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찾았던 대만에 반해 그곳에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최보옥 작가. 그는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대만 생활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만이 두 번째 집이고 산이 세 번째 집이라고 말하는 최보옥 작가는 최근 타이베이 등산 에세이 『타이베이 산친구』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최보옥 작가와 대만의 산에 관해, 대만에서 사는 일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최보옥 작가 ⓒ최보옥
Q. 『타이베이 산친구』는 대만 산에 관한 책입니다. 왜 대만에서 등산을 시작하셨나요? 한국에 계실 때도 산을 좋아하셨나요?
한국 교가에는 무조건 산 이름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국 사람에게 산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적 이사를 꽤 자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집 근처에는 항상 산이 있었어요.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라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어렸을 때는 자연스럽게 집 뒷산을 자주 오르내렸던 것 같아요.
저의 대만살이는 교환학생으로 시작했어요. 첫 해외 생활로 뭐 하나 익숙하지 않은 낯선 땅 대만에서 등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만에서의 첫 보금자리가 산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대학교 기숙사가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국립공원 안에 있었거든요. 말 그대로 산속에서 1년을 살았어요.
최보옥 작가의 『타이베이 산친구』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산에서 사는 게 너무나 싫었어요. 날씨도 안 좋고, 교통도 불편하고, 야시장이라든지, 맛집이라든지 세상 재미있는 건 다 산밑에 있었거든요. 그때는 기를 쓰고 산밑에 내려가려 했었는데, 대만에 터를 잡고 살게 된 지금은 기를 쓰고 산에 오르려고 하고 있네요.


지우펀 우얼차후산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가장 좋아하는, 언제든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은 어디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산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딱 하나만 고르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첫정이 무섭다는 말처럼 아무래도 첫 보금자리였던 양명산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실 양명산은 하나의 산은 아니고요, 타이베이 북부 일대의 산악 지역을 통틀어 양명산이라고 해요. 대만에서 세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지요. 제 대학교 기숙사가 바로 양명산 국립공원 내부에 있었어요. 거기에 사는 1년 동안 양명산의 사계절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어요.
수국이 피었을 때의 양명산 ⓒ최보옥
양명산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치싱산(해발 1,120m)을 비롯한 등산하기 좋은 산들과 잘 정비된 수많은 등산 코스로 등산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또한 1월 말 벚꽃을 시작으로 3월 중순에는 카라, 5월 말부터는 수국이, 11월 초에는 억새가 피어나 타이베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나들이 장소이기도 해요. 게다가 양명산은 화산 지형으로 생긴 활화산이기 때문에 곳곳에 유황 온천이 나와 온천도 즐길 수 있답니다.

억새가 피었을 때의 양명산 ⓒ최보옥
Q. 기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대만은 부침이 많은 나라 같습니다. 그럼에도 대만 사람들은 쾌활해 보이고, 미식과 가무를 즐기고, 신선 같은 분위기도 느껴지는데요. 그런 면이 잘 드러난 대만의 문화가 있을까요?
대만은 참 ‘부침’이 많은 나라처럼 보여요. 하지만 대만에 관해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그런 생각이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대만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천 년간 한민족으로 이뤄온 ‘우리’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개념이 강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섬나라라는 특성상 외부 세력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특정한 세력이 수백 년간 굳건하게 이어진 역사적 경험이 없어요.
간단히 말하면 대만은 이민 사회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섬에서 살고 있던 기존 세력과 외부 세력 사이에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있었겠지만 400년간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내가 지켜야 하는 ‘기존 세력’과 배척해야 하는 ‘외부 세력’에 대한 바운더리가 참 모호해요. 그렇기에 대만 사람들은 다른 문화,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거의 없어요.
이러한 대만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이 잘 드러난 문화라고 한다면, 사회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요?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했고, 작년에는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 법안도 통과됐어요. 또한 국회에 소수민족인 원주민 의석이 있고, 올해에는 대만 최초로 신주민(결혼 이민자) 가정 출신이 부총통에 당선되었어요. 나와 다름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게 대만 문화의 장점 같아요.

