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야기를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 -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의 미술감독, 정서안 #1

2026-09-30


2000년 <해변으로 가다>를 시작으로 <번지점프를 하다>, <킬러들의 수다>를 거쳐 <쇼쇼쇼>로 데뷔, 이후 유학을 다녀와 <미끼>, <탄금 >에 이어 <들쥐>로 현장에 돌아온 정서안 미술감독. 브릭스 매거진에서 정서안 미술감독을 만나 그의 최근작 <들쥐>의 제작 과정부터 미술감독으로서 어떻게 서사와 감정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는지 프로덕션 디자인의 세계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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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안 미술감독 | <들쥐>에 그림을 협찬한 신광호 작가 전시에서(장소협찬 | 갤러리제이원)



Q. 영화 미술감독이 아니라 앨범 재킷 디자이너가 꿈이었다고 하셨네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밴드 활동도 함께 했어요. 음악을 좋아했고, 디자인을 통해 음악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앨범 재킷 디자인을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몇 년 동안 포트폴리오를 준비했고,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하며 작업을 꾸준히 쌓았어요. 당시 활동하던 앨범 재킷 디자이너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신나라레코드의 자회사인 킹레코드에 들어갔는데, 제가 생각했던 앨범 재킷 디자인과 실제 업무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작업을 직접 해보기 위해 프리랜서로 전향했고, 이후 대영AV를 통해 젝스키스, 핑클, 델리스파이스, 임창정 등의 앨범 재킷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여러 작업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라는 새로운 분야와 연결됐고, 첫 영화 작업이 <해변으로 가다>였어요.

 


Q. 앨범 재킷 디자인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꿈인데, 전향하신 이유가 있나요?

앨범 재킷 디자인을 하면서 느낀 건 회사의 규모와 실제 작업 환경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당시에는 아이돌 산업 자체가 지금처럼 시스템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규모에 비해 앨범 재킷 디자인은 개인 작업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했던 일이었고 실제로 그 일을 하게 됐지만, 막상 현장에서 경험해보니 제가 기대했던 창작의 방식과 실제 작업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상업적인 작업이다 보니 제가 가진 크리에이티브를 충분히 펼치기도 어려웠고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꿈꾸던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그 답을 바로 찾지는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가 제가 다른 방향의 작업을 고민하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영화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됐나요?

개인 작업을 하면서 조금 지쳐 있었고, 다시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들어간 곳이 영화사의 디자인실이었어요. 포스터 디자인을 하면서 영화 스태프들의 크레딧을 정리할 일이 있었는데, 미술팀이라는 크레딧에서 눈길이 멈췄어요. 그러다 문득 ‘나도 미술감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컴퓨터 앞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사람들과 함께 현장에서 움직이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일이었어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이 저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처음 참여한 작품이 2000년 <해변으로 가다>였어요. 이후 <번지점프를 하다>, <킬러들의 수다> 등에 참여했고, 2003년 <쇼쇼쇼>로 미술감독으로 입봉했어요. 그때가 스물아홉 살이었어요.


5b90955e284e0.jpg정서안 미술감독의 참여작 및 입봉작



Q. 미술감독 데뷔를 하자마자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미술감독으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 오히려 제 안에 질문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용어도 지금처럼 자리 잡지 않았고,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도 많지 않았어요. 현장에서는 미술팀이 정말 많은 일을 담당했고, 저 역시 미술감독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후배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무엇보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익숙한 방식만으로 계속 작업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고민이 컸어요. 질문은 계속 쌓이는데,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제게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현장 경험만으로 채우기보다, 프로덕션 디자인을 제대로 공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어요.


처음부터 독일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영어권 유학도 고민했는데, 독일은 학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마침 독일에서 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친구가 있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베를린과 뮌헨을 중심으로 학교를 알아보다가 독일이 프로덕션 디자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뿌리를 가진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렇다면 제가 궁금했던 것을 그 뿌리가 있는 곳에서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독일 유학은 단순히 프로덕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어요. 미술감독으로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프로덕션 디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제 작업의 방향을 다시 정립하고 싶었던 시간이었어요.



Q.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하며 이런 게 참 다르구나 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뮌헨 텔레비전·영화 대학교(Hochschule für Fernsehen und Film München, HFF München)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현장과 연결된 교육 방식과 커리큘럼이었어요.


제 스승이었던 토니 뤼디(Toni Lüdi)는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감독의 <베어(The Bear)>와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미국인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über Berlin)> 등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으며 오랫동안 현장에서 활동했던 미술감독이었어요. 수업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가셨고요. 제가 좋아했던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과 연결된 분에게 직접 수학하고 현장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배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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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696a0d653.jpgHFF 학생들과 함께


제가 입학한 과정에서는 <타이타닉(Titanic)>, <에이리언(Aliens)>,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등의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피터 라몬트(Peter Lamont)의 멘토링 수업도 경험했어요. 책이나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전문가들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였어요. 제가 언어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Kein Problem(문제없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려주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언젠가 이런 교육자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HFF München에서 배운 것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관점뿐 아니라, 현장에 기반한 전문성과 학생을 한 사람의 창작자로 존중하는 교육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7d9b66141e4d9.jpg‘타이타닉’ 미술감독, 피터 라몬트(Peter Lamont)와 HFF-FFS(Diplom)학생들과 함께



Q. 독일에서도 영화 제작에 참여하셨지요. 어떤 계기로 합류하게 되셨나요?

졸업 작품을 마치자마자 빨리 현장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독일 감독들을 찾아보고, 그 감독들과 작업하는 미술감독이 누구인지 역으로 하나씩 찾아봤어요. 교수님께 연락처를 부탁해서 직접 포트폴리오를 보내기도 했고요.


