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가기 싫은 친구, 회사 가기 싫은 어른들을 위한 유쾌한 위로 - 최소희, 최수정 작가 인터뷰 #1 먼저 읽기
Q.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의 그림을 그린 최수정 작가님은 본래 회화 작가로 활동하시지요?
최수정 |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아크릴과 패브릭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패턴과 색깔이 있는 천을 찢어서 콜라주처럼 붙이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이곳 갤러리M은 제가 운영하면서 전시도 하고 작업도 하는 공간입니다. 주로 포항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 위주로 작품을 모아 기획전을 열고 있어요.
최수정 작가
Q.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최수정 | 어려서부터 낙서도 많이 하고 인형이라든가 이런저런 캐릭터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책에 들어가는 그림은 10년 전쯤 포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월간지 『열린 포항』에 삽화를 그린 게 시작이었어요. 제 초등학교 은사님이 잡지에 포항 이야기를 연재하셨는데, 저에게 삽화를 부탁하신 거예요. 이후 신춘문예로 등단한 어느 신인 작가님의 동화책에 그림을 그리며 처음으로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줄곧 회화를 했지만, 동화 그림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제 느낌으로 작품을 해석했어요. 주인공을 장면마다 다르게 그렸을 정도였지요. 당시 편집장님이 이렇게 해석한 것은 처음 봤다고 하시며 그래도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해 주셨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전시는 워낙 익숙하지만, 그림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고 또 설레는 일이었어요.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이었고, 그림책을 내는 동료 작가들이 많아지는 추세이기도 해요.

Q. 이야기에 따라 그림체나 도구를 선택하시나요?
최수정 | 맞아요. 처음엔 『백오봉』을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직전에 작업한 책이 풍경 위주로 패드 작업을 한 작품이라 그 연장선에서요. 그런데 디지털 드로잉으로는 이 느낌이 안 나오는 거예요. 진도가 잘 안 나가서 모두 엎고 종이 위에 다시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서양화를 전공했으니 수채화가 쓰기 쉬웠어요. 『백오봉』 내용상 알록달록 밝은 색이 어울릴 것 같았고요. 어려웠던 점은 일부러 어설픈 느낌의 그림,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거였어요. 동화니까 너무 반듯하게 그려지는 게 싫었는데 평생 회화 작업을 하다 보니 원근법도 잘 맞고 투시도 완벽한 잘 그린 그림만 나오는 거예요. 종이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펜으로 덧그린 다음 물감을 칠하는 게 기본인데, 일부러 밑그림 없이 바로 펜으로 그리며 틀린 건 그대로 놔두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예 왼손으로 그리기도 했어요.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 중에서
Q. 캐릭터 구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최수정 |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 파악이에요. 주인공 백오봉의 경우 소심하구나, 체구가 작겠다, 얼굴도 약간 갸름하고 몸 선도 가늘고, 사상 체질로 봤을 때 소음인이겠구나, 했던 거지요. 등장인물 중 현실에 없는 캐릭터들도 있는데, 이 경우가 어려웠지요. 본문의 특징은 살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니까요. 같은 인물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렸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이미 다 장성했지만 제 아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어요.
배경 역시 다양한 자료를 찾으며 만들어 나갔어요. 학교가 두 군데 나오는데 각각 건축 양식은 어떻게 다를지 조사하고, 예전 학교 스타일과 요즘 학교 스타일을 전부 참고했어요. 마을 풍경도 제가 알거나 살았던 동네, 사진에서 본 동네, 상상 속의 동네를 이리저리 엮어 새로운 세계로 만들어냈고요.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에 등장하는 캐릭터
최소희 | 글 작가도 글을 쓰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백오봉이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 앞은 오래된 주택이 많다는 설정인데, 최수정 작가의 둘째 딸, 그러니까 제 조카가 다녔던 포항의 어느 학교 앞 동네가 모티브예요. 그곳은 지금도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때 최수정 작가가 말해줬던 조카의 친구들 이름을 작품에 넣기도 했고요.
Q. 회화 작업과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최수정 |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는 마감 날짜를 여유 있게 받았어요. 일주일에 몇 컷을 그리면 되겠다, 나름 계획은 짜놨는데 그대로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한 달 정도 남겨 놓고는 너무 힘들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까지 했지요. 제 개인 작업은 몇 십 년 동안 해 온 거고, 전시 마감이 임박해도 내 삶이자 일상이기 때문에 좀 빡빡하다는 느낌뿐이었어요. 작품의 평가도 오롯이 저의 몫이었고요.