관음산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산만큼 온천을 좋아하신다고 보았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좋아하는 대만 온천 한두 곳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책에는 분량상 ‘대만 온천 위시 리스트’를 실을 수 없었어요. 앞으로 가고 싶은 대만의 좋은 온천을 리스트로 만들어 독자분들께 소개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제가 이 자리를 통해 꼭 소개하고 싶은 온천은 ‘야계 온천’이에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에 있어 미개발된 온천을 야계 온천이라고 하는데요, 대만 전국에는 이런 자연 온천이 산재해 있어요. 올해 초에 대만 동부의 ‘이란’이라는 지역에 갔었는데요. 인적이 드문 깊은 계곡에 들어가니 산에서 나오는 온천물이 고여서 자연으로 만들어진 온천탕이 있더라고요. 그곳에서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에 옹기종기 앉아 온천을 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어요. 현지인들만 알음알음 찾아가는 비밀스러운 온천이라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인 온천이에요.

이란의 야계온천 ⓒ최보옥
Q. 이 책에서 산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바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작가님께 바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관찰과 동경의 대상이요. 어렸을 때부터 산과 가깝게 지냈지만, 바다하고는 그리 친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대만 출신인 남편은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해요. 그래서 남편과 여행을 갈 때마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작년 오키나와 여행을 갔을 때도 남편은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 했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저 때문에 액티비티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어요. 올해에는 오랜 염원이었던 수영을 꼭 배워서 남편과 같이 바다를 즐기는 연습을 조금씩 해 보려고 해요.

대만 동부 바다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아무래도 계속 변화하는 중국어와 한국어 모두 끊임없이 공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공부는 어떻게 하시나요?
우선 중국어를 따로 각 잡고 공부하지는 않아요.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대만 학생들에게 중국어로 문법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만, 중문과 시절의 중국어 실력을 간당간당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훨씬 시간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은 한국어 공부예요.
한국어를 가르친 지는 1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가르치면서 더욱 확신에 가까워지는 생각이 있다면 ‘한국어는 어렵다’예요. 모국어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예요. 이렇게 까다로운 언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초급 강사일 때는 6시간 넘게 했었는데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니 다행히 조금씩 줄어들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매일 한두 시간씩 투자하고 있어요.
핑시 효자산에서 ⓒ최보옥
얼마 전 책을 출판하면서 전문적으로 교정교열을 해 주시는 분께 제 글을 맡겼는데요,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최근엔 대만 출판사와 협업하여 교정교열 일을 하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학생들의 쓰기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앞으로 교정교열가라는 직업에도 도전할 생각이에요.
핑시 효자산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지내시다가 가끔 한국으로 들어오셨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다음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다녀오고 싶은 장소는 어디인가요?
1년에 한두 번 짧게 한국에 갔다 오는데요. 언제부터인가 한국이 저에게 주는 느낌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니라, 일종의 ‘여행지’로 느껴져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이것도 직업병인데, 가끔 “한국인들은 왜 그러나요?”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변화가 빠른 나라라서 그럴까요? 한국은 갈 때마다 어찌나 새로운지 몰라요. 그래서 더욱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대만에 오래 살면서 이곳 특유의 여유로움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이제는 조금 벅차요. 그래도 두 나라에서 느껴지는 삶의 속도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어요.
다음 한국 여행은 ‘청산도’를 계획하고 있어요.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인데, 제가 가르치는 책에 청산도가 나오거든요. 가보지도 않은 곳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는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이번에 청산도에 꼭 가보고 학생들에게 청산도의 아름다움을 저의 언어로 설명해 주고 싶어요.

양명산에서 ⓒ최보옥
Q. 타국에서의 생활, 프리랜서 강사로서의 삶, 롱디 커플로서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게 느껴지는데, 이러한 삶에 대한 애정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그리고 지금까지 겪으셨던 삶의 과정 속 시행착오 중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의미로 남았던 경험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알게 되신 점이 궁금합니다.
뭔가를 사랑하려면 그 대상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상에선 사랑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거든요. 삶에 대한 애정을 갖기 위해 내 삶의 의미부터 찾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끝없이 방황하며 불안을 잠재우는 날들이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는 당연하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통해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삶에 의미는 없다’예요.
허무주의에 가까운 결론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허무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나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다양한 대상에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 해요. 그리고 무조건 기록으로 남겨요. 블로그도 그러한 맥락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해외 생활의 고독함을 이겨내기 위해 블로그에 나의 이야기를 썼어요. 내가 만난 사람들, 여행, 전시회, 찻집, 등산……. 일관된 주제 없이 신변잡기적인 글들이에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록으로 남긴 나의 일상은 그렇지 않은 일상에 비해 특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나에게 어떤 ‘서사성’을 부여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글감을 모으듯 삶에서의 크고 작은 도전을 모으고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니 저의 삶에도 ‘의미’가 생겼어요. 작은 기록들이 모여 이렇게 책까지 나오게 되었고요. 저는 기록의 힘을 믿어요.