그때 포트폴리오는 한국에서 했던 작업을 넣지 않고, HFF München에서 제가 작업한 작품들만으로 구성했어요. 독일 친구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제 작업만으로 평가 받고 싶었어요. 한국에서의 경력이나 이력을 보여주기보다,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며 제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요.


당시 독일에서 활동하던 감독들과 그들의 미술감독들에게 차례로 연락했고, 대부분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감독의 답변이 가장 마지막에 왔어요. 졸업 작품 발표를 마치자마자 바로 베를린으로 갔지요.


제가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감독은 <롤라 런(Lola rennt)>, <향수(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를 만든 톰 튀크베어(Tom Tykwer) 감독이었어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미학과 철학, 그리고 공간과 이미지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고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좋았어요. 제가 영화미술을 바라보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고, 꼭 한번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08d5d7f594e7e.jpg정서안 미술감독이 독일에서 참여한 영화 <쓰리(Drei)>와 <폴란드의 부활절(폴니셰 오스테른, Polnische Ostern)>


그렇게 기다리던 답변을 받고 함께하게 된 작품이 톰 튀크베어 감독의 <쓰리(Drei)>였어요. 제가 졸업하고 처음 현장으로 나가면서 가장 함께하고 싶었던 감독과 작업을 하게 된 거죠.


독일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전문적인 분업 시스템이었어요. 제가 현장에 나가기 전부터 기대했던 바로 그런 시스템이었어요. 모두가 각자의 전문성과 역할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의 영역을 함부로 넘지 않았어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자기 영역에서는 분명하게 책임을 다하는 거죠.


그 경험을 통해 하나의 작품은 한 사람의 역량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이 하나의 방향 안에서 정확하게 연결될 때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 제가 프로덕션 디자인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그때의 경험이 많이 남아 있어요.



Q. 그 경험이 지금 생각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개념에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물론이에요. 프로덕션 디자인은 미술감독 혼자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감독은 전체적인 방향과 콘셉트를 제시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할 때 비로소 제가 생각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좋은 팀을 만드는 것, 그리고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미술감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프로덕션 디자인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여러 전문성이 하나의 언어로 만나는 과정이에요.



Q. 독일에서 공부한 뒤 귀국해서는 현장이 아니라 교육을 선택하셨습니다.

독일에서 스승님께 배운 것들을 한국의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배운 방식과 관점을 전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막상 가르쳐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독일어를 한국어로 하나씩 번역하면서 배운 게 아니었거든요. 어떤 개념이나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가 쓰이는 상황과 사람들의 행동, 작업의 맥락을 독일어 그대로 받아들이며 습득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한국어로 설명하려고 하니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을 다시 하나씩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래서 프로덕션 디자인과 관련된 한국어 논문이나 자료를 찾아보면서, 제가 독일에서 경험하고 배웠던 개념들을 한국어로 다시 정리하고 제 방식대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오히려 제가 프로덕션 디자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중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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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에 그림을 협찬한 신광호 작가 전시에서(장소협찬 | 갤러리제이원)



Q. 그렇게 교육에 집중하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13년쯤 이효리의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게 됐어요. 처음 경험하는 형식의 작업이라 또 다른 현장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어요.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 교육에 집중했지만, 후배들의 작품을 함께 고민하고 작업을 도우면서 현장과의 연결은 계속 이어갔어요.


그러다 제게 큰 변곡점이 된 것이 코로나 팬데믹이었어요.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10년 가까이 해온 교육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저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교육을 하면서 저 역시 계속 배우고 변화하려고 했어요. 2016년에는 중국 길림애니메이션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프로덕션 디자인 전공 초빙교수로 강의하며 새로운 환경과 교육 방식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코로나를 지나면서 교육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제가 앞으로 무엇을 더 경험하고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됐어요.


결국 2022년 사직서를 내고 상업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교육을 통해 정립해 온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다시 현장에서 직접 구현하고,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들이 작품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Q. 다시 돌아간 현장은 영화가 아니라 OTT의 시리즈였습니다. 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OTT 시리즈는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방식이 함께 공존하는 경계의 영역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제작 문화가 만나는 경우도 있었고요.


저는 영화와 시리즈의 차이를 단순히 형식의 차이로 보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공간 안에 얼마나 내밀하게 담아내고, 그것을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구축할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하나의 공간과 장면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인물의 서사와 감정을 공간에 축적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공간 자체가 이야기를 하고,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반면, 시리즈는 여러 회차의 공간과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방식의 효율과 판단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결국 중요한 건 주어진 시간과 조건 안에서 이야기에 필요한 공간과 이미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만들어내느냐 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그 차이를 경험하면서 미술감독에게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도 작품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걸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 정서안 미술감독과의 인터뷰 두 번째 편 이어서 읽기




사진 제공 | 정서안

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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