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과 사람들] 마라톤 92회 완주는 시작일 뿐 - 뉴욕의 마라토너 이덕재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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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1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교포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그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분은, 풀코스 마라톤을 92회나 완주하신 이덕재 선생님입니다. 그의 인생 이야기와 마라톤 100회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들어보았습니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이덕재(68)입니다. 1985년도에 미국으로 혈혈단신으로 이민을 와서 지금껏 거주하고 있습니다. 


3a5afa5c4c46f.jpg이덕재



Q. 어떤 계기로 미국에 이민을 오셨나요? 

당시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미국의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고 미국을 동경해 미국 회사로의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가족을 모두 한국에 두고 떠나오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출국 당일 부모님은 공항까지 따라 나와 바닥에 앉아 대성통곡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친인척들까지 대략 30여 명이 김포공항에 모여 저를 환송하는 경험까지 하며 떠나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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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 씨의 침실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이른 아침 풍경


Q. 처음 도착한 도시 그리고 지금 사시는 곳은요? 

그 시절 미국으로의 이민, 출국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기였던 탓에 홀로 미국으로 간다고 하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형의 친구가 LA에 사는데 한국을 다니러 왔다가 제가 미국으로 이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곤 가족들이 일사천리로 무조건 이 형을 따라가라고 해서 LA에 도착했습니다.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해 자고 일어나니, 천지가 개벽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햇살이 가득한 그곳 날씨에 가장 먼저 반했는데, 하루하루가 천국과 같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 기억을 강렬하게 간직한 채 입사를 위해 시카고로 이주해 일을 했고, 지금 사는 뉴저지로는 1989년에 이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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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 씨의 훈련 장소인 허드슨강 일출



Q. 어떻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그 후의 과정을 설명해 주신다면? 

당시 저는 MCI(장거리 통신회사)라는 미국 회사를 20년간 근속 근무한 후 은퇴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봄 한국 케미컬 회사의 미국 지사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국 본사에서 2개월간 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한국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업무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 기내에서 벗어뒀던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 데 배가 나와 도무지 바닥에 손이 닿지를 않는 겁니다. 그때 결심했지요. "건강을 위해 내일 아침부터는 운동을 하리라" 하고요. 


그리곤 집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실행에 옮겼죠. 매일 새벽 5시 반에 1시간씩 오버펙 공원(Overpeck County Park)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는 그다음 해인 2009년까지 매일 이어졌고, 운동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자 27kg 정도가 빠지더군요. 


그 후로는 걷기만 하던 운동에서 조금씩 뛰는 걸로 운동의 방향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처음 1시간 동안 3마일(4.8km)을 걸었다면, 조금씩 뛰는 걸 섞어 운동하다 보니 차츰 운동하는 거리가 4마일, 5마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2d0b8ab416844.jpg마라톤 중인 이덕재 씨


그러다가 매일 아침 공원에서 운동을 하며 마주치던 분들이 제게 마라톤을 권했습니다. 2010년 4월 28일이 제 인생 첫 마라톤에 도전한 날입니다. 뉴저지의 CAPMAY라는 곳에서 열린 마라톤으로, 당시 제 나이는 54세였습니다. 


기존에 최고로 많이 뛰었던 구간이 18마일(28.9km)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마라톤에 참가해 26.2마일을 완주했으니 그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완주 후 눈물이 핑 돌던 감격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니까요. 동료 7명과 함께 뛰었던 그때의 기록은 4시간 46분이었습니다.


경기 끝나고 일주일간 다리에 알이 배어서 걷는 것조차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그 기간이 지나자마자 저도 모르게 다음 마라톤 대회가 언제 어디에서 진행되는지 찾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아마 첫 마라톤을 완주한 후에 얻은 성취감 때문이었겠지요. 


그렇게 해서 마라톤에 도전한 첫 해 5번의 마라톤 완주를 성공리에 마쳤고, 그다음 해에는 9번의 마라톤 완주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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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지금껏 마라톤을 완주한 총 횟수는요? 

2024년 1월 현재 저는 총 92회의 마라톤 완주에 성공했어요. 앞으로 2년간 8회를 추가해서 총 100회의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3일에 진행될 뉴욕시티 마라톤이 100회가 되는 셈이에요. 그때면 제 나이가 70세입니다. (웃음) 그래서 뉴욕시티 마라톤 주최 측에 특별히 요청을 해보려고요. ‘10070’ 이라는 마라톤 번호판을 달라고 말입니다. ‘70’ 세에 뛰는 ‘100’ 번째 마라톤이라는 의미로요. 


dee9435db3e83.jpg92 마라톤 완주 메달


Q. 이 정도 마라톤을 한 분이라면 저는 선입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았던 것 아닐까요? 아니면 특별한 운동을 미리 하셨던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할 때도 구보를 가장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를 나가면 8명씩 뛰는 달리기에서 보통 6~7등 정도를 했을 정도로 달리기엔 그 어떤 재능이나 기술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Q. 이토록 찬란한 재능(?)을 뒤늦게 발견해 마라톤에 뛰어드신 후, 미국의 50개 주 마라톤에 전부 참여했고, 그 후 전 세계 6대 마라톤 대회까지 섭렵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어떻게 참가를 하셨는지요? 