그림책은 여러 사람과의 협업이고, 언니인 최소희 작가를 비롯한 주변의 평가가 어떨지 두려웠어요. 그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기대도 컸고요. 언니의 작품을 모두 읽어왔는데, 정말 글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부담이 더 컸어요.
패브릭을 이용한 최수정 작가의 작품
Q. 오랫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시던 두 분인데, 이 책을 통해 자매가 처음으로 협업하게 된 소감은 어떠했나요?
최수정 | 오랫동안 언니가 쓴 글을 읽어 왔어요.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줬고요. 언젠가 언니는 글을 쓰고 나는 그림을 그리며 함께 동화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이번 책을 통해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보통 저는 저녁에 작업을 하지만, 『백오봉』은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가장 말짱할 때,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 작업했어요. 중간 중간 캐릭터가 완성되면 사진을 찍어 언니에게 톡으로 먼저 보내주기도 했고요. 말씀드렸듯 글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잘 그리고 싶었어요.
최소희 | 글을 쓸 때는 누가 그림을 그릴지 모르고, 나중에 그림 작가에게 넘어가도 보통 작업 중에는 글 작가가 전혀 관여를 안 해요. 다른 책들도 그랬지만, 글을 쓰며 상상했던 세계와 다른 사람이 그림으로 그린 세계는 항상 달랐어요. 시각 예술을 하는 분들의 상상력은 글 쓰는 사람의 상상력과 확실히 차이가 있더라고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그려내는 점도 놀라웠고요.
처음엔 동생과 협업한다는 데서 걱정이 많았어요. 내 글이 부족해서 동생에게 폐가 되진 않을까, 혹은 잘 그린 그림이라도 글과 안 맞지는 않을까, 나중에 그림 수정을 해야 하면 서로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까. 결국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 중간 중간 최수정 작가가 그림을 보내올 때마다 정말 마음에 들었고, 협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소희, 최수정 작가
Q. 자녀분들이 부모님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최소희 | 제 아이들이 제 동화의 첫 독자였어요. 쓰는 과정에서도 “이런 거 어때, 재밌어?” 하고 보여주면서 키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안 봐요. 이건 좀 꼭 봐달라고 부탁하면 봐주기는 하는데, 보통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책 나오면 보여 달라고 하지요.
첫째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지금 대학교 4학년이라 더 이상 동화에 흥미를 느낄 나이는 아니에요. 그래도 일단 책으로 나오면 냉정하게 평가를 해 줘요. “이건 너무 신파야.”, “피해자가 받은 피해를 지나치게 세세하게 표현하는 건 선정적이야. 이런 걸 2차 가해라고 해.”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여전히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있어요.
최수정 | 현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저희 둘째 딸도 냉정하게 조언을 해 주는 편이에요. 저는 작가로서 혼자 그림을 그려왔지만, 디자인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는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딸의 말을 존중하고, 참고도 많이 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떠한지 알려주세요.
최소희 | 사실 포항은 저희의 고향이 아니에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생은 3학년 때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 서울로 대학을 갔어요. 그런데 제가 몸이 약해서 계속 아팠어요. 회사 다니며 쓰러지기까지 하자 부모님께서 포항으로 내려오라고 하셨지요. 사실 살면서 포항이 저의 지역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여기서 살아왔지만, 줄곧 이방인인 것 같았지요.
아무래도 서울과 지방 도시의 문화적 환경은 많이 달라요. 당시엔 포항에 적이 없다 보니 잘 몰랐던 것이지만, 아무튼 저에겐 문화적 불모지로 보일 정도였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혼자 글을 써 왔어요. 현재 햇살 동화문학회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에요.
때로는 내가 포항이 아니라 서울에 살았다면 훨씬 더 빨리 동화 작가가 될 수 있었고 기회도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서울이었다면 문예 아카데미에 다니거나 유명한 출판사와 인맥이 닿거나 할 여지가 더 많았을 거라고요.
