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요코하마』,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를 쓴 고나현 작가는 스스로를 '성공한 오타쿠'라고 부릅니다. 고등학교 때 푹 빠진 게임의 배경 도시였던 '요코하마'를 처음 밟았을 때, 이것이 '성덕'의 기분이라는 걸 알았다고 하지요. 사실 그 게임을 해석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일본어가 어느새 '번역가'라는 직업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8년차 번역가로 살며 일과 여행에 관한 책도 저술하고 있는 고나현 작가를 만나 요코하마가 어떤 도시인지, 왜 요코하마를 사랑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고나현 작가
Q. 한 달간 체류하기 전에 요코하마는 작가님께 어떤 도시였나요?
요코하마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금색의 코르다’의 배경이어서 꼭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요코하마에 온 것은 제가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8년 전이네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처음 요코하마 땅을 밟은 순간 이것이 ‘성공한 오타쿠’의 기분이구나,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저 요코하마라는 도시가 저를 행복하게 했던 것 같아요. 어딜 가든 새로웠고 뭘 하든 기뻤으니까요.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기뻤고, 길에서 넘어져도 요코하마에서 넘어진 거라 행복했습니다. 어쩌면 최애 캐릭터 '히하라 카즈키'가 밟고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길이니까…! 조금 과하다 싶지만 오타쿠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그냥 뭘 하든 예뻐 보이는 사람이나 물건 같은 존재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제게는 요코하마가 그래요.
요코하마 ⓒ고나현
Q. 그러다 요코하마 한 달 살기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팬데믹으로 약 4년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는데요, 마침내 일본에 갈 수 있게 된 시기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요코하마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살이 계획이 시작되었어요. 디지털노마드라 하잖아요? 인터넷으로 파일을 주고받으며 작업하는 번역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몸이 어디 있어도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어요. 다만 틈틈이 마감을 준비하다 보니 원래 6월에 떠나기로 한 여행을 9월로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즌이든 사시사철 행사가 있는 요코하마라서 일정 변경으로 인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Q. 한 달 살기 이후 요코하마는 작가님께 어떤 도시가 되었나요?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도쿄에 살며 요코하마를 종종 오가고는 했는데요, 그때는 요코하마로 ‘여행’ 가는 느낌이 강했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 반년을 살았던 도쿄보다 한 달 산 요코하마가 더 내 집처럼 느껴지게 되었어요. 제 마음의 고향은 예전에 살았던 ‘도쿄 네리마구’였는데, 이제 ‘요코하마’가 되었네요. 귀소본능이 생겼는지 틈만 나면 비행깃값과 요코하마 숙소가 저렴한지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또, 요코하마에 친구도 생겼어요! 사실 요코하마에서 바(Bar)에 가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즉흥적으로 사람과 대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 된 거였거든요. 거기서 생각지 않게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아직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번 책 발간도 함께 기뻐해 주었어요.
요코하마의 바에서
Q. 여행지로서 요코하마는 어떤 곳인가요? 어떤 여행을 할 수 있는 도시인가요?
항구 도시가 여럿 있는 일본이지만, 그중 ‘대표적인 항구 도시’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요코하마를 꼽을 듯합니다. 요코하마는 현대적인 분위기의 도쿄와 전통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가마쿠라 사이에 있는 항구 도시예요. 요코하마 자체도 무척 매력적이지만 도쿄나 가마쿠라를 오가기에도 좋은 위치입니다. 그래서 요코하마에 숙소를 잡고 도쿄와 가마쿠라를 동시에 여행하고는 해요.
요코하마는 바다를 끼고 있어 늘 상쾌한 바람이 불고 맑은 하늘이 있는, 푸른 낭만이 있는 도시입니다. 과거의 수도인 교토나 현재의 수도인 도쿄에 비하면 도시 자체의 역사가 훨씬 짧은 데다가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발전한 덕에 서양식 건물이 더 많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건물이나 분위기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만큼 이렇게 개방적이고 근대적인 도시는 또 없다고 봐요. 또 쇼핑과 문화, 체험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와도 좋고 나 홀로 여행을 와도 즐거울 곳입니다.