마라톤을 15번 정도 뛰었을 때 함께 뛰던 동료가 제안했어요. 미국 50개 주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알아보니 ‘50 States Marathon Club’이라는 게 있더군요. 멤버 5천 명 이상의 모임인데 가입 조건은 마라톤 완주 10회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곳에 가입하고 나니 미국의 각 주별 마라톤 일정을 알게 되었고, 마침 이를 함께 해주는 동료도 있었으니 외롭지 않게 각 도시를 같이 다니면서 50개 주 마라톤을 모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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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 씨가 직접 그림 미국 마라톤 지도


그 후 더욱 시야를 넓혀 세계 6개 메이저 마라톤 대회로까지 진출해 모두 완주했습니다. 뉴욕, 시카고, 보스턴, 런던, 도쿄, 베를린 등이 6대 메이저 마라톤을 개최하는 도시입니다.


4228c0e425820.jpg6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 완주 메달



Q. 지금껏 뛰신 마라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라톤 대회가 있다면요? 혹은 특색 있는 곳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거리 관중들의 환호가 가장 크고 화려하며, 가장 열렬한 응원을 해주는 곳은 뉴욕과 런던입니다. 대도시답게, 이곳에서 마라톤을 뛰다 보면 응원 나온 시민들 틈에서 제가 마치 영화배우나 유명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예요. 힘들 때 해주는 응원이야말로 마라톤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원동력이거든요. 


마라톤 대회는 보스턴이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봉주 선수가 과거 우승을 했던 곳이지요. 참고로 베를린에서는 손기정 선수가, 바르셀로나에서는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이력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라톤을 손꼽으라면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Dulux)를 꼽고 싶습니다. 마라톤 참가자들이 모이는 집합 장소에 가면 화려한 2량짜리 기차가 준비되어 있는데 참가자들을 그 기차에 태우고 30분간 이동해 마라톤 출발 지점에 내려줍니다. 기차 자체도 예쁘고요, 코스 또한 미국의 5대 호수 중 하나인 슈피리어호숫가를 따라 이어져 있어 좋은 경치도 보고 맑은 공기도 마시며 뛸 수 있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8553e4a170d40.jpg도쿄에서 89번째 마라톤 완주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의 경우, 경기가 끝나는 지점이 그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인데요. 마라톤 완주를 끝낸 참가자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바닷속으로 모두 뛰어듭니다. 옷과 신발이 다 젖어도 신나게 물속에서 마라톤 완주를 축하했던 기억이 좋았습니다.


알래스카 마라톤에서는 예상치 못한 무스와 함께 뛰었습니다. 한참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무스 떼가 무리를 지어 다가왔고, 그들도 마침 마라톤의 코스대로 뛰고 있더라고요.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미국의 마라톤 중에는 '백 투 백'이라고 해서 2개 주의 마라톤을 2일 연속으로 끝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다호와 유타 주가 그렇고, 그 외에도 몇 곳이 더 있는데요. 한국말로 '일타쌍피'의 개념입니다. 금요일에 도착해 토요일에 한 곳, 일요일에 한 곳을 뛰면 2개 주의 마라톤을 완주하는 셈이 됩니다. 2배로 힘들긴 하지만 2배로 의미 있는 경험이 되는 거죠. 

 

제 최악의 마라톤은 댈러스에서였습니다. 영상 10도 정도로 예상했던 기온이 당일 영하 2도까지 떨어졌어요. 보통 마라톤은 반바지에 러닝셔츠만 입고 뛰는데 턱은 물론 온몸이 덜덜 떨려 평소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15~18마일 구간 정도를 달릴 때 수로 옆 뚝방길 같은 곳이 많았는데 길이 비탈지다 보니 발목을 삐끗했고 복숭아뼈까지 아파져 오면서 발을 절뚝이며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포기할 순 없었고, 평소보다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출발한 지 5시간 50분 만에 완주를 했습니다. 제 92번의 마라톤 완주 경험 중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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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메이저 마라톤을 완주한 후 기념 촬영



Q. 2024년의 목표가 있다면요? 

다가올 4월 14일에 올해 첫 마라톤을 뉴저지의 저지시티에서 뛰고, 4월 28일부터는 한 달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총 820km의 대장정입니다. 그 후 8월엔 라클랜드호수 9바퀴, 10월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11월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Q. 앞으로의 꿈은요? 

6대륙의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 못 가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마라톤을 뛰려고 계획 중입니다. 호주의 시드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혹은 킬리만자로,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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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 기념



Q. 앞으로 마라톤을 시작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는 ‘프로’가 아닙니다. 달리기는, 자신의 역량에 맞춰 살살 뛰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운동입니다. 혼자 뛰는 운동이지만, 혼자 시작할 수 없는 운동이라고도 하죠. 혼자 달려야 하고, 이기고 지는 승부와 상대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다른 운동에 비해 재미가 덜 한 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시작한다면 시너지가 나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마라톤은 운동화랑 옷만 있으면 되니까 언제 어디서든 쉽게 시작할 수 있어요. 아무리 작심삼일이라지만 우리 한번 함께 시작해 볼까요? 달리기를 배우고 싶은 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함께 뛰며 스텝이나 호흡 등을 즐겁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3972c8f5b39a3.jpg뉴욕 마라톤에서 41km 지점을 통과하며




사진 이덕재
인터뷰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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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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