포항 죽도시장
그런데 작년에 『선우와 나무군』을 내면서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에 가입하게 됐어요. 거기 모임에 나가보니 작가 분들의 절반은 수도권에서, 절반은 저처럼 지방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지방에서 글 쓰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서로 흩어져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감명을 받았어요.
서울은 익명성의 도시잖아요. 그게 오히려 소수의 유명한 사람만 작가가 되고 책을 내도 주목을 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포항은 아무래도 문화 쪽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소수라도 책을 내면 더 부각되는 것 같고요.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내가 서울에서 활동했으면 이렇게 강연도 나가고 인터뷰도 할 기회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롤모델이라고 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만날 수 없었겠지요.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모두 서울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지만, 지방에도 문화의 반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반쪽이 없으면 문화는 두 발로 발전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책임감도 생기고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해요. 제가 포항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글을 놓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구나 믿으면서요.
포항 죽도시장에서
최수정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그래도 회화 쪽에서 포항은 예술인이 많은 편이에요. 경북권에서는 예술가가 가장 많고 협회도 여럿 있어요. 저도 포항미술협회를 비롯해 8개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포항에 있으면서 제가 그릴 수 있을 만큼, 제가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업해 왔다고 생각해요. 최소희 작가가 말한 것처럼 서울에 있었으면 수천 명 작가 중 한 명이었을 거고, 그나마 이곳에 있으니까 포항의 대표 중견 여성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20대에 함께 작업을 시작한 친구 중 아직까지 작가로 활동하는 이는 몇 없어요.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그래서 포항에서 이렇게 꾸준히 작업을 하는 여성 작가라고 후배들이 저를 롤 모델로 볼 때 뿌듯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포항 정도의 중소도시에서 내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딱 좋은 정도구나, 요만큼이 내 그릇이구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실제로 요즘 포항시는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예술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기획서를 잘 내면 전시를 할 수 있는 여지도, 지원을 받을 여지도 커요. 다른 지역에서 포항 한 달 살기 프로젝트로 오시는 작가분들도 많으세요. 그분들이 포항은 문화 지원도 많고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먹을 것도 많고 관광명소도 멋져서 좋다고, 무엇보다 도시가 참 따뜻하다고 많이 이야기하세요. 저는 포항이 따뜻한 곳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포항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앞으로도 어디 가지 않고 쭉 포항에 살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인터뷰/사진 | 신태진, 이주호
:: 학교 가기 싫은 친구, 회사 가기 싫은 어른들을 위한 유쾌한 위로 - 최소희, 최수정 작가 인터뷰 #1 먼저 읽기
Q.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의 그림을 그린 최수정 작가님은 본래 회화 작가로 활동하시지요?
최수정 |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아크릴과 패브릭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패턴과 색깔이 있는 천을 찢어서 콜라주처럼 붙이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이곳 갤러리M은 제가 운영하면서 전시도 하고 작업도 하는 공간입니다. 주로 포항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 위주로 작품을 모아 기획전을 열고 있어요.
Q.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최수정 | 어려서부터 낙서도 많이 하고 인형이라든가 이런저런 캐릭터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책에 들어가는 그림은 10년 전쯤 포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월간지 『열린 포항』에 삽화를 그린 게 시작이었어요. 제 초등학교 은사님이 잡지에 포항 이야기를 연재하셨는데, 저에게 삽화를 부탁하신 거예요. 이후 신춘문예로 등단한 어느 신인 작가님의 동화책에 그림을 그리며 처음으로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줄곧 회화를 했지만, 동화 그림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제 느낌으로 작품을 해석했어요. 주인공을 장면마다 다르게 그렸을 정도였지요. 당시 편집장님이 이렇게 해석한 것은 처음 봤다고 하시며 그래도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해 주셨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전시는 워낙 익숙하지만, 그림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고 또 설레는 일이었어요.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이었고, 그림책을 내는 동료 작가들이 많아지는 추세이기도 해요.
