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지요.
Q. 돌과 천 작업 이후 렌티큘러 작업도 시작하셨지요. 렌티큘러는 어떤 재료이고, 어떤 의도로 사용하셨나요?
렌티큘러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재료예요. 이 재료 자체는 어렸을 때 장난감이나 책에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렌티큘러 작업도 몇십 년 전부터 해 왔어요. 조각의 무게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답이 되기도 했고, 조각가가 그린 그림은 화가가 그린 그림과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결과이기도 했어요. 이차원의 그림에도 입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처음엔 실크스크린에 그림을 그리다가 철망에 그림을 찍기도 했고, 이후로 렌티큘러 작업으로 넘어왔어요. 반대로 렌티큘러에 들어가 있는 존재를 현실로 끌어낼 수도 있는데, 그게 곧 조각이 되는 거고요.
강신덕 작가의 렌티큘러 작품
렌티큘러 작업을 할 때는 먼저 세 장의 그림을 그리고, 렌즈가 빼곡히 정렬된 판을 프레스로 눌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요. 이때 세 장의 그림 색을 조화롭게 구성해야 해요. 한 장의 그림을 그릴 때 미리 세 장의 컬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작업을 해요.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세 작품 정도 소장되어 있어요.
Q. 여러 소재로 작품을 만드시지만, 일관된 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언젠가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왔어요. 이미 아는 사람만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도,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멀리 떨어져서 지냈지만 언젠가는 다 같이 만나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나 하는 상상을 이미지로 구현해 온 거예요. 지금 우리도 전혀 모르던 사이였는데 작품을 통해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듯이요.
작품으로 어떤 경계선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거나 감상하며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가 생면부지라도, 마치 계속 만나왔던 것처럼 작품과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이지요.
Q. 작가님은 다른 한편으로 갤러리피치(Galerie PICI)를 운영하는 갤러리스트이시기도 합니다. 갤러리피치는 어떻게 설립하게 되셨나요?
2003년 문을 연 갤러리피치는 한 중학생 아이의 꿈이 이뤄진 거예요. 제가 중학생 때 언젠가는 내가 건물을 짓고, 그 건물 스스로 작동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갤러리’였고요.
40대 때 조그마한 여자애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그대로 건축으로 옮긴 거라 창피하기도 해요. 화장실은 여기, 문 열면 이런 공간, 이곳은 전시를 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고, 건축가 분들이 보시면 다소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제 머릿속에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현실이 된 거예요.
우연히 2003년 오스트리아 전시가 개관전이었고, 이후로 유럽 전시를 많이 하게 되면서 이탈리아 대통령 훈장 수상으로 이어졌어요. 이탈리아 대사가 세 번 바뀔 때까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시를 많이 했는데, 그런 것도 정말 재미있고 특별한 일이었어요.
Q. 갤러리피치를 통해 많은 후배 작가를 이끌어주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말씀드렸듯 건물이 스스로 작동해야 하니까 당연히 갤러리가 된 것이고, 이것으로 돈을 번다든가 하는 목적이 있지는 않았어요. 문화를 전파하고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지요.
그래도 한국의 작가를 외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한국이나 아시아의 예술계에서는 이미 유명해진 사람의 작품 위주로 전시가 열리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서양은 그렇지 않아요. 유명하지 않아도 함께 전시를 열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면 관심을 갖고 인정을 해 주지요. 저는 단 한 명의 천재만 주목받는 시대는 끝났고 서로가 힘을 합치면 더 좋은 공동체로 태어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믿어요. 갤러리피치는 그런 목표를 위해서 설립된 공간이에요.
Q. 강의 이력도 많으신데, 가르치는 일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군산대에서 12년 강의를 하면서 겸임교수를 했는데,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 학장님께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 작품 활동을 쭉 지켜보시다가 “작가님이 작품 활동을 하며 12개 이상의 재료를 쓰시던데, 그에 관해 강의를 맡아 줬으면 좋겠다.” 돌, 천, 철망, 브론즈, 스테인리스, 한지, 캔버스, 알루미늄, 렌티큘러 등 세어 보니 정말 12개는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미대’가 아니라 ‘생활과학대’에서 입체 조형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미대생이 아닌 친구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게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알루미늄 소재 작품
가르치는 일 자체는 제 체질 같아요. 강의는 보통 네 시간 수업이고, 그 안에 작품을 만들어 수업이 끝나면서 점수를 매겨요. 그러니까 교수와 학생이 전쟁을 벌일 일이 없지요. 오늘은 네가 잘했어, 오늘은 네가 충실하지 못했어,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나니까요.
물론 그런 와중에도 툭하면 수업에 불참하거나 겉도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무작정 나쁜 점수를 주기보다는 그 학생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어요. 수업에 참여를 못 했으니 어떻게 할지, 다른 자료를 내서라도 점수를 만회할 건지 기회를 주는 거예요. 사실 그냥 F를 줘버릴 수도 있지만, 그 학생에게 제가 모르는, 이 수업보다 더 중요하거나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을지 모르잖아요.
이건 보스톤에서 유학할 때 배운 자세예요. 그곳 선생님들은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돕고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 모습이 좋아 보여서, 그때 배운 것을 제가 가르칠 때 그대로 적용했어요.
Q. 마지막으로 작가님, 혹은 갤러리피치의 올해 계획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올해는 이미 싱가폴, 홍콩, 시카고 등지의 주요 아트페어를 다녀왔어요. 싱가폴에서는 다문화권 국가답게 다양한 작품이 주목을 받았고, 홍콩에서는 주로 강렬한 색채의 작품이 선호도가 높았어요. 시카고에서는 렌티큘러가 큰 인기를 얻었어요. 이거 해볼 만하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바쁜 4개월이었어요. 그런데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앞으로 어떤 일 이 일어날지 그 연결선 상에 있는 일들은 미지수예요. 다른 예술 분야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갤러리피치에서 6월 30일까지 영국의 아티스트 마크 슬로퍼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영국 여왕과 영국의 문화권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와서 보시면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인터뷰 · 사진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