우랴오젠산에서 ⓒ최보옥
인터뷰 신태진, 이은서
교환학생으로 찾았던 대만에 반해 그곳에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최보옥 작가. 그는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대만 생활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만이 두 번째 집이고 산이 세 번째 집이라고 말하는 최보옥 작가는 최근 타이베이 등산 에세이 『타이베이 산친구』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최보옥 작가와 대만의 산에 관해, 대만에서 사는 일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타이베이 산친구』는 대만 산에 관한 책입니다. 왜 대만에서 등산을 시작하셨나요? 한국에 계실 때도 산을 좋아하셨나요?
한국 교가에는 무조건 산 이름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국 사람에게 산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적 이사를 꽤 자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집 근처에는 항상 산이 있었어요.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라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어렸을 때는 자연스럽게 집 뒷산을 자주 오르내렸던 것 같아요.
저의 대만살이는 교환학생으로 시작했어요. 첫 해외 생활로 뭐 하나 익숙하지 않은 낯선 땅 대만에서 등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만에서의 첫 보금자리가 산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대학교 기숙사가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국립공원 안에 있었거든요. 말 그대로 산속에서 1년을 살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산에서 사는 게 너무나 싫었어요. 날씨도 안 좋고, 교통도 불편하고, 야시장이라든지, 맛집이라든지 세상 재미있는 건 다 산밑에 있었거든요. 그때는 기를 쓰고 산밑에 내려가려 했었는데, 대만에 터를 잡고 살게 된 지금은 기를 쓰고 산에 오르려고 하고 있네요.
지우펀 우얼차후산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가장 좋아하는, 언제든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은 어디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산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딱 하나만 고르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첫정이 무섭다는 말처럼 아무래도 첫 보금자리였던 양명산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실 양명산은 하나의 산은 아니고요, 타이베이 북부 일대의 산악 지역을 통틀어 양명산이라고 해요. 대만에서 세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지요. 제 대학교 기숙사가 바로 양명산 국립공원 내부에 있었어요. 거기에 사는 1년 동안 양명산의 사계절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어요.
양명산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치싱산(해발 1,120m)을 비롯한 등산하기 좋은 산들과 잘 정비된 수많은 등산 코스로 등산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또한 1월 말 벚꽃을 시작으로 3월 중순에는 카라, 5월 말부터는 수국이, 11월 초에는 억새가 피어나 타이베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나들이 장소이기도 해요. 게다가 양명산은 화산 지형으로 생긴 활화산이기 때문에 곳곳에 유황 온천이 나와 온천도 즐길 수 있답니다.
억새가 피었을 때의 양명산 ⓒ최보옥
Q. 기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대만은 부침이 많은 나라 같습니다. 그럼에도 대만 사람들은 쾌활해 보이고, 미식과 가무를 즐기고, 신선 같은 분위기도 느껴지는데요. 그런 면이 잘 드러난 대만의 문화가 있을까요?
대만은 참 ‘부침’이 많은 나라처럼 보여요. 하지만 대만에 관해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그런 생각이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대만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천 년간 한민족으로 이뤄온 ‘우리’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개념이 강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섬나라라는 특성상 외부 세력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특정한 세력이 수백 년간 굳건하게 이어진 역사적 경험이 없어요.
간단히 말하면 대만은 이민 사회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섬에서 살고 있던 기존 세력과 외부 세력 사이에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있었겠지만 400년간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내가 지켜야 하는 ‘기존 세력’과 배척해야 하는 ‘외부 세력’에 대한 바운더리가 참 모호해요. 그렇기에 대만 사람들은 다른 문화,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거의 없어요.
이러한 대만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이 잘 드러난 문화라고 한다면, 사회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요?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했고, 작년에는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 법안도 통과됐어요. 또한 국회에 소수민족인 원주민 의석이 있고, 올해에는 대만 최초로 신주민(결혼 이민자) 가정 출신이 부총통에 당선되었어요. 나와 다름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게 대만 문화의 장점 같아요.
관음산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산만큼 온천을 좋아하신다고 보았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좋아하는 대만 온천 한두 곳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책에는 분량상 ‘대만 온천 위시 리스트’를 실을 수 없었어요. 앞으로 가고 싶은 대만의 좋은 온천을 리스트로 만들어 독자분들께 소개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제가 이 자리를 통해 꼭 소개하고 싶은 온천은 ‘야계 온천’이에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에 있어 미개발된 온천을 야계 온천이라고 하는데요, 대만 전국에는 이런 자연 온천이 산재해 있어요. 올해 초에 대만 동부의 ‘이란’이라는 지역에 갔었는데요. 인적이 드문 깊은 계곡에 들어가니 산에서 나오는 온천물이 고여서 자연으로 만들어진 온천탕이 있더라고요. 그곳에서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에 옹기종기 앉아 온천을 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어요. 현지인들만 알음알음 찾아가는 비밀스러운 온천이라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인 온천이에요.