Q. 이야기에 따라 그림체나 도구를 선택하시나요?
최수정 | 맞아요. 처음엔 『백오봉』을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직전에 작업한 책이 풍경 위주로 패드 작업을 한 작품이라 그 연장선에서요. 그런데 디지털 드로잉으로는 이 느낌이 안 나오는 거예요. 진도가 잘 안 나가서 모두 엎고 종이 위에 다시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서양화를 전공했으니 수채화가 쓰기 쉬웠어요. 『백오봉』 내용상 알록달록 밝은 색이 어울릴 것 같았고요. 어려웠던 점은 일부러 어설픈 느낌의 그림,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거였어요. 동화니까 너무 반듯하게 그려지는 게 싫었는데 평생 회화 작업을 하다 보니 원근법도 잘 맞고 투시도 완벽한 잘 그린 그림만 나오는 거예요. 종이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펜으로 덧그린 다음 물감을 칠하는 게 기본인데, 일부러 밑그림 없이 바로 펜으로 그리며 틀린 건 그대로 놔두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예 왼손으로 그리기도 했어요.
Q. 캐릭터 구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최수정 |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 파악이에요. 주인공 백오봉의 경우 소심하구나, 체구가 작겠다, 얼굴도 약간 갸름하고 몸 선도 가늘고, 사상 체질로 봤을 때 소음인이겠구나, 했던 거지요. 등장인물 중 현실에 없는 캐릭터들도 있는데, 이 경우가 어려웠지요. 본문의 특징은 살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니까요. 같은 인물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렸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이미 다 장성했지만 제 아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어요.
배경 역시 다양한 자료를 찾으며 만들어 나갔어요. 학교가 두 군데 나오는데 각각 건축 양식은 어떻게 다를지 조사하고, 예전 학교 스타일과 요즘 학교 스타일을 전부 참고했어요. 마을 풍경도 제가 알거나 살았던 동네, 사진에서 본 동네, 상상 속의 동네를 이리저리 엮어 새로운 세계로 만들어냈고요.
최소희 | 글 작가도 글을 쓰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백오봉이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 앞은 오래된 주택이 많다는 설정인데, 최수정 작가의 둘째 딸, 그러니까 제 조카가 다녔던 포항의 어느 학교 앞 동네가 모티브예요. 그곳은 지금도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때 최수정 작가가 말해줬던 조카의 친구들 이름을 작품에 넣기도 했고요.
Q. 회화 작업과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최수정 |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는 마감 날짜를 여유 있게 받았어요. 일주일에 몇 컷을 그리면 되겠다, 나름 계획은 짜놨는데 그대로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한 달 정도 남겨 놓고는 너무 힘들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까지 했지요. 제 개인 작업은 몇 십 년 동안 해 온 거고, 전시 마감이 임박해도 내 삶이자 일상이기 때문에 좀 빡빡하다는 느낌뿐이었어요. 작품의 평가도 오롯이 저의 몫이었고요.
그림책은 여러 사람과의 협업이고, 언니인 최소희 작가를 비롯한 주변의 평가가 어떨지 두려웠어요. 그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기대도 컸고요. 언니의 작품을 모두 읽어왔는데, 정말 글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부담이 더 컸어요.
Q. 오랫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시던 두 분인데, 이 책을 통해 자매가 처음으로 협업하게 된 소감은 어떠했나요?
최수정 | 오랫동안 언니가 쓴 글을 읽어 왔어요.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줬고요. 언젠가 언니는 글을 쓰고 나는 그림을 그리며 함께 동화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이번 책을 통해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보통 저는 저녁에 작업을 하지만, 『백오봉』은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가장 말짱할 때,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 작업했어요. 중간 중간 캐릭터가 완성되면 사진을 찍어 언니에게 톡으로 먼저 보내주기도 했고요. 말씀드렸듯 글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잘 그리고 싶었어요.
최소희 | 글을 쓸 때는 누가 그림을 그릴지 모르고, 나중에 그림 작가에게 넘어가도 보통 작업 중에는 글 작가가 전혀 관여를 안 해요. 다른 책들도 그랬지만, 글을 쓰며 상상했던 세계와 다른 사람이 그림으로 그린 세계는 항상 달랐어요. 시각 예술을 하는 분들의 상상력은 글 쓰는 사람의 상상력과 확실히 차이가 있더라고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그려내는 점도 놀라웠고요.
처음엔 동생과 협업한다는 데서 걱정이 많았어요. 내 글이 부족해서 동생에게 폐가 되진 않을까, 혹은 잘 그린 그림이라도 글과 안 맞지는 않을까, 나중에 그림 수정을 해야 하면 서로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까. 결국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 중간 중간 최수정 작가가 그림을 보내올 때마다 정말 마음에 들었고, 협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자녀분들이 부모님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최소희 | 제 아이들이 제 동화의 첫 독자였어요. 쓰는 과정에서도 “이런 거 어때, 재밌어?” 하고 보여주면서 키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안 봐요. 이건 좀 꼭 봐달라고 부탁하면 봐주기는 하는데, 보통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책 나오면 보여 달라고 하지요.
