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 정밀아 #2

2024-02-16

::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 정밀아 인터뷰 #1 먼저 읽기


Q. 정밀아 님 주변의 공간, 시간, 사람이 노랫말이 되기까지 내면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또, 가사를 아주 여러 번 고쳐 쓰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일상을 자주, 많이 기록합니다. 자다가 깨서 떠오른 문장도 기록하고, 재미있는 일 이를테면 마트 캐셔 아주머니가 귀여운 말씀을 하시면 그런 것도 기록하고, 소리도 잘 들어두고. 그렇게 보고 들은 것들을 채집/수집해요. 앨범에 담을 때는 곡의 쓰임에 맞게 추려내고 다듬고 또 새로이 쓰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또 피드백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 소중한 기회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음과 음 사이를 채우기 위해 그냥 소리 나는 말을 넣고 싶지는 않아요. 가사를 최대한 정확하게 고칠 수 있는 만큼 고치고, 거기서 한 번 더 고치려고 합니다. 


제가 관념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싫어한다고 하겠습니다. 이게 어떤 음악이고 어떤 내용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구체적으로 세세히 다 알고 있고 싶어요. 그래서 내 음악을 말할 때 “별이 5개!”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광고처럼 자신 있고 명확하고 싶어요. 여러 번 불러도 말이 말 같기를,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때 왜 이런 말을 썼지” 후회하지 않고 “이런 말 하길 잘했어” 할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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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술을 전공하셨던 경험을 음악을 만드는 데도 활용한다고 하셨는데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정말 끌어다(?) 쓰는 부분이 많은데, 우선은 미술을 하면서 현상을 다각적으로, 입체적으로, 여러 감각, 그러니까 공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달까요. 색감, 색깔, 바람의 세기, 난간의 차가운 느낌까지 제 안에 들어오는 모든 걸 최대한 기억하고 활용하여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물론 모든 감각 중에서도 시각적인 것을 두드러지게 채집하기는 해요.


또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했던 '작가연구'도 도움이 됐어요. 어떤 작가가 초기에는 이런 주제/화풍/경향 이었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래서 어떤 작품으로 진화하고 확장되는지 등을 연구하는 거예요.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인생 전반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요. 제가 음악작업을 하는 데도 이 공부들을 적용해 봅니다. 다음 작품을 연구할 때 틀을 만들고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지요. 지금도 덕후처럼 파고드는 창작자들은 주로 미술작가들 이에요. 



Q. 어떤 작가들을 좋아하시나요?

학생 때는 고 박이소 작가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양혜규 작가(설치/시각예술), Peter Doig(회화), Mariam Sitchinava(사진)을 좋아합니다. 그 외에도 아주 많아요. 



Q. 포항 출신으로 뮤직비디오, 캠페인 등에 출연하기도 하셨습니다. 현재 살고 계신 서울과 고향 포항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요? 또,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어디인가요?

포항이 낳고 서울이 기르고 현재는 마포구가 ‘임보’ 중인 딸, 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고향인 포항은 예전엔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아련하게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고 할까요. 최근에는 음악가 신분으로 고향에 갈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고향에 가서 하는 일도 조금 달라졌어요. 재미있게도, 고향에 가서 고향이 포항이 아닌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어요. 이렇듯, 고향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아쉽지는 않지만, 바다가 더 오염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전에 살았던 청파동이에요. 정확히는 서계동인데요, 국립극단이 있는 작은 동네예요. 새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덜 따라왔어요. 영 적응이 안 되다가, 최근 눈 내린 밤에 동네를 걸었는데, 어느덧 슬슬 이 새로운 동네에 정이 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포항을 배경으로 제작된 정밀아의 1집 수록곡 〈낭만의 밤〉



Q. 음악인 정밀아와 인간 정밀아는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어떤 관계일까요?

음악을 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지요. 그 가운데 실제로 음악 작업을 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에는 정말 음악만 생각하고요. 점점 더 경계가 흐려지고 낮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이 ‘내가 없다/나와 멀다/나와 다르다’ 등의 방향이 아니에요. 저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음악을 하지는 않거든요. 예전 언젠가 “왜 음악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점점 더 나 같아지려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대답을 여기에 적용해도 되겠네요. 나의 음악 안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다른 내가 뒤섞이고 녹아들겠죠. 추상적이지만, 그리하여 먼 훗날 그냥 그 음악이 정밀아이고, 정밀아가 그 음악이 된다면 그것도 참 좋은 결말이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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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앨범 〈서술〉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초록 화분 몇 개에도 설레 마음만은 위대한 농부 같고”. 식물 집사이신가요?

저의 집 베란다에서는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요. 상추 5종, 루꼴라, 청양고추, 부추, 가지, 깻잎. 그리고 나머지 이만큼은 다 딸기에요. 그 외에도 선물 받은 화분들, 오래전부터 수년째 함께하고 있는 식물들도 있고요. 잘 기르지는 못하면서 욕심만 자꾸 느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휴식이면서 동시에 일과를 하나 더 늘려놓는 일이에요. 여름날 아침에 눈을 뜨면 베란다에서 막 소리가 들려오는 상상을 해요. 식물들이 나에게 물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지요. 여름엔 햇빛이 쨍하기 전에 물을 줘야 하니까 새벽 6시 반에 일어나기도 해요. 식물이 약간의 부지런함을 도모해 주는 거지요. 물론 흙 만지고 이런 감각이 힐링이 되기도 합니다. 가사 대로 위대한 농부가 된 기분이 들어요.


작년 2월,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면서 기르던 식물들이 다 죽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베란다 문을 딱 여니까, 오히려 베란다가 온실이 되어서 상추가 아주 큼지막하게 자라나 있는 거예요. 내가 매일 들여다볼 때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당황스럽고 어이없고 너무 웃겨서 저 혼자 한참 웃었어요.


정밀아 4집 수록곡 〈서술〉



Q. 몹시 추운 겨울입니다. 음악인 정밀아에게 겨울은 어떤 계절인가요?

언젠부터인가 사계절을 다 그 나름으로 좋아하고 있어요. 아니, 초여름과 11월을 좀 더 애정하긴 합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단독공연을 해요. 



Q. 공연 소식 등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앨범 발매 공연은 발매 후 2~3달 안에 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진행하려고 합니다(그렇지만 상반기에는 합니다). 대신 2월에 기타 하나와 저의 목소리만으로 꾸려지는 소규모 어쿠스틱 솔로 공연을 대구/통영/속초에서 엽니다. 대구 공연은 전석 매진되어 성료되었습니다. 이 소규모 어쿠스틱 솔로 공연 시리즈는 〈춥지 않은 겨울밤〉 이라는 타이틀로 매년 한겨울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2015년부터 이어온 초여름과 초겨울 정기단독공연도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을 주세요. 저는 정성껏 즐겁게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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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춥지 않은 겨울밤〉 공연 포스터 / 정밀아 인스타그램에서 




인터뷰 | 신태진, 이주호, 이은서
사진 | 신태진, 금반지레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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