이란의 야계온천 ⓒ최보옥
Q. 이 책에서 산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바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작가님께 바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관찰과 동경의 대상이요. 어렸을 때부터 산과 가깝게 지냈지만, 바다하고는 그리 친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대만 출신인 남편은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해요. 그래서 남편과 여행을 갈 때마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작년 오키나와 여행을 갔을 때도 남편은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 했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저 때문에 액티비티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어요. 올해에는 오랜 염원이었던 수영을 꼭 배워서 남편과 같이 바다를 즐기는 연습을 조금씩 해 보려고 해요.
대만 동부 바다에서 ⓒ최보옥
Q.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아무래도 계속 변화하는 중국어와 한국어 모두 끊임없이 공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공부는 어떻게 하시나요?
우선 중국어를 따로 각 잡고 공부하지는 않아요.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대만 학생들에게 중국어로 문법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만, 중문과 시절의 중국어 실력을 간당간당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훨씬 시간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은 한국어 공부예요.
한국어를 가르친 지는 1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가르치면서 더욱 확신에 가까워지는 생각이 있다면 ‘한국어는 어렵다’예요. 모국어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예요. 이렇게 까다로운 언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초급 강사일 때는 6시간 넘게 했었는데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니 다행히 조금씩 줄어들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매일 한두 시간씩 투자하고 있어요.
얼마 전 책을 출판하면서 전문적으로 교정교열을 해 주시는 분께 제 글을 맡겼는데요,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최근엔 대만 출판사와 협업하여 교정교열 일을 하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학생들의 쓰기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앞으로 교정교열가라는 직업에도 도전할 생각이에요.
Q. 대만에서 지내시다가 가끔 한국으로 들어오셨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다음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다녀오고 싶은 장소는 어디인가요?
1년에 한두 번 짧게 한국에 갔다 오는데요. 언제부터인가 한국이 저에게 주는 느낌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니라, 일종의 ‘여행지’로 느껴져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이것도 직업병인데, 가끔 “한국인들은 왜 그러나요?”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변화가 빠른 나라라서 그럴까요? 한국은 갈 때마다 어찌나 새로운지 몰라요. 그래서 더욱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대만에 오래 살면서 이곳 특유의 여유로움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이제는 조금 벅차요. 그래도 두 나라에서 느껴지는 삶의 속도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어요.
다음 한국 여행은 ‘청산도’를 계획하고 있어요.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인데, 제가 가르치는 책에 청산도가 나오거든요. 가보지도 않은 곳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는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이번에 청산도에 꼭 가보고 학생들에게 청산도의 아름다움을 저의 언어로 설명해 주고 싶어요.
양명산에서 ⓒ최보옥
Q. 타국에서의 생활, 프리랜서 강사로서의 삶, 롱디 커플로서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게 느껴지는데, 이러한 삶에 대한 애정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그리고 지금까지 겪으셨던 삶의 과정 속 시행착오 중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의미로 남았던 경험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알게 되신 점이 궁금합니다.
뭔가를 사랑하려면 그 대상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상에선 사랑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거든요. 삶에 대한 애정을 갖기 위해 내 삶의 의미부터 찾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끝없이 방황하며 불안을 잠재우는 날들이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는 당연하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통해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삶에 의미는 없다’예요.
허무주의에 가까운 결론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허무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나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다양한 대상에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 해요. 그리고 무조건 기록으로 남겨요. 블로그도 그러한 맥락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해외 생활의 고독함을 이겨내기 위해 블로그에 나의 이야기를 썼어요. 내가 만난 사람들, 여행, 전시회, 찻집, 등산……. 일관된 주제 없이 신변잡기적인 글들이에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록으로 남긴 나의 일상은 그렇지 않은 일상에 비해 특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나에게 어떤 ‘서사성’을 부여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글감을 모으듯 삶에서의 크고 작은 도전을 모으고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니 저의 삶에도 ‘의미’가 생겼어요. 작은 기록들이 모여 이렇게 책까지 나오게 되었고요. 저는 기록의 힘을 믿어요.
인터뷰 신태진, 이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