첫째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지금 대학교 4학년이라 더 이상 동화에 흥미를 느낄 나이는 아니에요. 그래도 일단 책으로 나오면 냉정하게 평가를 해 줘요. “이건 너무 신파야.”, “피해자가 받은 피해를 지나치게 세세하게 표현하는 건 선정적이야. 이런 걸 2차 가해라고 해.”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여전히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있어요.
최수정 | 현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저희 둘째 딸도 냉정하게 조언을 해 주는 편이에요. 저는 작가로서 혼자 그림을 그려왔지만, 디자인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는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딸의 말을 존중하고, 참고도 많이 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떠한지 알려주세요.
최소희 | 사실 포항은 저희의 고향이 아니에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생은 3학년 때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 서울로 대학을 갔어요. 그런데 제가 몸이 약해서 계속 아팠어요. 회사 다니며 쓰러지기까지 하자 부모님께서 포항으로 내려오라고 하셨지요. 사실 살면서 포항이 저의 지역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여기서 살아왔지만, 줄곧 이방인인 것 같았지요.
아무래도 서울과 지방 도시의 문화적 환경은 많이 달라요. 당시엔 포항에 적이 없다 보니 잘 몰랐던 것이지만, 아무튼 저에겐 문화적 불모지로 보일 정도였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혼자 글을 써 왔어요. 현재 햇살 동화문학회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에요.
때로는 내가 포항이 아니라 서울에 살았다면 훨씬 더 빨리 동화 작가가 될 수 있었고 기회도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서울이었다면 문예 아카데미에 다니거나 유명한 출판사와 인맥이 닿거나 할 여지가 더 많았을 거라고요.
그런데 작년에 『선우와 나무군』을 내면서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에 가입하게 됐어요. 거기 모임에 나가보니 작가 분들의 절반은 수도권에서, 절반은 저처럼 지방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지방에서 글 쓰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서로 흩어져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감명을 받았어요.
서울은 익명성의 도시잖아요. 그게 오히려 소수의 유명한 사람만 작가가 되고 책을 내도 주목을 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포항은 아무래도 문화 쪽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소수라도 책을 내면 더 부각되는 것 같고요.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내가 서울에서 활동했으면 이렇게 강연도 나가고 인터뷰도 할 기회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롤모델이라고 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만날 수 없었겠지요.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모두 서울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지만, 지방에도 문화의 반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반쪽이 없으면 문화는 두 발로 발전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책임감도 생기고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해요. 제가 포항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글을 놓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구나 믿으면서요.
최수정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그래도 회화 쪽에서 포항은 예술인이 많은 편이에요. 경북권에서는 예술가가 가장 많고 협회도 여럿 있어요. 저도 포항미술협회를 비롯해 8개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포항에 있으면서 제가 그릴 수 있을 만큼, 제가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업해 왔다고 생각해요. 최소희 작가가 말한 것처럼 서울에 있었으면 수천 명 작가 중 한 명이었을 거고, 그나마 이곳에 있으니까 포항의 대표 중견 여성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20대에 함께 작업을 시작한 친구 중 아직까지 작가로 활동하는 이는 몇 없어요.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그래서 포항에서 이렇게 꾸준히 작업을 하는 여성 작가라고 후배들이 저를 롤 모델로 볼 때 뿌듯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포항 정도의 중소도시에서 내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딱 좋은 정도구나, 요만큼이 내 그릇이구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요즘 포항시는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예술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기획서를 잘 내면 전시를 할 수 있는 여지도, 지원을 받을 여지도 커요. 다른 지역에서 포항 한 달 살기 프로젝트로 오시는 작가분들도 많으세요. 그분들이 포항은 문화 지원도 많고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먹을 것도 많고 관광명소도 멋져서 좋다고, 무엇보다 도시가 참 따뜻하다고 많이 이야기하세요. 저는 포항이 따뜻한 곳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포항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앞으로도 어디 가지 않고 쭉 포항에 살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인터뷰/사진 | 신태진, 이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