모토마치 거리 ⓒ고나현
야마시타 공원 ⓒ고나현

에노키테이 ⓒ고나현
Q. 이 책에서는 요코하마에서의 어떤 경험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 했나요?
사실 한 달 동안 일을 할 생각이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을 최대한 줄이고, 그 시간에 최대한 많이 겪고 느낀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 책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에서는 번역가로서의 일상과 일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독자분들 후기를 보니 오히려 제 생각을 듣고 싶었다는 요구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번 책에는 저의 경험과 느낌을 많이 담은 거예요. 예를 들어 바를 가는 경험이라도 한 번 가봤을 때와 여러 번 가봤을 때의 느낌이 다르잖아요. 반복되는 경험을 할 때도 할 수 있는 한 많이 느끼고 생각하여 그걸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고나현 작가의 『한 달의 요코하마』
Q. 이전 작인 에세이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에서는 일본어 번역가로 사는 이야기를 담으셨는데요, 마니아에서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번역가가 되기 전,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취미로 일본어 번역과 독학을 하고는 있었지만, 번역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고, 워킹홀리데이 준비 과정에서 출판사에 올라온 번역가 구인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어떻게든 도전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에 지원한 세 곳 중 두 곳에 붙었습니다. 일본어 전공자도,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그렇다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 저만의 강점이 있다면 제가 번역하는 장르가 TL 소설(성애 묘사가 들어가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조금 특이한 장르였는데, 그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고 제 번역 작품을 사랑한다는 것이에요. 제 실력에 자신감이 없어서 한 3년 차까지는 누가 직업을 물어봐도 ‘번역가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8년 차인 지금은 늘어난 경력만큼 자신감이 붙어 ‘번역가예요’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Q. 취미가 직업으로 전환된 경우인데, 작가님은 관심을 쏟으며 추구하고 계신 대상을 어떻게 알고 빠져들게 되셨나요?
저는 원래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는데요, 주변에도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한 친구가 『금색의 코르다』라는 작품이 재미있다고 지나가듯 한 말에 만화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게임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게임기를 구매해 직접 플레이하면서 더 깊게 빠져들었죠. 한글 지원이 되지 않은 게임이라 플레이를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자연히 일본어 실력이 점점 늘게 되었습니다.
고나현 작가
Q. 작가님처럼 생산적인 덕후의 경우가 많은가요?
저처럼 번역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지만, ‘금색의 코르다’를 좋아하는 친구들 중 하나는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금색의 코르다는 콩쿠르에 나가서 합주를 하는 게 주 내용이거든요. 모든 캐릭터가 악기를 하나씩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캐릭터의 취미가 샤미센 켜기라서 샤미센을 배운 분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트럼펫을 배우는 게 꿈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트럼펫’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금색의 코르다 팬들이 모이면 현실에서도 합주가 가능할 것 같네요.
고나현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금색의 코르다'의 히하라 카즈키
Q. 관심이나 애정의 대상을 직업으로, 일로 대해야 할 때 생겨나는 변화는 없었나요?
모든 작품이 제 취향일 수는 없어서 가끔은 취향이 아닌 작품도 번역해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을 쏟지 않거나 번역을 대충 하지는 않아요. 눈물이 많고 겁도 많아서 새드 엔딩인 작품이나 무서운 작품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데,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새드 엔딩인 작품은 울면서 작업하고 무서운 작품은 귀여운 걸 옆에 놓고 같이 보면서 작업해요.
Q. 내가 머물렀던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한 달 동안 살며 원래의 일상을 지속한다는 게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대부분 작업이 파일을 주고받아 번역하는 일이라 작업 환경만 달라졌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그게 사실은 엄청나게 큰 변화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공부를 위해, 작업을 위해 집중할 환경을 만들고자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에 가거나 카페를 찾듯이요. 한국에서는 귀찮아서 잘 나가지 않았는데 요코하마에 있을 때는 노트북을 들고 이곳저곳 좋아하는 장소를 돌아다니며 일했어요. 그렇게 한 달이라는 기간을 보내며 리프레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특별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에서 ⓒ고나현

요코하마의 야경 ⓒ고나현
Q. 워케이션이라고들 하지요? 다시 한 달간 어딘가로 떠나서 일하며 쉴 수 있다면 그때도 요코하마인가요?
요코하마도 좋지만 다음에는 센다이에 가보고 싶습니다. 센다이는 녹음이 푸른 곳인데요. 슬로건도 ‘숲의 도시’일 정도예요. 자연과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는 곳이라고 하니 그 푸르름을 몸소 느껴보고 싶습니다. 한 달 살기는 정확히 한 달이라기보다, 한 달을 살아 보았으니 일 년도 가능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어딘가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요코하마에 여러 번 가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요코하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요코하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아카렌가소코입니다. 아카렌가소코는 봄에는 딸기로, 여름에는 해변 테마로, 가을에는 맥주로,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로, 그렇게 각종 테마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바다도 볼 수 있고, 늘 사람으로 북적여 심심하지 않은 곳이에요. 그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조금만 걸으면 야마시타 공원 등 명소를 거닐 수도 있어서 요코하마에서 가장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를 사귀었던 요코하마의 바도 정말 좋아해요. 동네 분들이 모이는 소소한 공간으로 혹시라도 폐가 될까 봐 책에서는 상호를 밝히지 못했지만, 그곳은 정말 따뜻한 곳이에요.


아카렌가소코 ⓒ고나현
인터뷰·사진 | 이주호
『한 달의 요코하마』,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를 쓴 고나현 작가는 스스로를 '성공한 오타쿠'라고 부릅니다. 고등학교 때 푹 빠진 게임의 배경 도시였던 '요코하마'를 처음 밟았을 때, 이것이 '성덕'의 기분이라는 걸 알았다고 하지요. 사실 그 게임을 해석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일본어가 어느새 '번역가'라는 직업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8년차 번역가로 살며 일과 여행에 관한 책도 저술하고 있는 고나현 작가를 만나 요코하마가 어떤 도시인지, 왜 요코하마를 사랑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한 달간 체류하기 전에 요코하마는 작가님께 어떤 도시였나요?
요코하마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금색의 코르다’의 배경이어서 꼭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요코하마에 온 것은 제가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8년 전이네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처음 요코하마 땅을 밟은 순간 이것이 ‘성공한 오타쿠’의 기분이구나,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저 요코하마라는 도시가 저를 행복하게 했던 것 같아요. 어딜 가든 새로웠고 뭘 하든 기뻤으니까요.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기뻤고, 길에서 넘어져도 요코하마에서 넘어진 거라 행복했습니다. 어쩌면 최애 캐릭터 '히하라 카즈키'가 밟고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길이니까…! 조금 과하다 싶지만 오타쿠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그냥 뭘 하든 예뻐 보이는 사람이나 물건 같은 존재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제게는 요코하마가 그래요.
Q. 그러다 요코하마 한 달 살기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팬데믹으로 약 4년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는데요, 마침내 일본에 갈 수 있게 된 시기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요코하마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살이 계획이 시작되었어요. 디지털노마드라 하잖아요? 인터넷으로 파일을 주고받으며 작업하는 번역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몸이 어디 있어도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어요. 다만 틈틈이 마감을 준비하다 보니 원래 6월에 떠나기로 한 여행을 9월로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즌이든 사시사철 행사가 있는 요코하마라서 일정 변경으로 인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Q. 한 달 살기 이후 요코하마는 작가님께 어떤 도시가 되었나요?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도쿄에 살며 요코하마를 종종 오가고는 했는데요, 그때는 요코하마로 ‘여행’ 가는 느낌이 강했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 반년을 살았던 도쿄보다 한 달 산 요코하마가 더 내 집처럼 느껴지게 되었어요. 제 마음의 고향은 예전에 살았던 ‘도쿄 네리마구’였는데, 이제 ‘요코하마’가 되었네요. 귀소본능이 생겼는지 틈만 나면 비행깃값과 요코하마 숙소가 저렴한지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또, 요코하마에 친구도 생겼어요! 사실 요코하마에서 바(Bar)에 가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즉흥적으로 사람과 대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 된 거였거든요. 거기서 생각지 않게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아직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번 책 발간도 함께 기뻐해 주었어요.
Q. 여행지로서 요코하마는 어떤 곳인가요? 어떤 여행을 할 수 있는 도시인가요?
항구 도시가 여럿 있는 일본이지만, 그중 ‘대표적인 항구 도시’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요코하마를 꼽을 듯합니다. 요코하마는 현대적인 분위기의 도쿄와 전통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가마쿠라 사이에 있는 항구 도시예요. 요코하마 자체도 무척 매력적이지만 도쿄나 가마쿠라를 오가기에도 좋은 위치입니다. 그래서 요코하마에 숙소를 잡고 도쿄와 가마쿠라를 동시에 여행하고는 해요.
요코하마는 바다를 끼고 있어 늘 상쾌한 바람이 불고 맑은 하늘이 있는, 푸른 낭만이 있는 도시입니다. 과거의 수도인 교토나 현재의 수도인 도쿄에 비하면 도시 자체의 역사가 훨씬 짧은 데다가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발전한 덕에 서양식 건물이 더 많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건물이나 분위기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만큼 이렇게 개방적이고 근대적인 도시는 또 없다고 봐요. 또 쇼핑과 문화, 체험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와도 좋고 나 홀로 여행을 와도 즐거울 곳입니다.
에노키테이 ⓒ고나현
Q. 이 책에서는 요코하마에서의 어떤 경험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 했나요?
사실 한 달 동안 일을 할 생각이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을 최대한 줄이고, 그 시간에 최대한 많이 겪고 느낀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 책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에서는 번역가로서의 일상과 일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독자분들 후기를 보니 오히려 제 생각을 듣고 싶었다는 요구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번 책에는 저의 경험과 느낌을 많이 담은 거예요. 예를 들어 바를 가는 경험이라도 한 번 가봤을 때와 여러 번 가봤을 때의 느낌이 다르잖아요. 반복되는 경험을 할 때도 할 수 있는 한 많이 느끼고 생각하여 그걸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Q. 이전 작인 에세이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에서는 일본어 번역가로 사는 이야기를 담으셨는데요, 마니아에서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번역가가 되기 전,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취미로 일본어 번역과 독학을 하고는 있었지만, 번역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고, 워킹홀리데이 준비 과정에서 출판사에 올라온 번역가 구인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어떻게든 도전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에 지원한 세 곳 중 두 곳에 붙었습니다. 일본어 전공자도,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그렇다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 저만의 강점이 있다면 제가 번역하는 장르가 TL 소설(성애 묘사가 들어가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조금 특이한 장르였는데, 그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고 제 번역 작품을 사랑한다는 것이에요. 제 실력에 자신감이 없어서 한 3년 차까지는 누가 직업을 물어봐도 ‘번역가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8년 차인 지금은 늘어난 경력만큼 자신감이 붙어 ‘번역가예요’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Q. 취미가 직업으로 전환된 경우인데, 작가님은 관심을 쏟으며 추구하고 계신 대상을 어떻게 알고 빠져들게 되셨나요?
저는 원래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는데요, 주변에도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한 친구가 『금색의 코르다』라는 작품이 재미있다고 지나가듯 한 말에 만화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게임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게임기를 구매해 직접 플레이하면서 더 깊게 빠져들었죠. 한글 지원이 되지 않은 게임이라 플레이를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자연히 일본어 실력이 점점 늘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처럼 생산적인 덕후의 경우가 많은가요?
저처럼 번역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지만, ‘금색의 코르다’를 좋아하는 친구들 중 하나는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금색의 코르다는 콩쿠르에 나가서 합주를 하는 게 주 내용이거든요. 모든 캐릭터가 악기를 하나씩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캐릭터의 취미가 샤미센 켜기라서 샤미센을 배운 분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트럼펫을 배우는 게 꿈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트럼펫’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금색의 코르다 팬들이 모이면 현실에서도 합주가 가능할 것 같네요.
Q. 관심이나 애정의 대상을 직업으로, 일로 대해야 할 때 생겨나는 변화는 없었나요?
모든 작품이 제 취향일 수는 없어서 가끔은 취향이 아닌 작품도 번역해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을 쏟지 않거나 번역을 대충 하지는 않아요. 눈물이 많고 겁도 많아서 새드 엔딩인 작품이나 무서운 작품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데,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새드 엔딩인 작품은 울면서 작업하고 무서운 작품은 귀여운 걸 옆에 놓고 같이 보면서 작업해요.
Q. 내가 머물렀던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한 달 동안 살며 원래의 일상을 지속한다는 게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대부분 작업이 파일을 주고받아 번역하는 일이라 작업 환경만 달라졌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그게 사실은 엄청나게 큰 변화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공부를 위해, 작업을 위해 집중할 환경을 만들고자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에 가거나 카페를 찾듯이요. 한국에서는 귀찮아서 잘 나가지 않았는데 요코하마에 있을 때는 노트북을 들고 이곳저곳 좋아하는 장소를 돌아다니며 일했어요. 그렇게 한 달이라는 기간을 보내며 리프레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특별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요코하마의 야경 ⓒ고나현
Q. 워케이션이라고들 하지요? 다시 한 달간 어딘가로 떠나서 일하며 쉴 수 있다면 그때도 요코하마인가요?
요코하마도 좋지만 다음에는 센다이에 가보고 싶습니다. 센다이는 녹음이 푸른 곳인데요. 슬로건도 ‘숲의 도시’일 정도예요. 자연과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는 곳이라고 하니 그 푸르름을 몸소 느껴보고 싶습니다. 한 달 살기는 정확히 한 달이라기보다, 한 달을 살아 보았으니 일 년도 가능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어딘가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요코하마에 여러 번 가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요코하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요코하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아카렌가소코입니다. 아카렌가소코는 봄에는 딸기로, 여름에는 해변 테마로, 가을에는 맥주로,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로, 그렇게 각종 테마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바다도 볼 수 있고, 늘 사람으로 북적여 심심하지 않은 곳이에요. 그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조금만 걸으면 야마시타 공원 등 명소를 거닐 수도 있어서 요코하마에서 가장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를 사귀었던 요코하마의 바도 정말 좋아해요. 동네 분들이 모이는 소소한 공간으로 혹시라도 폐가 될까 봐 책에서는 상호를 밝히지 못했지만, 그곳은 정말 따뜻한 곳이에요.
아카렌가소코 ⓒ고나현
인터뷰·사진 | 이주호